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길
김인숙 지음 / 문학동네 / 199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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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강아지를 사랑한다. 자기 새끼로 여기고... 나는 그런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변하고 있다. 애완견을 출입시킬 수 없는 곳에도, 자기 새끼는 출입시킬 수 있는 당당함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는 세상으로. 그녀가 살아온 시대와 내가 살아온 시대가 겹쳐지므로 우리 386세대가 가진 정서의 상처와 감정적 세련되지 못함과 이념적 과격성과 논리적 만족을 위한 탐구가 상당 부분 공감 가는 작가였다. 그러나, 그 위대한 누군가가 말하지 않았던가. 인간의 하부 구조는 상부 구조를 결정한다고...

우리의 하부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 식민지 경제에서 원조 경제에로, 자본주의 신식민지 시대에서, 자본주의 신경제주의로, 공산-자본주의의 대립의 시대에서, 화해의 마스크를 둘러쓴 페레스트로이카와 노스트글라스(개혁, 개방)을 빙자한 공산주의 몰락의 시대로 경제적 하부 구조가 변하면서, 우리의 지적 욕구를 만족시켜 주던 상부구조로서의 문학의 가치는 신경제정책(자본주의적 패권주의의 다른 이름)을 외치는 팍스-아메리카나의 저주스런 군홧발 아래서, 거대한 수레바퀴에 대항하는 어리석은 당랑(사마귀)이 되지 않으려고 착각하면서, 병신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각각의 인간은 파편화된 채고. 남들이야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건, 노숙자 몇 쯤 굶어 죽건 말건... 나는 개 한 마리 안고, 중국으로 가기도 하고, 먼 길 떠나서 정신적 자위를 하며(혹자는 이런 걸 플라토닉 러브라고 했던가? 플라스틱 러브라 했던가.) 헛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은가. 어느 땅에 살아간들, 그 나라가 물리적 거리가 얼마나 된들, 정신적인 왕따는 회복이 불가능하다. 우리 나라를 정말 사랑할 수는 없는 것일까. 멀고 먼 길을 떠나서도 애증에 한스런 푸념으로만, 유리창 밖 어슴프레 떠오르는 새벽 불빛에 떠오르는 마네킹 대가리들 보면서나 월하에 공동묘지 얽힌 전설을 떠올리며 살거나.

참 슬프게 하는 소설이었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누구 하나 처절하게 슬퍼보이지 않는데, 나 혼자 슬퍼서 가슴 젖은 오후... 이십년 전 농활 가서 쫒겨나면서 흘리던 눈물이 아직도 가슴에 젖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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