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티그루 소령의 마지막 사랑
헬렌 사이먼슨 지음, 윤정숙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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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jor Pettigrew's last stand

페티그루 소령의 마지막 자리...

 

원 제목은 그렇다.

 

이책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버 키터리지'를 떠오르게 했다.

노년의 이야기로 올리버가 워낙 진한 인상을 남겼던 탓인데,

올리버의 이야기가 단편 소설들이 피카레스크 구성으로 모자이크 되듯 삶의 편린들을 각각의 단면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라면,

이 이야기는 페티그루 라는 68세 남성의 '고집스런 영국인의 자존심'을

한방에 무너뜨리는 이주민(파키스탄) 여성 미시즈 알리와의 정신적 교감에 대한 이야기다.

 

스토리는 영국스럽게도,

잡다하면서 지루할 수 있지만,

소령과 알리의 정신적 교감은 아름답다.

 

단적으로 사랑에 대한 정의가 등장한다.

 

부적절한 상대와 사랑에 빠진다는 게 어떤 건지 정말 아시나요?

친애하는 젊은이, 사랑이란 늘 그런 것이 아니겠나?(292)

 

노인들의 사랑이라고 해서,

또 그들이 문명의 차이를 드러내는 세계의 사람들이라고 해서,

부적절하다고 말하는 세상의 평에 대하여,

작가는 소령의 입을 빌려 말한다.

사랑은 늘 그런 것이라고...

 

이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부적절한 사랑이란 것은 바라보는 사람의 <편견>이고 <고정관념>이란 것.

사랑을 느끼는 사람의 입장에선 그런 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

 

세상을 흑백으로 보는 건 아주 깔끔하고 편리한 일이지.(291)

 

이렇게 흑백논리, 내 입장만 고수하는 논리에서 바라보는 것의 부조리를 짚어낸다.

 

부인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해야죠...

나는 부인의 말이라면 뭐든 따릅니다...

마상 창경기가 열리지 않는 한, 난 당신의 기사입이다.(281)

 

정열적인 남자다. 그가 68세의 늙은 외모를 가진 사람이라고 그 마음조차 말라서 바스락거리진 않는다.

나도 저 나이까지 저렇게 뜨거울까?

 

미시즈 알리는 많은 페이지에 작은 오렌지색 포스트잇으로 표시를 해놓았고

소령은 그녀를 격려하며 흥미를 끈 단편들을 낭독하게 했다.(154)

 

그들은 이렇게 책을 통해 가까워진다.

 

그녀가 전화를 걸어 방금 키플링의 책을 다 읽었다며

일요일에 이 책에 대한 통찰을 나눌 시간이 있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141)

 

같은 주제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편견을 뛰어넘게 하고, 심리적 거리를 한번에 뛰어넘게 한다.

그들의 사이에 키플링이 접착제처럼 놓여 있어 다행이었다.

 

남 : 고전을 읽는 데는 쓸모없는 것이 없어요.

    당신의 끊임없는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요즘에는 세련된 문화를 인식하고 추종하는 사람이 너무 없어요.

여 : 네, 외로운 추종일 수 있죠.

남 : 그러면 우리, 행복한 소수가 뭉쳐야겠네요.(69)

 

작업치곤 좀 근사한 작업이다.

책을 통해 만난 친구를 '행복한 소수'라고 부를 수 있다니,

재미있는 상상을 따라가는 여행은 나른하지만 편안하기도 하고,

긴장감 넘치는 상황에서도, 늘 낙관적인 미래를 점칠 수 있게도 한다.

 

파아란 가을 하늘 아래서, 나무그늘 아래 졸면서 읽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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