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셜은 규슈 해안 상륙을 지원하기 위해서 총 9기의 폭탄을, 다시 말해 3개 침공 부대에 2기씩, 그리고 일본 예비군을 괴멸하는 데에 3기를 써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놀랍게도 미군 병사들이 방사능이 퍼진 전장으로 들어가면 입을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는 논의가 없다. - P262

트루먼은 "S-1"으로 알려진 멈출 수 없는 열차에 처음에는 승객으로 올라탔다. 그러나 요사이에 트루먼의 모습은 단호하다. 대통령은 책상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진 명판을 올려놓았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 P263

한때 자부심으로 가득했으나 이제는 근심에 휩싸인 20여 명이 어문고의 아치형 문을 통과한다. 10년 넘게 아시아와 태평양을 공포에 몰아넣은 제국을 넘겨주기 위해서 소집된 자들이다. - P270

8월 15일 오후 2시 도쿄, 내각이 사퇴한다. 외무대신 도고는 구성 중인 새 정부에 참여하라는 요청을 받지만 거절한다. 그는 1941년에는 전쟁을 막으려고, 1945년에는 강화를 이루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자신이 전범으로 기소되리라고 예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진주만 공격에 책임이 있는 정부의 관료였다. 그는 비통하지 않다. 일본에서는 개인적으로 잘못이 있든 없든 간에 나쁜 결과에 책임을 지는 일은 흔해서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 P282

그는 자신이 개발에 일조한 핵폭탄이 오랜 복무 기간에 길잡이별이 되었던 도덕적 진보의 길을 파괴할 것이라는 걱정으로 고통스럽다. 그는 히로시마에 투하한 핵폭탄이 앞으로 나올 핵폭탄에 비하면 폭죽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통해서 알고 있다. 스팀슨은 과학의 유혹이 인간의 도덕성과 자제력을 뛰어넘을까 두렵다. - P287

그는 대통령에게 건넨 편지에 이렇게 썼다. "나는 긴 인생에서 중요한 교훈을 배웠습니다. 누군가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그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신뢰할수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를 불신하고 그에게 불신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 P288

1947년 10월 스팀슨은 외교정책을 다루는 기관의 잡지인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쓴다. "나는 누군가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를 신뢰하는 것이라고 자주 말했다. 그러나 나를 속이려고 결심한 사람에게는 이것이 늘 적용되지는 않는다고 덧붙여야겠다." - P290

일본인들에게 도쿄 재판은 "승자의 정의"의 냄새가 강력했다. 피고석에 앉은 일본인 피고인들은 자신들이 패배했기 때문에 기소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었고, 그 주장에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었다. 일본인들은 또한 자신들이 백인의 재판에 희생양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거의 모든 판사가 미국은 물론이고 영국과 영연방, 프랑스, 네덜란드 같은 식민국 출신의 백인이었기 때문이다. - P305

헨리 스팀슨은 일본인을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 비유한 적이 있다. 겉으로는 선량한 의사이지만 혈청을 마시면 악마로 변하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속 주인공처럼 대다수의 일본인은 괴물로 바뀌기 전까지는 똑똑하고 법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 P3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괌 섬의 사령부에서 스파츠 장군은 여전히 항공 전력의 결정적인 위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민간인에게 해를 가하지 않기로 결심한 상태이다. 그는 양심을 지키면서 부대에 남아 있기를 원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 P192

최고전쟁지도회의는 결론에 이르지 못한다. 합의를 이끌어낼 수 없을 듯하다. 합의는 일본 문화의 핵심이며, 천황에게 결정을 제시하기 전에는 반드시 합의가 필요하다. - P217

국체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천황은 좁은 의미의 국체를 받아들인다. 천황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군부를 기반으로 하는 천황제 전체의 존속이 아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고토, 즉 황실 가계의 존속이다. 만일 그것이 군부의 희생을 뜻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장군들과 제독들은 그를 잘 보좌하지 못했다. 그들은 거듭 그를 잘못된 길로 이끌었다. 천황은 그들에게 의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 - P220

식량이 부족해지고 폭격이 이어지자 보통의 시민들은 기차 역사와 공중목욕탕의 벽에 낙서를 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썼다. "천황을 저주한다. 국민에게 전쟁의 비극을 떠안겼다." 또다른 글은 이러했다. "천황이 전쟁의 책임을 져야 한다!" 경찰의 보고서는 천황이 어떻게 바보, 백치, 응석받이로 무시당하고 있는지 기록한다. - P221

