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러본다 - 제10회 최계락문학상 수상작 문학과지성 시인선 380
최영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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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살아 있지만, 지구는 죽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지구의 일부인 나도 죽어가는 것이고,
양초처럼 삶은 죽음을 향한 지속적이 호흡의 연속인 거다. 

어떤 게 잘 사는 건지,
시인은 쿡,
찔러본다. 

이를테면,
어이,
잘 살고 있어?
하고... 

대형마트에 얻어터진 난전의 눈두덩이 시퍼렇다
온 데 파스를 바르고 나온 친절 연습
사시사철 땡볕 세례에 그을린 할머니들
애교 떨며 보조개 만들며 요염한 브이 자를 그린다
눈물겹다 자본주의 꽁무니라도 따라붙으려는
저 늦은 보충 학습
열등반으로 내몰렸으면 오기와 끈기만이 승부수
이왕 내친 길, 시장이 살 길은 시장
마트의 얼굴로 성형수술 할 게 아니라
더욱, 오로지, 바야흐로, 마침내
초지일관으로 시장다워지는 것
씩식하게 툭툭 쥐어박듯
말 놓고 쌍심지 켜고
살 테면 사고 말 테면 말아라
단돈 천 원에 백 원에 십 원에 덜며
바들바들 침 발라 만 원짜리 퉤퉤 꼬불치는 것
덤 하나에 반 토막에 밀고 당기며 악에 악을 쓰다가
기분 나면 한 주먹 얹어주고 손 터는 것
아침은 여전히 시장 바닥에 제일 먼저 당도해
빛나는 햇살 꾸러미를 무진장 풀어 놓았고
후줄근한 세상사 다시 이판사판 벼랑으로 내모는 것 (재래시장 살리기)

난전에서 가난한 것들이 빌빌거리며 세금도 안 내고 살아가는 꼴이 프렌들리하지 못하다.
대형 슈퍼를 보면, 얼마나 친구함고 싶은가.
재래시장은 벼랑으로 내몰린다.
재래시장은 재래시장다움을 내세워야 한다.
거기 있어야 할 것은 거기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그게 또 힘들다.

종일 있어도 태양 한 번 들지않는
북향의 구멍가게 간판이 태양슈퍼다(태양슈퍼)

태양 없는 태양 슈퍼와
별볼 일 없는 별이네 가게를 보면서 시인은 그렇게 서글프고 쓸쓸하다.
병이다.  

 

계산대의 찢어진 비닐 의자가
엎어져 있다 부엌에 올려놓고 온 라면 물이
구급차 소리로 들끓으며
으아아아- 골목 밖으로 뛰쳐나오고 있다
급히 집으로 가는데
하늘에 별이 하나도 없다 (별이네 가게)


햇살이 우리 존재를 시험하듯,
날마다 정말 살아 있는지,
잘 살고 있는건지,
이 시인은 묻는다.  

그대, 잘 살고 계신가?

햇살 꽂힌다
잠든 척 엎드린 강아지 머리에
퍼붓는 화살
깼나 안 깼나
쿡쿡 찔러본다

비온다
저기 산비탈
잔돌 무성한 다랑이논
죽었나 살았나
쿡쿡 찔러본다

바람 분다
이제 다 영글었다고
앞다퉈 꼭지에 매달린 것들
익었나 안 익었나
쿡쿡 찔러본다 (찔러본다)

너무 찌르지 마시라. 
금세 상해버릴 수도 있다.

늘 그럼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
늘 그럼그럼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
늘 그렁 눈에 밟히는 것
늘 그렁그렁 눈가에 맺힌 이슬 같은 것
늘 그걸 넘지 않으려 조심하는 것
늘 그걸 넘지 않아도 마음이 흡족한 것
늘 거기 지워진 금을 다시 그려 넣는 것
늘 거기 가버린 것들 손꼽아 기다리는 것
늘 그만큼 가득한 것
늘 그만큼 궁금하여 멀리 내다보는 것
늘 그럼그럼
늘 그렁그렁 (늙음)

늙음도, 죽음도
그에겐 참 자연스럽다. 

늘~ 그럼, 늘~ 그렁, 늘~ 그걸, 늘~ 거기, 늘~ 그만큼, 가까이 사는 거다.  

