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캔필드와 차 한잔 나누며
잭 캔필드 외 지음, 김형곤 옮김 / 물푸레 / 1999년 11월
평점 :
품절


그랬다. 학교는 수도원이 아니었다. 예전에 서양의 중세에 수도원은 지배계급을 재생산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수도원은 엄격한 규율과 통제가 뒤따랐고, 근대의 학교에선 산업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억압된 개인, 부품화된 개인을 그를 목적으로 엄격한 통제가 수행되었다.

이제 학교가 해체되어도 지적으로 무지를 통탄하지 않을 정보화 시대가 이미 왔다.
학교에서 친구와 함께한다는 공동체 의식이 머쓱할 만큼 개인화 시대가 이미 왔다.
학교는 지식을 주입하거나, 지배 계급이 되기 위한 기관이거나,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기관은 더이상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 시간들이 힘들지 않도록 교사가 도와주는 것이 필요할 거란 생각을 난 오래 전부터 해왔다. 간혹 내가 교장이 된다면 교사들에게 어떤 주문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는데, 난 '선생님은 웃어야 한다. 무조건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너무 교권이 실추될까?

생명력으로 충만한 아이들의 삶을 다루려면 교사들은 좀더 웃어야 해요!!
옳쏘!!! 라고 생각한다.

잭 캔필드와 차 한 잔 나누는 시간은 늘 행복하다. 잭 캔필드는 세상을 너무 낙천적으로 바로보고, 인간성을 너무 낙관하는 것 아니야?하는 의혹도 간혹 들지만, 그의 글들에 등장하는 빈부, 인종, 종교에 상관없이 감동적인 이야기들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그것이 도서관에서 류시화나 잭의 이름을 만나면 무조건 빌리고 보는 이유가 된다. 행복하니까...

삶의 목적이 <행복하기 위한> 것이라면 독서의 목적이 <행복하기 위한> 것이 된다 한들 이상하지 않을 테니까.

인생에서 모토로 걸어 놓고 살아야 할 말, <얕보지 말라>를 배웠고,
금세 죽어갈지도 모를 할머니께 내 양말을 벗어 줄 수 있는 사랑을 배웠고,
가장 중요한 시험 문제인 청소부 아주머니의 이름을 여쭈어볼 수 있는 마음을 배웠고,
부하직원이 금전적으로 딸려서 아들에게 야구글러브를 사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장님이 예쁜 글러브를 선물해주는 감동르 배웠고,
화환을 선물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우리에게, 화환에 절하는 인도 아가씨는

<<얕보지 말라>>는 웅변을 가르쳐 준다.

해고를 당해 어려움을 겪었을 때,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자학>할 필요 없음도 배운다. 자기 계발과 훈련의 기회를 회사에서 줄 수 없으므로 부충한 기회를 주는 일이라고 <겸손>하게 받아들이라는 지혜.

'내 일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면 심장병에 걸릴 위험이 거의 없다는 진실.

원하는 높이에 반드시 뛰어오를 수 있다고 확신하는 고양이처럼 우리도 자신의 행동에 확신을 가져야 한다.

진지한 경영자는 필요하지만 근엄한 경영자는 별로라는 사실도 배운다.

그리고,

결과가 잘못된 것은 내가 잘못했기 때문이고,
결과가 괜찮게 나타난 것은 우리가 잘했기 때문이고,
결과가 최고로 나타난 것은 너희들이 잘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을 내게 가르쳐 준 좋은책!

책도 예뻐서 선물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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