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영은 초파리를 좋아했다. 초파리의 날개와 눈을 특히 좋아했다. 투명하고 얇은 날개는 성당에서 보았던 스테인드글라스를닮았다. 정교하게 짜인 무늬 사이사이로 무지갯빛이 감돌았다.
새빨간 눈은 석류의 단면을 닮았다. 붉고 영롱한 수천 개의 알갱이들이 빼곡하게 모여 하나의 동그라미를 이루었다. 마취된 초파리는 생명이 유지된 채 멈추어 있었다. 초파리의 눈을 보고 있자면 눈을 이루는 무수한 동그라미들이 일제히 원영의 눈동자를 쳐다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초파리와 교감을 하는 것 같았다. - P9

원영은 붓을 들었다. 초파리가 다치지 않도록 붓 끝으로 살살건드렸다. 눈이 하얗거나 하트 모양으로 찌그러진 초파리들을 재물대 왼쪽으로 치웠다. 유전자 변형이 일어난 것들이었다. 눈이동그랗고 붉은 빛깔이 또렷한 것, 털과 무늬의 간격이 균질하며영양 상태가 좋은 초파리를 한 마리씩 골라냈다. 새로운 시험관에 담았다. 수백 마리의 초파리 중에서 가장 건강한 열다섯 마리를 골라 번식시키는 것이 원영의 업무였다. 원영의 선택을 받은초파리들은 시험관에서 일주일을 더 살 것이다. 나머지는 냉동실에 보관되다가 폐기처분될 것이다. - P10

이 안 되었던 시절에도 원영은 비슷한 말을 들었다. 학원비 몇 푼버느니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편이 낫지 않냐는 식이었다. 원영은 자기 일을 갖고 싶었다. 집을 갖고 싶다거나 아이를 갖고 싶다는 여느 사람처럼 그랬다.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삼십삼 년 동안 그랬다. 텔레마케팅 사무실은 창문이 없긴 했지만 무제한으로믹스 커피를 제공하는 탕비실이 있었고 천장에는 시스템 에어컨이 있었다. 칸막이가 설치된 책상이 직원 모두에게 제공되었다.
가져본 적 없는 자신만의 책상이었다. 첫 출근 전날 원영은 문구점을 찾아갔다. 딸의 책상에서 본 볼펜과 필통, 사무용 방석과 무릎 담요, 텀블러와 손뜨개 코스터 따위를 구입했다. 가족사진이들어 있는 작은 액자도 가방에 챙겼다. 사무실 책상을 꾸미기 위해서였다. - P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와 당신
신유진

어쩌면 허구의 삶을 산 것일지도 모른다는 어린아이의 불안이 지금 우리가 만나는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소설‘의 근원일 것이라 짐작해본다. ‘문학은 인생이아니라, 인생의 불투명함을 밝히는 것 혹은 밝혀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 작가의 작품 세계의 시작점 말이다.
생각해 보면 글을 쓰는 일은 어두운 곳에 불을 켜는 일,
그러니까 발견하고 발견되어지는 존재를 향한 일이아니겠는가. 나는 이제 그가 그토록 밝히고자 했던 그어둠이 그의 내면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깊숙한 곳에서 정확한 언어로 나아가는 그의 걸음이 그림자의근원을 향하고 있다는 것도 죽은 자를 깨워 다시 죽게하기 위해, 죽은 자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그의 말처럼죽은 자의 오래 지속된 삶에 대항해 투쟁하기 위해.
그래서일까, 나는 이 글이 기억의 합이 아닌 분리를목적으로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찢어진 조각을 다시 붙여 온 이전의 작품들과 다르게, 묶여 있던 것을 잘라내기 위한 투쟁 겹쳐진 그림자를 분리하여 한 번 더
‘당신‘이라는 비밀을 밝히는 것, 비록 나의 그림자가 ‘당신‘에게서 탄생한 것이라 할지라도 온전히 ‘나‘이길 꿈꾸는 존재의 욕망이 아닐까
이 편지의 다른 제목을 붙인다면 나는 이렇게 적어보겠다.
‘나‘이기 위해 부르는 ‘당신‘.
<추천사>중에서


사람들은 무덤 앞에서 많은 생각을 할까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나는 부모님 무덤 앞에 잠시 멈춰서서 시간을 보냅니다. ‘저 왔어요‘라고 말하듯이. 1년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내가 그동안 무엇을 했고, 어떤글을 썼고, 무엇을 쓰고 싶은지 알려드리듯이. 그러고는 오른편의 당신 무덤에 가서 매번 묘비를 쳐다보고,비문을 읽곤 합니다.  - P11

어머니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되살릴 자신은 없어요. 다만 오늘까지 매년 한 해 한 해가 지나도 사라지지않으며, 열기를 잃고 침묵하는 불꽃처럼 내 유년 시절을 단숨에 집어삼킨 이야기의 내용과 문장들만 떠올따름이지요 그때 나는 어머니 이야기를 들으면서의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인 채 계속춤을 추며 두 사람 옆을 맴돌았어요.
[이곳의 언어는 경계가 불분명한 중간지대를 찢어놓고, 나를 덥석 물어 들러붙었다가 사라져버려요.] - P16

‘착하다. 노르망디에서 이 말은 아이와 개에게 주로사용하는데, 순하고 상냥하며 ‘친근감이 있다는 걸 뜻하기도 합니다. 어른들 품에 안기기보다 그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말을 듣는 것을 더 좋아하면서 어른들과거리를 두는 나는 착한 아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어요. 그러나 나는 내가 부모님에게는 착한 아이라고확신했어요. 심지어 다른 아이들보다 더 착하다고 말이지요. - P22

부모님과나 사이에 이제는 당신이 있어요. 보이지 않지만 사랑스러운 당신이 나는 당신에게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멀찌감치 밀려났습니다. 당신이 영원한 빛에 둘러싸여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동안 난 그늘로 떠밀려갔지요. 무남독녀라 누구와도 비교당하지 않고 살던 내가 비교의 대상이 된 거예요. 현실은 서로 배척하는 단어들이 만들어냅니다. 더/덜, 또는/그리고, 전/후,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삶이나 죽음 같은 단어들에의해. - P23

어머니와 나 사이에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이 단어들의 값을 치르게 했어요. 어머니에 대항하여 혹은 그녀를 위해 글을 썼고, 자랑스러우면서도 모멸감을 느끼기도 하는 노동자로서의 어머니 입장에서 글을 썼으니까요. - P23

유년 시절을 거쳐 온 그 어떤 것도 이름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때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기억은 나지않지만 슬픔이란 감정은 아니었어요. 아마, ‘속았다‘는느낌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 단어는 훨씬 더 나중에 보부아르의 책을 읽고 난 후에 떠오른 것인데, 내게는 비현실적이면서도 비중 없는 단어로 느껴졌고,
아이였던 내 존재에 더해지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어요. 적절한 단어를 오랫동안 찾아 헤맨 후,
의심의 여지 없이, 내게 가장 잘 맞는다고 여겨진 단어는 ‘잘 속는‘이었답니다. 치욕적이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 나는 잘 속는 아이였어요.  - P24

