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사과 꽃이 피었다
황인숙 지음 / 문학세계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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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은 내게 특별한 시인이다.

그의 시 한 편 때문이다.

 

그래서 황인숙을 찾아 읽게 되었고,

그의 고양이가 기지개를 켜는 듯한 시를 좋아하게 되었다.

세상은 참 추악하다.

그 추악함에 맞서기 위하여 삶은 무겁다.

 

언어는 추악한 것을 가리려 하지만,

또 언어에 의하여 추악한 것을 드러난다.

 

삶의 가벼움을 시를 통해 만나는 일도 즐겁다.

 

고양이가 가짐직한 존재감.

그 사뿐사뿐함과 그 착지의 완벽함.

순간순간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발현하여 보이는 존재.

 

그 고양이에 비하면,

인간의 둔탁한 발걸음은,

황인숙의 말을 빌리자면, <자명한 산책>이 되는데,

그 발걸음의 어색함은, 고양이의 그것에 비하면, 참 촌스럽기 그지없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강)

 

나는 아무의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자유로)

 

이렇게 씁쓸한 현실 인식 속에서도,

인간은 때론,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날아가고 싶은 대상을 발견하곤 한다.

그때, 그의 발걸음은 <자명하게> 고양이의 그것을 닮아간다.

 

비가 온다.

네게 말할 게 생겨서 기뻐.

비가 온다구!

 

나는 비가 되었어요.

나는 빗방울이 되었어요.

난 날개 달린 빗방울이 되었어요.

 

나는 신나게 날아가.

유리창을 열어둬.

네 이마에 부딪힐 거야.

네 눈썹에 부딪힐 거야.

너를 흠뻑 적실 거야.

유리창을 열어둬.

비가 온다구!

 

비가 온다구!

나의 소중한 이여.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조금 침울하지만, 뭐 그정도 침울함이야 어떠랴.

소중한 이가 거기 있어서

삶은 달려가고 싶을만치 가치로운데 말이다.

 

그런 운명의 무거움과 경쾌함을

변증법적으로 통합한 통일체로서의 음악이 있다.

바로 파두다.

 

잠이 걷히고

나는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

어떤

암울한 선율이

방울방울

내분비(內分泌) 됐다

공기가 으슬으슬했다

눈을 들어 창밖을 보니

한층 더 으슬으슬하고 축축한

어둠이었다

 

끝없이 구불거리고 덜컹거리는

산도를 따라

구불텅구불텅

덜컹덜컹

미끄러지면서

 

(이 파두, 숙명에는 기쁨이 없다.)

 

나는 점점 더

부풀어 올라

탱탱해졌다

오줌으로 가득 찬

방광처럼.(파두-리스본행 야간열차)

 

포르투갈의 짙은 대서양빛 바다와

지중해에서 부딪치는 물살의 무지갯빛 물안개가 가득 비치는 듯한

탱탱히 부풀어 오르는

인간의 심사를 음악으로 표현한 파두.

 

파두를 듣는 기분으로 황인숙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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