근데 또 인간은 늘 그렇게 영원히 드래곤 볼 일곱 개를 모아 살 것처럼 허세를 떤다.
곧 가라앉을 것들이.
크게 넓게 높게 보는 그의 눈은 인간을 겸손하라 꾸짖지 않지만,
스스로를 낮추도록 하는 힘이 있다.

곧 가라앉을 것이다 숨 쉴 구멍이 없어질 것이다 잡아먹힐 것이다...... 곧 조용해 질 것이다 곧 아무 기척이 없을 것이다 쨍그랑 숨죽인 평화가 이어질 것이다 (지구 수족관, 부분)

왜 지각했냐 물으면 아침 햇살 받아먹는 꽃잎 보느라, 어기적어기적 가는 쇠똥구리 앞지르지 못해 그랬다 하면 그만인 학교, 왜 결석했냐 물으면 단비 받아먹는 어린 싹 보느라 추녀 끝에 놀러온 새소리 듣느라 그랬다 하면 그만인 학교, 문제는 잠자리나 나비의 날갯짓 속에 있고 답은 씀바귀의 쓴 뿌리 속에 있는 학고...... 한동안 분교였으나 지금은 모두 다른 간판을 내걸고 잇는 학교, 곧 지구에서 없어질 학교 (자연 학교, 부분)

술은 딴 데서 처먹고
시꺼먼 피똥은
왜 여기 싸질러놓았지?(서해 와서 - 태안 기름 유출)

사는 게 정말 사는 건지...
그는 거꾸로 보기의 명수다.
거꾸로 보라.
역전의 명수와 함께...

갑갑하지는 않으시냐고
우리가 절하러 가는 줄 알았는데
실눈 뜨고 보니 오십 년 칠십 년
구십 년 감옥에서 놓여난
망자들이 우리에게 절하고 있다
얼마나 수고가 많으시냐고
밥은 먹고 사냐고
쇠창살 안에 갇힌 우리를 면회하고 있다......

망자들이 혀를 차며 몇 번 더 손짓을 했지만
눈치없는 우리는 자꾸 절만 했다
평안하시냐고 갑갑하지는 않으시냐고
우리가 울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망자들이 우리를 보며 울고 있다 (참배)

문득 삶이 형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거라, 누가 뚝딱 언도해준 대로 너는 일 년 너는 십 년 너는 백 년, 다행히 집행유예나 형 집행정지로 풀려나기도 했을 거라, 부모 잘 만나 태어나기도 전에 형량 전부 면제받기도 했을 거라, 전생에 쌓은 덕이 있어 반의반으로 감면되기도 했을 거라, 새파란 나이에 감옥 문을 나서며 콧노래를 불렀을 거라, 남은 사람들은 너만 먼저 도망가냐고 대성통곡을 했을 거라, 죽기 아니면 살기로 탈옥을 기도했을 거라, 단번에, 수없는 자살 미수에 그치기도 했을 거라, 요즘 장기수감자가 너무 많아, 감옥이 너무 좁아, 어서 나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면서도 내쫓길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거라, 나가서 자리 잡는대로 연락하겠다던 너에게서는 아직 아무 연락이 없는 거라, 그만큼 저 너머 세상이 재미있나 봐, 문득 삶이 형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거라, 그리운 애인을 기다리듯 네가 달아난 쪽을 바라보기도 하는 거라 (문득)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말 하긴 쉽지만,
애욕의 봇짐 내려놓으라는 말 흔하지만,
상처를 품은 자만이 한 발짝씩 나아가는 힘을 얻으리라. 

정일근 선생이 아프시기라도 한 모양이다.
힘을 얻으시길 빈다.

하늘 가까이 나아가려면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애욕의 봇짐들을 다 내려놓아야 한다며 그러신다는 것이야

상처를 품고 상처를 내려놓는 일
곰솔 할아버지 지금 그 힘으로
한 발짝씩 하늘 가까이 나아가고 있는 중일세 (상처의 힘 - 정일근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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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8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1-06-09 10:35   좋아요 0 | URL
세상은 참 상처 잘 주고 모른체 하는 곳이죠.
인간도 여기저기 찌르고 다니고는 모른체하구요.
그냥 웃기엔 쓸쓸한 아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