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언어의 단어 간의 관계는 그 언어가 아무리 서로 가까워도, 아니 설령 사투리와 표준어 사이에서도 모두 가짜 동족어 관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 언어 안에서의 특정한 단어가 다른 언어에서 100퍼센트 같은 뜻과 정서적 울림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로 번역은 단어에서가 아니라 단어 사이의 공간에서 이루어집니다. 의미는 포착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열심히 그 방향으로 손짓할 수밖에 없는 무엇입니다. 이런 절박한 손짓이 바로 번역입니다. - P219

창작은 제 번역 일의 일부일 뿐이고, 번역 일도 결국 제 독서 행위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저의 가장 중심적이고 근본적인 정체성은 독자로서의 정체성이고, 그 이외의 것들은 모두 거기서 비롯됩니다. 제가 이런 번역가인 것, 이런 작가인 이유는 바로 독자로서의 자부심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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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란 없다. 성공으로 가는 과정만 있을 뿐. 다시 말해 우리가 실패라고 생각하는 많은 경우는 성공으로 가는 과정의 일부인 것이다. 실패는 뭔가를 잃는 과정이 아니라 성공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는 연구 과정이다. - P137

한 해 동안 부커상 후보작을 두 편이나 배출한 것은 한국문학이 대단해서라는 결론이 한국 언론의 전반적 반응이었다. 즉 작가, 장르, 문체가 완전히 다른 두 작가가 함께 부커상 후보에 오른 건 한국문학의 힘 덕분이라는 얘기였다. 그들에겐 두 작품의 번역가가 같다는 사실은 우연일 뿐이었고, 번역가는 얼마든 교체할 수 있는 사람이며, 누가 번역했어도 결과가 같았다고 보는 듯했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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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때 학기초에 교과서를 받으면 국어와 문학 교과서에 실린 소설만 골라 먼저 읽었던 내 학창시절이 생각난다.

소설은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놀이지, ‘공부‘처럼 지긋지긋한 자학 행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공부‘는 수학이니 암기 과목이니 하는 시덥잖은 것들을 지칭하는 말일 뿐 소설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일이었다. 교과서 따위에는 아무 재미도 없는 서사들만 가득했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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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들은 육체가 어디에 거주하든 항상 자신의 언어 속에서 살아간다. 번역가에게 언어란 항상 돌아갈 수 있는, 마음속에 존재하는 어느 고장과도 같다. - P49

누가 뭐라고 해도 번역은 무의식에서 이루어지는 듯하다. 특정 문구를 이러저러한 말로 번역한 이유는 문법이나 어학, 수사학으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그건 단순한 설명에 그칠 뿐 번역 자체는 오롯이 무의식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 P55

모든 번역가는 뇌가 끊기는 현상을 경험해 보았다고 증언한다. 아무리 일을 더 하려고 애써도 뇌가, 몸이 따라주지 않는 현상이다. - P57

가끔 작가들이 묻는다. 어떤 식으로 써야 차후 그 작품을 영역할 때 수월한지를. 진정한 작가라면 절대 번역을 인식하는 글을 써서는 안 될 것이다. 작가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비전을 가장 잘 현실화한 작품을 써내는 것이다. 독자는 잘 읽으면 되고 번역가는 제대로 번역하면 된다. 독서가 독자의 일이듯 번역은 번역가의 일이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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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모든 번역가 지망생에게 고하노라. 그런 말을 믿지 말 것. 당신 같은 번역가는 오로지 당신만이 유일하다. 당신은 대체 가능하지도 않고, 대체된다 한들 그런 악조건에서 좋은 번역이 나올 리 만무하니 그 자리를 아쉬워할 필요가 조금도 없다.
아니, 오히려 클라이언트는 얼마든 대체 가능하며 번역 일은 도처에 널려 있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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