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 문학과지성 시인선 249
신대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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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랭기후... 툰드라에는 순록이 산다. 피하지방 많고 가죽 두껍고 털 북실거리는 넘이...
인간처럼 약한 동물은 툰드라에 살 수 없다.  

이 시집은 외롭다.
낯선 곳에서 시인은 외롭다.
그 낯선 곳이 춥기까지 하다면,
외로움은 더 커질 것이고,
그 외로움과 함께 어울릴 오로라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툰드라의 매서운 공기를 폐가 이기기 힘들 때,
문득 개마고원에서 온 친구를 만난다면,
나와 너는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인지... 

나는 내가 있는 곳에 없고
그대는 그대가 있는 곳에 없고 (아이오와 4,  부분) 

이 책을 읽기 전에 여행기를 읽어선지, 이 문맥이 눈에 확 끌렸다.
'나'는 내가 있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타인이 바라본 그 지점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곳은, 여기가 아니라, 여기 아닌 다른 지점이다.
여행을 다니면 그 사람을 바로 볼 수 있다던가.
객지 나가면 모두들 애국자가 된다고도 했던 그럼 말들이,
저 한마디에 엉겨붙었다.
나는 내가 있는 곳에 없다. 
그대는... 이하 동문. 

평지 끝에서 산속으로 쫓겨 들어온 그해 겨울, 물소리도 끊긴 옻샘에서 얼음 숨구멍을 쪼던 까만 물까마귀와 마주쳤네. 물가마귀는 나를 깊이 지켜보았고 나는 한눈 팔며 주춤거렸네. 더 쫓길 데 없어 아주 몸 속으로 기어들고 싶었네. 몸 속, 기어들면 영혼이 비치지 않는 곳에서 살고 싶었네. 

겨울 가고 겨울
바위틈에 물까마귀 언 발자국만 남기고
사람도 산도 잊고 한데에서
나는 내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네. (나는 내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네, 전문) 

문득, 그럴 때가 있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가고 싶은 때가.
딱히 세상 살기 싫은 것도 아닌데, 무작정 떠나고 싶을 때가 있는 거다.
그 사람의 마음이 그럴 거다.
자기가 있는 건지, 뭔지... 모를 때, 무작정 모든 관계에서 해방되어 길을 떠나고 싶은 그런 것. 

몸부림치면 칠수록, 조국과 멀어질수록
조국과 가장 가까워지는 곳. (Sam and Lee - 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 4, 부분) 

다른 길로 나가고 싶었습니다.
다르게 살아보려구요. (새, 부분) 

밖으로 나가서야 안이 보이는 역설.
멀어질수록 가까워지는 역설. 

떠돌아 다니며 살 수밖에 없는 글로벌 시대의 '유목민'의 사고와 접속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나무처럼 정주한 존재보다는, 뿌리 줄기로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이러구러 뻗어나가는 그런 것이기도 하고... 

들뢰즈, 가타리 같은 이들이 유목민의 시대니, 리좀이니, 노마디즘이니 하기 전에도,
일제시대 이전에도... 약한자들은 떠돌며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을...
그런 존재들은 세계화 이전부터 세계 속에 흩어져 살고 있었던 것을 시로 적으니... 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 쓴 편지가 되고 말았다. 

외로울 때,
이런 낯설지만,
또 엄청 외로워서 투박한 손길이나마 그리울 때, 두꺼운 장갑낀 그의 손이라도 잡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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