당신이 성모마리아와 참 좋은 예수님을 보러 갈 거라고 말했다는 걸 알고, 당신을 원망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내가 부적격자라는 걸 보여주었던 그 말이 내입술을 넘은 적은 한 번도 없었고, 하나님을 보고 싶어 했던 적도 없었으니까요. 그 후 어른이 되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를 정도로 원망했던 대상은 당신에게 부질없는 말을 믿게 했던 어머니였습니다. 이제 더는 화를 내지 않아요. 모든 위로와 기도, 노래는 죽음 앞에서 흔들리는 순간에 가치를 발휘한다는 생각을 인정하지요.
그리고 당신이 행복하게 떠났다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좋습니다. - P25

몇 년을 둘러쌌던 희미하게 웅성거리던 말들 속에서당신의 부재로 나를 에두르며 자연스레 내 주위를 떠돌았던 게 분명해요. 가게에서, 혹은 전란 중이라 팔물건과 손님이 없어 매일 오후마다 나를 데리고 간 공공정원 벤치에 앉아 다른 여자들과 시간을 보내던 어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내 의식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어요. 이미지도 단어도 없이 그저 존재했을 뿐이지요. - P28

이외에 아직 말하지 않은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내 생의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건, 다섯 살 때 죽다 살아난 이야기예요. 그건 또 다른 이야기인데, 주인공은 오로지 나였어요. 어린아이였던 내게서 당신이불쑥 튀어나왔던 그 여름의 일요일을 나는 지금도 속속들이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있는데도 감출생각 않고 아버지보다 훨씬 더 자주, - 유년 시절을 기록하는 건 여자들이지요 - 희열마저 느끼며 그 일을 수도 없이 이야기했어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 누구라도할 것 없이 크게 놀라며 경탄을 금치 못하곤 했으니까요 - P32

폭격을 맞는 것보다는 덜했겠지만 그 당시 엄청난고통을 겪었다는 것을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그래도수없이 이야기를 들었기에 그 순간의 이미지는 일찍부터 머릿속에 붙잡아두었어요. 햇빛이 가득하던 공공정원을 다시 봅니다. 나무판이 뽑힌 벤치 위로 기어오르며 놀다가 다친 내가 부모님께 달려가요. 부모님은풀밭 위에 누워 있고, 나는 왼쪽 무릎 아래에 빨갛게인 작은 상처를 보여주어요. 그들은 "괜찮아. 별거 아니니까 가서 놀아"라고 말하지요. - P34

현실은 유년기에 형성된 믿음에 크게 영향을 주지않습니다. 1950년에 나를 살게 했고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살 수 있게 한 것은 현실과 함께한 기적이었을 거예요. 사망 선고를 받았던 내가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첫 번째 이야기가 당신의 죽음과 나의 부끄러움에 관한 두 번째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두 이야기는 어떻게 연결되며, 어떤 진실이 작동하여만들어진 걸까요. 나는 모순처럼 보이는 이 미스터리를 풀어야만 했어요. 착한 소녀이자 어린 성녀였던 당신은 구원받지 못했고, 악마였던 나는 살아남았으니까요. 아니, 살아 있다는 것 그 이상의 기적이 내게 일어났던 거죠.
그렇게 당신은 여섯 살의 나이로 죽어야만 했습니다. 내가 세상에 오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알 수 없는 신의 섭리 안에서 살기 위해 선택되었다는 자부심과 죄책감. 아마 죄책감보다는 자부심 쪽이 더 큰 것 같아요. 하지만 무엇을 위해 선택된 걸까요. 스무 살 때, 폭식증과 무월경의 지옥까지 내려간 - P38

후, 답을 얻었습니다. 그건 글을 쓰기 위해서라는 것이었지요부모님 집의 내 방에 클로델의 문장을 붙여놓았어요. 사탄과의 계약처럼 라이터로 가장자리를 태운 커다란 종이에 정성스레 옮겨 적은 문장을요.

그렇다. 나는 믿는다. 내가 아무 이유 없이 세상에온 것은 아니라는 걸. 그리고 내 안에는 세상이 묵과할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나는 당신이 죽었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죽은 것은 내가 글을 쓰도록 하기 위함이에요.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 P39

그들은 피난과 점령과 폭격을 겪었고, 당신의 죽음을 겪었어요. 아이를 잃은 부모인 겁니다.
당신이 거기 있어요. 보이지 않지만, 그들 사이에.

그들의 고통으로그들은 당신에게 ‘다음에 크면‘이라고 말했을 거예요. ‘내년에‘, ‘올여름에‘, ‘곧‘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나열하면서, 읽는 걸 배우고,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혼자 갈 수 있을 거라고 말했을 테지요. 그러나 어느날 저녁, 미래의 자리에는 공허만이 남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들은 내게도 같은 말을 반복했어요. 나는 여섯살, 일곱 살, 열 살이 되었고, 당신 나이를 금방 넘어섰습니다. - P47

어느 순간, 내가 당신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걸 그들이 알아차린 게 분명해요. 하지만 난 그들이 언제,
어떤 일로 알게 되었는지는 결코 알 수 없을 겁니다-그래도 침묵을 깨기에는 이미 늦어버렸어요. 너무 오래된 비밀이었으니까요. 그들로서는 이제 와서 비밀을털어놓는 게 꽤나 복잡해져 버린 거지요. 나는 그 비밀과 함께 살아왔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이들은 비밀을간직한 채, 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믿는 것과 함께 살아가지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그렇답니다.
침묵은 그들과 나, 우리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비밀이 나를 지켜주었어요. 가족 중에서 죽은 아이들을 숭배해야 하는 부담을 피하게 해주었으니까요.
그건 살아 있는 자들에게 알 수 없는 비참한 마음을 안겨주어요. 내가 분노했던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 P54

그들은 차례차례 땅에 묻히면서, 1938년 봄에 잃어버린 모든 것, 당신에 대한 살아 있는 기억을 무덤 속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당신의 첫걸음, 즐겁게 놀던 당신모습, 당신의 두려움과 아이들에 대한 당신의 질시, 당신이 학교에 입학하던날. 당신의 죽음은 이 모든 기억을 견딜 수 없는 회한으로 바꾸어놓았지요. 이와는 반대로 그들은 내게 진절머리를 냈어요. 나는 수많은 일화로 채워진 유년기를 보냈지만, 당신의 유년에 비하면 텅 비어 있는 셈이에요. - P58

글을 쓰면 쓸수록마치 꿈을 꾸듯 이끼만 잔뜩 돋은 인적 없는 습지에서걸음을 내딛는 듯하고, 단어들의 틈새를 헤치고 나아가 불분명한 것들로 가득 찬 공간을 넘어가야 할 것만같아요. 내겐 당신을 위한 언어도, 당신에게 말해야 할언어도 없으며, 부정적인 방식을 통해 지속적인 비존재 상태로 있는 당신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감정과 정서의 언어 바깥에 있는당신은 비언어입니다. - P61

