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세요? 4년전 2월은 몇십년만에 서울에 폭설이 내렸던 때랍니다.

두번째 폭설이 내린 이틀 후 우리는 8년만의 연애 끝에 기어코 결혼을 합니다. 미용실에서 결혼식장인 성당으로 가는 길도 쌓인 눈 때문에 얼마나 험난했었는지, 겨우 시간을 맞췄습니다. 허겁지겁 자리를 잡고 손님을 맞으며 얼굴도장 찍기에 바빴습니다.

우린 같은 학교 같은 과 선후배지간입니다. 저의 아내는 제가 3학년이던 때 신입생으로 들어왔고, 그해 겨울방학부터 저의 작업은 시작되었습니다. 계속되는 저의 구애에 거부감은 표현하지 않았지만 끝끝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지 않던 그녀는 다음해 5월에 드디어 제게 마음을 열었습니다. 따뜻한 키스를 한지 얼마 안되 저는 바로 군대를 갔습니다. (맞아요, 저 나쁜 놈이예요..) 군대에 있는 남자친구를 그리며 자주 편지를 썼던 여자친구는 둘이 사귄 시간이 짧아 그랬는지 정확한 얼굴 모습도 가물가물했던 때도 많았다고 했습니다. 제가 당시만 해도 이벤트의 왕자라,  다니던 XX대학 신문사에 편지를 보내 생일 즈음의 신문에 축하 메세지가 인쇄되기도 했습니다. 감동이었죠.  복학을 하고 함께 4학년 과정을 다녔을 때는 정말 신났습니다. 도서관에서 참하게 앉아 공부하고 있던 날 꼬시러 와서 함께 놀러갔던 기억도 새록새록 나는군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서로 정을 쌓아 가더니 결국은 급하게 날을 잡고 결혼을 감행합니다.

학과의 모범 커플로 선후배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우리였기에(부끄^^), 결혼식날은 우리 학과 사람들의 잔칫날이기도 했습니다. 결혼식장이었던 성당에 마땅한 식사 장소가 없어 인근 상가의 중국음식점을 빌렸습니다. 도무지 몇명이 올지 예상하기 힘들었는데, 예약된 인원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와서 무려 1시간을 넘게 음식을 기다린 사람도 있었답니다. 이 일은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욕먹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피로연장인 호프집을 가득 메운 하객들은 우리가 들어서자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내더니 다시 술퍼먹기에 돌입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유행이었던 신랑신부 쑈쑈쑈를 하고, 술을 많이도 먹었습니다. 피로연 사상 엄청난 인원이 모인 그날, 계산을 하니 무려...

그래도 날이 날인 만큼 우린 2차를 갔습니다. 저녁 10시가 되도록 먹어제낀 그날, 난 정신을 거의 잃은 상태에서 신부와 함께 롯데월드호텔행 택시에 몸을 실었습니다. 공식적 첫날밤이었던 그날, 신부는 먼저 샤워를 했고 신랑은 그새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다음날 아침엔 뭘 했을까요? 그건 결혼식 당일 이야기가 아니라 자세히 쓰진 않겠지만 눈에 불을 켜고 돈을 계산했다는 후문이....

 

우리가 함께 해온 4년, 그동안 토끼같은 아들 딸 한명씩 낳고, 오손도손 잘 살고 있습니다. 함께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아내에게 전하며 앞으로도 영원하자고 속삭여 보렵니다.

오늘 저녁 우린 뮤지컬 보러 대학로 갑니다. 시간이 없어서 빨리 후다닥.... 후기는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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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02-17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염장이다. 상당히 심한 염장....뮤지컬 재밌게 보세요^^

조선인 2005-02-17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고고고곡 새해가 되었다고 아드님과 따님에게 다정한(재미난?) 편지를 보내더니, 결혼기념일엔 닭살 편지를 쓰시는군요. 부럽습니다. *^^*

세실 2005-02-17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갑자기 불끈...정말 염장성 페이퍼입니다. 뭐냐고요 대체~
암튼 뭐..흠흠...부럽습니다~ 더군다나 성당에서 결혼하셨다니 더욱~
전 결혼식 전날밤 10시30분에 혼배미사 봤습니다.

마늘빵 2005-02-17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내일 대학 졸업하는 저는 뭡니까 이거... 나빠요. 씨씨들. ㅠ_ㅠ

날개 2005-02-17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록 염장성 페이퍼지만, 결혼기념일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오붓하고 정겨운 저녁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날개 2005-02-17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념 캡쳐입니다..  27900

sooninara 2005-02-17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날은 돈을 세셨고..셋째날은???ㅋㅋ
축하드려요..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마태우스 2005-02-18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년 사귀시고 결혼하셨다니, 대단하세요. 그렇게 잉꼬로 지내다 결혼까지 하면 주위에서도, 그리고 말만 들어도 흐뭇하죠. 축하드립니다.

엔리꼬 2005-02-18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 알콩달콩 잘 사시는 분한테 이 정도가 뭔 염장입니까.... ㅎㅎ
조선인님 / 님도 좋은 남편, 토끼같이 이쁜 딸이 있는데 뭘 또 부럽습니까.. ㅎㅎ
세실님 / 님도 마찬가지인거 아시죠?
아프락사스님 / 와, 대학 졸업하세요? 축하드립니다.. 사회에 나오면 대학에서 안보이던 멋진 여성분들이 더 많을거예요... 알라딘만 해도...ㅎㅎ
날개님 / 염장성 페이퍼가 어때서요? 캡처 감사합니다. 어제는 제 서재 즐겨찾기 하시는 분보다 더 많은 분들이 방문해주셨어요...
수니나라님 / 셋째날은.... 동경에 있는 친구 cc 부부집에서 잤어요... 부부 자는 방 사이에 방음벽은 없었답니다.
마태우스님 / 네. 감사합니다. 님은 8년 사귀시면 안돼요..

icaru 2005-02-18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예쁜 사랑하시고, 결혼해 정좋게 사신지...어느덧 4년이고만요~
되게 좋아보이네요...부럽다... 흐..쩝...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세요~ 4주년 축하드리고요^^

털짱 2005-02-20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염장성 페이퍼를 일요일 낮부터 읽게되다니....=.,=
그래도 저절로 웃음이 나네요. 역시 서림님! ^^

엔리꼬 2005-02-21 0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순이 언니님 / 감사합니다. 사실 하도 많이 싸워서 정 좀 붙이려고 기획한 것인데,, 사람들은 또 속아넘어가는거죠 쩝~
털짱님 / 털짱님의 페이퍼는 감탄에 감탄을 거듭한답니다. 님도 s님 따라 맞선(소개팅?)세계에라도 돌입하셔서 염장을 염장이 아닌 것으로 느끼실 수 있도록~~

perky 2005-02-21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 4년차인데도, 아직도 신혼같은 느낌이 팍팍 전해지네요. ^^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언제나 행복하시기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