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인민의 초상 - 개혁개방에서 시진핑 시대까지 중국의 두 세대가 건너온 강 걸작 논픽션 29
피터 헤슬러 지음, 박경환.윤영수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저자의 전작 <갑골문자>에 비해 번역이 최소한 백만 배쯤 좋다. 잘 읽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들의 한결같은 증언에 따르면 수감 생활에서 가장 끔찍한 부분은 잦은 매질이나 중노동, 심지어 끝없이 계속된 굶주림도 아니었다. 바로 사상 개조였다. 한 희생자는 노동 수용소를 세심하게 구축된 정신적 아우슈비츠라고 묘사할 정도였다. 영국인 무선 통신사 로버트 포드는 4년간의 수감 생활을 마친 뒤 이렇게 말했다. <매질을 당한 뒤에는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을뿐더러 마음 한구석에서 고통에 맞서 싸우려는 의지를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사상 개조를 통해 정신적으로 고문을 당하면 돌아갈 곳이 아무 데도 없다. 사상 개조는 그 사람의 가장 심오하고 깊은 내면에 영향을 끼치고 정체성 자체를 공격한다.> - P38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들은 마오쩌둥에게 다가갈 때면 뒤꿈치를 들고 걷거나, 아부를 통해 자존심을 세워 주거나, 의심이나 오해를 살 수 있는 말을 피하면서 주석의 예측 불가능한 감정기복에 대처해야 했다. 또한 자신의 의도를 추측하도록 만들려는 의도에서 기인한 주석의 잦은 모호한 발언에서 진의도 파악해야 했다. 마오주석 본인은 특히 경제 분야에 대한 자신의 무지를 감추기 위해서라도 의도적으로 모호한 단어들을 사용했다. 실제로 그는 경제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 P355

고급 합작사는 농부들에게서 땅을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농부들을 당 간부의 지휘 아래 일한 만큼 노동 점수를 받는 농업 노동자로 만들었다. 집산화의 최종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농부들은 이제 국가가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채무 노동자로 전락했다. - P368

소상인들은 파산을 면치 못했다. 그들 중 상당수는 가게를 그들과 가족의 거처로 사용하면서 가게의 돈 통에서 생활비를 충당하던 터였다. 그런데 이제 그들의 개인 소지품까지, 때로는 그들이 사용하던 솥과 프라이팬, 심지어 아기 침대까지 국가에 귀속되었다. 보상금은 담뱃값으로 쓰기에도 빠듯할 정도였다. 운이 좋은 사람들은 국가에 고용되어 한달에 20위안씩 받으면서 계속 가게를 운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제 굶주림에 직면했다. - P37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련 공산당은 우리에게 최고의 스승이며 우리는 그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소비에트 연방에서는 산업화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농업이 집산화되었다. 중국도 다르지 않을 참이었다. <농업이 사회주의화되지 않고는 사회주의가 완성되거나 견고해질 수 없다. 소비에트 연방의 경험을 참고해서 마오쩌둥은 이렇게덧붙였다. 이 과업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든 일이 될 것이다>. - P323

집산화에 동참하기를 거부한 농민들은 <비애국적>이라거나 <장제스 노선>, <낙오자>라는 비난을 받을 각오를 해야 했다. 독립적으로 남길 선호한 농부들이 그들을 <자본주의자>나 <독불장군>이라며 비난하는 내용이 적힌 종이를 등에 붙이고 다닌 경우도 있었다.(중략) 하지만 다른 모든 것을 떠나서 공동으로 농사짓길 거부한 사람들에게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했던 대출이 막혀 버렸다. - P325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한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다>라고 주장하면서 가치 있는 모든 것을 평등하게 분배할 것을 요구했다. <음식이 있으면 모든 사람이 나누어 먹고 돈이 있으면 모든 사람이 써야 한다.> 결국 두려움과 시샘 때문에 가난이 표준이 되었다. - P326

