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나는 내 말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산더미처럼 모아두는 버릇이 있다. 그때 내가 택한 대처 방법도 그것이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부설 도서관에 가서, 두 남자가 문제의 시기에 나눴던 대화와 함께했던 작업에 관한 자료를 있는 대로 복사해 왔다. 그리고 그 자료를 내 편집자가 코플랜스의 변호사에게 전달했던 것 같다. 결국 책은 폐기되지 않았다. 별 반응을 얻지 못한채 조용히 있다가 절판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서평 기사는 딱 두편이 나왔고, 개중 한 기사는 선뜻 서문을 써준 시인 겸 비평가 빌벅슨Bill Berkson 을 책의 저자로 잘못 소개했다. 얄궂게도 벅슨의 서문첫머리에는 작가 미나 로이 Mina Loy의 이 시구가 인용되어 있었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겪은 고통은 흔해빠진 비극일 뿐"
- P210

없으니 그 싸움특정 기상 현상이 기후변화 때문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말하기는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기후변화가 기상의 전반적인 경향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차별도 그렇다. 어떤 특정 사건은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한 상대의 태도에서 비롯한 일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건이 누적되면 그로부터 분명또한 패턴이 드러난다. 돌아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그 시절의세상이 달랐더라면, 즉 내가 겪은 위협과 주변 여성들이 겪은 폭력이 절박한 현실이 아닌 세상이었다면, 또 내 청년기에 우상으로 떠받들렸던 작가들의 업신여김이 그리 심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겪은 저런 적대적 행동들도 그냥 재수 없는 일일 뿐 서로 무관한 시건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고. - P211

요컨대 나는 미래와 과거의 전쟁들이 현재에 겹쳐지고 있다고 주장했고, 그런데도 우리가 그 사실을 대체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전쟁, 서부, 자연, 문화, 원주민 등등을 생각하는 방식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개념들은 그즈음 이미 혁명적으로바뀌는 중이었고, 나는 그 혁명의 수혜자였다. 원주민들은 자신들이 사라진 적 없고, 권리를 포기한 적 없고, 자신들의 역사를 잊지않았고, 그 땅에는 역사가 있으며, 그 역사는 자연과 괴리되거나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문화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것은나처럼 원주민이 아닌 사람에게는 혁명적인 깨우침이었다. 상징적 소멸을, 즉 특정 집단이 특정 성별, 인종, 성적 지향의 사람들이 대중문화와 예술에서, 해당 사회나 지역에 관한 공식적 묘사에서 재현되지 않는 현상을 만회하도록 해주는 깨우침이었다. 무엇보다 그것은 이전까지 저런 개념들을 조직하는 데 널리 쓰였던자연대 문화의 선명한 이분법을 지우는 변화였다. - P213

신뢰성은 생존의 기본도구다. 책은 통상적인 편집 과정을 거쳐서 1994년 가을에 출간되었다. 책에 핵무기와 반핵 운동 이야기가 나오는데 마침 내 남동생은 반핵 운동가이자 내게 지지를 아끼지 않은 친절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내가 서부를 돌며 책을 홍보할수 있도록 계획을 짜주었다. 동생은 자기 인맥을 활용해서 내가 대학과 라디오 방송과 활동가 단체에서 이야기할 기회를 마련해주었고, 내 쉐보레 트럭으로 떠난 11,000킬로미터의 여정에도 동행해주었다. 우리는 주로 동생의 친구와 지인 집에서 묵으면서 다녔다. 댈러스에서 우리를 재워준 분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댈러스까지 어느 길로 왔느냐고 물었을 때, 내가 "시애틀을 거쳐서요"라고대답하면서 재미있어한 일도 있었다. - P215

‘우리가 목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역경에서 살아남았거나 장벽을 부순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해냈다는 사실을 근거로 역경이나 장벽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혹은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만약 무언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면 다른 곳에 더 유용하게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에너지를 그곳에 쏟아야 하고, 그래서 지치고 불안해진다. 나는 다른 어떤 경험보다도 논픽션을 쓰고 책으로 펴내는 과정을 통해서 내게 진실과 정의를 가려보는 능력과 신뢰성이있다는 점을 믿게 되었다. 그 덕분에 이제 가끔은 나 자신을, 혹은남들을 옹호하고 나설 수 있게 되었다. - P218

