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치명적인 검은 유혹 - 낭만적인 바리스타 K씨가 들려주는 문화와 예술의 향기가 스민 커피 이야기
김용범 지음, 김윤아 그림 / 채륜서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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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한국이 이렇게 커피의 천국이 된 것인지...

그 커피도, 인스턴트 커피를 '다방 커피'라며 동글납작한 커피잔에 마시던 시절을 뒤로 하고,

그 이름도 복잡한 원두커피점에서,

주문하기도 곤란한 다양한 커피들을 즐기는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는 것인지...

 

누구는 케냐 AA의 쓴맛이 좋다 하고,

누구는 예가체프의 신맛을 즐긴다 하고...

봉지 커피를 휘휘 저어 마시는 사람을 원시인 보듯 쳐다보기도 하는 사람도 많은데...

 

콩다방, 별다방 허다한 다방에서 팔리는 커피들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나면,

커피의 향은 더 진하게 음미할 수도 있을 것이고,

커피의 쓴맛에서 더 쓰디쓴 인생의 깊이를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별다방의 스타벅스와 사이렌 이야기도 재미있고,

이효석의 부르조아적 커피 애호에 대한 이야기도 그 고소한 향이 그대로 살아오를 듯 하다.

바흐의 커피 칸타타의 묘미는 커피에 대한 애정을 '완소 커피'로 승화시키고,

전혜린의 커피에 대한 추억은 그의 삶만큼이나 짠한 센티한 감정을 불러온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것은,

이상에 대한 이야기다.

이상의 커피숍 '제비'에 얽힌 이야기...

 

 

 

 

나는 이 딱지가 붙은 요시찰 원숭이

 

때때로 인생의 감옥에서 탈출해서

 

원장을 걱정하게 한다

 

 

이런 구절이 일본어로 적혀 있다.

이상의 시들을 일본어로 감상한다면...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을 듯 싶기도 하다.

 

 

예술과 시인의 영혼이 담기지 않은 커피는 그저 쓰디쓴 카페인 음료에 불과하다.

 

이상의 제비다방에서는 커피만 판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모차르트, 베토벤, 랄로의 음악이 있었다.

제비다방의 그 커피는 현대에서 단순히 분위기와 허영과 혀끝으로 커피를 마시는 자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였다.

그가 필요로 하고 꿈꾼 것은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의 문화와 예술이 있는 대화 공간,

마치 유럽의 커피 하우스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그의 꿈은 항상 물거품이었다.(118)

 

 

선지자는 오랜 후에야 다가설 미래를 앞서 본 사람들이다.

 

어쩌다 보니,

나도 홀빈 커피를 글라인더에 넣어서 갈고,

끓인 물을 드립 주전자에 넣어서 조금 식히고,

천천히 내리는 그 시간을 즐기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옆에 전문 바리스타 샘을 1년 모시고 있다보니 그리 되었다.)

 

커피를 갈고, 물을 끓여서 천천히 내리는 동안의 여유.

그 시간에는 어떤 바쁜 일도 다 열일 제쳐둘 수 있어서...

여유가 있어서 커피를 내려 마시는 게 아니라,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여유를 찾는 것임을 알게 되어서 좋다.

 

공정 커피에 대한 지식채널-e 같은 이야기까지...

이 책은 다채로운 커피 이야기로 독자를 커피향 속에 가둔다.

그렇지만, 훌륭한 책은 그 책을 읽음으로서 독자를 움직이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이 훌륭한 점이 있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는 늘 코와 입가에 커피향이 가득 맴도는 체험을 간접적으로나마 안겨주는 점이다.

 

 

장윤현의 '외로워서 완벽한'이란 책과 함께,

커피를 글자로 음미할 수 있는 향긋한 책.

 

 

이 책을 읽으면서,

카프카의 '성'을 읽고싶은 매혹에 휩싸인다...

날마다 읽고 싶은 책은 늘고... 맘만 책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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