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마, 씨 - 시로부터 사랑이기까지
강정 지음, 허남준 사진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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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찾아 읽으면서, 콤마의 절묘한 쓰임에 유난히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이번에 강정의 콤마, 씨란 장르가 애매한 책을 읽으면서, 나 말고 또 콤마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을 만나 일견 반가우면서,

일견 책이 별로였다는 생각을 한다.

 

강정이 몇 사람의 시를 오랫동안 곱씹으면서,

그 구절들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고 난 후,

자기만의 문법으로 그 이야기들을 자기 이야기에 녹여 낸 책이다.

 

시인 강정이 낸 시집도 아니고, 잡문도 아니고, 장르가 애매한 책이다.

내용 역시 그닥 뾰족하게 훌륭하지도 않다.

 

표지에 둥글 넙적한 콤마 그림이 반짝거리는 코팅이 되어 쓸어 보다가,

아~ 나는 보고 말았다.

콤마 안에 담긴 작가의 섬세한 마음을...

내가 생각하던 콤마의 모습 속에 담긴 '태아'의 가능성을...

작가는 콤마 안에 희미한 초음파 사진처럼 담아 두었던 것이다.

 

달 안에서 팔분음표 반짝임을 찾을 수 있는 마음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듯,

콤마 안에서 태아의 그림자를 보는 눈도 누구에게 말하기 쉽지 않다.

열명이면 열명 다 희한한 놈 다 보겠다며 눈을 흘길 것이기에...

그런데, 그런 넘이 여기 있었다니... 통쾌하다.

 

(남자, 여자)... 세상을 이렇게 양분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그런데... 가만 보면, 세상은 남자와 여자로 양분되지 않는 거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그림자처럼 '콤마'가 들어앉아 있지 않은가.

그걸 재해석해 보자면,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남자도 아닌, 또 여자도 아닌, 남자이기도 한, 또 여자이기도 한' 무언가가 있고,

그것을 관찰자는 '콤마'로 부르기도 한 것이다.

 

접두사로 생각하자면, 'inter-'의 의미를 담고 있는 콤마 되겠다.

 

콤마는 이렇게 둘 사이의 완충지대 내지는 점이지대를 포괄하는 융통성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엄밀하게 갈라내는 분리의 칼날처럼 보일 때도 있다.

원래 분리와 통일은 한 몸뚱아리의 두 이름이라 했으니,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콤마는 때로 감정의 폭주, 경이로움과 경탄의 마음을 담아내기도 한다.

 

아, 이런, 어머나, 놀랍기도,  이런 뒤에 반드시 콤마를 찍어 줘야,

그 문장의 경이로움은 완성된다.

때로 느낌표보다 뛰어난 감정의 대리인이기도 한 것.

 

콤마의 생김새는 참 이쁘다.

올챙이처럼 생긴 콤마. 그러나, 그 콤마의 꼬리는 한쪽으로 쏠린 느낌이다.

좀 빼딱한 놈인 셈인데...

만약에 올챙이처럼 꼬리가 한중간에 있다면... 콤마의 느낌이 솜사탕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콤마의 속성은 솜사탕처럼 달콤한 미사여구보다는 한쪽으로 쏠린 경이로움, 삐딱함에 가까워 보인다.

고집을 부리고, 나름의 편향을 내세우며, 심리적 쏠림을 자연스레 표현하는 것이 콤마의 소신이라면 소신이고, 철학이라면 철학일 거다.

 

꼬물거리는 태아가 자궁에 착상해서 자라나는 모습을 올챙이처럼 볼 수도 있다면,

콤마 안에서 초음파 사진처럼 희끄무레한 태아를 볼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보면, 눈을 감고도 보이는 게다.

안 보이면, 이미 마음이 어두워진 벌거벗은 임금님의 세계 속 어른이 다 된 것일 거고...

간혹 정자의 생명력 또는 약동 역시 콤마와 유사해 보인다.

