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우리 헌법 이야기
한상범 지음 / 삼인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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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국민의 생존권과 행복추구권을 캐무시하고 미국의 골프장 운전이나 하던 인간이 미쿡산 쇠고기를 막무가내로 사들이기로 했을 때, 수백만의 국민들이 길거리로 나섰다.
그 때 외쳤던 대표적 노래가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민주'를 외칠 가치조차 없고, 공화국에서는 공화를 논할 필요도 없다.
민주적 절차를 모두 무시하고, 공공의 선을 위한 협의가 부재한 공간에서 외치는 소리는 바로 헌법 제 1조였다. 

헌법이라고 하면, 법중의 법이고 최고법이라고 배웠다. 그래서 가장 파워있는 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헌법은 권력자의 폭력 의지에 늘 견제를 가하는 법이고,
독재자들이 제멋대로 횡포를 부리는 것에 가장 강한 법으로서 국민을 지켜주는 힘을 가진 법이란 것.
시민 혁명의 <인간>의 가치를 지키고자 만들어진 법이라는 것. 

그러나,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바로 지금, 5:4라고는 하지만 <사형은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려 <인간>의 가치를 부정하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책은 '법학도'에게 법의 준엄함을 가르치려고 적은 책으로, 법대를 염두에 둔 고등학생 내지는 대학 신입생들이 읽기에 좋은 책이다. 뭐, 법의 기본 정신을 되찾고 싶은 법조인들에게도 좋은 책일 것이다. 

법과 법관은 같지 않다. 법의 정신은 추상적이고, 법관은 정말 개별자이기 때문이다.
노동 판사들이 노동법을 공부하지 않는다는 무서운 사실은 노동자들에게 벗어날 수 없는 천형과도 같은 것이다. 노동법 위반은 국보법 위반처럼 괘씸한 일이었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 <법조인>이란 <권력>을 잡는 일이었으며, 그것은 일제 잔재로부터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일제 이전부터의 봉건적 사고 방식이 가득하며, 월급받고 사는 관료로서 성실하게만 살면 된다는 관료주의와 시대적 컴플렉스인 반공주의, 출세와 돈을 노리는 기회주의와 출세지향적 태도들이 한국의 법조인들을 추하고 강하게 만든다.  

강한 것은 추하고, 추한 것은 우열의 법칙에서 '우성'에 가까운 모양이다.
아름답고 고매한 정신은 '열성 인자'를 가진 것인지, 쉽게 퍼지기 어렵다. 

메이지시대 민중 지배를 위한 관료주의적 기술학으로서의 '헌법'이 한국에도 옮겨져 왔다. 

해방이 본의 아니게 갑자기 닥쳤든, 한국의 헌법도 어느날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나게 되었으니, 뭐, 일본 헌법의 번역판에 불과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민중을 지키기 위한 헌법이 권력자의 손아귀에서 힘을 쓰지 못할 때,
그 헌법이 살아숨쉬는 <시민의 자유에 대한 기술학>으로 존재할 수 있으려면, 바로 랑시에르가 말하는 민중의 <정치> 참여가 필요하다. 

2004년 쓰레기같은 국회의원들이 총선 한달을 앞두고 취임한 지 1년되는 대통령을 탄핵하려했을 때,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촛불 앞에서 떨고 있었다. 그때 헌재가 노무현을 잘라버렸더라면, 한국의 촛불은 헌재의 모가지를 잘라버렸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헌법의 정신과 국민의 '생각하고 참여하는 민주주의 정신'은 그래서 빛과 그림자처럼 한 쌍인 것이다. 

69쪽에서 헌법 학자가 메이지를 본딴 박통의 '유신' 이야기를 하다가 <친일 민족 반역자 박정희>란 정확한 언어를 사용하는 걸 보고, 역시 법률가들이 사용하는 용어는 콕 집어서 정확하게 갈라내는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한국 사회의 혼란상은 "혁명으로 청산할 일을 개량으로 하려니 마치 계란으로 바위치는 꼴이 된다. 국민 대중은 강건너 불구경할 수밖에... 과거 청산 없는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74)는 말은 헌법의 정신을 살리려면 늘 형형한 눈빛으로 정신이 살아있어야 하고, 당연히 언젠가는 혁명의 그날이 와야 함을 역설하는 것 같다. 

현대 한국의 헌법은 '유전 무죄, 무전 유죄'나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음' 정도의 개똥 판결에 유린당하고 있다. 이런 개똥 판결들을 일소하고 헌법이 제자리에 서는 일은 역시 정치가가 할 일보다는 랑시에르의 의미에서의 국민의 참여 <정치>로 이뤄야 할 일이다. 권력자나 정치가들의 '치안'은 국민이나 민중의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하여 꾸준히 성실하게 열심히 <관료주의>의 기틀을 다지고 있으니, 민중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정치' 이야기로 헌법의 정신을 일깨워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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