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을 ‘바로잡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정체성이란 게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걸까? 쉐펀은 생각만 해도 가소로웠다. 대충 가정해보자. 오늘날 러시아가 타이완을 점령한다면, 타이완인은 자기를 러시아인이라고 생각할까? 국적이 변하면, 정체성도 저절로 바뀔 수 있을까? - P216

대다수 사람은 ‘타이완인‘을 한인으로 상상하고 원주민은 아예 생각하지 못한다. 뉴스에서 원주민에 관해 보도해도 이질적인 ‘타자‘로 취급하기 일쑤다.
그러나 원주민은 타이완에서 출생했고, 애초에 도망칠 수가 없었다. 한인은 그런 ‘투명한 우리‘를 보지 못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한다. 이는 정말이지 기가 막혔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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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인들은 정말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히가시야마 아키라도 생각났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예전에 읽다가 포기했던 <바츠먼의 변호인>도 다시 읽어 봐야겠다.

진순신은 나오키상을 받았고 작가로서의 명성은 일본에서 쌓이기 시작했지만, 그는 타이완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의 부친이 타이완인이기 때문이다. 전쟁 전, 그는 일본 고베에서 태어났다. 당시일본과 타이완은 ‘동일한 하나의 나라‘였다. 전쟁 후 그는 자동적으로 중화민국 국민이 되어 송환되듯 타이완으로 돌아왔다. 그가 타이완에서 체류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특히 2·28사건으로 자극을 받아 얼마 안 돼 다시 떠났다. 그는 중국의 역사를 제재로 삼아 많은 작품을 썼으며, 톈안먼 사건으로 인해 중국에 실망하기 전까지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적을 보유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아버지가 타이완인이고 타이완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지만, 중국의 역사이야기를 대량으로 쓴 일본 국적의 작가인 그는 도대체 일본인일까, 타이완인일까, 아니면 중국인일까?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 것이며, 타인은 또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단순히 국적으로만 보면 그는 일본과 중화민국 국적을 동시에 보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적이 바로 그의 정체성일까?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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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윗선에서는 뉴스의 계량화된 클릭률을 신경 쓰는 거겠지? 쉐펀은 이 점을 잘 알았다. 게다가 그녀가 추구하는 것도 진실이나 힘 같은 순수한 무엇이 아니었다.(중략) 기자로서 쉐펀이 추구하는 것은 진상도, 정의도 아닌 존엄이었다. 쉽게 모욕당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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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학자가 되고 나서 책을 쓰고 싶어진 게 아니다. 책을 쓰고 싶어서 학자가 된 것이다." 마음속으로 본받고 있던 호소야 유이치 선생이 《요미우리신문>에 기고한 칼럼의 한 부분이다. 호소야 선생은 이 칼럼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책을 쓴다는 것은 스스로의 우주를 만드는 것이다." - P293

 저자는 일본이 극동 사태 때 미국에 기지를 제공해야 하는 당위성의 근거를 이른바 ‘극동 1905년 체제‘라는 개념에서 찾고 있다. 이 체제는 일본이 청일전쟁 (1894~1895)과 러일전쟁(1904~1905)에서 승리해 대만과 한반도를 자신의 영향력 아래 넣게 되면서 확립한 안보 체제를 뜻한다. 일본은 이 체제안에서 장기적인 안정을 유지해 왔을지 모르지만, 한국은 이 과정에서 나라가 망하고, 결국 둘로 쪼개지는 큰 아픔을 겪었다. 저자가 당연히 지켜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극동 1905년 체제‘란 일본의 국익을 중심에 놓고 한국과 대만을 도구화하는 ‘일본 중심적 개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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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케네디 정권 이후엔 ‘유연반응전략‘이 등장하게 된다. 대량보복전략은 동구가 통상전력을 사용해 침공했을 때에도 대량의 핵을 써 보복하는 것이다. 이에 견줘, 유연반응전략은 ‘에스컬레이션 사다리 (단계적으로 전쟁이 확대되는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즉, 상대의 통상전력에는 핵이 아닌 통상전력으로 대항한다. 통상전력끼리의 대응에서 분쟁이 수습된다면 좋겠지만, 대결이 고조된다면 이후엔 비전략핵을 사용한 국지적 핵전쟁의 단계로 옮겨 간다(이외에도 여러 단계가 있다). 그리고 사다리를 계속 올라가게 되면 전략핵과 전략핵이 정면 대결하는 상황 즉, 상호확증파괴에 이르게 된다. - P261

대량보복전략을 핵전략으로 채택할 경우엔 적대국과 가까운 지역에 대량보복용 비전략핵을 전방 배치해 두는 게효과적이다. 하지만 유연반응전략을 택할 때엔 핵을 후방으로 물릴 수 있다. 그리고 후방으로 물릴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첫 번째 공격 때는 사용하지 않을 비전략핵을 적대국과 가까운 곳에 전방배치할 경우 생길 취약성에 대한 우려를 중시할지, 아니면 ‘단계적으로 전쟁이 확대되는 사다리‘ 안에 비전략핵을 사용하는 단계를 넣어 둘 때 얻을 효과를 중시할지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 P263

미국과 중국이 화해하게 되면 양국이 핵으로 응수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오키나와에 비전략핵을 배치해 둘 필요성 역시 한층 더 낮아지게 된다. 오키나와에서 비전략핵을 철거하는 것은 미국의 공격 목표로부터 중국을 제외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나아가 미국이 중국과 화해를 원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최고의 메시지가 될 수 있었다. 국제정치의 세계에선 때에 따라 군사력을 어떻게 배치하는지가 언어 이상의 의사소통 수단이된다. - P265

최근 들어 이런 배경이 모두 변화하고 있다. 통상전력·핵전력 등 모든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압도적 우위가 흔들리고 있다. 미중은 격렬한 경쟁 · 대립의 시대로 돌입하고 말았다. 대만과 한국에선 이미 미국의 핵이 철거됐고, 오키나와 핵 밀약이 지금에 와 갖는 의미도 명확하지 않다. - P272

대만 문제가 남는다. 미국은 미대동맹이 해소된 뒤엔 대만도 자신의 핵우산 안에 들어가는지 분명한 언급을 한 적이 없다.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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