여러 성(省)을 담당하던 권력의 상층부에서 나온 한 대략적인 추산에 따르면 지방 간부 중 약 절반이 비리와 연루되어 있었다. 지역에 따라서는 새로운 권력 집단이 등장했다. 요컨대 당 간부들은 열 가구중 하나꼴로 집에 하인을 두고 높은 소작료를 받고 땅 투기를 하면서 부농처럼 살았다. - P328

당에는 이 모든 문제에 관한 해법이 있었다. 집산화로 가는 길을 따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모든 문제는 투기꾼과 사재기꾼, 부농과 자본가의 탓이었다. 앞서는 수년에 걸쳐 반혁명주의자들과 그 밖의 사회주의 질서를 위협하는 적들을 겨냥해서 조직적인 공포정치를 실시했던 그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정부의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 해법이었다. - P332

가축을 도살하고, 재산을 숨기거나 파괴하고, 일에서 손을 놓는 등의 방식으로 표출된 대중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농촌이 집산화되어 간 속도는 놀라울 정도였다. 그리고 여기에는 정치적인 목적도 한몫을 차지했다. 요컨대 서열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당 관리들이 주석의 칭찬 한마디를 기대하며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열띤 경쟁을 벌인 결과였다.(중략) 당 관리들은 곳곳에서 농민들을 합작사에 강제로 편입시켰다. 1953년에 약 10만 개에 불과했던 합작사는 1955년에 이르러 전국적으로 60만 개가 넘었으며 전체 농민의 40퍼센트가 합작사에 소속되었다. - P334

수확물을 통제한다는 것은 농촌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지도부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 P338

대규모 국영 사업체가 개인이나 가족이 운영하던 소규모 시설을 대체하면서 곡물 저장과 관련된 고질적인 문제들 대부분이 통제 불능 상태에 놓였다. 일례로 1954년 1월에 중국 동부의 모든 성(省)에서 곡물이 변질되면서 열이 발생하고 눅눅해지는 문제가 급증한다는 보고서가 올라왔다. 상하이 한 곳에서만 4만 톤의 곡식에 곰팡이가 슬었다. 질보다 양을 더 중시하는 지방 간부들 때문에 문제는 더욱 복잡해졌다. 그들의 목표는 윗사람에게 자신들이 얼마나 많이 거두어들였는지 보여주는 것일 뿐 맡은 바 임무를 얼마나 잘 수행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경우에는 전체적인 무게를 늘릴 요량으로 곡물을 의도적으로 습기에 노출시켰다. 몇몇은 심지어 물을 부어서 부피를 늘리기도 했다. - P344

이런 보고서들 대부분은 인재가 기근의 원인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지 지적했다. 하지만 8월에 들어 중앙 위원회는 1949년 이래로 발생한 최악의 기근을 <자연재해> 탓으로 돌리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농촌 사람들을 돕는 대신 곡물과 기름, 면화 등의 물품에 대해 정부에서 정한 물량을 확보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했다. 이런 물품들은 하나같이 <도시를 산업화하고 상공업을 사회주의 방식으로 개혁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었다. - P3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하이 봉쇄와 정저우에서 발생한 시위는 애플에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10여 년 전 CCTV의 공격과 마찬가지로 단일한 권위주의 정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취약한 결과를 낳는지 잠시 멈추어서 곱씹어보게 한 계기였다. - P559

 중국 스마트폰산업의 부상은 애플이 직접 구축한 역량에 스스로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냈으며, 중국이 값싼 노동력의 공급지를 넘어 정교한 자동화 기술을 갖춘 국가로 탈바꿈했음을 방증했다. 이제 중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업들은 단순 제조업체가 아닌, 세계시장에서 의미 있는 점유율을 차지하는 디자인 중심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 P560

한 전직 임원은 "하룻밤 사이에 중국은 믿을 수 있는 공급처에서 전혀 신뢰할 수 없는 공급처로 바뀌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결과 아이폰 생산을 위한 ‘플랜 B‘가 승인되었다. - P562

실제로 중국은 전문가들이 이해조차 힘들어할 정도의 높은 기술적 정교함을 갖추고 있다.(중략) 다시 말해 중국이 제공하는 것은 단순한 노동력이 아니라, 20년 이상 축적되어온 제조 생태계 전반이다. - P569

