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림 떨림 울림 - 이영광의 시가 있는 아침 나남시선 83
이영광 엮음 / 나남출판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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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역순 사전'이란 것이 있다.

한국어는 음절 단위로 표기를 하도록 되어있고,

한자어로 된 말들이 많아서 뒷글자부터 사전을 만들어도 꽤나 유의미할 것인데,

거기서 찾는다면, '-림'의 칸에 홀림, 울림, 떨림... 이런 말들이 등장할 법 하다.

더 생각해 보면, 말림, 갈림, 졸림, 불림... 이렇게 ㄹ-로 끝나는 용언들의 명사형은 제법 엮는 재미도 있겠다.

 

이 책의 표지가 참 이쁘다.

빛깔도 곱고, 크기도 아담해서 손가방에도 쏙 들어갈 사이즈이고,

돋을새김으로 홀림, 떨림, 울림을 표현해 보려한 듯,

동심원과 물결선들이 새겨져 있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왼손으로 표지를 쓰다듬게 된다.

사랑스런 책은 눈으로 읽는 것 외에도 쓰다듬는 용도로도 쓰인다.

 

중앙일보에 '시가 있는 아침'이란 꼭지로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인 모양이다.

사람들에게 시집 좀 사 읽읍시다~ 라고 외치려는 듯,

비교적 낯선 시인들의 낯선 시들이 많다.

그렇지만, 시의 목소리에 대한 그의 언어는 사뭇 따스하고 한켠 웅숭깊으며, 사려깊다.

 

시는 원래 살기 막막한 사람의 말.(서문)

 

시는 소설과 다르다.

소설은 특별한 인물이 어떤 시대적, 공간적 상황(배경)에서 겪게 되는 일(사건)을 통하여,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펼치는 작가의 의도가 숨겨져 있어서,

독자는 소설을 읽고 나면,

마치 소설 속 인물을 잘 아는 듯이 여겨지고, 그 배경을 잘 이해하게 된다.

반면, 시에서는,

뜬금없이, 불현듯, 어떤 처지인지 알기 힘든 화자가, 혼잣말로 몇 마디 내지르고 사라진다.

그래서 시의 독자는 혼자서 끙끙 앓으며,

도대체 이 화자의 처지는 어떠하며, 의도는 무엇인지,

어떤 상항에서 이런 말을 하려 했던 건지... 궁금해 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소설 해설서'에 비해 '시 해설서'가 많을 수밖에 없다.

 

시의 언어는 절박함에서 튀어나온 독백이다.

그것을 원래 살기 막막한 사람의 말~ 이라고 했다. 고개가 주억거려진다.

 

시는 자주 가까이 다가온 먼 것의 목소리(52)

 

시가 압축하여 삶의 비의를 보여주려할 때,

일반적 삶의 언어로 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살기 막막함이 극에 달하면,

존재의 기반이 다른 먼 것의 목소리조차 낯설지 않게 공감하며 울릴 수 있을지도...

 

소망스러운 무언가가 지금 여기에 없을 때 시는 태어나는 것 같다.

결핍은 시의 문전옥토다.

당신이 와버리면,

당신이 전부일 나에게 시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나.(173)

 

아, 이 해설은 시보다 아름답다. 청출어람 이청어람...이랄까.

이 해설은 손 세실리아의 문전성시 덧글이다.

 

문전성시

                        손세실리아

 

해안가 마을길에 찻집을 차린 지 달포

발길 뜸하리란 예상 뒤엎고 성업이다

좀먹어 심하게 얽은 싸리나무 탁자

마당 정중앙에 버텨 앉은 맷돌상

바다정원의 화산암 테이블

좀처럼 빌 틈 없다 만석이다

기별 없는 당신을 대신해

떼로 몰려와 종일 죽치다 가는

 

눈먼 보리숭어

귀 밝은 방게

아기 보말

남방노랑나비

 

당신이 없는 그자리

종일 텅 비어 외롭고 쓸쓸하기 그지없는 그 자리...

다른 모든 것 다 있는데, 보리숭어, 방게, 보말(고둥), 노랑나비까지...

삶의 증거로 가득차 있는데,

화자가 그리워 죽겠는 당신은 삶의 증거를 보여주지 않는다.