나는 그들의 고통 속에서 산 것이 아니라, 당신의부재 속에서 살았습니다. - P64

만일 감정에 관한 단어들을 쭉 늘어놓는다 해도, 내유년기와 그 이후의 삶에서도 당신에게 해당하는 내감정의 단어는 하나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당신은 죽은 사람이기에 증오할 대상이 되지 못하며, 관계가 가깝든 멀든, 다른 사람을 향해 인간의 마음에서 솟아나오는 애정의 대상도 될 수 없지요. 백지 같은 감정. 내가 ‘무덤‘에 대한 그들의 생각에서 이름 없는 당신의 존재를 의심했을 때, 고작해야 불안함이 더해졌을 뿐인중립의 감정. - P65

당신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갈구했으며, 나의 자부심은 라틴어였고 대수학이었어요! 또한 사랑과 섹스를 상상하며 글을 구상하는 일에 마음을 온통 쏟아부었지요.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픈 생각조차 없고 오로지 미래만 꿈꾸는청소년에게 전쟁 전에 사라진 어린 소녀의 실체 없는이미지가 얼마큼의 무게를 가질 수 있을까요? 행복하거나 - 생리를 시작하고, 사랑에 빠지고, 모파상의 《인생》과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읽는 것 - 불행했던 -1952년의 일요일 - 모든 일에 비해, 혹은 이브로에서 보내는 갑갑하고 지겨운 여름방학처럼 아무 일 없는 나날이나 그래도 곧 다가올 일들 - 차가워진 상쾌한 공기가 예고하는 학교에서 맞을 아침과 사랑 노래, 토요일마다 루앙의 기차에서 내리는 학생들로 왁자지껄한분위기에 비해 당신의 죽음은 내가 고려할 만한 대상이 아니었어요. - P66

나는 외동딸로서 내가 갖는 이점을 알고 있었어요.
더구나 다른 아이가 죽은 후에 온 아이기에 늘 마음 졸이며 더욱 정성을 쏟게 되는 애정의 대상이었지요. 아버지는 무엇보다 내가 행복하기를 바랐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했지요. 그들이 바라는것이 더 많아질수록, 나는 친지들 사이에서 그리고 우리 노동자 마을에서 특권을 지닌 부러움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빵 심부름도 하지 않았고,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손님들에게 ‘나는 손님을 맞지 않아요‘라고 대답하곤 했지요. 당신은 그들의 슬픔이었어요. 그러나 나는 그들의 희망이자 골칫덩이였고, 첫영성체부터 대학입학 자격시험까지 그들의 이벤트였으며 성공이었습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내가 그들의 미래였지요. - P68

내가 피해선 안 되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남자의 자리》를 쓸 때, 현실에 보다 가깝게 쓰려는 마음을 갖지 않았더라면, 지난 세월 동안 당신을 가둬두었던 내 어두운 내면으로부터 당신이 다시 올라올 수있었을까요? 이 편지처럼, 내가 쓴 책들은 마치 출구가보이지 않는 통로에서 자꾸만 겹겹이 드리워지는 천들을 하나씩 들추며 나아가듯,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 속에 가라앉아 있던 당신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일까요? - P70

‘당신‘은 덫입니다. 숨 막히게 하는 무언가를 가진채, 역겨운 슬픔의 냄새를 풍기며 당신에 대한 가상의친밀감을 만들어내요. 나를 비난하려 가까이 다가오죠.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당신 때문이라고 믿게 하며,
당신의 죽음을 우위로 두어 내 존재 전부를 깎아내리려 합니다. - P71

당신의 생명에서 영원을 얻은 내 생의 광활함이 나를 뒤덮습니다. 내 뒤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것들이 있어요. 보고, 듣고, 배우고, 잊어버리는 것들, 동고동락하는 남자와 여자들, 거리들, 저녁과 아침들.
과잉의 이미지가 넘칠 정도로 내게 쏟아집니다.
아주 멀리 있으나 너무나도 선명한 이미지. 그것들은 처음부터 릴본에 있었어요.
당구대가 있는 카페 홀, 나란히 놓인 대리석 테이블, 식탁에 앉아 있던 폴드렝 씨와 치아가 두세 개뿐인그의 부인, 그리고 다른 손님들의 어렴풋한 실루엣포석이 깔린 작은 안뜰로 난 유리문, 유리문으로 공간을 구분한 식료품 가게와 주방 - P79

계단 위쪽의 식사실, 테이블 위의 반구형 컵과 그안에 꽂아놓은 검은색과 오렌지색 셀로판지 꽃들짧은 털에 끊임없이 몸을 떨고 강에서 잡아온 쥐들을 죽이던 암컷 개, 푸페트거무스름한 데제네테 방적공장 대단지와 철판으로만든 거대한 굴뚝방앗간과 빛바랜 초록 물레바퀴 - P80

며칠 후 투생 휴가가 돌아오면 언제나처럼 산소에갈 생각이에요. 이번에는 당신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을까요? 나는 당신에게 말을 건네야 할 필요가 있을지,
이 편지를 썼다는 게 부끄러울지 자랑스러울지, 편지를 쓰고 싶었던 욕구가 정말 있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아마 나는 당신의 죽음이 내게 준 삶을, 이번에는 내 차례가 되어 당신에게 돌려주며 가상의 빚을 털어내길원했던 것 같아요. 아니면 당신과 당신의 그림자로부터 떠나기 위해 당신을 되살리고 다시 죽게 한 걸 수도있고요. 당신에게서 벗어나려고.
- P89

물론, 이 편지의 수신자는 당신이 아닙니다. 당신은읽지 않을 테니까요. 편지를 받을 사람은 다른 사람들,
바로 독자예요. 내가 이 편지를 쓸 때, 당신만큼이나 보이지 않았던 자들이지요.
그러나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 편지가 우리는상상할 수 없는 신비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당신에게닿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여름의 일요일에, 어쩌면 튀렝의 방에서 파베세가 자살했던 그날에,
나 역시 수신자가 아니었던 이야기를 통해 당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소식을 들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2010년 10월 - P9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나긴 하루 (타계 10주기 특별판)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월
평점 :
품절


사는 게 폭폭해서 숨 고르기가 필요한 날, 약 처방을 받듯 박완서님을 읽는다. 진통효과는 적확하고 빠르다. 특히 표지부터 환하고 따뜻해지는 <기나긴 하루>는 살아내지 못한 하루들로 가득해서 지금의 폭폭함쯤이야~배짱이 생긴다. 책을 펴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생의 스승이 계셔 살만한 오늘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집단의 이야기를 조금씩 바꿈으로써 우리가 끝없는 강제적 침묵 위에 씌어졌던 오래된 이야기를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준 모든 여성들, 고맙습니다. 소셜미디어, 공론장, 대화, 뉴스, 책과 법정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어  그 목소리로 침묵을 깨고,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들도어쩌면 그들 역시 세상에 들려줄 끔찍한 이야기를 간직한 생존자가 되기 전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 모든 이야기꾼들, 고맙습니다.

페미니즘에게, 고맙습니다. 
교차점들에게, 고맙습니다.
세상 모든 것들의 해방을 위하여.