중국에서는 공급업체와 정부 관리들이 아이폰 생산을 수주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인도에서는 그렇게 운영되지 않는다고 한 전직 애플 엔지니어는 말했다. 그는 "긴박감이라는 게 없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중국의 강력한 하향식 추진력은 국가에 의해 체계적으로 착취된 순종적이고 근면한 노동자들 덕분에 가능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인도는 정부 권력이 분산되어 있고 중앙집권적이지 않으며, 경제성장에 따른 인센티브가 없어 관리들이 중국의 경우처럼 경쟁하지 않는다. 또한 인도 노동자들은 더 큰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 - P569

골드버그는 이렇게 말했다. "애플이 조금씩 중국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분명하지만, 매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합니다. 애플은 도망치고 싶진 않지만, 기어갈 수도 없어요. 적절한 속도로 걸어야 합니다. 너무 빠르면 중국이 분노할 것이고, 너무 느리면 결국 발이 묶일 테니까요." - P570

2018년 말 애플이 아이폰 출시 이후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자, 최고경영진은 공황에 가까운 불안을 느끼며 화웨이를 구체적인 위협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화웨이는 그때보다 더 큰 위협일 수 있으며, 이 문제는 미중 간의 알력 그리고 중국 민족주의 정서에 따라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 P582

중국 소비자들은 아이폰을 오랫동안 자국 제품처럼 여겨왔다. 따라서 그들이 아이폰을 서구 기업들이 중국에 대해 시도 중인 디커플링의 상징으로 인식한다면, 예측 불가능한 위험이 발생할지 모른다. - P582

2019년 애플이 넷플릭스 스타일의 스트리밍 서비스인 애플 티비플러스를 출시했을 때,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부문 책임자인 에디큐는 콘텐츠 파트너들에게 두 가지 지침만을 전달했다. 하나는 노골적인 노출을 피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지 말라"라는 것이었다.(중략)
애플 티비플러스는 중국에서 아예 서비스되고 있지 않지만, 쿠퍼티노는 언제 어떻게 스스로 검열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 P583

헤지펀드 투자자 제이 뉴먼은 이렇게 경고했다. "애플이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아무리 몸부림쳐도 단 한 줄의 명령만으로 그 가치 대부분을 날려버릴 수 있는 중국공산당의 권력에는 당해낼 수 없다." 대만 병합, 미중 관계의 깊어지는 단절, 또는 중국이 애플에서 배울 만큼 다 배웠다고 느끼는 순간과 같은 외부 요인들은 경쟁사들의 신제품 출시보다도 훨씬 더 실존적인 위협이다. 중국 민족주의가 애플에 가하는 위험은 사라질 수 없다.
설령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간다고 해도, 중국 경제는 머지않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규모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사람들은 반드시 묻게 될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된 걸까? 중국은 어떻게 이토록 빠르게, 그것도 첨단산업과 같은 복잡한 분야에서 성장했는가? 이에대한 불편한 답변은 바로 애플이 가르쳐주었다는 것이다. 애플은 해마다 세계 각지에서 가장 최첨단의 설계, 공정, 기술적 노하우를 가져와 중국에서 이를 대규모로 구현했다. - P589

애플은 다시금 진짜 위험에 처했다. 재정적으로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기업이지만, 스크린 속 빅브라더는 이제 더는 허구의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애플을 실질적으로 포획한 한 국가의 지도부로서 실체화되었다. 이 국가의 제조 역량은 세계를 선도하고 있고, 그 결과 여기에서 벗어나려는 애플의 모든 시도는 허망한 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애플이 중국에서 첨단 공정의 발전을 계속 촉진한다면, 머지않아 미국인들은 중국이 첨단 전자공학, 로봇공학, 반도체 제조 분야에서 자급자족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 그다음에는 시진핑이 2013년에다짐했던 "자본주의의 궁극적 종말"까지 겨우 한 번의 짧은 도약만 남을 것이다. - P59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