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하게 살기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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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타니 겐지로가 40대에 쓴 글들을 모은 것.

1970년대라면 아직 컴퓨터가 보급되진 않았을 터이니, 손으로 원고를 쓰던 시절이었을 터이다.

시골로 가서 육신을 움직여 일하며 살때여서 재미있는 글들이 많다.

 

맷돌에는 소박하지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조형미가 있다.

옛사람들의 미의식이 존경스러울 따름(39)

 

생활 속에서 묻어나오는 글이다.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올 때면 꽤 긴장이 된다.

율모기나 구렁이가 아무 예고도 없이 남의 집 현관 앞에 달구경을 나와 있기 때문이다.

재빨리 판단해서 독사가 아니면 놀라게 하거나 위협하지 않는다.(42)

 

참 상냥하다. ^^

자연을 바라보는 상냥한 시선.

하이타니 선생님이 특히 좋은 것은, 어린이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그런 관점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고생과 통찰의 소산이다.

 

나는 청춘 시절을 밑바닥 노동자로 살았던 경험이 있어서 육체노동은 참고 견디는 일임을 잘 알고 있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할 때까지 자신의 육체를 괴롭힌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오감이 깨어난다.

인생을 되돌아보면, 내가 나라는 인간에 대해 가장 깊이 생각했던 것은 그시절이었다.(69)

 

농사를 지어 보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

 

아무 것도 모르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아는 것이 낫다.

농산물 값이 너무 싸다는 것. 농민들은 바라지 않는데도 농업 자체가 너무나 투기적이라는 사실...(57)

일본은 국토가 좁아도 잘만 궁리하면 충분히 자급자족할 수 있지만,

농지를 갈아 엎고 공해물질을 내뿜는 공업을 발달시켜 외국에서 사들인 원료를 가공하여 수출한다.

그리고 거기서 벌어들인 돈으로 모자라는 식량을 외국에서 비싼 값에 사들인다.

그래야만 부자는 돈을 벌 수 있고 정치가는 뇌물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72)

 

현상을 바라보지 않고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 날카롭다.

한국에서 '잘 살아 보세'의 보이지 않는 주어는 바로 <부자들>이었던 셈이다.

가난한 백성들은 주어도 모르고 자기들이 잘 살게 될 줄 알고 허리 부러지도록 일한 것일 뿐.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참 부드럽고 다사롭다.

 

가정에서 인간적인 교류가 일어나면 어린이의 안테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 반응한다.

 

아빠가/ 늦게 와서/ 엄마가 화가 나서/ 집에 있는 문을/ 모두 잠가버렸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보니까/ 아빠는 자고 있었습니다.(107)

 

초등학교 1학년의 눈은 이렇다.

 

그 시대를 읽게 되면서, 어제 읽은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등장했다. 가슴이 먹먹하다.

 

레이건과 전두환 사이에 오고간, 인권보다 안보가 원이라는 성명을 읽는 것으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다.

한 나라에서 어린 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수천 명이 자기 나라 군인들한테 희생되어 피를 흘려가며 쓰러져 죽어가는데

나만, 우리 식구만 무사하면 된다는 말입니까.

라고 광주사태에 항의하고 분신자살을 한 젊은 노동자 김종태 씨의 숭고한 민족애는...(113)

 

그가 어느 료칸에 머물면서 느낀 감정은 황홀하다.

 

사람은햇살이 다사로이 비치는 양지에 있으면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거나 슬픔이나 고민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게 된다.(124)

 

료칸에서 행복했던 시간을 회상하며 남긴 글이다.

 

고작 교사와 제자 사이에 지나치게 친한 척하는 사람이 나는 감당이 안 된다.

둘 사이에 인생을 엄격하게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맺어진 우정이 없다면 그 인간관계는 메마른 관계라고 생각한다.(160)

 

<인생을 엄격하게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맺어진 우정>이라...

그래. '일베'하는 녀석을 제자라고 친한 척하는 일은 고통스러 일이리라.

우정이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닌 관계다.

 

아이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깊이 있는 삶을 살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

생명이 살아가는 일이 가혹하다는 것을,

인간의 고통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그래서 인간에게는 상냥함과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배우고 있다...

절망과 맞부딪쳐 이겨내기 않고서는 진정한 상냥함을 지닐 수 없다.(201)

 

진정한 상냥함은, 고통에서 배우는 것이고,

상냥함과 배려는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선생님 신부 예뻐요?/ 상냥해요?/ 뚱뚱해요?/ 점점 무서워질 거예요./ 신부가 무서워져도/ 선생님은 상냥해야 돼요.

(초등 3, 결혼, 209)

 

열 살짜리 생각치고는 통찰력이 대단.

 

아이들이 이해하느냐 못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하느냐 아니냐가 문제다.(215)

 

진심은 통한다. 세상이 각박해지는 만큼, 소통의 노력을 더욱 기울여야 하겠지만,

상냥한 진심으로 소통하기 위해 애쓴다면, 시대를 탓할 필요 없는 관계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던 아이가 보인다는 것은 분명 하나의 세계를 발견했다는 뜻이며,

그 세계를 바라보는 나의 가치관이 달라졌다는 뜻.(250)

 

인간은 양지에서만 성장하지 않는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더욱 아름다운 인간이고자 하는 정신을 지닌 인간이 용기를 준다.(264)

 

그는 문학의 힘을 이렇게 말한다.

 

상상력이 사실을 뛰어넘을 때가 있다.

그것은 인간의 상상력이 영혼 그 자체이기 때문이리라.(326)

 

허구적인 문학이 필요한 것은,

현실에 기반하여 영혼을 통찰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잡다한 잡문집이지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책이다.

교육에 대하여, 어린아이들에 대하여...

초등학교 선생님이나, 학부모라면 재미를 떠나 곰곰 배우는 자세로 읽을 필요가 있는 책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어른, 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아이들은 배우지 않는다.

가르치려는 의도 없이 진심으로 다가가면, 아이들은 상처받지 않으면서 성장한다.

'유리 가면'의 마야가 가진 가능성을 짓밟지 않는 어른이 되기를 소망했던,

다시 2월이다.

 

새학년도에는 다시 새로운 아이들을 만날 터인데,

아이들과의 만남을 '피곤한 일터'로만 여기고 있지나 않은지,

자라나는 아이들을 '골치아픈 말썽쟁이들'로만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상냥하게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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