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의 위기에 대한 장제스와 왕징웨이의 반응은 당시 수많은 동년배 젊은 남녀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1911년의 혁명 지지자였던 그들은 조국의밝은 희망이 군벌이라는 바다 속으로 사라져가는 현실을 고통스럽게 지켜봤다. - P46

1926년 6월 5일, 장제스는 국민당 군대인 국민혁명군을 공식적으로 장익했다. 역설적이게도 1912년 위안스카이의 강력한 군사력이 쑨원의 권력과 명성을 무력하게 만들었듯 이제는 군대를 장악한 장제스가 쑨원의 실질적인 후계자(왕징웨이)로부터 승리했다. - P52

북벌의 큰 성공은 동맹의 좌파와 우파 사이의 긴장감을 증대시켰다. 다른 지도자들에 비해 장제스의 군사적 우위가 명백해지는 것과 비례하여 통일전선 내 공산주의자들의 존재에 대한 그의 혐오감도 점점 커졌다. 소련이 북벌 자금을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장제스가 그들과의 동맹을 끝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적절한 시기가 왔을 때 권력의 균형을 깨뜨릴 계획을 준비했다. - P53

중국은 공식적으로 국민당에 의해 통일되었으나, 실제로 통제할 수 있는 지역은 일부에 불과했다. 저장I, 장쑤 안후이를 비롯한 창장강 삼각주에 있던 성들은 장제스의 강력한 통제 아래 있었다. 그러나 난징에서 비교적 먼 지역은 국민정부의 통제력이 미약하게 미쳤다. 북벌이 군벌 시대를 끝내리라는 기대와 달리 많은 경우 국민당과 지방 군벌 사이에 불편한 합의가 있었다. 국민당은 자신의 힘으로 군벌들을 굴복시킬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 P54

중국에서 미국 선교사들의 존재는 유익한 문화적 교류를 가져왔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사고의 중심에는 근본적인 오류가 있었다.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미국의 정치사상에서 여전히 남아 있다. 중국인이 미국인처럼 되고 싶어한다는 널리 퍼져 있던 신념이었다. 정치 · 교육 · 종교 제도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중국인들을 가르치는 것은 미국인들의 숙제였다. (중략) 중국은 초보적인 단계의 미국이고, 기독교 국가로 이행 중이며, 잠재적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낙관적인 시각이 형성되었다. 마침내 환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전쟁 동안 미국과 중국 사이의 본질적인 충돌을 야기했다. 물론 국민당 스스로도 종종 중국을 서구식 자유주의 국가로 개조 중이라는 태도를 연출하는 어리석음을 보였다. 또한 미국인 방문객들에게는 세계 자유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서자랑스럽게 서 있을 수 있는 신중국을 건설하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 P57

일본 지배층은 반제국주의적 구호를 외치는 장제스의 국민정부를 적대세력으로 간주했다. 그들은 국민당이 대중적 정당성을 가졌으며 중국에서 제국주의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야 한다는 이념적 과제를 가진 운동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대신 장제스를 뇌물을 좋아하고 유약한 또 하나의 중국 군벌로 취급했다. 어떤 면에서 일본은 자신을 중국의 침략자가 아니라 친구 또는 조언자로 생각하는 제국주의자라는 점에서 미국과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청조가 멸망해가던 시절 중국 혁명가들의 진정한 천국이었고, 1913년 위안스카이가 중국의 신의회를 파괴한 뒤에는 쑨원의 도피처가 되었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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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여사> 혹은 그것과 비슷한 책을 맞이한 시대는 ‘문예의 독자‘를 키우고 다양한 문예를 개화시킨 것만이 아니었다. 배양된 덕을 실천에 옮긴 사상적 근거를 기르고 시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여그것에 대응하는 능력, 곧 ‘생각하는 힘‘을 민중에게 부여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근세적 지식의 형태가 바로 근대 지식의 기반이었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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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서가 널리 읽히며 그 힘을 발휘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편집자는 그 책을 번역한 사람의 모습도 생생하게 떠올리게 된다. 그들은 번역서 안에 편집자와 함께 살아 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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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본의 권위자였던 왕중민은 4인방이 떠받들던, 위서가 분명했던 이탁오의 『사강평요』가 위서라는 말도 못하고 아니라는 말도 못한 채 결국 죽음을선택했다. - P54

