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친구들에게 추천하는 유일한 재즈 책이다. 이 책은 작은보석이다. 내용에 대한 근접성이 훌륭한 독주를 결정한다면 다이어의책은 그중 하나다.˝

키스 자렛(피아니스트)

그럼에도 이 경우가 연극이나 음악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모든 예술은 동시에 비평이다. 작가 혹은 작곡가가 다른 작가 혹은 작곡가의 작품을 인용하거나 재창조할 때 그 점은 가장 분명하다. 모든 문학, 음악, 미술은
"그것에 대한 설명, 가치 판단, 그들이 존재하는 전통과 맥락을 포함한다." - P272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재즈는 블루스에서 자라났다. 시작부더 재즈는 청중과 연주자가 공유하고 있는 공동체를 통해 발전했다. 1930년대 캔자스시티에서 레스터 영과 함께 호킨스의 연주를 들으러 간 찰리 파커와 같은 젊은 연주자들은 그다음 날 새벽에 벌어지는 애프터아워스 잼riouse"에서무대 주인공들과 함께 연주하는 기회를 잡았다. 마일즈 데이비스와 맥스 로치 Max Roach 도 맨 처음에는 음악을 듣는 것으로 도제 수업에 참가했다가 나중에 만든 52번가들까지 파커를 쫓아다닌 끝에 그와 함께 무대에 서게 되었다. 존 콜트레인, 허비 행콕Herbie Hancock, 재키 배클jackie - P273

McLean을 거쳐서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이끌었던 연주자들 중 다수도 매클린이 "마일즈 데이비스 대학"이라고 이름붙였던 밴드를 학교 삼아 등교했던 인물들이다.
재즈가 이러한 방식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에재즈의 기원에서 시작된 활기찬 힘은 오늘날과 관련을 맺고독특하게 남아 있다. 어떤 색소폰 주자는 가끔 다른 연주자의 악절을 인용하는데 하지만 그는 색소폰을 들 때마다, 비록부족한 기량일지라도, 자기 발 앞에 놓인 전통의 맥락 속에서자동적으로 그리고 함축적으로 논평하지 않을 수 없다. 최악의 경우 이 논평은 단순한 반복을 포함하며(끝도 없는 콜트레인 모방이 그것이다), 때때로 이전에는 단지 간단하게 언급되었던 가능성을 탐험하기도 한다. 그리고 최상의 경우에 이 논평은 형식의 가능성을 확장한다.
- P274

이상적으로 보자면 옛 노래의 새로운 버전은 실질적으로재창작이고 작곡과 즉흥 연주 사이의 가변적인 관계는 자기자신을 지속적으로 보충해 온 재즈의 능력 중 하나다. 피아노소나타 〈열정Appassionata> 작품 57에 관해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베토벤에게 처음 떠오른 것은 곡에서 등장하는 순서와는 달리 주제가 아니라, 코다coda‘에서 등장하는 중요한 변주였으며, 말하자면, 그는 변주에서 거꾸로 주제를 끌어왔다고보는 것이 합당하다."라고 썼다. 이와 매우 유사한 일들은 재즈에서 종종 벌어진다. 솔로의 과정에서 어떤 연주자는 잠깐,
그리고 거의 우연히 한 악절을 연주하는데 그것은 새로운 곡의 기초가 되며 그 새로운 곡 역시 즉흥 연주에 사용된다. 그리고 이들 즉흥 연주는 차례차례 또 다른 악절들을 낳고 그것은 발전하여 하나의 작품이 된다. 듀크 엘링턴 밴드의 연주자들은 그들이 솔로에서 연주하는 몇몇 릭lick"을 듀크가 적어 놓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곡을 만들어 자기의 이름으로 발표하는 점에 종종 불만을 나타냈다. 물론 그들은 오로지 듀크의 천재성만이 그 악절의 잠재성을 파악하고 자신이 - P275

계속 진행 중인 실연 비평의 과정 속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가닥은 재즈 연주자의 독자적 스타일의 진화에 관한 것이다. 오해의 여지가 없는 자신만의 소리와 스타일을 갖는다는것은 재즈에서 위대함의 전제 조건이다. 하지만 재즈에서 빈번하게 보는 경우처럼 여기에는 명백한 역설이 작동한다. 자기다운 소리를 내는 연주자들도 다른 누군가와 비슷한 소리를 시도하면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신인시절을 되돌아보면서디지 길레스피는 말했다. "모든 연주자는 이전에 등장한 누군가를 바탕으로 시작한다. 그러다가 결국에 연주에서 자신만의 것을,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게 된다."10 결국엔 마일즈 데이비스도 디지 같은 소리를 시도했으며 그 이후의 수많은 트럼펫 주자들-가장 최근에는 윈턴 마살리스Wynton Marsalis—이마일즈와 같은 소리를 시도한다. 심지어 연주자들은 종종 실패를 통해 자기 소리를 갖게 된다. 다시 디지의 말이다. "내가했던 전부는 로이 엘드리지처럼 연주하려는 시도였다.  - P277

앞선 언급들에도 불구하고 재즈는 밀봉된 형태로 있다. 그것을 생기 넘치는 예술 형태로 만드는 것은 재즈가 부분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역사를 흡수하는 재즈의 놀라운 능력이다.
다른 증거가 남지 않는다고 해도 미래의 컴퓨터는 재즈 카탈로 그로부터 미국 흑인의 역사 전체를 재구성할 것이다. 나는 심지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를 다룬 묘사음악으로고안된 엘링턴의 《검은색, 갈색 그리고 베이지색》과 같은 명백한 작품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아치 셰프의 <아티카 블루스Attica Blues〉, 또는 <맬컴, 맬컴 언제나 맬컴Malcolm, Malcolm,
Semper Malcolm〉, 밍거스의 〈수동적 저항자를 위한 기도문Prayer For Passive Resistance>, 혹은 맥스 로치의 《모음곡 지금 자유를Freedom Now Suite》과 같은 작품들을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의도하는 바는 "새로운 바이올린의 영혼을 담은 음색이 데카르트 시대의 위대한 혁신 중 하나에 속하는 것에는충분한 이유가 있다"1는 아도르노의 관찰처럼 보다 일반적이다. 아도르노의 주장을 정교하게 만들면서 프레드릭 제임 - P282

Fredric Jameson은 "긴 지배력을 통해서 바이올린은 개인적주체성의 출현과 밀접한 정체성을 지켜 왔다"고 언급했다.
아도르노는 17세기부터 시작되는 한 시대를 언급하고 있는데 그의 언급은 20세기, 그러니까 루이 암스트롱에서부터 마일즈 데이비스에 이르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의식에서 출연하는 트럼펫의 정체성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1940년대부터 트럼펫의 정체성은 색소폰과 경쟁했고 그것으로 인해보충되었다. 오넷 콜먼에 따르면 "흑인이 작성한, 그들의 영혼을 담은 최고의 선언문은 테너 색소폰을 통해 나왔다. "18여기서 콜먼은 주로 테너와 알토 색소폰을 구분했지만그의 주장은 테너 색소폰과 문학 또는 그림과 같은 다른 표현 수단과의 보다 큰 구분에서도 진실을 담고 있다. 이 점은중요하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역사를 흡수한 재즈는 테너색소폰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역사를 빨아들인 재즈의 능력은 이 음악이 없었다면 자신들을 표현할 매개가 부족했을 천재들의 수준을 높은 단계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 P283