어떤 여자가 자신에게 혹은 다른 여자에게 나쁜 일이 벌어졌고 그 가해자가 남자라고 말하면, 말한 이에게 남성혐오자냐는 비난이 쏟아질 때가 많다. 마치 그 일이 사실이라는 점은 중요하지않고, 상황이 어떻든 여자가 쾌활한 태도를 보여야 할 의무가 중요하다는 듯이. 모든 남자가 끔찍하지는 않다는 점이 어떤 남자는 끔찍하게 굴었다는 점보다 더 중요하다는 듯이. 여자의 말은 내용의사실성으로 평가되기보다는 그렇게 말한 그가 어떤 사람처럼 보이는가, 그가 그런 상황에서도 남들에게 살갑게 구는가 하는 점으로 평가되곤 한다. 내 20대에는 주변에 멋진 남자들도 있었다. 스물한살 생일부터 20대 후반까지 함께한 멋진 남자친구가 있었다.
자신이 하는 사회운동에 나를 끌어들이고 그 운동과 점점 더 긴밀하게 얽혀온 내 일을 지지한 남동생도 있었다. 그리고 게이 남성들이 있었다. 그들은 내 친구였고, 내가 사는 도시에서 큰 영향력을발휘하는 문화 세력이었고, 다른 형태의 남성성이 가능함을 보여준 모델이었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보여준 사람들이었다. - P219

우리는 누구나 서로 의지하는 존재다. 우리는 누구나 취약하다. 누구나 침범당할 수 있고, 실제로 쉴 새 없이 침범당한다. 음파진동은 우리 귓속으로 들어오고, 빛은 우리 눈과 피부에 쏟아진다.
우리가 매순간 호흡해야 하는 공기도, 우리가 먹는 음식과 물도,
피부에서 뇌로 전달될 감각을 일으키는 접촉도, 우리가 들이마시는 작은 입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냄새도 우리를 침투해 들어온다.
장을 비롯하여 우리 몸 곳곳에 서식하는 수많은 종의 유익한 세균도 있다. 그런 세균이 인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마어마한 점을감안하면, 한 개인이라는 단수적 표현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복수로, 어쩌면 무리로 표현해야 옳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만약 어떤 이가 정말로 침투 불가능한 존재라면 그는 고작 몇분 만에 죽어버릴 텐데, 아닌 게 아니라 자신이 정말로 그런 존재가 될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서는 반드시 치명적인 활기 없음을찾아볼 수 있다.
- P231

퀴어 문화는 우리에게 일종의 가족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강한 우정을 안정된 기반으로 삼아서 살 수도 있다는 사실, 실제 가족도 배우자 간의 계약과 후손 생산과 혈연관계라는 관습적 역할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려주었다. 이런 사실은핵가족만이 사랑과 안정을 제공한다는 피곤한 통념에 대한 방어벽이 되어주었다. 가족은 종종 그런 것을 제공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가족은 불행과 분란을 가져오기도 한다. 가족의 이런 현실 자체가, 법이 평등혼을 보장하고 동성커플이 쉽게 입양할 수 있게된 현재로부터 오래전에, 사람들이 퀴어를 결혼에서 배제하고 혈연 가족으로부터 내친 결과이기도 했다. 나는 나이가 좀 든 뒤로 - P234

가끔 왜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느냐는 실례되는 질문을 받을 때가있었는데, 그때 당신은 남자에게도 그런 걸 묻겠느냐고 받아치거나 고약한 태도를 이유로 목 졸라 죽이거나 해야 했건만, 미처 그러지 못한 경우에는 내가 샌프란시스코 사람이라는 점을 들어 대답하곤 했다.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어떤 사랑이 삶을 떠받칠 수있는가에 대해서 덜 틀에박힌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때문이라고.
그 옛날 그 집에서 서쪽으로 죽 걸어가면 태평양에 닿을 수 있었다. 거의 정남쪽으로 걸어가면 캐스트로 극장과 그 밖의 오락 시설득, 구성원의 면면이 차츰 달라지는 친구 무리가 나를 부르던 캐스트로 지구가 나왔다. 북쪽으로 걸어가는 일은 드물었다. 차를 몰고 골든게이트교를 건너기는 했다. 자연을 만끽하기 위해서, 혹은어머니를 찾아뵙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내게 다리를 건너는 일은해방이기도 했고 두려움이기도 했다. 동쪽으로는 조금만 걸어가면 공공기관들, 요즘도 자료 조사차 이용하는 시립도서관 본관, 이스트베이로 가는 열차를 탈 수 있는 기차역이 나왔다. 1990년대가되자, 차를 몰고 베이교를 넘어서 동쪽으로 여행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미국 서부를 향해서, 그곳의 산과 사막과 그곳에서 찾아낸 새삶과 친구들을 향해서 가는 것이었다.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내게 열리고 있었다. 아니면 내가 세상에게 열리고 있었던 것일까. - P235

성장은 크는 거라고, 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마치 우리가 나무인 것처럼, 높이를 키우면 다 되는 것처럼. 하지만 성장이란 작은 조각들을 모으고 그것들이 그리는 그림을 읽어냄으로써 차츰완전해지는 과정일 때가 많다. 인간은 두개골을 이루는 여러개의판들이 아직 단단한 몸처럼 맞물리지 않은 상태로 태어나는데, 머리통이 산도를 빠져나올 때 짜부라졌다가 빠져나온 뒤에는 그 속의 뇌가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판들은 마치 깍지 낀 손가락처럼, 극지방 툰드라를 흐르는 강물의 굽이처럼 꼬불꼬불한 이음선을 그리며 만난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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