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의 풍경들 - 고종석의 우리말 강좌
고종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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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이면 좀 더 대중적인 글을 쓰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종석의 생각은 상당히 객관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말을 '국어'라는 국수주의적 용어로 부르는 것부터, 우린 일본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았다. 일본도 자기 말을 일본어라는 객관적 용어로 바꾸려는 시도를 하는 이 즈음, 우리도 우리말을 '한국어'라는 객관적인 사물로 바라 보아야 한다.

물론 한국어는 우리의 관념 문화의 최고봉이다. 쉽게 만들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다. 쉽게 순화할 수도 없고 오염시킬 수도 없다. 문화가 뒤섞이면 저절로 오염되기 마련이고, 순수함을 외치던 사람들은 또라이 취급을 받게 되어 있다. 그렇다고 일부 과격분자의 말처럼 영어 공용화를 주장하는 것 자체가 객관적으로 지지를 받을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니 그다지 고민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의 주장대로 언어에 우리는 너무 민족주의적인 색채를 담아왔다. 우리말 지키기가 우리 민족 지키기였던 식민지 시절이 우리 역사에 있었던 것은 뼈저린 역사였다. 그러나, 아직도 그 감정에 머물러 있다면 소아병적 영웅주의에 빠지는 오류를 넘어설 수 없을 것이다.

저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책은 일반인이 읽기에 아주 짜증날 것이다. 국어를 십수년간 다루고 있는 나도 상당히 짜증났으니 말이다. 우리말의 언어를 다루는 너무 대다수의 학자들이 자료를 늘어 놓기만 하고 체계화하는 걸 우스이 여긴다. 하긴, 나도 능력이 안 되니 비판만 할 뿐, 그 체계화의 길에서는 완전히 멀어 졌지만. 이젠 좀 체계적인 문법을 기획할 때도 되었는데...

아직도 수십 년 전의 선배들의 밑바탕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잡다한 자료들만 산더미처럼 쌓이는 안타까움. 국수주의적 입장에서의 국어관의 고수.

세계의 십이삼위 정도 인구를 가진 우리말과, 자기 문학을 가진 우수한 말로써의 우리말을 널리 알리기엔 그닥 좋은 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김진우의 언어처럼 원론적인 책이 독자들의 이해를 쉽게할 것이다.

전에 신문에서 대할 때에도 지나치게 부담스런 부분이 많았는데, 그걸 책으로 묶어놓고 읽으라하니, 짜증이 벅벅났다. 이 여름에 만나기엔 별로 좋은 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말의 특질을 좀더 잘 드러내 줄 수 있는, 그러면서도 우리말의 멋과 맛을 보여줄 수 있는 '끼'가 고종석에게는 충분히 있음을 알기에 그에게 좀 과한 부탁을 하고 싶다. 문법 책과 잡문의 중간에 놓인 교재를 한 권 저술할 수 없겠는가 하고 말이다. 이 책은 잡문 치고는 너무 어렵고, 문법 책으로는 너무 난삽하다. 정체성 없는 책인 것이다. 신문에 실린 글들의 한계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신문에 실리기엔 너무 복잡다단하고 정리되어 있지 않다.

좀 더 비유를 섞고, 재미난 이야기들에 녹여내서 2편을 기획해 주면 정말 고맙겠다.  '엄마'에겐 있는데'아빠'에겐 없는 것, '어머니'에겐 있는데, '아버지'에겐 없는 것 같이 말이다.

아, 내가 이런 책을 쓸 만큼 학문이 된다면 좋으련만, 너무 오래 공부에서 떨어져 있었나. 아니, 한 번도 공부에 가까이 가지 않았으니, 비판하는 데 한계가 있긴 하지만, 희망을 갖는 건 자유니깐... 나도 이제 불혹을 앞둔 나이다. 지천명이 되기 전까지 공부나 해 볼까. 우리말의 풍경들을 세세하게 놓치지 않으면서 계절에 따른 꽃무리들, 금수강산의 풀벌레들과 푸르른 강물, 하얀 파도도 노래하고, 계곡에 숨어사는 사람들의 경치까지 담아낼 수 있는 우리말 풀이책을. 그 사람들이 담고 있는 성정(性情)과 자연과의 조화를 이룬 단어들, 식민시대의 아픔에 젖고 서구화 물결에 침윤된 뼈아픈 단어들과 새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약동하는 우리말, '한국어'에 대한 책을 말이다. 하긴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재미난 이야기로 문법 설명할 수 있는 창의력과 끈기가 있어야 이런 작업이 가능할 것이다.

남들이 진급을 위하여 박사를 딸 때, 난 박사 곁에도 가기 싫지만, 정년퇴임하면서 잡문 몇 편 섞어 책 한 권 펴내는 속물적 결과도 내기 싫고, 우리말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우리말 아끼는 책이나 한 편 기획해 볼 일이다... 꿈이라도 꾸고 나니 시원한 여름 오후.

참, 책 제목이 '한국어의 풍경들'이라야 하지 않았을까? 작가가 그 생각을 못했을까. 아니면 편집부가 멋대로 바꾼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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