페퍼에 대한 언급은 정반대 편에 있다. 왜냐하면 재즈가주로 흑인에 의해 만들어진 음악이기는 하지만, 오로지 흑인의 경험만을 표현하는 매체가 아니란 점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기 때문이다(엘링턴의 《검은색, 갈색 그리고 베이지색》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가 백인들과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이는 흑인 민족주의 운동이 부정적인 면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 백인 밴드 리더인 스탠켄턴StanKenton 은 재즈가 잠재적으로 그 시대의 고통에 찬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이 논쟁의 개념을 확장시켰다. "난 오늘날의 인류가 이전 시대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사건을 통과하고 있다고 본다.  - P284

렌턴의 말이 다소 자화자찬-자신의 음악에 대한 무언의 광고 같은 느낌이 든다면 대신에 우리는 음악과 전혀 이해관계가 없었던 한 권위 있는 인물의 말을 들을 차례다. 마틴루터킹박사Dr. Martin Luther King Jr. 의 1964년 베를린 재즈페스티벌의 개막 연설은 시민권 쟁취를 위한 흑인의 투쟁이재즈를 예술로서 인정받으려는 재즈 음악가의 투쟁과 나란히놓여 있다는 사실을 각성시키기에 충분했다. 연설에서 킹은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고통, 희망, 기쁨을 선명하게 만드는작업을 오래전 작가와 시인들이 떠맡았지만 이제는 음악이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흑인들이 살아온 경험의중심에는 오로지 재즈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더 나아가
"미국에서 흑인의 특별한 투쟁은 오늘날 모든 사람의 보편적인 투쟁과 동질적이다."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살아 있는 관계다. 어느 날 탄생한 재즈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그 사람과, 세기가 함축하고 있는 것을 대표하고있으며 단순히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조건뿐만 아니라 역사전체의 조건을 표현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 P285

롤린스, 마일즈, 재키 매클린, 콜트레인, 아트블레이키 등. 하지만 약물에 중독되어 본 적이 없는 음악인들의 명단은 중독자들의 명단보다 훨씬 덜 인상적이다. 약물 중독은 직접적으로(아트 페퍼, 재키 매클린, 엘빈 존스Elvin Jones,
프랭크 모건Frank Morgan, 소니 롤린스, 햄프턴 호스HamptonHawes, 쳇 베이커, 레드 로드니Red Rodney, 제리 멀리건 등) 혹은간접적으로 그들을 감옥으로 끌고 갔다. 정신병동으로 가는길은, 엄청난 고통으로 가는 길이지만, 활짝 열려 있었다. 멍크, 밍거스, 영, 파커, 파월, 로치 등 1940~1950년대 재즈의주도적인 인물들은 일종의 정신적 붕괴로 고통받았고 벨뷰종합병원은 약간의 과장을 더한다면 모던 재즈의 고향 버드랜드와 거의 같은 위치에 있었다.
문학도들은 셸리와 키즈 John Keats"의 이른 죽음을 일상적으로 본다. 서른 살과 스물여섯 살에 각각 세상을 떠난 그들의 삶은 낭만적 고통의 불운한 경고로 가득 차 있다. 슈베르트Franz Schubert의 삶에서 역시 우리는 낭만적 재능의 정수를본다. 심지어 그것은 꽃피우자마자 소진되어 버렸다. 이 세 명의 삶에서 우리는 때 이른 죽음은 그들 창의성의 조건이었다 - P287

처음부터 재즈의 양식 안에는 위험한 무엇인가가 내재하고 있었다는 주장이 통속극처럼 보인다면 우리는 쉽게도 재즈가 과연 그런 상처를 벗어날 수 있었을까, 잠깐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음악은 계속 앞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는 디지 길레스피의 언급은 금세기의 어느 시기에나 인용되어 왔고, 실제로 1940년대부터 재즈는 불같은 힘과 과격함으로 숲을 모조리 태우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이토록 급진적으로 발전한예술 형식이 거대한 통행료를 지불하지 않은 채 과연 흥분의절정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만약 재즈가 ‘현대인의 보편적투쟁‘과 왕성한 관련을 맺고 있다면 그것을 만든 사람들이 그투쟁의 상처를 피해 가는 것은 과연 가능했을까? - P290

재즈를 느낀다는 것은 실제 그것이 일어날 때는 너무도 미묘하지만 그냥 스윙만 하고 있는 밴드들의 상당수 재즈 카탈로그(와 많은 실황 연주)의 시들한 연주와 비교했을 때는 틀림없는 차이가 있다. 이러한 지식(혹은 느낌)은 가파르고 위태로운 쇠락의 길로 들어선 재즈 연주자가 특별히 재즈에서 위대한 연주를 만들어냈을 때 그것이 연주 기교의 범위 밖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직면하게 한다. 모든 연주자가 동의하듯이 연주 당시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하며 자기 경험에 의존하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 연주에 자신을 바쳐야 한다. 찰리 파커는 말했다. "음악은 너의 경험이고, 너의 생각이며, 너의 지헤다. 그것과 살아 보지 못했다면 그것은 결코 너의 색소폰을 통해 나올 수가 없다."25 비밥 시대의 많은 음악인들은 헤로인에 중독되었는데 오랜 중독자 찰리 파커가 끝이 없는 음악 창작 능력을 전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이든 그들의 몸속으로 그 약물을 넣기를 원했기 때문이다(레드 로드니는 대표적인 예다). 그것은 현재 운동계에 약물이 범람하고 있는 상황과 유사하다. 경쟁자들은 기록의 기준이 화학적약물의 도움 없이는 도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고 보고있기 때문이다. - P292

이 지점에서 콜트레인의 이름이 나와야 하는 것은 놀랍지않다. 앞서 이야기했던 모든 흐름은 그에게로 수렴한 음악속에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들불처럼 진화한 재즈 안에서 내재적이며 불가피했던 위험의 느낌은 콜트레인 안에서 선명하게 들린다. 1960년대 초부터 그가 죽음을 맞이한1967년까지 콜트레인은 마치 그가 자신의 음악을 앞으로 밀고 나가고 있으며 동시에 음악으로부터 모진 채찍을 맞고 있는 것 같은 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는 존재하는 형식의 규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속적인 압박을 스스로에게 가하면서 비밥 연주자로서의 자신을 끝마쳤다. 5년 동안 함께했던콜트레인, 엘빈 존스, 지미 개리슨 Jimmy Garrison, 매코이 타이너 McCoy Tyner의 클래식 쿼텟classic quartet‘은 다른 예술 형태가접근해 본 적이 거의 없는 표현의 절정으로 재즈를 끌어올렸다. 이를 이끈 사람은 콜트레인이다. 하지만 그는 전적으로리듬 섹션에 의존했으며 그들은 초 단위를 쪼개는 반응으로콜트레인의 미로와 같은 즉흥 연주를 통해 단순히 그를 단순히 따라갔던 것이 아니라 보다 큰 분투로 콜트레인을 몰아붙였다.  - P295