두개골은 생후 몇년 동안 처음의 네배로 커진다. 그런데 만약뼈들이 너무 일찍 맞물리면, 뇌가 자랄 공간이 없어진다. 반대로영영 맞물리지 않으면, 뇌가 보호받을 수 없다. 자랄 수 있을 만큼은 열려 있되 온전함을 유지할 만큼은 닫혀 있어야 한다는 것, 이것은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콜라주처럼 자신을 만든다. 세계관,
사랑할 사람, 살 이유를 조각조각 모은 뒤에 그것을 자신의 신념과 욕망에 부합하는 삶이라는 하나의 그림으로 통합해낸다. 적어도 운이 좋은 사람은 그런다. - P239

20대 중반 언젠가, 어린 시절에 자연에 대해 품었던 열정이새삼 살아났다. 내가 사는 곳의 숲이나 초원이나 해안 같은 야생의장소에서 깨우침과 자유를 느끼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자연과 장소와 경관에 관한 개념과 재현과 욕망을 문화사적으로 공부하기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술과 미술사를 대상으로 했지만 나중에는환경에 관한 모든 글과 문화사로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그다음에는 그 주제에 대해서 쓰기 시작했다.
- P239

나는 글쓰기를 네바다 핵실험장에서 배웠다는 말을 자주한다. 대규모 반핵 야영 시위에 참가하려고 처음 그곳을 찾았던1988년 봄 이후로 2000년대까지 매년 방문하면서 접한 그 장소는얼마나 순전하고 광대하던지, 내 눈에 얼마나 낯설던지, 얼마나 많은 문화와 이야기가 모여 있던지, 내가 본 것을 그런대로 잘 묘사했다고 생각되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이전까지 여러갈래로 나뉘어 있던 글쓰기 방식들을 한데 모아서 하나로 합쳐야 했다. 이전에 나는 글쓰기에 이른바 범주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채로 글을 썼다. 비평과 리뷰를 쓸 때는 확신과 객관성을 갖춘 듯한 말투로 썼고, 기사를 쓸 때는 그럭저럭 저널리즘으로 불릴 만한 문체로썼다. 짧고 밀도 높은 에세이도 이전부터 써왔다. 시적이고, 개인적이고, 감정적이고, 은유적이고, 형식과 문체를 실험해보는 그런글에서는 시와 예언자적 목소리로부터 배운 바를 끌어들였고, 평론과 기사에서 허용되지 않던 요소들을 실컷 시도했고, 놀라움과감상과 불확실성을 담아냈고, 언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도록재량을 한껏 허용했다.
- P241

그곳은 강렬한 장소였다. 거기 있었을 때의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광활한 모랫빛의 돌투성이 땅, 그 속에서 뜨문뜨문 반짝이는 분홍색 석영 조각, 돌과 돌 사이의 옅은 흙에 띄엄띄엄 자란 뾰족뾰족한 모양의 강인한 식물들, (모래바람이 일 때나 열기가 뜨거워서 아지랑이가 어른거릴 때를 제외하고는 엄청나게 맑아서수십 킬로미터 밖 산등성이가 선명하게 내다보이는 건조한 대기.
그 망막한 공간이 불러준 덕분에, 나는 가끔 150킬로미터 밖까지내다볼 수 있는 풍경, 그 거리의 절반을 달리면서도 집 한채 못 볼때가 있는 풍경, 내가 자주 그랬듯이 지평선을 향하여 하염없이 걸으면서 해방감과 함께 이토록 메마른 곳에서 전체의 3분의 2가 물로 이뤄진 내 몸은 어떻게 되는 걸까 두려움을 느꼈던 풍경 속을자유롭게 누볐고, 그 속에서는 인간의 몸과 관심사란 하찮기 짝이없음을 느꼈다. 그냥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숨결과 살갗에서 물기가 빠져나와서 공중으로 흩어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미국을 통틀어 가장 건조한 주 내에서도 가장 건조한 그 일대의 대기에도 드물지만 가끔은 구름이 엉겼고 그러면 비가 내렸는데, 비는 땅으로떨어지는 와중에 증발하거나 후드득 쏟아졌다가 몇분 만에 말라버리곤 했다. - P242

담장과 경비가 있는 장소에 들어가려면 요령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뻔한 사실이지만, 실은 이런 방대한 공간에 들어가는 데에도 나름의 능력이 필요하다. 이때로부터 몇년 전에 남자친구와 함께 데스밸리와 남서부를 횡단하는 자동차 여행에 나섰다가 예정보다 이르게 돌아선 적이 있었다. 물이 고이는 산골짜기나 협곡에숨은 오아시스를 찾아내는 법을 몰랐고, 초목이 거의 혹은 전혀 없는 곳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법을 몰랐고, 시간이란 아득하고 순환적인 것이라는 감각과 그 고요함을 우리 안에 받아들이는 법을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내가 그런 곳에 들어가는 법을 배운 계기가 네바다 핵실험장이었다. 그곳에서 봄마다 벌어진 야영 시위에서 그런 외진 땅들에 애착을 느끼는 사람들을 사귄 데다가, 그곳에서의 시간이 안전하다고 느꼈고 좀 얄궂지만 그 장소 또한 안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터지는 핵무기와 대치하고 있었고, 방사성 낙진을 마실까봐 걱정했고, 핵실험장을 지키는 무장 경비원들에게 가끔 거칠게 체포되곤 했는데도,
나는 안전했다.  - P243

그 시절에 나 같은 비원주민들이 얼마나 무지했는지, 요즘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원주민들이 주류 담론에서 얼마나 철저히 지워졌는지, 혹은 아예 끼지도 못했는지, 혹은 사라진지 오래이고 그래서 제 스스로 목소리를 낼 일은 영영 없는 사람들인 것처럼 과거시제로만 이야기되었는지 모를 것이다. 화가, 사진가, 환경보호론자, 시인, 탐험가, 역사가 들이 상상하고 묘사한 북아메리카는 인간이 당도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땅, 더 구체적으로말하자면 백인 남성이 최근에야 발견한 장소일 뿐이었고 그 그림에서 원주민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 P245

나는 전화로 소식을 듣고는 한시간만에 일정을 모조리 취소하고 냉큼 짐을 챙겨 동쪽으로 차를 달렸다. 베이교를 건너고, 이스트베이를 지나고, 새크라멘토강을 건너고, 넓은 새크라멘토 계곡을 가로지르고, 처음에는 참나무 숲을다음에는 소나무 숲을 통과하여 산을 올라서 시에라네바다산맥을넘고, 사막으로 들어가서, 화물차 휴게소에서 두어시간 눈을 붙였다가, 새벽에 다시 내 집에서 자매의 집까지 800킬로미터를 달리는 운전을 재개했다. 내가 폭력을 향하여 움직인 것은 평생 처음이었다.
- P251

감정은 최악일 때뿐 아니라 최고일 때도 전염된다. 땅에 가까이 살아가는 서부인들의 용맹함, 배짱, 헌신, 유머는(그리고 뉴잉글랜드에서 서부로 이식된 루시의 활기찬 대담함) 내게 유익하게 작용했다. 그다음에는 내가 장소들 자체와 친해졌고, 장소들로부터 즐거움과 힘을 얻었다. 나는 서부를 자유롭게 돌아다니기 시작할 용기를 키운 터였고, 흙길을 더 잘 달리고 외진 곳까지 갈수있으며 뒤쪽에 마련된 잠자리에서 여러 밤을 나게 해줄 픽업트럭 - P253

