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치 : 음탕한 계집
엘리자베스 워첼 지음, 양지영.손재석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모 탤런트가 마약인지 최음제인지를 먹었는지 맞았는지, 한동안 이야깃거리가 되었는데, 문제는 그가 무슨 일을 했는가가 아니라, 그의 순백 청초한 이미지가 한순간 음란의 대명사인 <최음>과 연결되며 남성들의 말초 자극을 자극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은 많은 여성을 <비치 : 음탕한 계집>으로 만들면서, 은근히 그걸 즐긴다.

마돈나로 대표되는 유혹과 욕망의 상품화는 음란 전화, 포르노 시장, 야동 사이트 등으로 상품화되며 진화해왔고, 수요를 은밀한 방법으로 만들어 낸다. 이 모든 것들의 목적은 판매 가능하고, 남성들의 욕구 만족에 봉사하는, 실질적으로 남성들의 성적 욕구 만족에만 초점을 둔 것이다.

남성은 행동이 우상화 되지만, 여성은 그녀 자신이 하지 않은 행동(외양, 이미지)로 인해 우상화되어왔다는 사실은 저자 엘리자베스 위첼은 명백히 하고 있다. 이런 모든 사고가 여성성의 수동화, 대상화의 결과를 낳은 것이고, 남성을 파멸시키는 팜므파탈의 캐릭터로 존재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스스로 윗옷을 벗고 표지 모델이 되어 치렁치렁한 머리칼을 드리우고 온 세상과 남성 우월의 세상에 ‘빠큐’를 먹이는 표지는 그래서 통쾌하기까지 하다.

한 달쯤 전, 두 미혼 여성과 식사를 한 적이 있다. 한 분은 동료 교사였고, 하나는 오래 전 제자다. 그 여선생님 반이었던 제자와 셋이서 한참을 떠드는데, 듣다 보니 이야기는 신랑감과 ‘선본 이야기’로 흘렀다. 독신은 선택이 아니라, 선고가 되는 세상. 이것이 여성들이 살고있는 세상이다. 여성으로 하여금 배우자를 향하여 <니는 내 운명>임을 명확히 인식하게 만든 세상의 힘.

니체가 이랬단다. “사랑의 복수에 있어서, 여자는 항상 남자보다 더 야만적이다.”고. 이것은 악녀 영화의 교훈이리라.

이 책은 미국의 영화와 노래를 거의 모르는, 미국인이라면 톰크루즈와 리차드 기어를 구별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읽기 어려운 책이었다. 그래서 연속극 이야기, 영화 이야기가 나오면 건성건성 건너뛸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이 책을 1/10이나 읽었으려나.

그렇지만, 책을 펼칠 때마다, 표지 모델이 되면서까지 엿먹이고 싶던 세상의 현실이 너무도 적나라함에 마음이 아팠다. 한국 사회는 미국 사회보다 더 마초적인 기질이 강한 사회이기도 하다.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나 ‘칠공주’의 나상사처럼 강하기만 한 남성의 뒷모습은 늘 쓸쓸하다. 그렇지만, 그 아내는 쓸쓸함을 넘어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안고 평생을 살아간다.

인간 해방이란 말 앞에 던져지는 <비치>의 이미지는 언제나 약자의 그것이고, 남성들의 노리개로 전락하고 만, 굴종을 강요받은 악녀로서의 여성 이미지였다는 작가의 말은 말세를 향해 달리는 지구에서 아직도 유,효,하다.

부산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을 초빙했는데, 여성 장학관님이 발탁되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여성의 승리라고 착각할는지 몰라도 아는 사람은 안다. 그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더 워크홀릭인 일중독자였으며, 그것이 여성의 해방에 끼치는 악영향에 대해서... 여성의 적은 여성일 수 있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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