프리재즈가 점점 더 소음처럼 느껴지고 점점 더 음악처럼 들리지 않는 상황으로 해체되어 가자 청중은 줄어 갔고 재즈-록으로 돌아선 음악인의 숫자는 늘어 갔다. 많은 사람들이암흑기로 여겼던 1970년대 퓨전 시대 이후에 1980년대는 밥에서 유래했다고 재천명한 재즈가 감상자와 연주자들의 새로운 세대를 장악하고 있는 흥미로운 부활을 목격하고 있다.
재즈는 결코 대규모 청중을 위한 음악이 될 수 없으며 이 음악으로 개업한 음악인의 삶은 여전히 재정적으로 위태롭지만 비밥 탄생기에 수반되었고 1960년대 뉴뮤직에서 내면화되었던 위험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긴박한 위험의 느낌은 재즈 감성에 내재적이었기에 혹시 이 음악은 중요한 활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오늘날 재즈의 상황은 무엇일까? - P299

재즈가 연주되고 있는 환경도 바뀌었다. 뉴욕에 있는 클럽 가운데는 빌리지 뱅가드는 최고의 보기이며 좀 더 근자의장소로는 니팅 팩토리 Knitting Factory 를 꼽을 수 있는데, 이러한 소수의 클럽만이 오로지 음악에 헌신하면서 값비싼 덫을깔아 놓지 않고 오로지 청중과 출연자들이 분위기를 만들도록 배려하고 있다. 반면에 호화로운 치장의 서퍼 클럽supperclub 들이 점차 재즈가 연주되는 장소의 대세가 되어 가고 있다. 때때로 ‘정숙‘을 내건 클럽의 정책은 연주자들로 하여금 저녁 식사 테이블에서 들리는 너무 큰 잡담 소리와 싸우지 않도록 배려했지만 그만큼 음악도 호화로운 저녁 식사를 즐기고 있는 청중에게 상당부분 맞춰 달라는 의미였다.  - P300

비밥은 공식을 통해 연주하는 음악이 되었고 그 음악의 문법은 계승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년이 창문으로 공을 던진다"와 같은 문장처럼 간단한 것이 되었다.
1940년대에는 그 누구도 이처럼 창문으로 공을 던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사람들은 짜릿함을느꼈다. 이제는 그 행위 자체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여전히 비밥이 흥미롭다면 던진 공은 얼마나 단단하며 창문은몇 조각으로 깨져 나가는지를 보고 싶을 뿐이다. 오늘날 비밥연주자들이 최선을 다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공중에서춤을 추며 흩어지는 유리 조각과 공이 날아간 아름다운 곡선이다. 느린 곡에서 공은 우아하게 튀어 오르고 유리창은 진동할 것이다. 하지만 창문은 깨지지 않은 채 남아 있을 테다. - P302

여전히 드리워져 있는 콜트레인의 긴 그림자, 그리고 비밥의 언어 안에는 여전히 새롭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남아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이들은 오늘날 재즈 연주자들이 직면한 다음의 보다 큰 질문의 한 부분일 뿐이다.
재즈에서 새롭고 중요한 작품이란 여전히 남아 있을까?"_지난 100년 동안 재즈가 급진적인 진화를 이룩했음에도, 그러기가 무섭게 청중과 연주자들은 모두 전통 속에서 최근의흐름을 바라보고 있다. 블룸이 말한 대로 우리는 이것을 "영향력에 대한 열망"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생각지도 않 - P302

1960년대의 급진적인 재즈가 전통으로부터 단절하려는 태도로 지배되었다면 1980년대의 신고전주의는 전통을 인정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만들자마자 거의 무너지는 위험에 처했다. 재즈의 전통이란 혁신과 즉흥 연주에 있기 때문에 대담한 우상파괴를 하는 것만큼이나 전통주의 역시 혁신적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예술이란 대부분 과거에 헌신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재즈는 늘앞만을 바라봤는데 그런 점에서 가장 급진적인 작품은 동시에 종종 가장 전통적이기도 하다(다름 아닌 세기의 전환을 제시했고 그렇게 인식되었던 오넷 콜먼의 음악은 그가 포트워스에서 자라면서 들었던 블루스에 흠뻑 젖어 있다). 어느 쪽이든모든 종류의 복고주의는 죽음을 맞이한다. 음악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어야 한다는 원칙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 P303

시간을 아우르는 음악 통합과 더불어서 지정학적 음악통합이라는 동일한 경향도 공존하고 있다. 1960년대 음악인들은 명백한 아시아, 아프리카 리듬과 악기를 그들의 음악과뒤섞는 작업을 더욱 빈번하게 시도했다. 라틴과 아프리카 재즈는 현재 확고한 스타일이지만 가장 개성적이고 독창적인음악적 비옥화의 일부는 비서구 음악으로부터 최초로 영감을 끌어낸 음악인 중 하나인(파로아 샌더스의 1967년 앨범 《완전 일체 Tauhid》에서 동양적 블루스인 <재팬Japan>을 들어 보라)샌더스와 돈 체리와 같은 연주자로부터 여전히 나오고 있다.
특히 체리는 계속 진행 중인 창조적인 발전 속에서 놀랄 정도로 월드 뮤직의 비율을 담고 있다.  - P308

동시에빌에반스 또는 버드파월의 후계자이며최근의 독주 작품의 많은 부분에서 리듬과 즉흥 연주에 대한흔들리지 않는 헌신을 담으면서, 블루노트blue note‘에 대한 어떤 첨가도 없이 자신을 재즈의 전통 안에 위치시킨다. 최상의작품들에서 자렛은 그의 음악 속에 떠다니는 모든 종류의 음악들을 섭렵하되 아무런 의식적 노력이나 부담감 없이 이질적인 영향들을 결합한다. 그는 창작 과정에서 자신만의 방식을취할 때면 마음을 깨끗하게 비워 놓은 상태에서 음악이 단순히 그를 통과해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스레드길과 보위의 음악을 듣는 즐거움은 공통의 음악적 유산의 여러 측면을 가지고 얼마나 다르게 그것들을 조합하는가, 그 차이의 크기를 인식하는 것이라면, 반면에 자렛의 음악들 듣는 즐거움은 심지어 상이한 음악적 자료들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로 모인음악에서 파생되는 것이며 그 본질은 전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자렛의 천재적 즉흥성에 있다.  - P312

