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의 시계장치
마티아스 말지외 지음, 임희근 옮김, 박혜림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판타지 동화다.

마녀의 성같은 공간이 등장하고,

버려진 아이들이 등장한다.

그곳은 마치 안데르센의 '겨울 왕국'의 마녀 같다.

 

그렇지만, 여기서 버려진 꼬마아이의 심장에 부착된 시계장치.

그 꼬마는 어느 날 아카시아라는 여자아이에게 마음이 꽂히고,

급기야 학교엘 가게 되는데...

사랑이라는 문제에 맞닥뜨린 꼬마는 이제 '돈키호테'가 된다.

 

내 심장은 꿈의 낟알을 빻아 진실을 생산해 내는 풍차.

미스 아카시아, 내가 간다.(101)

 

사랑 앞에서 인간은 돈키호테가 된다.

두려움을 생각하기보다는,

구세대의 생각에 얽매이기보다는,

자기의 생각을 밀고 나가는 힘.

남들은 무리라고 비웃지만, 돈키호테는 거인같은 풍차로 돌진한다.

 

넌 그게 약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연약함을 감수하고 네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심장시계 덕분에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어.

네 남다른 점이 널 매력 넘치는 존재로 만들어줄 거라고.(105)

 

이 책은 사랑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하고자 하는 자는 '유혹'의 단계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무엇인지...

 

유혹의 핵심은 지금 네가 유혹하려는 게 아니라는 환상을 심어주는 거야.(111)

 

있는 그대로의 네 모습을 보여줘.

그녀를 웃기거나 울려야 해.

, 친구가 되고 싶은 척하면서.

미스 아카시아라는 사람 자체에 관심을 기울여.

그녀 엉덩이만 뚫어져라 바라보지 말고.

엉덩이에만 관심을 두고 쫓아다니는 녀석은 깊은 감동을 줄 수 없어.(113)

 

사랑은 몸을 얻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얻는 일이다.

그러나 청춘의 사랑은 몸과 마음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건 호르몬이 조종하는 강한 본능의 결과일지 모르지만

청춘의 부글부글 끓는 피는 사랑에서 몸의 돌진을 저지하기 쉽지 않다.

 

우리 둘의 입술은 잠시 쉬었다.

세상에서 가장 말랑말랑한 휴식.

곧 두 입술이 강렬하고 섬세하게 다시 섞여들었다.

그녀의 혀는 내 혀 위에서 부화하는 한 마리 참새였다.

신기하게도 그녀의 혀에선 딸기맛이 났다.(134)

 

우리는 살아있는 두 성냥개비처럼 사랑했다.

우리는 침묵 중에 활활 타올랐다.

우리가 나누는 사랑은 화재였다.

내 몸은 지진이 되었고,

내 심장은 감옥 같은 허물을 벗고 동맥을 통해 두개골 바로 밑까지 날아가 뇌가 되었다.

이제는 근육 하나하나, 손가락 끝까지 모두 심장이었다.

사방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이었고, 붉은 빛을 발하는 장밋빛 병이었다.(140)

 

그들의 사랑을 묘사하는 부분은 시와 같다.

사랑은 '동사'보다는 '형용사'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동사'라고 하더라도 '타동사'보다는 '자동사'에 가까운...

그래서 사랑은 동작의 기술보다는 심리와 상황의 묘사에서 더 근사한 심리를 얻게 되는지도...

 

결국 넌 나라는 존재를 열 수 있는 열쇠니까.

그리고 이제 네가 날 온전히 신뢰하게 되었으니 너도 안경을 쓰고,

내가 렌즈 너머의 네 두 눈을 볼 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겠어.(154)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부서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주고 싶어한다.

상대가 자신을 파괴할지라도,

사랑이 자신을 소멸시키는 결과를 낳을지 모른다 해도,

열쇠를 상대방에게 건넬 수 있는 마음, 그 용기.

 

꽃, 이라는 유심론/ 김선우

 

  눈앞에 열명의 사람이 잘빠진 몸매로 웃고 있어도

  백명의 사람이 반짝이는 선물을 펼쳐 보여도

  내 눈엔 그대만 보이는

 

  그대에게만 가서 꽂히는

  마음

  오직 그대에게만 맞는 열쇠처럼

 

  그대가 아니면

  내 마음

  나의 핵심을 열 수 없는

 

  꽃이,

  지는,

  이유

 

김선우가 시에서 그리는 마음 역시 이런 것이지 싶다.

꽃이 지는 이유는

이미 자기의 핵심을 그대에게 이양해버린 후이기 때문.

꽃은 나무가 자손을 번식하려고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 피워올리는 결과다.

그 꽃이 지는 것은,

자신의 핵심을 그대에게 넘겼다는 것.

 

심장 보철장치를 달고 있는 내가 지금 하는 짓은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슈크림과 초콜릿을 폭식하는 당뇨병 환자의 행동만큼이나 위험했다.(161)

     

그녀의 입술에선 농익은 과일 맛이 났다. 그리고 미스 아카시아는 멀어져 갔다.

꿈같은 시간이 부서지는 동안 내 시계의 톱니바퀴들이 점점 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나는 그녀를 두 번 다시 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182)

 

이청준의 <줄>이라는 소설에서

줄광대 운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긴 후,

줄에 오롯이 몰입하던 자신이 흐트러짐을 깨닫고 결국 줄에서 추락한다는 스토리가 나온다.

 

아픔을 두려워할수록 아플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법이란다.

줄타기 광대들을 보렴.

그들이 외줄 위를 걸어갈 때

떨어지면 어쩌지, 하고 생각할까.

아니야. 그들은 위험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것을 감수함으로써 즐거움을 맛보는 거야.

어떤 일에도 상처받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평생을 보내면,

사는 것이 끔찍하게 지루할 거다.

내가 알기로 무모한 것보다 더 재미있는 건 없어.(92)

 

삶은 스펙(career) 만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줄을 잘 타는 것은 남들에게 멋진 경력으로 드러날 것인지 모르지만,

줄타기 광대에게 줄타기는 온몸이 겪어야 하는 체험이고 과정이다.

공포에 져서는 결코 줄타기를 할 수 없다.

공포를 넘어서서 공포를 잊어야 줄타기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사랑 역시 그런 것 아닐까?

어떤 일에서도 모두 A+를 받고자 하는 모범생은

사는 일에서 행복을 잊고 살지 모른다.

 

어린 시절 매시멜로우를 먹지 않고 견뎠던 아이들이

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더 높은 지위를 취득한다 하더라도,

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는 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처음 사랑을 시작했으나 어찌할지 모르는 친구,

또는 사랑의 고통으로 힘겨워하는 친구,

모두에게 권해줄 만한 동화처럼 쉽게 읽을 수 있는 판타지다.

 

편집자의 위트가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페이지 아래 심장에 시계장치를 단 왼편의 남자아이와

화려한 오른쪽의 여자아이가

페이지를 넘길수록 가까워진다.

결국 둘은 책갈피 사이에서 만나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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