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곳으로부터 - 지하철 1호선 첫번째 이야기
김수박 지음 / 새만화책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김수박의 만화는 따뜻하다.
그의 복잡하게 얽힌 부정형의 선들은,
가난한 사람들, 그래서 주름이 가득 진 시름으로 터져넘칠 것 같은 얼굴들을 그리는 데 적합하다.
그렇지만, 만화의 칸과 칸 사이를 건너뛰는 마법에 사로잡히다 보면,
김수박이 전하려고 하는 따스한 온기가 맥스웰 캔커피 없이도 전달된다. 

지하철 1호선은 가장 오래된, 그래서 가장 낡은,
그리고, 서울의 외곽에서 서울 안으로 미어지게 타고 들어오는 노선이다.
숨을 쉰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빼곡하게 들어선 사람들이 서로 눈길을 마주치지 않는 일이 더 어려운 곳이다. 

그 곳,
사람이 있는 곳,
거기에 사람들의 마음이 오가는 일도 없고, 무심한 모습들이다. 

그렇지만, 한강을 건널 때, 한강 저 하류 바다를 향한 쪽에서 이따만큼 크게 비치는 해를 보면,
찌글한 군상들이 모두 고개를 돌린다.
그러면서, 사람은 본래 착할지도 모른다... 이런 만화를 김수박은 그린다. 

순대국밥 한그릇...을 앞에 둔 건강한 젊은이들의 만남과 헤어짐도 짜릿하고,
안 미친년의 미친 행보도 슬프다. 

왕눈이와 나의 만남과 헤어짐은,
모든 사람의 삶이 그렇듯,
필요하면 따르고 무심하게 또 헤어지는 반복 속에서 굳이 짠한 감정을 자아내는 그런 이야기다. 

김수박의 만화를 읽는 일. 

그의 선들은 유들유들하기보다는 뻐들뻐들한 덜 익은 우동 면발같지만,
그 선들이 빚어내는 인간사는 그래서 푸들푸들한 부적응 투성이지만,
인간들 사이에서,
인간들의 그 곳에서 일어나는 만남과 헤어짐을 통하여 그가 드러내려는 안간힘은
따스하고, 다감하다. 

가을이다.
따스한 햇살 등에 지고, 다감한 사람이랑 속삭이기 좋은 계절이다. 

보이지 않는 하늘에도, 별은 있을 것이다. 

 

별의 생애

                  이동순(제1회 김삿갓 문학상)

바람속에 태어난
저 어린 별은
제 어미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오늘도 캄캄한 우주 벌판에서 외롭게 반짝인다

어린 별이 땅 위의
가난한 나라 아이들과 밤새도록
서로 눈 맞추고 용기와 희망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신의 한 생을 살아온
늙은 별은
흐뭇한 얼굴로 그 광경 지켜보다

우주의 한쪽 구석에서
혼자 조용한 임종 맞이한다

자욱한 눈보라 속으로 터벅터벅 걸어가서
영영 되돌아오지 않는
저 북극 에스키모 노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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