존 버거는 "하나의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은 모든 예술의본성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라고 썼다.4 버거가 공식화한 것이 제시하는 힘, 다시 말해 "앞서 존재했던 무수한, 인식하지 못했던 고요와 비교했을 때 발생한 순간의 모순"은 자렛이 손가락이 건반을 건드렸을 때만큼 강렬하게 느끼게 하는것은 없다. 알프레드 브렌델Alfred Brendel이 슈베르트를 연주하기 시작할 때, 그 순간의 느낌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렛이 즉흥 연주를 시작할 때만큼 강렬하지는 못하다. 왜냐하면 설사 우리가 어떤 곡을 이전에 들어 본 적이 없다고하더라도 우리는 그 곡이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재창조되고있고 그것을 목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는 스타이너가 말하는 원초의 공화국republicof the primary"이 제거된 무대에 있는 것이다. 특별하게도 창조의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는 느낌은 자렛의 음악적 과정에서는 거의 사라지지 않는다. 자렛의 음악에서 끊임없는 창조는버거가 말한 ‘순간‘을 의미하며 그것은 음악이 지속되는 매순간 속에 담겨 있다. 시간이 그의 음악을 직접 생성하고 있다는 느낌이 이토록 피부에 와 닿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 P313

자렛은 특별하며 그래서 우리는 그를 듣는 경험을 한다.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오늘날의 감상자들은 동시대의 연주자들과 비슷한 문제를 직면하고 있다. 요즘의 재즈 앨범을 플레이어에 걸어 놨을 때, 다시금 블룸을 인용하자면 "우리는가급적이면 독창적인 목소리를 듣는다. 만약 그 목소리가 그의 선배들, 동료들과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그 목소리가 말하려고 하는 바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듣기를멈춘다. "36재즈의 경우 이 점은 아마도 오늘날의 연주자들보다도 과거의 대가들에게 강하게 적용될 것이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는 이제는 『율리시스Ulysses』가 『오디세이아"보다도 먼저 나온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율리시스』를 더 먼저 보게 되므로 정확하게 같은 이치로 사람들은 마일즈를 암스트롱보다 먼저, 콜트레인을 호킨스보다 먼저 듣고 있다.  - P314

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설령 사람들은 옛 대가들의 음반을 실제로 들은 적이 없더라도 우연히 접한 거의모든 재즈곡에서 루이 암스트롱, 레스터 영, 콜먼 호킨스, 아트 테이텀, 버드 파월을 듣게 된다. 어쩌다가 버드 파월의 음악에 관심이 생긴 경우에도 그가 그렇게 특별한지를 느끼기는 어렵다. 그 역시 다른 피아니스트들과 비슷하게 들리기 때문이다(실제로 그 이유는 다른 모든 피아니스트가 버드 파월처럼 연주하기 때문이지만). 과거와 관련을 맺는 긍정적인 측면은 전통 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전진하면서 더 많은 발견의항해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강의 출구를 따라가는것 대신에 강의 근원을 추적해 가는 것이다. 더 깊이 거슬러올라갈수록 우리는 앞서간 사람들의 특별한 성질을 인식할수 있다. 고조할아버지의 사진을 보면서 그의 얼굴에서 나타나는 손자들의 근원을 인식하는 것과 비슷하다. - P315

전통이 지속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음악의 진화와 발전을통해 과거의 대가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장해 준다. 한편으로 옛 음반들은 디지털로 새롭게 마스터링되고 새로운 소리로 재포장되어 새로운 녹음처럼 보인다. 가장 새로운 사운드 - P315

의 음악 중 일부는 과거의 음악에 흠뻑 젖어 있기도 하다. 전진과 후진에 대한 생각, 과거와 현재, 옛것과 새로운 것에 대한 감각이 영구히 지속되는 오후의 황혼 속에서 서로 녹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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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와 허구, 몽상이 뒤섞인

그러나 아름다운 순간들



시정이 흐르는 제프 다이어의 글은 재즈와 그 음악을 만든 사람들을 지금, 여기로 데리고 온다. 그는 여러 일화를 통해 자신이 음악을 들었던 방식 위에 그림을 그려 나가면서 역경에 처한 재즈 음악인의 삶을 재구성한다. 호텔방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레스터 영, 자동차 운전대를 붙든 채 경찰에게 손등을
얻어맞고 있는 텔로니어스 멍크, 찌그러진 자전거를 타고뉴욕의 길거리에서 분노를 쏟아 내는 찰스 밍거스………
술과 약물, 차별, 고된 여정 속에서 오직 음악만이 그들을
추동하는 힘이다. 슬프고도 기이한 순간은 다이어의 글로써
마침내 생명을 얻고, 모두가 멈추어 있는 사진 속에서 재즈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벤은 물가로 가서 연주하는 것을 점점 더 좋아하게 되었다. 코펜하겐 시절, 클럽이 영업을 마치면 그는 항구로 걸어가하얀 태양이 회색 바다 위로 솟아오를 때까지 그곳에서 연주했다. 바다는 완벽한 청중이었다. 그의 연주를 들어 주는 완벽한 귀 모든 음을 조금 더 깊게 만들어 주고 그 음을 좀 더길게 끌도록 만들어 줬다. 대양의 아침 햇살 속에서 혹은 초저녁에 흐르는 안개 속에서 뱃사람들은 정박한 배의 난간에기댄 채, 부둣가 사람들은 하역 일손을 멈춘 채 색소폰을 통해 항구의 분위기를 달래는 그의 연주를 들었다. - P147

그의 연주는 파도처럼 강하고 평화로웠다. 마치 육지라는 물결을 따라 떠돌다가집으로 향하는 커다란 배에 지나지 않는다는 듯 외치고 있었다. 바닷물은 부두를 찰싹였고 그는 필요한 만큼 느린 박자를 유지했으며 굵은 밧줄은 긴장감을 더하며 점점 더 팽팽해지고 있었다. 연주 소리를 듣고 온 갈매기 떼는 원을 그리다가느린 박자에 맞춰 그네를 타듯 날아다녔다. 어느 날 고래 두마리는 수면 위로 모습을 보여 주기 바로 전까지 올라와 물결과도 같은 블루스의 울음소리를 듣더니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꼬리를 내보이며 물결 밑으로 사라졌다. 벤의 연주를 대양의 깊은 곳으로 옮겨간 것이다. 누군가가 벤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했을 때 벤은 다른 종족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또 다른 - P147