한때 나는 궈모뤄 책의 판본에 집착했다. 그의 고대사 연구는 일본 망명생활 중에 시작되었고, 중국 도서 전문 서점인 분큐도의 다나카 게이타로의 지원으로 몇 권짜리 훌륭한 선장본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내가 구하려고 애쓴 것은 베이징의 과학출판사에서 간행된 선장본이었다. 그것이 분큐도판보다 본문 종이나 표지 모두 미묘하게 보들보들했다. 궈모뤄는 중화인민공화국에서 권력의 중추에 있었으니 그의 저서 역시 최고의 제작 사양으로 간행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페이지를 넘기는 것만으로도 권력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 P56

오타 씨도 조금 특이한 분으로 가업인 중소기업을 물려받았으나 망해버려서 남은 돈으로 무엇을 하면 평생 먹고살 수 있는지 생각한 끝에 돈을 모두공부하는 데 써서 대학교수가 되면 좋겠다 생각하고, 그것을 실행한 사람이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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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회사가 ‘소수 인원, 고강도의 노동, 높은 임금‘의 형태로 사람을 고용하는 이면에는 ‘통제‘라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가설일 뿐입니다만, 업무 시간을 늘리고 근무 인원을 줄이는대신 높은 임금을 통해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제도적 설계는 매우 팽팽한 경쟁 상황을 조성합니다. 이런 회사에 취직한 근로자들은 직장에 도착한 뒤 업무량에 치여 별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 그냥 시간에 쫓겨 일할 뿐입니다. 인원도 적고, 동료들 간의 유대도 한정적이다 보니 고용하는 입장에서는 통제가 더 쉬워지죠. - P355

사람들은 잠시 멈춰서 생각할 시간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저 장기간의 고된 노동을 할 뿐이죠. 그리고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스스로 도구가 되었다고 느끼는 중요한 원인입니다. - P356

오늘날 우리는 도시의 새로운 빈곤층을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겪고 있는 것은 ‘경제적 빈곤‘이 아니라 ‘의미의 빈곤‘입니다. 여기서 ‘의미의 빈곤을 겪고 있다‘는 말은 사람들이 아무런 의미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반대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직접적인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뜻하죠. 물론 사람들이 행하는 모든 일이 직접적으로 궁극적인 의미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의미의 빈곤‘은 현대사회가 겪고 있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어요. 물론 청년들의 잘못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하는 일의 의미를 알지 못하게 하는 우리 사회와 경제 체제의 구조가 문제입니다. - P358

언뜻 보기에 ‘도구화‘와 ‘개체화‘는 대립적인 것 같습니다만 실제로는 하나입니다. 현대사회의 사람들은 수많은 도구에 의지해 생활하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지 않습니다. 늘 도구와 함께 붙어 있다보니, 개인의 자아의식은 갈수록 강해지죠. 한 사람이 하루 종일 자신의 머릿속이나 정신 공간 속에서만 생활하면 필연적으로 의미를 갈구해 자신을 지탱할 필요를 느낍니다. 이때 사람들은 하나의 폐쇄적인 ‘체계‘가 되어버리죠.
(중략)
청년들은 거대한 체계 속에서 일하며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청년들 또한 하나의 폐쇄된 ‘체계‘가 되죠. 하루 종일 자신의 정신 공간과 머릿속 세계에서만 생활하다 보면 사소한 심리적 문제도 큰 위기로 변할 수 있어요. - P362

학문에 있어서도 ‘쓰임‘에 대한 의식이 매우 중요합니다. 자신의 작업이 후속 학자들에게 어떤 공헌을 하고, 어떤 의미를 가질지를 고려하지 않고, 단지 자신의 똑똑함만을 뽐내고 싶어한다면 훌륭한 학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쓴 글이 다른 사람의 글과 어떤 점에서 다르고, 어떤 점에서 창의적인지만을 상상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연구의 측면에서 학문의 목적은 혁신이 아니라 타인과 세계에 유용하게 사용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P366

우리의 의미는 세계를 바꾸는 사람이 되는 데 있는 것도,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 자체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의미는 자신을 주체로 가치를 실현해 다른 사람들에게 쓰임이 되는 데 있습니다. - P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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