을 갖춘 터였고, 유타와 콜로라도와 뉴멕시코와 네바다에 찾아갈친구들을 만들어둔 터였다. 이제 나는 서부를 더 많이 돌아다녔다.
그것은 집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 더 깊은 의미의 집으로 돌아가는 행위였고, 내가 사는 지역 전체와 유대를 맺고 유지하는 행위였다. 나는 그 장소에, 그리고 장거리 운전과 걷기는 물론이거니와환경 시위에서 야영하며 당국과 맞서는 일까지 갖가지 물리적 도전들을 개의치 않는 자세에 뿌리내린 자아를 만들어나갔다. 그것이 바로 내가 되고 싶은 내 모습이었다. 그 모습 중 일부는 장식물로 치장한똑딱단추가 달린 셔츠, 픽업트럭에서 트는 먼지투성이 컨트리 음악 카세트테이프, 괜찮은 캠핑용품 세트 등등 퍼포먼스였지만, 일부는 더 깊이가 있었다. - P254

글쓰기는 희망적으로 느낄 만큼 잘되고 있었고, 그렇다고 해서 훗날처럼 일을 과하게 맡을 만큼 잘되지는 않고 있었다. 그래서나는 쏘다녔고, 탐험했고, 내게 들어오는 초대를 최대한 활용했다.
시간이 넉넉했고, 눈앞에서 열리기 시작한 세상과 관계와 생각에흥분감이 들끓었다. 그때 가졌던 능력이 그립다. 대뜸 트럭에 올라서 일주일이고 이주일이고 어디론가 떠나던 능력, 멀리 돌아가는길을 택하던 능력, 할 일을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고 그 장소에 충분히 머물면서 탐험하던 능력. 나는 자유로웠다. - P254

지평선 가까이의 하늘이 살구색이고 그 위의 하늘은 아직 파란색인 저녁에 나는 가끔 두 색 사이의 경계선을 찾아보려고 하지만, 하늘에는 서로 다른 두 색 사이에 어떤 엷음이 있을 뿐이고 그마저도 가려내지 못하고 놓치기가 쉽다. 가끔은 역시 저녁에 주변의 색들이 변하거나 그림자가 땅에 점점 더 길게 끌리는 과정을 지켜보려고 하지만, 거의 매번 한순간 주의를 깜박했다 싶으면 이내반쯤 빛을 받고 있던 나무가 벌써 어둠에 삼켜졌거나 환하고 또렷하던 그림자가 갑자기 뭉개진 것을 알아차리곤 한다. 해가 벌써 넘어갔거나 코발트색이던 하늘이 이미 미드나이트블루색이 되었기때문이다. 상태는 이랬다가 이내 저렇고, 이행의 과정은 표시하기가 어렵다. - P255

나는 짧은 글과 리뷰를 발표했고, 다음에 더 긴 글과 더 야심찬 에세이를 발표했다. 책을 한권 썼고, 그보다 더 야심 찬 책을 또썼고, 같은 맥락의 책을 한권 더 썼고, 그다음에 걷기의 역사에 관한 책인 걷기의 인문학] 반비 2017을 썼다. 2000년에 출간된 이 책은내가 처음으로 얼추 생활임금에 가까운 금액을 선인세로 받은 책이자 처음으로 널리 판매된 책이었다. 각각의 책은 내가 집필을 시작할 때 마음에 품었던 질문에 답하는 내용이었고, 끝에 가서는 각각 또다른 질문들을 발생시켰다. 걷기의 역사를 쓰면서도 두가지의문이 떠올랐다. 그래서 다음 두 책에서는 그것들을 파고들었다. - P259

<길 잃기 안내서> -반비 2018-를 쓴 것은 방랑, 미지 속으로 과감히들어가는 일, 만물의 핵심에 있는 본질적 미스터리를 받아들이는일, 그리고 상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기 위해서였다. 이 글을과연 누구에게든 보여줄지, 마무리할 수는 있을지, 책으로 낼 만한지, 내가 출간을 바라기는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결국에는책으로 냈다. 책은 처음에 조용한 반응만을 얻다가, 나중에 사람들에게 발견되고 인용되고 또 몇몇 예술가가 작품으로써 반응하면서 흥미로운 생애를 살게 되었다.
- P259

그다음 몇년 동안, 나는 정치에 대해서 쓰는 작가가 되었다.
현재 펼쳐지는 사건들과 만성적인 상황들에 대한 에세이를 써서한 웹사이트에 발표했고, 그러면 전세계 여러 뉴스 사이트들이 그글을 가져가서 게재했다. 글쓰기의 계기는 종종 최악의 사건들, 내가 동의하지 않거나 분개하는 사건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도 많이 썼다. 반대도,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것을해쳤거나 해칠 참이라서 반대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에 쓴 글 한편이 저 혼자 거친 파도를 일으키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것은 내가 다른 어떤 글보다도 덤덤하게 쓴 글이었다. 다른 글들은 모두내가 선택하여 의도적으로 접근한 주제에 관한 글이었지만, 페미니즘은 그것이 나를 선택했다. 아니면 내가 그것을 모른 척할 수없었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 P267

내가 그날 아침에 쓴 글을 발표한 뒤로 변호사, 과학자, 의사,
온갖 분야의 학자, 운동선수와 등반가, 기계공, 건축업자, 영화 기술자, 기타 등등의 여자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 모두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서 남자들이 자꾸 자신을 가르치려 든경험이 있었다. 그 남자들은 자기가 하는 소리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응당 앎은 남자에게 있고 앎의 결핍은 여자에게 있다고 믿었고, 듣기는 여자의 자연스런 태도이자 의무인 반면에 설명은 남자의 권리라고 믿었고, 게다가 어쩌면 여자의 일은 남자의 자아를 부풀려주는 것이고 여자의 자아는 쪼그라들어야 한다고까지 생각했다. 누가 사실을 쥐고 있는가에 대한 이런 비대칭은 지적인 문제에서부터 방금 전에 벌어진 일상의 사건에까지 매사에 적용된다. 그리고 이 상황은 여성의 능력을 갉아먹는다. 거의 모든 일에 대한능력을 가끔은 생존의 능력도 - P272

날 가만 놔두라고 말한다는 것이 어릴 적 내게는 상상할 수 없는일, 내게 그렇게 말할 권리가 있는지 모르겠고 그렇게 말해도 안전한지를 모르겠으며 그렇게 말한들 그들에게 내 말을 들을 의무가있는지, 아니 들을 의향이라도 있는지 모르겠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젊을 때 늘 강간당할 수 있다고, 어쩌면 살해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던 여자다. 나는 평생 여자들이 여자라는 이유로 낯선 사람에게 강간과 살해를 당하는 세상, 또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거나 그냥 여자라는 이유로 아는 남자에게 강간과 살해를 당하는 세상, 그런 강간과 살해가 예술에 선정적으로 잔존하는세상을 살아온 여자다. 나는 결정적인 순간에 여러차례 당신은 믿을 만하지 않다는 말, 당신이 헷갈린 거라는 말, 당신은 사실을 다룰 능력이 없다는 말을 들어온 여자다. 그리고 이 모든 면에서 나는 평범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강간 검사 키트, 캠퍼스 스토킹인식 제고의 달, 여자와 아이가 제 남편과 아버지를 피해 숨는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가 붙박이로 널린 사회에서 살고 있으니까. - P274