종족에 대한 알 수 없는 일체감을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암스테르담에서 그는 녹음으로 우거진 어두운 운하에서도 연주했다. 영국에서는 첼시 다리를 도보로 건너 템스강 둑길을 따라 걸어갔는데 다리의 불빛은 맞은편에서 걸어가는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호의 가진 표정을 전달해 주었다. 가는세로줄 무늬 양복에 우산을 쓴 비즈니스맨, 스카프를 매고 하이힐을 신은 여자들. 그는 템스강을 내려다보았다. 이제는 너무 늙어 천천히 흐르고 있는 강물, 다리들은 강물의 방향이구부러져 시야에서 사라질때까지 계속 뻗어 있었다. 그때는저녁 퇴근 시간이었고, 모두가 펍에 모이거나 이파리가 떨어저 가지 사이로 노란색 불빛이 보이는 각자의 집으로 서둘러가는 시간이었다. 저녁은 푸른 밤안개 속에서 헤엄쳤고 가로등 빛은 강물을 따라 흘러 바다로 향했다. 우습게도 이 풍경은 그의 향수를 자극했다. 하지만 그가 그리워하게 된 장소는바로 런던이었다. 잉크처럼 푸른 하늘,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불빛, 이 모든 것 밑에서 흐르는 템스강의 길고 느린 하품. 이들을 바라보기만 했음에도 그것은 하나의 추억처럼, 마치 과거에 이 풍경에 대해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던 것 같은 느낌이든다.
- P148

그는 외로움과 함께 다녔지만 일종의 위로로서 자신의 사운드도 함께 지니고 다녔다. 색소폰은 그의 집이었다. 색소폰과 모자는 착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사는 곳이었다. 포크파이 해트와 트릴비는 늘 그의 뒤통수에 젖혀져 있었지만,
그것들은 마치 스컬캡 skullcaps 처럼 늘 그 자리에 붙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이 불굴의 모자가 여전히 머리 위에 있을때 그는 기분이 좋았다. 그것은 이제 그가 가장 밀착하고 있는 물건이고 오랫동안 멀리 떠난 자에게 주는 온기이며 자신의 침대에 누워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모자와 색소폰 하나의 전통. 결코 떠날 필요가 없는 그의 집. - P156

우리는 오솔길을 따라가다가 우리의 발자국을 다시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숲의 끝으로 향했다가 그를 본 거예요. 큰 몸집의 그는 외투로 몸을 감싸고있었고 머리 위에 얹힌 포크파이 해트는 너무도 어색해 보이더군요. 난 그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어요. 하지만 그 찰나에방해하고 싶지 않은 행복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평선 너머 구름 사이로 태양이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몇몇 나무들은 검은 실루엣이 되었지만 다른 나무들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었어요. 잎을 통해 떨어지는 옛 빗방울로 젖은 고요함이 숲을 가득 채우고 있었죠. 새들은 높은 나무 위에서 날아올라 들판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고요. 벤은 그 숲의 끝에 있었어요. 산 입구 문기둥에 기대어 멀리 농가에서 피어오르는연기가 들판 위를 지나고, 구름이 천천히 언덕 위를 넘는 것을 바라보면서 말이죠. 우리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그곳에 있었어요. 마치 이런 장소에서는 처음 보는 아름다운 새 한 마리와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말이죠.
사람들은 그의 음악이 제게 어떤의미인지를 물어요. 전그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날 오후가 떠올라요. 그날은 제게그의 음악과 같았어요.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게 전부예요. - P158

미국은 그의 얼굴에 계속해서 불어닥치는 폭풍이었다. 그가말하는 미국이란 백인들의 미국이었으며 백인들의 미국이란 그가 혐오하는 미국의 모든 것을 의미했다. 바람은 보통사람들보다 그를 더욱 강하게 때렸다. 사람들은 미국을 미풍微風이라고 여겼지만 그는 그 속에서 분노의 소리를 들었다.
심지어 나뭇가지도 조용하고 미국 국기가 별무늬의 스카프처럼 건물 한쪽에 드리워져 있을 때도 그에게는 분노의 소리가 들렸다. 그는 그 분노가 자신에게 돌진해 오는 강도로 고함을 쳤으며 그 분노를 향해 돌진했다. 두 개의 거대한 힘이대륙 크기의 길 위에서 서로 충돌했다. - P161

분노는 그를 떠난 적이 없었다. 심지어 그가 조용할 때도 분노의 불씨는 한순간에 폭발할 듯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가침묵하고 있을 때도 그의 머리는 소리치고 있었다. 그조차도자신이 왜 이러는지, 왜 이런 방식을 택하는지를 몰랐지만,
다른 방식이 아니라 이렇게 해야 하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분노는 에너지의 한 형태였고 그를 쓸고 지나가는 불길의 일부였다. 그것이 바로 그의 몸이 점점 더 커지는 이유였고 그는 자기 내부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담으려고 했다 물론자신을 전부 담으려면 그는 빌딩만 한 몸을 가져야 했겠지만 그는 매 순간마다 온도가 급격하게 변하는 어떤 나라와 같았다 물론 온도가 어떻든 그것은 끓고 있었지만 끓는 추위, 끓는 더위, 끓는 비, 끓는 얼음. - P162

그의 몸에는 고유의 날씨가 있었다. 몇 달을 주기로 형태가바뀌었고 갑자기 50파운드(약 23킬로그램)가 쪘다가 다시 빠르게 몸무게가 줄었다. 가끔 뚱뚱했고 간혹 건장한 체격을갖고 있을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늘 몸이 점점 커졌고 그의몸은 오래된 스웨터 같은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그는 다이어트를 시도하고 치료약도 먹었지만 일상적으로 서너 끼의 식사를 하룻저녁에 해치웠다. 한 끼 식사는 사이드 메뉴, 추가 메뉴로 접시가 탑처럼 쌓였고 식사는 아이스크림 서너 그릇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는 아이스크림을 충분히 먹었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무슨 맛이든, 어떤 제조법이든 상관이 없었다. 그는 다이어트로 40파운드(약 18킬로그램)를 한 번에 뺐지만 그 누구도 그의 몸이 변했다는 사실을알아차리지 못했다. 마치 집 한 채만 한 도서관에서 얇은 책몇 권을 뺀 것과 같았다. 각자 고유의 사운드를 찾아야 하며그래서 각자 고유의 크기를 가져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전통은 ‘크면 클수록 좋다‘고 명했다. 몸무게는 그를 결코 느림보로 만드는 법이 없었다. 그는 뚱뚱해질수록 더욱 치열해졌고터질 만큼 꽉 찬 여행 가방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의 삶에 비해 그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그에비해 삶은 미미하고 하찮았으며 그보다 몇 사이즈 작은 재킷처럼 움직일 때마다 찢어져 버릴 듯했다. - P163

밍거스 밍거스 밍거스, 그것은 명사가 아니라 하나의 동사였다. 심지어 생각마저도 행동의 한 형식, 내면화된 운동의한 형식이었다.
그는 점차 자신의 악기가 갖고 있는 무게와 차원을 떠안았다. 그의 몸은 너무 거대해져 베이스가 마치 침낭처럼 무게를 가늠할 수 없이 어깨에 간단히 매달린 물건처럼 보였다. 그가 커질수록 베이스는 점점 더 작아졌다. 그는 베이스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가지고 놀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조각하듯이 베이스를 연주한다. 다루기 힘든 돌을 깎아서 음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밍거스는 마치 레슬링을 하듯 연주한다. 베이스를 가까이에 놓고 그 안으로 파고들어, 베이스의 목을 잡고 내장을 거둬 내듯 현을 뜯는다. 그의 손가락은 펜치처럼강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엄지와 검지로 벽돌을 쥐고서 힘을 주자 벽돌에 움푹 파인 자국이 생기는 것을 봤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누구도 소유한 적이 없는 땅에서 자란어느 아프리카 꽃의 분홍색 잎사귀에 벌이 날아와 앉듯이 부드럽게 현을 다뤘다. 그가 베이스를 활로 켜면 교회 예배에서수천 명의 사람이 들려주는 콧노래와 같은 소리가 났다.
밍거스 핑거스. - P164

