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 다른 생각, 그러나 다투어야 할 생각
이일훈 지음 / 사문난적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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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하는 사람들은,

자를 대지 않고 조금 삐뚤삐뚤한 선을 긋는 일을 즐기는 것 같다.

해칭선을 긋는 일도 재밌어 하고,

공간과 공간의 채워짐, 비워짐 사이로 사람을 밀어 넣는 생각을 하기를 즐긴다.

 

이 사람의 책은 환경 문제에 대한 접근 같은 것이 앞서 등장하면서,

사회의 전반적 문제와 삶의 공간에 대한 문제를 견줘 보기도 하고 시각을 바꿔 생각하기도 한다.

근데, 내 맘에 쏙든 짓은,

책의 앞에 트레이싱지를 한장 밀어 넣은 거다.

ㅋ~ 그건 마치 김연아가 자기 스케이팅 하는 사진을 한 장 끼워서 존재 증명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내 이야기들이 어디로 튀어 가든 간에, 나는 건축하는 사람이야~!

이런 존재 증명을 트레이싱지 한장으로 깔끔하게 끝낸다.

별것 아닌 데서 유쾌함을 느끼는 내가 이상한 존재???

 

1. 숲의 둘레, 2. 풍경의 둘레, 3. 건축의 둘레로 진행하는데,

개인적으로 1장이 가장 맘에 든다.

2장과 3장은 여느 비평서에서도 읽을 수 있는 생각들, 다양한 열린 사고들이 펼쳐진다.

 

숲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자연스런 이유가 있다.

휘어진 나무도 벼랑 위의 바위도 다 자연스런 이유가 있다.

휘어지는 것과 부러지는 것도 다 자연스런 이유가 있다.

이유가 자연스러우니 결과도 자연스럽다.

더하고 뺄 것이 자연 스스로에는 없는 것이다.

존재 자체가 이유이며 이유 자체가 존재다.

숲에 한 가지 없는 게 있으니 그것은 과대 포장이다.

과대포장은 눈속임인 동시에 자연스런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자연스런 이유가 없으니 모든 게 억지다.

내용보다 크게 보이려니 상자도 커지고,

내용보다 화려하게 보이려니 쓸데없는 돈이 더 들어가고,

내용보다 세련되게 보이려니 요상한 형태의 디자인이 된다.

디자인은 껍데기만 다루는 것이 아닌데도 과대한 욕망은 껍데기에 치중한다.

숲에는 그런 과대한 허식과 허위가 없다.(88)

 

사람도 숲과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숲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꾸미지 않고도 다 내보일 수 있는...

꾸미지 않고도 다 보고 그걸 자연스러워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친구가 돼도 깊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다.

 

공익과 사익이 정반대인 세상은 후진 사회다.

공익과 사익이란 같이 가야 하는 것인데, 세상도 정치도 개인도 다 잇속 앞에 흔들린다.

혼돈...... 그 사회적 풍경, 우울한 우리의 자화상이다.(141)

 

자연스럽지 못한 세상의 근원은 '잇속'에 있다.

자본주의는 자연을 거스르면서 '이익'을 추구하는 나쁜 제도다.

거스르지 못한다면, 문제를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책에서 꼭 안고 가야 할 문제 의식은 <밀도와 속도>다.

과연 그렇게 고밀도의 삶의 현장을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인지,

과연 그렇게 고속도의 삶을 유지해야 하는 것인지, 문제제기도 산뜻하고 사려깊다.

 

밀도와 속도 앞에 무감각하게 반응하면서,

녹색 성장이라는 둥, 환경 개발과 보존이라는 둥

반성없는 정책의 이름들에게서 밀도와 속도는 부끄럽게 세상에 침투한다.

 

그의 용어에 대한 관찰은 '다름과 다툼', '바르게 살자와 빠르게 살자', 사람 중심과 존재 중심, 숲과 자연의 관계 등

다양한 관계 성찰에서 언어를 다루는데,

건축가인가 싶게 사고가 경계를 짓지 않고 넘나든다.

 

생각이 시원하고 통쾌하며 명징하다.

 

근하신년, 연하장에 새겨진 글자처럼 정월에서 섣달까지 뭐든지 '삼가'는 태도를 갖자.(242)

 

참 좋은 말이다.

뭐든지 좀 진중하게 '삼가'는 태도를 갖고 산다면,

가벼운 잇속에서 나오는 비리는 없어질 수도 있을 터인데 말이다.

 

이문재 시에서 비추이는

과도한 인간의 욕망이 그의 글들을 내리 훑는 죽비소리가 되어 울린다.

 

철썩, 철썩, 처얼썩~!

 

 

 

 

광화문, 겨울, 불꽃, 나무 - 이문재


해가 졌는데도 어두워지지 않는다
겨울 저물녘 광화문 네거리
맨몸으로 돌아가 있는 가로수들이
일제히 불을 켠다 나뭇가지에
수만 개 꼬마 전구들이 들러붙어 있다
불현듯 불꽃나무! 하며 손뼉을 칠 뻔했다

어둠도 이젠 병균 같은 것일까
밤을 끄고 휘황하게 낮을 켜 놓은 권력들
내륙 한가운데에 서 있는
해군 장군의 동상도 잠들지 못하고
문닫은 세종문화회관도 두 눈 뜨고 있다

엽록소를 버린 겨울나무들
한밤중에 이상한 광합성을 하고 있다
광화문은 광화문(光化門)
뿌리로 내려가 있던 겨울나무들이
저녁마다 황급히 올라오고
겨울이 교란당하고 있는 것이다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
광화문 겨울나무 불꽃나무들
다가오는 봄이 심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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