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 ㅣ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주제탐구세미나
주경철 외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서울대 '자전'이라는 전형이 있다.
자유전공...이라는 것인데,
서울대 법대도 없는 현실에서, 법학대학원을 지망하는 학생들이 많이 가려는 곳이다.
그렇지만, 자유전공...이라는 취지에 맞춰 여러 가지 리서치 주제를 주고 탐구하도록 한다는 의도는 좋으나...
글쎄. 이제 갓 스물이 된 새내기들,
그것도 대부분 공부에만 이골이 난 아이들에게 '사랑'은 과분한 주제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이 책은 세 분야에서 사랑을 탐구한다.
물론, 더 많은 부문에서 탐구할 수 있으리라만,
주경철이라는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서양의 사랑은 어떻게 변화해왔는가를,
정재승이라는 '뇌과학자'의 입장에서 사랑은 신체와 어떻게 호응하는 것인지를,
박지현이라는 '중국문학자'이 입장에서 사랑이 중국 문학에서 어떻게 펼쳐져 왔는지를 이야기한다.
실제 강의에서는 서로 넘나드는 대화 담론이 펼쳐질 수 있었겠지만,
이 책에서는 이런 세 분야의 의견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어서 좀 아쉽다.
기독교적 입장에서,
육욕에 따른 사랑은 실로 사악한 것이다. (54)
아직도 일부 보수적 단체들이 학생들에게 '순결교육'이란 것을 시키고 다니기도 하는데,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시대착오자들의 행태같기도 하다.
짧은 역사적 고찰 끝에,
우리는 단정적 답을 얻기는커녕 더많은 수수께끼를 떠안았다.
역사상 언제나 청춘남녀들은 사랑의 열병을 앓았고,
사랑을 얻기 위해 부모, 공동체, 교회, 국가와 끝없이 갈들을 겪었고,
고된 싸움 끝에 새로운 시대를 맞아도
이전의 문제들이 풀린만큼 다시 새로운 문제들이 터져나온다는 것을 알았을 뿐.(95)
결국 사랑도 시대에 맞춰 변화해 가는 속성을 가진 것임을 인식하는 정도가 역사적인 고찰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다.
한편 과학적인 측면의 호르몬과 사랑의 상관관계를 읽는 일도 재미있다.
섹시하고 도발적 눈빛을 보내고 싶다면, 당신의 동공을 넓혀라.
르네상스 시대 이미 동공이 크면 섹시해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아가씨들이 동공확대를 위해 안약을 넣었다.
이 안약은 아트로핀 제제를 주성분으로,
아트로핀은 원래 동공을 키우고 심장박동을 가속하고 입술을 마르게 하고 손을 가볍게 떨게 한다.
한마디로, 사랑에 빠졌을 때와 유사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
약의 이름도 의미심장. 벨라 도나. 이태리어로... 아름다운 부인...(110)
스페인의 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사랑을 이렇게 정의한다.
정상적인 사람에게 일어나는 비정상적인 주목 상태.(135)
사랑은 질투 역시 유발하는데,
나의 생은 미친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입 속의 검은 잎)
질투하는 사람은 네 번 괴롭다.
질투하기 때문에 괴롭고,
질투한다는 사실에 대해 자신을 비난하기 때문에 괴롭고,
내 질투가 그 사람을 아프게 할까봐 괴롭고,
또 통속적인 것의 노예가 되어 괴롭다.(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147)
칠레의 로프라도 시에서는 노인들에게 '비아그라'를 공짜로 나눠준다.
시장은 '삶의 질 향상에 활발한 성생활이 필수'라는 취지로 노인 1,500명에게 한달 4정 발기부전 치료제를 받게 했다.(172)
이렇게 사랑과 육체적 현상은 불가분의 관계이기도 하다.
중국 문학은 '시경'으로부터 시작한다.
시경은 대부분 사랑노래이다.
요즘 인기 영화 '국제 시장'을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이라고 읽는 덜떨어진 이도 있는 모양이다만,
시경의 주제는 '개인적 연정'과 '공동체적 유대' 등이 주제이다.
중국 문학에서 섹스의 욕망이 미학적으로 탐구되는 이야기들을 설명하는데,
다소 지루한 부분도 있다.
전국시대 말 초나라의 송옥이 지은 <고당부>에서 '운우지정'이라는 고사가 등장한다.
초 양왕이 멀리 고당의 누대를 보고 '운기'의 변화무쌍을 궁금히 여겨 묻는다.
구름이 일어날 때의 모습은 어떠한가?
처음 나올 때는 무성하기가 곧게 뻗어 있는 소나무 같습니다.
조금 지나면 밝아지는데 마치 아름다운 여인이 소매를 들어 햇빛을 가리면서 사모하는 이를 바라보는 듯 하고,
홀연 모습을 바꾸는데 빠른 기세가 네 마리 말을 몰아 오색의 깃발을 세우는 듯 하고,
시원하기가 바람 부는 듯 소슬하기가 비가 오는 듯하다가,
바람이 그치고 비가 개면 구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197)
이런 것이 남녀간의 육체적인 기쁨을 나타내는 '운우지정'의 비유다.
금병매와 홍루몽 등의 소설등을 살피면서 욕망과 '마음'을 살펴 본다.
욕망은 변화의 주범이 아니다.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내 안에 변함이 없다.
욕망의 메커니즘은 언제나 일정하고 균일하다.
오히려 변화의 주범은 이 욕망을 어떻게 발현할까를 결정하는 내 안의 '마음'이다.(261)
이렇게 결말을 맺는다.
중국 문학을 탐구한 결과,
사랑의 본질은 욕망과 관련이 깊지만,
핵심에는 내 마음의 변화가 욕망의 갈길을 지시한다는 것이다.
사랑에서 '욕망'은 그것이 '성적'인 것이든, '관계'적인 것이든, 본질적이다.
그렇지만, 그 욕망의 흐름을 잘 콘트롤 할 수 있는 '마음'이 사랑을 잘 할 수 있는 기술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이 소중하다면, 욕망을 잘 제어하는 '마음'이 필요한 것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