 

결핍이 시의 문전옥토라니... 그렇구나...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

좀 들여다봐주었으면 하는

혹은 아무 욕심도 없는 마음

그런 게 시라면

나는 시를 너무 함부로 쓴다 (이상국, 나는 시를 너무 함부로 쓴다, 부분)

 

시인이라고...

스스로 시어를 갈고 닦는 사람이라고 자부심 가지고 살았건만,

감옥에 있는 사람의 편지,

많이 아픈 사람의 전화,

이런 언어 앞에서 돌아본다.

 

시인이 의지한 윤리 가운데 하나는 그가 누군가를 대신해 말한다는 것 아닐까.

그러다가 어떤 때는 그 누군가가 제 입을 빌려 말한다는 느낌에 닿기도 하는 것 아닐까.

대신이라는 점에서 그는 얼마간 사제를 닮았다.

사제의 길과 시인의 길은 어느 험로에선가 갈라지겠지만,

대신 아프고 대신 슬픈 몸을 지녀야 시인은 아픈이와 갇힌 이의 긴 얘기를 어렵사리 들어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얼음아내...

여보, 건너려고만 하면 녹아 허물어지는

이 얼음다리 위로

나 어떻게 건너가지?(얼음나라 체류기, 유홍준, 부분)

 

지상의 영화를 찬양하는 종교가 없듯이 현세의 복락을 지지하는 시도 근본적으로는, 없다.

우리는 모든 것이 가차없이 무로 바뀌어가는 곳에서,

기막혀 하지도 않고 살고 있다.

요컨대 허망을 산다.(89)

 

시가 그려내려는 것 역시, 허망하고 요망하다.

그걸 이해하기 어려운 독자에게, 시는 근본적으로 그런 걸 그리는 것임을 짚어준다.

 

이 책에서 유심히 몇 번 읽었던 시 한 편.

 

선어대 갈대밭

                      안 상 학

 

갈대가 한사코 동으로 누워 있다

겨우내 서풍이 불었다는 증거다

 

아니다 저건

동으로 가는 바람더러

같이 가자고 같이 가자고

갈대가 머리 풀고 매달린 상처다

 

아니다 저건

바람이 한사코 같이 가자고 손목을 끌어도

갈대가 제 뿌리 놓지 못한 채

뿌리치고 뿌리친 몸부림이다

 

모질게도

입춘 바람 다시 불어

누운 갈대를 더 누이고 있다

 

아니다 저건

갈대의 등을 다독이며 떠나가는 바람이다

아니다 저건

어여 가라고 어여 가라고

갈대가 바람의 등을 떠미는 거다

 

갈대와 바람의 이별은 봉두난발에 몸부림의 시간을 넘어

피어나는 어떤 새로운 사랑을 느끼게 합니다.

평등하게 사랑하는 두 존재의 헤어짐은

어느 결에 슬픔을 훤칠하게 넘어서 있습니다.(60)

 

이영광의 해설 아니라도,

매달리고,

끌고, 뿌리치고,

다독이고,

등 떠미는...

바람과 갈대의 존재 의미에 대하여...

어느 하나로 해석할 수 없는...

그리하여 더욱 아름답고 깊은 시를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서정주에 대한 한 마디.

 

시인은 영욕의 세월을 살다 갔으나,

그의 시는 남아서 이렇게 의젓하다.

한 번 더 읽어드리고 싶은 대목.

 

나그네 배때기에

등줄기 뜨시하여

이 시린 물 또 한 번 업어 건넨다

 

좋다. 어디에도 꿰맨 자국이 없는데, 참 좋다. (79)

시인이 시를 읽고 몇 마디 덧붙인다는 것은 쉽잖은 일이다.

몹시도 욕심났을 것이다.

자기보다 더 뛰어난 시재(詩才)를 만나

모차르트를 시기한 살리에리처럼 부르르 떨기도 여러 번 했으리라.

허나,

시어란 팍팍한 우물에서 길어올린 한 바가지 두레박임을 알기 때문에,

참 좋다~

이렇게 덧붙일 수밖에 없는 그의 '떨림'을 조금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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