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자 들어간 벌레들아 - 생태 동시 그림책, 동물편 푸른책들 동시그림책 1
박혜선 외 지음, 김재홍 그림, 신형건 엮음 / 푸른책들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지렁이는
땅 속을 달리는
지하철이다. 

간밤에 잠을 설친
이슬 방울들이
지난밤의 꿈과 함께
부푼 맘을 실으면
무지개처럼 깔리는
때깔 고운 흙길. 

... 

오늘의 종착역인
밑뿌리에 닿으면 

이슬이 있던 자리마다
들꽃이 핀다.
지렁이 빛깔 같은
들꽃이 핀다.(신현배, 지렁이)
 

시인의 눈은 이렇게 세밀하다. 별 걸 다 본다.
바람이 불면, 우리는 우산을 부여잡거나 옷깃을 여미지만, 시인의 눈은 바람의 말을 듣는다.
타인이 아프고, 자연이 아프고, 시인도 아프다.
아프면 '아--' 소리가 나게 마련이고, 듣기 싫은 아-- 소리가 바로 시인의 일갈이다.
알아듣는 사람은 귀가 있는 사람 뿐. 

엄마는
알에게 자기의 소원을 말했어요.
세상을 재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말고
풀잎이나 나무를 재 보아라...(양인숙, 효자 자벌레)
 

인간 엄마는
자식에게
내가 다 못잰 세상을 네가 재 보아라...
이렇게 요구할테지만,
자벌레 엄마는
당신이 재려던 세상은 잴 필요없음을 깨달은 것.
어리석은 일 하지 말라는 자벌레 엄마가 오히려 큰 세상이 아닌가... 

거미가 만든 집.
사방 이은 무늬 하나도
버릴 게 없다.(이미애, 거미의 집)
 

아, 인다라의 그물을 떠오르게 하는 거미의 집.
동시라기보다는 그대로 법문이 아닐까? 

이 책에 실려있는 그림들도 시원스러워 좋다. 

미루나무는 빈 가지들만 남아
참 추워 보이는데 빈 까치집이 덩그렇게
걸려있으니까 더 추워 보여요...
수없이 많은 잔가지들이 모두 손이 되어...
까치집 하나 떠받들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까치집은 미루나우믜 따스한 가슴처럼...
미루나무는 까치집이 있어서 이젠 춥지 않을 거예요.(신형건, 겨울 까치집) 

온통 매미로 뒤덮이는 미루나무
반짝이는 잎새
그것은 그대로 매미가 된다...
흔들릴 때마다
더욱 자지러질 듯 쏟아지는
저 매미 소리.
여름날 냇가 미루나무는
커다란 매미다.
커다란 울림통이다.(하청호, 매미) 

이 두 편의 시에서는 한결같이 미루나무에 기생하는 까치집과 매미를 그리고 있다.
그렇지만 미루나무는 그들과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조화로운 소리를 낸다.
잘 어울리는 서로 다른 소리. 음악에서 일컫는 '하모니'가 그것이다. 

서로 다른 존재끼리 잘 어울리는 세상.
이런 것을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얽힌 것이 이 한편의 시집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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