사진 속의 밍거스는 앉아 있었다. 그가 의자에 앉아 있는모습은 지나친 힘에 눌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하지만 밍거스에 관한 모든 것은 과잉이었다. 그는 『뉴욕타임스The NewYork Times 를 들고 아무 데나 펼친 뒤 쭉 펼쳐 놓고는, 자신이신문을 바라보는 것이 늘 그렇듯 ‘이건 무슨 개똥 같은 소리야‘라는 눈빛으로 보고 있다. 그는 신문을 참을성 있게 읽지않았다. 마치 상대의 옷깃을 잡듯 두 손으로 신문을 움켜쥐고여기저기서 몇 줄을 골라 읽다가 앞뒤 건너뛰고, 한 부분에서잠시 멈췄다가 한 단락 천체를 훑어보고 다시 앞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그는 한 기사를 네댓 번 읽었음에도 제대로 읽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난독증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마는주름이 잔뜩 잡혀 있었고 입술은 노인이 어떤 말을 들었을 때처럼 그 단어를 발음하기 위해 입 모양을 만들려는 모습이었다. 의자는 그가 움직일 때마다 삐거덕거렸다. 신문을 보면서는 계속해서 도넛을 먹었는데 두 쪽으로 쪼갠 것을 한 손에쥐고 마치 뱀이 새를 잡아먹듯 한 조각씩 입으로 던져 넣고는씹어 삼켰다. 그러고는 커피로 입안을 가신 뒤 신문에 떨어진부스러기를 쓸어내렸다. 다 읽은 뒤에는 역겹다는 듯, 마치 더이상 읽는 것을 단 한 순간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 P165

누구도 밍거스를 참고 견딜 수 없었고 밍거스 역시 누군가에게 혹은 그 무엇에게도 참고 견디기를 거부했다. 그는 자기 방식에 무엇도 개입할 수 없다고 마음먹었다. 그 무엇도.
그렇게 진행된 그의 삶은 일종의 장애물 코스였다. 만약 그가배를 타고 있었다면 그 배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것과 같았다. 그 무렵 자신의 행동이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 깨달았을 때, 이미 그의 행동들은 기이한 방식으로 그 값을 전부 치르고 있었다. - P167

밍거스에게 모순은 존재하지 않았다. 벌어진 일 혹은 그가말한 것은 자동적으로 진실함을 부여했다. 아울러 그의 음악은 모든 구분을 폐지하기로 서약했다. 작곡된 것과 즉흥적인것, 원시적인 것과 세련된 것, 거친 것과 부드러운 것, 공격적인 것과 서정적인 것. 사전에 편곡된 것은 반사적인 즉흥성을 반드시 갖고 있어야 했다. 그는 음악의 뿌리로 돌아가서음악의 진보를 만들고 싶었다. 가장 미래 지향적인 음악은전통을 가장 깊이 파 들어간 음악이었다. 그것이 그의 음악이었다. - P167

그래서 사람들은 버드, 호크, 레스터 영을 어디서든 들을 수 있다. 에릭은그들만큼 광범위하게 들을 수는 없겠지만 어디선가 누군가는 늘 그를 부를 것이고, 그 부름이 간절하다면 에릭은 대답하고 그것이 들리도록 할 것이다.
에릭 에릭 에릭.
밍거스가 죽었을 때 우리는 그를 듣기 위해 그토록 간절히 그를 부를 필요가 없을 테다. 모두가 해야 할 일은 베이스를 집어 드는 것. 그곳에 밍거스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디아니 Johnny Dyani, 홉킨스 Fred Hopkins, 헤이든Charlie Haden의 연주 속에서 밍거스를 들었다. 그를 통해 페티퍼드OscarPettiford, 블랜턴Jimmy Blanton 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던 것처럼.
그래서 밍거스는 그의 아들에게 에릭 돌피 밍거스라는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것은 추모가 아니라 기대였다. - P186

그래서 점점 더 피아노에 의존했다. 하지만 이내 그의 손가락은 건반을 치기에도 너무 경직되어 버렸다. 연주가불가능하자 그는 작곡에 더욱 몰두했다. 그는 마일즈와 달랐다. 마일즈는 음악을 들으면 자기 머리에 있는 것을 악기로 간단하게 옮겼다. 밍거스는 음악을 완성하기까지는 그 음악이들리지 않았다. 작곡은 소리 없는, 관중 없는 연주였으며 그래서 작곡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연주를 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연주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중이었다. 밍거스의 음악은 바로 밍거스였다. 그 음악의 움직임은 단순히 그의 움직이었고 그가 움직임을 잃기 시작하자 음악도 운동량을 잃기 시작했다. 그의 음악은 거대하고 움직이지 않는, 하나의 명사가 되었다. - P191

태양이 그를 녹여 주기를, 그의 피 흐름을 막고 있는 얼음 덩어리를 풀어 주길 바라면서 그는 멕시코로 여행을 갔다. 그는 사막의 고요한 열기로 둘러싸여 태양 아래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엔 커다란 솜브레로sombrero‘의 책으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육체는 너무도 고요해 그는 자신이 숨을 쉬고있다는 것마저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무엇도 움직일 수 없었다.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 구리 심벌즈였다. 태양은 바람한 점 없고, 모래 한 알 꿈쩍하지 않는, 변하지 않는 하늘에3일 동안 같은 자리에 매달려 있었다. - P195

이것이 그가 늘 연주해 온 방식이며 그는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는 한 음을 연주할 때마다 그 음에 작별을 고했으며 때때로 그 작별 인사마저도 하지 않았다. 늘 사랑받아온, 사람들이 연주되길 바라는 오래된 노래들이 있다. 연주자들은 그 곡들을 끌어안고 새로운 느낌, 신선함을 부여한다.
하지만 쳇은 그 노래에 상실감을 안긴 채 내버려둔다. 쳇이 연주할 때 그 곡은 위안이 필요했다. 감정으로 둘러싸여 있는것은 그의 연주가 아니었다. 그 곡 자체가 상처의 느낌을 갖고있었다. 음 하나하나는 그와 함께 좀 더 머물도록 애를 쓰며그에게 애원했다. 노래 자체가 그 연주를 듣고 있는 누군가에게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제발, 제발, 제발.
- P201

