상(차리는)남자? 상남자! - 삶이 따뜻해지는 다섯 남자의 밥상 이야기
조영학.유정훈.강성민.이충노.황석희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야흐로 먹방의 시대가 왔다.

게다가 남자 셰프들의 허세가 안방을 주름잡고 있다.

 

이 책은 셰프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다 음식을 만들게 된 남자들의 이야기인데...

아이를 위해 밥을 차리게 된 아빠의 이야기부터,

번역가 부부의 공동주방 이야기도 재미있다.

비교적 전문적 용어를 술술 구사하는 사람도 있고,

별로 전문적이지 않아 보이지만, 내공이 있어뵈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주방의 본질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계기 된다는 것.

 

<집밥>에 대한 환상에는 지난 시절 여성들의 삶이 생략되어 있다.

모든 집에서 맛있는 집밥을 먹은 것도 아니지만,

왠지 여러 가족이 둘러앉아 먹던 집밥의 추억은

외식을 하거나 패스트푸드로 대충 때우는 현대식 식사와 대비되어 자주 등장한다.

 

아직도 한국의 남녀평등 지수는 세계 최하위권이다.

거기는 가정의 역할 분담도 필수적인 요소다.

가정에서 남성들이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

게다가 남성역할의 연장선인 <시월드>까지 여성의 인생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음식에 있어 나를 키운 건 8할이 인터넷이다.(112)

 

레시피를 찾는 일은 간편하다.

인터넷을 뒤적거려도 제법 괜찮은 레시피를 만나기 쉽다.

 

주방을 말끔하게 정리하고 나니 개운하다.

음식물찌꺼기 통까지 세제를 묻혀 싹싹 닦고 여기저기 튄 물을 행주로 다 훔쳐야 설거지가 마무리된다.

주방의 불을 끄기 전 한번 뒤돌아본다.

정리된 주방과 정리되지 않은 주방은 천지차이다.

잡티와 물기 없이 잘 닦인 식탁과 싱크대, 겹겹이 쌓인 그릇들은 마치 누군가 마법을 부린것 같다.

아니 저게 좀 전까지 폭격 맞았던 주방이 정녕코 맞단 말인가.

흐뭇하게 불을 쓰고 돌아서면 주방은 다음 끼니때까지 정적에 잠긴다.

주방의 휴식이 정갈하고 깊다는 건 삶의 은밀한 기쁨이다.(99)

 

나는 이런 성격이 아니어서 도저히 이 수준의 기쁨을 누릴 수 없다.

저런 세밀한 노동의 강도 이상을 직장에서 에너지 소모하도록 탈진한 몸이

집에 가면 도저히 에너지를 낼 염이 나지 않는다.

 

늘 집에서 음식을 하다 보니, 사람들이 집밥에 대해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집밥을 한다는 것은 단순이 예능프로그램이나 인터넷에서 찾은 레시피를 참고하여

그럴듯한 요리 한접시를 만들어 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79)

 

집밥을 한다는 것의 본질을 이 책의 남자들은 알고 있다.

바로 먹는 상대가 즐거워한다는 것.

같이 피곤한 상태에서 좀 덜 피곤한 사람이 음식을 하고 상을 차리는 것은 당연하다.

아직 이 사회에선 당연한 일이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지만...

 

물 온도를 맞추고 퍼지지 않게 수란 잡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결정적인 요소는 달걀의 신선도.(75)

 

그렇다.

달걀은 프라이 하나를 해도 신선도가 결정적이다.

기술이 필요한 음식은... 백선생 말대로 ㅋ 사먹으면 된다.

 

화목한 가정에 대한 집착은 적어도 내게는 실존의 문제(38)

 

어린 시절 가정 해체를 겪은 남편이 아내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다 주는 이유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의 요리하는 이유는 다 다르다.

그러나 오직 하나.

밥상에 앉으면서 '와 맛있겠다' 하는 리액션과,

다 먹고 나서 '오늘 음식 정말 맛있었다.'는 작은 칭찬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음을 '실존'적으로 안다는 것.

 

음식을 같이 먹는 일만큼 '실존'적인 일은 없으니까,

부엌에 가면 고추가 떨어질 것 같은 '본질'따위 집어 치우고,

남자들도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한다.

 

남자가 요리 하면 더 '가오'가 사는 시대가 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128. 말린 청어알을 일본어로 '카즈노 코'라고 부르는데, 한자로 '数の子'라고 쓴다. '數の子'와 같아 보이지만, 일본어이므로 뒤의 글자는 틀린 것이 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11-23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