정자미인이라고, 예전에 정자 안에 인간의 설계도를 가진 작은 인간의 모습이 들었을 거라고 추측하였다는데,

그것 역시 태아의 축소된 모습과 다르지 않다.

 

두 홑문장 사이에서 대구를 이루도록 밸런스를 맞춰주는 역할도 역시 콤마의 것이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이 때, 콤마가 없다면, 무게중심을 쉽게 보기 어렵다.

균형 감각의 달인, 콤마의 미덕 중 빼어난 거 하나다.

 

살다가 보면,

문득 콤마처럼 생긴 녀석들을 만나고, 무척 반가울 때가 있다.

오이를 생으로 먹으면 건강에 좋다고 꼭지를 삐져냈는데, 오이 끄트머리에 패인 부분이 있어,

잘린 단면이 콤마처럼 생겼을 때도 있고,

은행을 살짝 볶아서 껍질을 벗겨내거나 호박씨를 까먹으려다,

제대로 쪼개지지 않은 녀석의 모습에서 콤마를 찾아낼 때도 있다.

 

손이나 발의 굳은살을 떼어내려다 만난 내 살 아닌 내 살 역시 그넘처럼 생겼을 때가 있고,

빵에 바르려고 나이프로 푹 떠낸 생크림이 그넘처럼 부드럽게 감겨있을 때도 있다.

 

콤마는 비실거리지 않는다.

생명력으로 가득차 있고, 자신감이 넘친다.

그렇다고 남들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지 지켜보면,

무연히 먼 산 바라보며, 휴지(休止)의 미덕을 즐길 줄도 안다.

 

쉼표라고 읽을 때 역시 콤마는 제 기능을 다하는 것 같지만,

오선지 위에 콤마가 놓였을 때,

숨표의 기능은 악상을 잠시 쉬게 함으로써 더 큰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녀석이다.

이렇게 고전적인 또는 유유자적한 시간을 부여하는 콤마는 자기 안에 탱탱한 긴장감을 가득 채우는 귀여운 녀석이다.

 

그렇지만, 때론 발레리나가 힘찬 도약 후에 잠시 정지한 듯한 순간을 연출하듯,

점프의 세련됨을 보여주기도 하는 바,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에서 처럼,

침울한이 담은 뜻을 훌쩍 건너 뛰어 '소중한 이'에게 전달시켜 주는 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중한 이'를 아끼는 맘을 한껏 도약의 기쁨으로 승화시키기도 하는 듯 하다.

 

마침표, 느낌표, 물음표처럼 문장의 성격을 규정짓는 주연의 역할을 하진 못하지만,

콤마는 훌륭하게 조연으로서 감초 역할을 다할 수 있다.

부차적인 역할을 우습게 보는 사람은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

세상 돌아가는 원리를 모르는 사람은 하룻강아지에 불과하니 말이다.

콤마처럼, 조연에 불과해 보이는 사람들이 제자리에서 하는 역할들이 각기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아주는 사람이야 말로,

두려워할 만한 사람이고 실제로 무서운 사람이다.

 

아무리 많은 말을 늘어 놓더라도, 콤마는 지쳐하지 않고 다 들어주는 적극적 경청, 수용의 자세의 달인이라 할 법한데,

그 넓은 아량은, 여느 마침표, 물음표, 느낌표로선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여유라 할 만 하다.

말줄임표 정도가 콤마의 열거법에 이해의 감정을 표할 수 있겠지만,

콤마의 인내심에 비하자면, 말줄임표는 부끄러워할 것이다.

 

살면서, 콤마같은 사람이 되고 싶을 때가 있다.

콤마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날도 있다.

 

쉼표처럼,

숨표처럼,

수용의 달인이면서,

조연의 감초인,

도약 후에 오는 휴지의 긴장을 아는,

균형미 속의 생명력의 약동을

그 다이나믹함을 사랑하는...

 

콤마 같은,

그런 삶을 바랄 때가 간혹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다만, 아쉬웠던 점은,

콤마를 그렇게 사랑하는 이가, 콤마 대신 내려찍는 점()을 페이지마다 그려 넣은 점은 강한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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