그래서 그의 연주를 들으며 이 노래에 담긴 아름다움이아닌 지혜를 깨닫는다. 그 곡들을 한데 모으면 한 권의 책처럼 마음에 대한 꿈의 안내자가 된다. <안녕이라고 말할 때마다Every Time We Say Goodbye>, <당신과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믿을 수 없어요! Can‘t Believe You‘re In Love With Me〉, 〈오늘 밤 당신의 모습 The Way You Look Tonight>, <내 마음속에 왔어요 YouGo To My Head〉, 〈난 너무 사랑에 쉽게 빠져요! Fall In Love TooEasily>, <당신 같은 사람은 없을 거야There Will Never Be AnotherYou〉, 이것으로 완벽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소설을 합쳐도 남녀에 관해, 그들 사이에 떠 있는 별 같은 섬광의 순간에 대해이 노래들보다 더욱 잘 이야기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른 연주자들은 정교화하거나 변형시킬 수 있는 악절과선율을 위해 옛 노래들을 탐색한다.  - P201

자신이 아니라 가죽 코트를 입은 한 노인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거울로 가까이 다가가자 그를 향해 발을끌면서 걸어오는 그 남자의 보다 자세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굴에 그어진 나무껍질 같은 주름, 수염, 길고 가느다란 머리카락, 먼발치의 지평선을 바라보는 듯한 멍한 눈동자 그가 인도 끝으로 다가가자 노인 역시 그렇게 했다. 지나가는 차들을 가만히 쳐다보았고 이전에 유럽에서 본 나이 든여인들의 모습처럼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고난과 아픔에 있는 그 여인들도 표정은 그들을 편안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입술을 다물면 고통은 그 안에 있었고 그것이 울음으로 터져 나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왜냐하면 울음이 나왔을 때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상처받았는가를 인정해야 했고그건 참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인지 판단한 그는 노인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동시에 벌어지는 그의 움직임, 거울 속 몸짓을 지켜보았다. 지나간 일들이얼마나 중요했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했기 때문에, 그는 심지어 생각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는 매섭게 부는 바람을 향해서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 P205

노래들은 그들의 복수를 담고 있었다. 쳇은 때가 되면 계속해서 그 곡들을 버렸지만 늘 다시 그 곡으로 돌아가곤 했다.
자신이 원할 때 그는 그 곡을 골라 단 몇 마디의 속삭임만으로도 그 곡을 울게 만들었지만 이제 그 곡들은 아무런 느낌이 없었고 그의 연주를 통해 아무런 감동도 남기지 않았다.
그는 트럼펫을 들었지만 단 한 숨도 불어넣을 수 없었으며,
갈수록 가사가 있는 노래를 불렀지만 그의 목소리는 아기의머리칼처럼 성기고 연약했다. 때때로 그는 자신의 옛 노래들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려 했고 그 곡들은 그전에 느꼈던 감정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과 호흡은 곡을 얼마나쉽게 장식해 주었던가. 하지만 이제 그 곡들은 쳇에게 애처로움만을 느꼈다 - P216

고통은 그곳에 없었다. 어떻게 하다가그러한 소리가 났던 것뿐이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그는 그러한 소리를 냈던 것이다. 조금 빠르고, 조금 느리게,
하지만 늘 같은 그루브로 한 가지의 정서, 한 가지의 스타일,
한 가지의 소리. 단 한 가지 변화가 있었다면 그의 쇠락, 기교의 퇴화에서 발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운드의 퇴화도 그의 음악을 고양시켰다. 만약 그의 기교가 그에게 가해진 손상을 견뎌 냈더라면 그가 불어넣은 정서의 환영은 없을 것이기때문이다.
그의 삶에서 파기된 약속, 허비된 재능, 소모된 능력이 몰고 온 비극에 주목했던 사람들도 역시 틀리기는 마찬가지다. 그에게는 재능이 있었으며 진짜 재능은 허비되지 않고 완전히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자만이 재능을 낭비한다. 하지만 자신이 수행할 수 있는 것그 이상을 약속하는 특별한 종류의 재능도 있다. 여기에는 비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것이 쳇이 했던 방식이고 그래서 우리는 그의 언주 속에서 조용한 긴장을 듣게 된다. 약속. 그것은 늘 영원히 계속됐을 것이다. 설사 그가 그토록 많은 주삿바늘을 꽂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 P218

자신이 태어난 오클라호마 어디에든간다면, 사막에 있는 바위가 되면 어떨까 그는 상상해 봤다.
바위는 죽은 게 아니었다. 그것들은 다른 무엇인 양 행세하면서 대양의 바닥에 누워 있는 물고기의 육지 버전이다. 바위는행위로부터 사물이 되고자 열망하며 명상하는 구루guru이자불자였다. 열기의 물결은 사막이 숨을 쉬고 있다는 징표였다.
타일이 반짝이는 욕실에서 그는 거울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그 무엇도 반사되지 않았다. 그는 거울 바로 앞까지 다가가 정면을 응시했지만 자신의 모습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고 그의 뒤에 걸려 있는 두텁고 하얀 수건만 보였다. 그는 미소를 지었지만 거울은 응답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두려움 같은 것은 없었다. 그는 흡혈귀나 좀비를 떠올렸지만 생명이 없는 영역 안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거울을 응시했고 전 세계의 음반과 잡지에 실린 수백 장의 그의 사진들을 떠올렸다. 그는 거실 테이블로 가서 몇 해 전 LA에서 클랙스턴이 찍은 사진을 표지로 담은 음반을 찾아냈다.  - P220

겠다고 여러 차례 내동자유로로 들어설 즈음에 핏속으로 빠르게 도는 헤로인에 의해 그의 정맥은 밝은 빛을 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위장안에서도 빛이 나는 것 같았으며 시야는 밝아졌다. 맨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차를 몰다가 속력을 내면서 느린 차들을 앞서가기 시작했다. 몸이 타오르는 느낌이 들자 창문을 내리고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가는 뜨거운 바람을 맞자 젖어 있던 그의얼굴은 금세 말랐다. 코끝에서 무릎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을즐기면서, 달려오는 푸른 공기를 느끼면서 그는 자유로를 따라 빠르게 차를 몰았다. 타이어는 잿빛 함성을 질러 댔고 차의 흰색 천장은 춤을 추었다.  - P229

색소폰의 음색은 긴 햇살처럼 맑았으며 그림자처럼 선명했다. 그는 자동차의 배기 소리보다 더 커지도록 라디오 볼륨을 높였고 자동차 서랍을 뒤져 먼지 낀 선글라스를 꺼내어 쓰고 깊은 녹색광선을 즐겼다. 그 속에서 색소폰 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밝고 아름다운 은빛 질주를 들려줬다 마치 쾌청하면서도 더운 날, 새들이 아무런 소리도 없이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따라 그는 차를 꺾었다. 느리게 커브를 돌면서 곁눈질로 태평양을 바라보았다. 곡선 차로가 끝나자 곧게 뻗은 푸른 대양의 거대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다리는 그 위로 저물고 있는 태양을 떠받치고 있었고 파도는 마치 갈매기 떼를 덮치려는 듯 바위와 모래사장 위에서 부서지고 있었다. - P230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운동장에서 그의 음악을 듣고 있다는사실이 느껴진다. 운동장에 수감자들이 흩어져 있는 방식에서 공간의 완벽함이 엿보인다. 비록 그는 여전히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지만 그것은 마치 점점 더 장벽 안에 갇히게 되는,
움직일 공간마저 줄어드는 무엇처럼 느껴진다. 결국에 그 선율이 할 수 있는 것은 통곡하는 것, 작은 감옥 벽에 머리를 부딪고 흐느끼는 누군가가 되는 것뿐이다. - P258

