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 흔적과 상상, 건축가 오기사의 서울 이야기
오영욱 글.그림.사진 / 페이퍼스토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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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내가 한 십년을 생활한 도시.

그러나 그때는 길치여서 지하철타고 갈 수 있는 곳 몇 군데,

또 반포, 개포동, 삼성동 등 과외하러 다니던 곳 몇 군데 정도 알았지만,

작년 여름 돌아다닌 서울과 엊그제 가본 홍대 앞은 사뭇 내가 알던 서울과 달랐다.

 

30년 전,

청운의 꿈도 없이 무작정 대학 진학으로 올라간 서울 생활은,

난생 처음 아파트 형 기숙사와 침대 생활을 제공해 주었고,

생각보다 서울 역시 초라한 도시였다는 기억이 남는다.

하긴, 1980년대 서울은 얼마나 개발 중인 도시였던가...

 

서울은 대략 길들이 격자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인사동 길의 모습을 보면 그런 격자 구조에서 벗어나

대각선으로 뻗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옛 청계천의 지류로서 물이 흘렀던 길이다.

근대에 이르러 하천이 복개되면서 현재까지 지도상 대각선의 형태로 길이 남은 것.

내 꿈 하나는 구도심에 작은 땅 하나를 갖는 것이다.

만약 자금이 생긴다면,

나는 대각선 방향으로 난 골목길에 접한 땅을 사고,

손님이 오면 도도한 표정으로

" 이 앞길이 조선 시대에는 하수도였다고." 하는 상상을 한다.(27)

 

아는 만큼 보인다.

나도 인사동 길은 숱하게 가봤지만,

그 길이 대각선인 것도 느꼈지만, 그 이유를 생각해본 적은 없다.

 

공항이란 공간은 낯설다.

모든 절차가 사람을 낯설게 한다는 것.

 

한 시간 전에 번뜩였던 생각이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세상의 모든 잘난 사람들에게 지금을 맡겨두고

한숨을 쉬러 여행을 가지요.(83)

 

소격동, 원서동, 인사동, 계동

뭔가 고색창연한 듯한 이름들 사이로 난 골목길들과,

한옥들, 궁궐 건물들...

 

그런 것들만 존재하는 서울이 아니다.

강남은 개발되었고, 사람들이 몰려들어 바글거린다.

 

요즘엔 가로수길에 이어 세로수길도 생겼다 하고,

맛집도 많다고 하지만,

사람 사는 입맛이야 다 거기서 거기고,

대도시일수록 상업적으로 전락하기 쉽다.

 

오기사의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의 즐거움은,

그의 그림을 보는 것이다.

직선이라고는 없는 그의 그림들을 보노라면,

직선으로 생겨먹은 세상을 좀 유화시켜 볼 수도 있는 듯 해서다.

 

서울 역시 그의 시선 안에서 유화제를 뿌려 부드럽게 누그러졌다.

 

사람들은 서울로 진학하기를 꿈꾸고,

한이 많은 사람들은 오늘도 광화문 광장에서 엎드린다.

서울은 꿈과 한이 오롯이 살아 펄떡이는 도시의 상징이다.

그렇지만, 꼭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삶이 그런 것은 아니다.

 

오기사의 승무원 친구가 남긴 다음 말은 그래서 명대사다.

 

휴가를 갔다가 착륙하는 곳이 직장이라는 느낌, 알아?(81)

 

서울 사람들에게 서울이란,

그런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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