이른바 <#미투나도 고발한다>로 세상이 뒤집히고 이어서 미국 밖으로도, 아이슬란드에서 한국까지 전세계에서 고발이 이어졌던 사건에 답하여, 여성들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2018년 대법원 청문회에서 한 여성이 열다섯살에 겪을 뻔했던 성폭행과 그로 인한트라우마를 증언하고는 폭로의 대가로 살해 협박을 받은 사건에답하여, 여성들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우리가 살펴보는 현상은 잔인했지만, 우리가 말할 수 있다는사실과 말의 힘을 느끼는 것은 환희로운 일이었다. 이상한 조합이었다. 말하는 사람들은 말함으로써 해방됨과 동시에 과거의 고통을 다시 겪었다. 한번 그렇게 둑이 터지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쏟아졌던지 마치 숨었던 것들이 모조리 백일하에 드러난 것 같았지만, 그 뒤에도 또 둑이 터졌고, 그러면 수천수만의 더 많은 여성들이 또 처음으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 P282

분노가 이런 사업의 추진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평생 활동가들과 함께한 경험으로 내가 확신하는바 대개 활동을 추진하는 힘은 사랑이다. 사유화된 우리 사회가 사람들의 트라우마에 대해서 내놓는 치료법은 개인적 차원의 것일 때가 많지만,
우리는 종종 타인을 위해서, 타인과 함께, 우리를 해친 환경을 바꾸는 일을 함으로써 연대와 힘을 경험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트라우마의 핵심인 고립감과 무력감을 극복할 수 있다.
- P283

네바다 핵실험장에서 나는 최악의 일을 다루는 방법은 그것을 직면하는 것임을 배웠다. 그것으로부터 달아나면, 그것이 당신을 뒤쫓는다. 그것을 무시하면, 무방비 상태일 때 그것이 당신을덮친다. 그것을 직면해야만, 그 과정에서 동맹과 힘과 승리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내가 이전부터 누차 젠더폭력을 직면하고 호명하려고 애썼던 것은 그 때문이었고 마침내 나는 그토록 오래 기다려온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이 문제를 직면하고 우리에게 필요한대화를 꾸려가는 여성들의 세계적 움직임을.
- P284

복장이나 자유롭게 다니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여자들의 욕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낡은 변명을, 피해자 비난과 무시를 조금씩 지웠다. 또한 우리는 스토킹, 성희롱, 성추행, 강간, 가정폭력, 여성살해를 여성혐오라는 한 현상의 서로 다른 표현으로이해하고 말했다. 페미니즘에 관한 대화 덕분에 우리는 성적 학대가 어떻게 벌어지는지, 왜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을 때가 많은지,
피해자가 거짓말하는 경우는 드문데도 불구하고 왜 정작 신고를하면 의심받는지, 왜 가해자가 유죄 선고를 받는 경우가 드문지에대해서 더 넓고 깊게 알게 되었다. 인종과 젠더가 교차하는 방식을 더 잘 알게 된 것도 새로운 소득이었다. 둘 사이의 유사점도 더잘 알게 되었다. 인종폭력 또한 피해자를 깎아내리고, 불신하고,
비난하고, 무시하는 행위를 용인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 P285

가부장제는 종종 자신이 합리성과 이성을 독점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가부장제에 빠진 사람들은 여자의 말이라면 아무리입증 가능하고 일관되고 일상적인 이야기라도 믿지 않으면서 남자의 말이라면 아무리 터무니없는 소리라도 받아들이고, 성폭력은 드물지만 무고는 흔한 것처럼 말한다. 우리가 말을 꺼내봐야 그때문에 또 처벌과 비난을 받을 뿐이라면, 왜 말하겠는가? 혹은 무의미한 말인 것처럼 무시될 뿐이라면? 선제적 침묵시키기는 이렇게 작동한다. - P286

영향력consequence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중요한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 중요한 존재라면, 그에게는 권리가 있다.
그의 말은 그 권리를 위해서 일한다. 그에게 증언하고, 합의하고,
한계를 정하는 힘을 준다. 그가 영향력 있는 존재라면, 그의 말에는 그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거나 벌어지지 않는지를 정하는 권위가 담겨 있다. 그 힘은 평등과 자결의 일부로서 동의의 개념에 꼭필요한 전제 요소다. - P288

그동안 여자들은 세가지 전선 모두에서 손상을 입었다. 유색인 남자들도 그렇고, 비백인 여자들은 이중으로 그렇다. 그들은 말하도록 허락되지 않고, 혹은 말한다는 이유로 처벌받고, 혹은 결정이 내려지는 무대에서법정, 대학, 입법 기관, 보도국에서배제당한다. 어렵사리 말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서 말하면 조롱당하거나 불신당하거나 협박당하고, 그런 범주의 사람은 본질적으로기만적이고 악의적이고 망상적이고 정신이 혼란하다고 혹은 그냥자격이 없다고 싸잡힌다. 아니면, 말해도 침묵한 것과 다를 바가없다. 자신의 이야기를 말해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의 권리와 증언력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목소리는 바람에 날려 사라지는 소리일 뿐이다.
젠더폭력은 이 가청성, 신뢰성, 영향력의 결여로 인해 가능해진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거대한 모순이나 다름없으니, 사회는법률과 그 잘난 자존심에 의거하여 그런 폭력에 반대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다른 무수한 전략으로써 그런 폭력이 계속 횡행하도록허락했고,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훨씬 더 자주 더 잘 보호했고, 직장 성희롱이든 학내 강간이든 가정폭력 사건이든 늘 입을 연 피해자를 처벌하고 모욕하고 겁박했다.  - P289

성적 폭력을 가능케 하는 이런 여성의 목소리에 대한 무시는폭력 이후의 무시, 즉 여성이 경찰이나 대학 당국이나 가족이나 교회나 법정을 찾아가거나 강간 검사를 받고자 병원에 찾아갔을 때외면과 모멸과 비난과 망신과 불신을 받는 것과 뗄 수 없는 일이다. 둘 다 한 사람이 사회에서 누려야 마땅한 온전한 인간성과 구성원 자격을 공격하는 일이고, 후자의 영역에서 그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이 전자의 일을 가능케 한다. 성폭력은 가청성, 신뢰성,
영향력이 불평등한 상황에서만 활개 칠 수 있다. 다른 어떤 불균형보다도 바로 이 불균형이 젠더폭력이라는 전염병의 가장 중요한전제 조건이다.
힘과 저 세 속성을 다 갖춘 목소리를 누가 가질 것인가, 이 점을 바꾼다고 해서 모든 것이 바로잡힐 리는 없다. 하지만 그것을바꾸면, 규칙이 바뀐다. 특히 어떤 이야기가 말해지고 들려질지,
누가 그것을 결정할지를 정하는 규칙이 바뀐다. 이 변화의 척도 중하나는 과거에 무시되고 불신되고 일축된 사건들, 혹은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판결된 사건들 중 현재에 다른 결과를 낸 사건이 많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증언대에 선 여성이나 아이의 목소리가 이전보다 더 많은 가청성, 신뢰성, 영향력을 확보했기 때문에 가능한일이다. 이런 획기적 변화가 가져올 여러 결과 중 가장 측정하기어려운 결과는 규칙이 바뀌었기 때문에 발생하지 않은 수많은 범 - P290