스파츠가 부관 세라 배그비에게 음울하고 초조하게 한 말에 그의 좌절감이 드러난다. 배그비는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쓴다. "상관께서 말하기를, 이 전쟁이 끝나면 각 나라에서 선도적인 과학자를25명씩 총살하거나 그럭저럭 인도적인 방법으로 죽여야 한답니다." - P24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본인으로서, 특히 일본 외교관으로서는 매우 이상하게도 도고는 퉁명스러운 사람이다. 일반적으로 일본인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하다. 얇은 종이로 벽을 만들어 방을 구분하는 사회에서 그들은 무례한 말을 하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도고 역시 에둘러 말하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거칠다.(중략)
그러나 도고는 매우 성공적인 외교관이었다. 그는 아마도 일본의 전형적인 방식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마음에 있는 말을 그대로 하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밝힌다) 일본의 숙적인 러시아와 협정을 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 P100

도고는 비판을 받았어도 일본에 승산이 없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한 현실주의자였다. 그는 전쟁을 시작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일본의 완고한 내각총리대신 도조 히데키 장군과 사이가 이미 틀어졌다. 자리에서 밀려난 그는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산악지대 나가노에 있는 고향집으로 가서 패망한 나라들을 공부했다. 러시아와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내부 혼란으로 무너진 과정을 깊이 연구했다. - P101

인종주의적 적의와 자부심은 언제나 격정을 불러일으킨다. 1905년 러일전쟁으로 유럽 강국에 패배를 안긴 최초의 아시아 국가가 된 근대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 서구 국가들로부터 동등한 나라로 대우받기를 원하고 기대했다. 백인 국가들의 지속적인 인종주의와 멸시로 적개심에 불탄 일본은 백인 패권에 맞선 인종주의적 복수자가 되었다(혹은 그런 태도를 취했다). 일본은 백인을 내쫓아서 아시아인을 위해서 아시아를 통합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다른 민족보다 야마토 민족이 우월하다는 인식을 가진 일본인들은 유럽 식민주의자들보다 훨씬 더 잔인한 행태를 보였다. 차고 넘치는 잔학행위(마을을 불태우고 여인을 강간했다)는 열정으로서 용서받았다.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은 출범 후 5년이 지나자 시체 안치소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할 지경이 된다. - P109

히로히토는 자기 성찰형 인간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절반은 신이자 동시에 의존적인 존재라는 자신의 독특한 지위를 모르지는 않는다. 그는 스스로를 "새장 속에 갇힌 새"라고 말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군대가 자신의 이름으로 미친 짓(국가가 스스로를 제물로 바치는 일)을 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자신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는다. 히로히토의 이름이 신화에 둘러싸여 있어도(그리고 쇼와 천황이 결코 "밝은 평화"의 시대가 아닌 때에 나라를 이끌고 있다는 사실이 모순적이지만), 그는 자신의 왕좌가 언제나 검을 쥔 남자들의 용인으로유지되었음을 알고 있다. - P1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실된 감정, 혹은 그 비슷한 것이 간간이 새어나오고는 했다. 로스 앨러모스의 비밀 연구실에서 핵폭탄 개발을 담당한 선임 과학자 J.로버트 오펜하이머는 1945년 11월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을 방문해서 트루먼 대통령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대통령님, 나의 손에 피를 묻힌 기분입니다!" 대통령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냉정하게 오펜하이머를 내쫓고는 "애처럼 징징대는 저 과학자"를 다시는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 P17

스팀슨은 많은 결함을 가진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로 만들 철학을 체현했고 설파했다. 즉 미국의 외교정책은 현실주의와 이상주의의 혼합이어야 한다는 믿음을 말이다. 미국의 외교정책은 인도주의 및 윤리적 가치와, 국익을 위한 냉혹한 힘의 사용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했다. - P19

1930년대에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 탈출한 유대인 과학자들은 핵에 관한 전문지식을 가지고 영국과 미국으로 갔다(독일이 유대인을 정부에서 쫓아낸 1933년 4월 7일에 히틀러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미 패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런 시대에 문학을 왜 읽어야 하느냐‘ ‘문학의 힘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같은 질문을 종종 받는다. 문학계에 한 발 걸친 사람이라면 요즘 다들 비슷한 질문을 받는다. 문학의 힘이 잘 보이지 않으니 나오는 질문이다. 돈의 힘이 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다.
내 귀에는 궤변처럼 들리는 답이 있다. ‘문학의 힘은 무력함에서 나옵니다‘ ‘문학은 힘이 없기 때문에 힘이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 공허한 말장난 같다. 나는 문학에 힘이 없는 게 아니라 힘있는 문학이 줄어든 것 아닌가 의심한다. - P264

원래 거대한 사건은 안에서 평가하기 어렵고 처음 보는 일이라면 더 그렇다. - P265

아름다운 노래가 재난을 당한 이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고 그것은 예술의 힘이다. 때로는 찢어지는 비명이 다가오는 재난을 경고할 수 있고 그것 역시 예술의 힘이다. 위로의 노래가 필요한 순간이 있고 사이렌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 P26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