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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자 ㅣ 삶창시선 43
김해자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부터... 아팠다.
집에 가지 못하는 혼령들에게 주문을 거는 만신의 주절거림 같았기 때문이다.
그 배에 탔던 아이들에게
엄마 목소리로 들려주는 웅얼거림인 것 같아서... 보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
아팠다.
많이 아팠는데,
아플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더욱 아팠는데,
그 아픔은 새로운 것이 아니어서, 굳은 옹이가 되어가고 있어서,
그리고 아픈 사람과 아파야 할 일은 너무도 많아서...
그 아픈 사람들 곁에 가서 잠시 웅크리고 앉았던 일만으로도,
이미 많이 아픈 시인은,
몸소 위로가 되어주는 시들을 길어 올렸다.
한 우주가 사라질 때
오, 천사여
당신 날개는 어디 있었는가(문자를 애도함, 부분)
꼭 아이들의 혼령에게 바치는 진혼곡만이 아니라,
강정 마을의 구럼비 바위에게,
밀양 아리랑까지...
마치 스스로가
속이 터져나올듯 울어제치는 '버버리 곡꾼'마냥
언어나 문자로 이루어져 나오지 못하는 마음을 어버버버 거리는 그 심사가 전해진다.
살아서 죽음과 포개진 그 여잔 꽃 바치러 세상에 왔네 세상에
노래하러 왔네 맞으러 왔네 대신 울어주러 왔네
어느 해 흰 눈 속에 파묻힌(버버리 곡꾼, 부분)
참 착한 시인이다.
착한 사람의 마음에는
짠한 과거도 잊히지 않고 기억되어 남는 법.
그래서 착한 사람은 오래오래 아프다.
이상하기도 하죠 스무 해 전에 도망쳐 왔는데
아직도 내가 거기에 있다니
내가 떠나온 그곳에 다른 내가 살고 있다니요
푸른 작업복에 떨어지는 핏방울
아직도 머리채 잡혀 끌려가고 있다니
앞으로 달려온 줄만 알았는데
제자리에 선 뜀박질이었다니요(어진내에 두고온 나, 부분)
앞으로 달려온 줄 알았는데... 다시 수십년 전으로 회귀한 세상이라니...
참으로 침통한 시들만 연달은 것이 아니다.
제일 첫 시는,
사람의 삶이 그토록 비극적일지라도,
오늘 하루 사는 그 힘을 적는다.
가끔 찾아와 물들이는 말이 있다
두레박 만난 우물처럼 빙그레 퍼져나가는 말
전생만큼이나 아득한 옛날 푸른 이파리 위에
붉은 돌 찧어 뿌리고 토끼풀꽃 몇 송이 얹어
머시마가 공손히 차려준 손바닥만한 돌 밥상 앞에서
이뻐, 맛있어, 좋아,
안 먹도도 냠냠 먹던 소꿉장난처럼
덜 자란 풀꽃 붉게 물들이던 말
덩달아 사금파리도 반짝 빛나게 하던
니가 좋으면 나도 좋아,
말인 게 다인 말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말
나만 얻어먹고 되돌려주지 못한
니가 좋으면 나도 좋아,
붉은 돌에 오소소 새겨진(니가 좋으면,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