죄일 것이다.
그런 변화의 배후에는 누구의 권리가 중요한가, 누구의 목소리가 들릴 것인가, 누가 결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 면에서의 변화가 있다. 그 목소리를 확대시키고 북돋우며 그 변화를 촉진하는 것은 내가 작가로서 확보한 목소리를 써서 수행한 과제 중 하나였다.
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글과 말이 세상의 변화를 거드는 걸 보는 것은 작가이자 또한 생존자인 내게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 P291

내가 뉴올리언스에 간 것은 그 도시에서 가장 추악한 것들을 직접 보기 위해서였다. 가난, 인종차별, 그리고 도시가 범람했을 때 바로 그 요인들 때문에 1,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버려진 데다가 이어 공격받고, 대피가 저지되고, 구호를 받지 못하여 죽어간일, 그에 더해서 그들을 악마화하고 비인간화하는 이야기들 때문에 죽어간 일. 그런데 나는 그뿐 아니라 뉴올리언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 그중 하나는 그곳 주민들이 현재에 머무를 줄 안다는 점, 집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고 거리에서 축하하고 주변과 이어질 줄 안다는 점, 그런 현재를 만들어낸 과거를 기억할 줄 안다는 점이었다.
그들에게는 우리로 하여금 서로를, 또한 일상의 자각과 즐거움을그냥 지나치도록 볶아치는 비참한 두 덕목인 생산성과 효율성 이외의 것들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재능이 있었다.
- P295

"우여곡절이 있었겠지만"Despite everything, 이 말을 나는 수십억명의 인간들이 삶에서 으레 겪는 장애물과 상처를 가리키는 것으로이해했다. 세상이 그동안 좋은 방향으로 크게 바뀌었다는 것을 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사람들이 젠더라는 뒤틀린 거울이 그들에게 비춰 보인 손상된 자아상 때문에, 혹은 그들의 권리와능력과 생존 조건마저 훼손된 현실 때문에 운명대로 살지 못한다는 것도 안다. 세상에 티끌만큼도 손상되지 않은 인간이 있으리라고 상상하는 것은 아니고, 그런 존재를 굳이 상상해볼 필요도 없겠지만, 적어도 여성이 겪는 피해 중 일부나마 줄고 금지되는 모습만큼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나는 또 그 과정이 현재 진행되는 중이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은 자신에게 안전하고 자유로울 자격이 있다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페미니스트인 동시에 희망적인 인간일 수 있는 까닭은, 여성의 권리와 지위가 내가 태어난 이래 여러 장소에서 여러 방식으로 크나크게 변해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 P296

손상을 입은 삶은 그러지 않았을 때의 삶과는 다른 운명을 낳지만, 우리가 손상을 입는다고 해서 삶을 살지 못하게 되거나 중요한 것을 이루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우리가 어떤 끔찍한 일에도 불구하고 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일때문에 운명으로 정해진 존재가 되고, 운명으로 정해진 일을 하게 된다. "운명대로 살다" meant to be, 여자의 이 말을, 나는 손상이 없었다는 뜻이아니라 손상이 있었어도 그것이 내가 세상에 온 목적을 수행하는 - P299

사람은 사실 어떤 운명도 타고나지 않는다. 사람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태어난다. 약간의 선천적 기질을갖고 태어난다. 그다음에는 사건들과 만남들에 의해서 형성되고,
좌절되고, 뜨겁게 데고, 격려를 받는다. 우여곡절이 있었겠지만, 이말은 한 사람을 저지하려고 들거나 그의 성품과 목적을 바꾸려고드는 힘들이 있음을 뜻하고, 운명대로 산다, 이 말은 그 힘들이 완벽히 성공하지는 못했음을 뜻한다. 그것은 낯선 이가 내게 건넨 멋진운이었다. 나는 그 운을 받아들였고, 더불어 내 운명은 어떤 이야기를 깨뜨리는 사람이자 어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 금 - P302

간 곳을 추적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가끔은 수선하는 사람이 되는것, 또 가끔은 가장 귀중한 화물을 담아 나르는 짐꾼 혹은 배가 되는 것이라는 느낌도 함께 받아들였으니, 그 화물이란 말해지기를기다리는 이야기들, 우리를 자유롭게 할 이야기들이다. - P3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즘도 나는 내 말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산더미처럼 모아두는 버릇이 있다. 그때 내가 택한 대처 방법도 그것이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부설 도서관에 가서, 두 남자가 문제의 시기에 나눴던 대화와 함께했던 작업에 관한 자료를 있는 대로 복사해 왔다. 그리고 그 자료를 내 편집자가 코플랜스의 변호사에게 전달했던 것 같다. 결국 책은 폐기되지 않았다. 별 반응을 얻지 못한채 조용히 있다가 절판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서평 기사는 딱 두편이 나왔고, 개중 한 기사는 선뜻 서문을 써준 시인 겸 비평가 빌벅슨Bill Berkson 을 책의 저자로 잘못 소개했다. 얄궂게도 벅슨의 서문첫머리에는 작가 미나 로이 Mina Loy의 이 시구가 인용되어 있었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겪은 고통은 흔해빠진 비극일 뿐"
- P210

없으니 그 싸움특정 기상 현상이 기후변화 때문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말하기는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기후변화가 기상의 전반적인 경향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차별도 그렇다. 어떤 특정 사건은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한 상대의 태도에서 비롯한 일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건이 누적되면 그로부터 분명또한 패턴이 드러난다. 돌아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그 시절의세상이 달랐더라면, 즉 내가 겪은 위협과 주변 여성들이 겪은 폭력이 절박한 현실이 아닌 세상이었다면, 또 내 청년기에 우상으로 떠받들렸던 작가들의 업신여김이 그리 심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겪은 저런 적대적 행동들도 그냥 재수 없는 일일 뿐 서로 무관한 시건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고. - P211

요컨대 나는 미래와 과거의 전쟁들이 현재에 겹쳐지고 있다고 주장했고, 그런데도 우리가 그 사실을 대체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전쟁, 서부, 자연, 문화, 원주민 등등을 생각하는 방식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개념들은 그즈음 이미 혁명적으로바뀌는 중이었고, 나는 그 혁명의 수혜자였다. 원주민들은 자신들이 사라진 적 없고, 권리를 포기한 적 없고, 자신들의 역사를 잊지않았고, 그 땅에는 역사가 있으며, 그 역사는 자연과 괴리되거나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문화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것은나처럼 원주민이 아닌 사람에게는 혁명적인 깨우침이었다. 상징적 소멸을, 즉 특정 집단이 특정 성별, 인종, 성적 지향의 사람들이 대중문화와 예술에서, 해당 사회나 지역에 관한 공식적 묘사에서 재현되지 않는 현상을 만회하도록 해주는 깨우침이었다. 무엇보다 그것은 이전까지 저런 개념들을 조직하는 데 널리 쓰였던자연대 문화의 선명한 이분법을 지우는 변화였다. - P213

신뢰성은 생존의 기본도구다. 책은 통상적인 편집 과정을 거쳐서 1994년 가을에 출간되었다. 책에 핵무기와 반핵 운동 이야기가 나오는데 마침 내 남동생은 반핵 운동가이자 내게 지지를 아끼지 않은 친절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내가 서부를 돌며 책을 홍보할수 있도록 계획을 짜주었다. 동생은 자기 인맥을 활용해서 내가 대학과 라디오 방송과 활동가 단체에서 이야기할 기회를 마련해주었고, 내 쉐보레 트럭으로 떠난 11,000킬로미터의 여정에도 동행해주었다. 우리는 주로 동생의 친구와 지인 집에서 묵으면서 다녔다. 댈러스에서 우리를 재워준 분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댈러스까지 어느 길로 왔느냐고 물었을 때, 내가 "시애틀을 거쳐서요"라고대답하면서 재미있어한 일도 있었다. - P215

‘우리가 목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역경에서 살아남았거나 장벽을 부순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해냈다는 사실을 근거로 역경이나 장벽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혹은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만약 무언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면 다른 곳에 더 유용하게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에너지를 그곳에 쏟아야 하고, 그래서 지치고 불안해진다. 나는 다른 어떤 경험보다도 논픽션을 쓰고 책으로 펴내는 과정을 통해서 내게 진실과 정의를 가려보는 능력과 신뢰성이있다는 점을 믿게 되었다. 그 덕분에 이제 가끔은 나 자신을, 혹은남들을 옹호하고 나설 수 있게 되었다. - P218

어떤 여자가 자신에게 혹은 다른 여자에게 나쁜 일이 벌어졌고 그 가해자가 남자라고 말하면, 말한 이에게 남성혐오자냐는 비난이 쏟아질 때가 많다. 마치 그 일이 사실이라는 점은 중요하지않고, 상황이 어떻든 여자가 쾌활한 태도를 보여야 할 의무가 중요하다는 듯이. 모든 남자가 끔찍하지는 않다는 점이 어떤 남자는 끔찍하게 굴었다는 점보다 더 중요하다는 듯이. 여자의 말은 내용의사실성으로 평가되기보다는 그렇게 말한 그가 어떤 사람처럼 보이는가, 그가 그런 상황에서도 남들에게 살갑게 구는가 하는 점으로 평가되곤 한다. 내 20대에는 주변에 멋진 남자들도 있었다. 스물한살 생일부터 20대 후반까지 함께한 멋진 남자친구가 있었다.
자신이 하는 사회운동에 나를 끌어들이고 그 운동과 점점 더 긴밀하게 얽혀온 내 일을 지지한 남동생도 있었다. 그리고 게이 남성들이 있었다. 그들은 내 친구였고, 내가 사는 도시에서 큰 영향력을발휘하는 문화 세력이었고, 다른 형태의 남성성이 가능함을 보여준 모델이었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보여준 사람들이었다. - P219

우리는 누구나 서로 의지하는 존재다. 우리는 누구나 취약하다. 누구나 침범당할 수 있고, 실제로 쉴 새 없이 침범당한다. 음파진동은 우리 귓속으로 들어오고, 빛은 우리 눈과 피부에 쏟아진다.
우리가 매순간 호흡해야 하는 공기도, 우리가 먹는 음식과 물도,
피부에서 뇌로 전달될 감각을 일으키는 접촉도, 우리가 들이마시는 작은 입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냄새도 우리를 침투해 들어온다.
장을 비롯하여 우리 몸 곳곳에 서식하는 수많은 종의 유익한 세균도 있다. 그런 세균이 인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마어마한 점을감안하면, 한 개인이라는 단수적 표현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복수로, 어쩌면 무리로 표현해야 옳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만약 어떤 이가 정말로 침투 불가능한 존재라면 그는 고작 몇분 만에 죽어버릴 텐데, 아닌 게 아니라 자신이 정말로 그런 존재가 될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서는 반드시 치명적인 활기 없음을찾아볼 수 있다.
- P231

퀴어 문화는 우리에게 일종의 가족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강한 우정을 안정된 기반으로 삼아서 살 수도 있다는 사실, 실제 가족도 배우자 간의 계약과 후손 생산과 혈연관계라는 관습적 역할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려주었다. 이런 사실은핵가족만이 사랑과 안정을 제공한다는 피곤한 통념에 대한 방어벽이 되어주었다. 가족은 종종 그런 것을 제공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가족은 불행과 분란을 가져오기도 한다. 가족의 이런 현실 자체가, 법이 평등혼을 보장하고 동성커플이 쉽게 입양할 수 있게된 현재로부터 오래전에, 사람들이 퀴어를 결혼에서 배제하고 혈연 가족으로부터 내친 결과이기도 했다. 나는 나이가 좀 든 뒤로 - P234

가끔 왜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느냐는 실례되는 질문을 받을 때가있었는데, 그때 당신은 남자에게도 그런 걸 묻겠느냐고 받아치거나 고약한 태도를 이유로 목 졸라 죽이거나 해야 했건만, 미처 그러지 못한 경우에는 내가 샌프란시스코 사람이라는 점을 들어 대답하곤 했다.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어떤 사랑이 삶을 떠받칠 수있는가에 대해서 덜 틀에박힌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때문이라고.
그 옛날 그 집에서 서쪽으로 죽 걸어가면 태평양에 닿을 수 있었다. 거의 정남쪽으로 걸어가면 캐스트로 극장과 그 밖의 오락 시설득, 구성원의 면면이 차츰 달라지는 친구 무리가 나를 부르던 캐스트로 지구가 나왔다. 북쪽으로 걸어가는 일은 드물었다. 차를 몰고 골든게이트교를 건너기는 했다. 자연을 만끽하기 위해서, 혹은어머니를 찾아뵙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내게 다리를 건너는 일은해방이기도 했고 두려움이기도 했다. 동쪽으로는 조금만 걸어가면 공공기관들, 요즘도 자료 조사차 이용하는 시립도서관 본관, 이스트베이로 가는 열차를 탈 수 있는 기차역이 나왔다. 1990년대가되자, 차를 몰고 베이교를 넘어서 동쪽으로 여행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미국 서부를 향해서, 그곳의 산과 사막과 그곳에서 찾아낸 새삶과 친구들을 향해서 가는 것이었다.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내게 열리고 있었다. 아니면 내가 세상에게 열리고 있었던 것일까. - P235

성장은 크는 거라고, 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마치 우리가 나무인 것처럼, 높이를 키우면 다 되는 것처럼. 하지만 성장이란 작은 조각들을 모으고 그것들이 그리는 그림을 읽어냄으로써 차츰완전해지는 과정일 때가 많다. 인간은 두개골을 이루는 여러개의판들이 아직 단단한 몸처럼 맞물리지 않은 상태로 태어나는데, 머리통이 산도를 빠져나올 때 짜부라졌다가 빠져나온 뒤에는 그 속의 뇌가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판들은 마치 깍지 낀 손가락처럼, 극지방 툰드라를 흐르는 강물의 굽이처럼 꼬불꼬불한 이음선을 그리며 만난다. - P2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