뒤틀린 음들의 일진광풍이 불었지만 솔로로 나갈 것 같은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누구도 움직이지 않는다. 죄수들은있던 그 자리에, 아트의 주위에 그냥 서 있다. 그는 캔버스에쓰러졌다가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는 권투 선수처럼 보인다.
마치 부러진 이처럼 불분명한 음들을 뱉어 내더니 심판의 카운트를 사다리로 삼아 자신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다. 죄수들은 듣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의 음악이 고귀한 것은 아니지만 위엄, 자기 존중, 자부심 혹은 사랑보다 더 깊은, 영혼보다 더 깊은 무엇에 관한 것임을 알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육체의 복원이다. 지금으로부터 세월이 흐른 후 그의 육체가 계속되는 고통의 저장고가 되어 갈 때 아트는 이날의 교훈을 떠올릴 것이다. 일어설 수 있다면 연주할 수 있고, 연주할 수 있다면 아름답게 연주할 수 있다. - P258

그런데 순간적으로 그는 비틀거린다. 무엇을 연주하고 있는지 잊은 채, 카운트의 여덟, 아홉 번째 난간을 붙잡는다. 그러더니 모든 것을 불러 모아 가장 높은 음을 향해 오른다. 결국 그 음에, 아주 정확하게, 도달한다. 깨끗하게 날아오른다.
도약의 가장 높은 곳에서, 중력이 다시 작동하기 전에, 완벽한무중력의 순간, 찬란하고 명징하고 고요한 순간이 온 것이다.
그러고는 다시 떨어진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면서 블루스의 깊은 탄식 속으로 잦아들면서 수감자들은 지금까지의 연주가 내내 무엇이었는지를 깨닫는다. 추락하는 꿈. - P259

부서질 수 있는지를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 동시에 침묵은 가시적인 것이다. 시간에 포착되어 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장소에 침묵이 존재하도록, 시간이 멈추도록 하기 위해서다. 뭔가는 반드시 침묵을 깨뜨린다. 그러면 시간은 다시 흘러간다. 교도관들은 갑자기 생성된 바리케이드와 같은 순간이 쌓여 가면서 긴장이 고조되어 감을 느낀다. 바리케이드를 통과하려고 하면 폭동을 유발할지도 모른다. 침묵은 군불을 땐다. 그 시간이 길수록 열기는 높아간다.
그보다 과격한 폭력은 결국 소음으로 폭발해서 터져 나올 것이다. 침묵은 금속과 고함과 불꽃의 굉음이 된다. 소총 안전핀을 제거하는 소리만으로도 폭동을 촉발하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마치 시계 초침의첫움직임처럼 작동해 현실을 일깨우고 시간을 흐르게 한다. 침묵은 천천히 넓어져 가는 지평선,
멀리 보이는 풍경과도 같으며 교도소의 벽을 무의미하고 사소한 것으로 만든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상관없는 존재처럼되어 버린 교도소장이 사무실에서 나와 그늘 속에 조용히 서있다.
- P260

그러니까 그가 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 최소한으로 의식할 때 최고의 연주가 나온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지점에 이르자 연주는 테크닉에 대한 자연스러운 망각 상태가 되었다. 이제, 자신의 만년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는 음악에 완전히 몰두하는 단계에 이르렀고 자신에 대한 의식을 일상적으로 벗어나 거의 자동적으로 스스로를 넘어서서 연주한다. 모든 음이 블루스의 위안을 담고 있으며 심지어 단순한 악절도 마치 위대한 진혼곡처럼 듣는 이의마음을 찢어 놓는다. 이 점을 인식하자 그는 오랫동안 의아해하고, 의심하고 갈망해 온 점에 대해 확신에 가까운 것을 느낀다 인생을 조졌던 행위에도 불구하고 그의 재능은 탕진되지 않았다는 것.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유약함은 그에게 핵심적인 면이었다. 연주에서 그것은 힘의 원천이었다. - P261

모던 재즈의 역사는 이처럼 병실에서 생을·과장과 면마감하는 연주자들의 역사다. 흰색 벽과 의료진의 가운은 어둠과 음악으로 채워진 밤의 세계를 부정하는 듯하다. 심지어의사가 이야기하는 중에도 아트는 그가 말하는 내용을 잊어버린다. 일분마다 몇 초씩 잠이 드는 것 혹은 그렇게 해서 시간 속에서 몇 장면씩을 도려내는 것과도 같다. 그는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해 왔다. 그래서 마치 하루의 시간 리듬이 빨라져서 의식이 있는 몇 분과 30초 동안의 잠이 수시로 반복된다. 깜빡거림. 코카인, 헤로인, 메타톤 그리고 싸구려 와인 하루 4리터. 결국 그의 몸은 남용으로 금이 가고 그들에게 지배된다. 병과 수술은 그에게 손상과 공포를 남겼다. 비장脾臟은파열되어 들어냈고 그 후에도 폐렴, 탈장, 간 질환, 위 손상이이어졌다. 배는 부풀어 올랐다. - P262

의사는 화가 난 듯이 그를 쳐다보다가 한숨을 뱉고서는지금 자기 입장에서 더 이상 노력해 봤자 결국 쓸모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의사는 이 사람이 실질적으로 사고 정지의 가수면 상태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면담은 의사의 의자가 리놀륨 바닥 위에서 소리 없이 뒤로 미끄러지면서 끝났다. 진료기록을 뒤적이는 것은 회의장악수처럼 형식적인 행동이다. 그는 조용히 앉아 있던 부인에게 몇 가지를 설명한다. 부인은 남편이 지금이 몇 월인지를 모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라도 된다는 듯 매번 미소만을 짓고 또 지었다. 반면에 환자 자신은 다시 좀비가되어 방 안을 훑어보고 있다.
의사는 평소보다도 더욱 알아보기 힘든 글씨로 공책에몇 가지를 휘갈겨 적는다. 그 가운데는 이 환자가 녹음했다는음반 몇 장을 잊지 말고 들어 봐야 한다는 메모도 포함되어있었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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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예술의 창조자는 반신반인의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실수투성이인 인간들이다. 강박증과 손상된인격을 가진

-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Adorno


우리는 오로지 우리 자신만을 듣고 있다.

-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

오래전에 나 자신이 관습적인 비평 같은 것에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음을 알았다. 내가 떠올린 것을 일깨웠던 은유와 직유는 음악 속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점점부족함을 느꼈다. 더욱이, 가장 간단한 직유마저도 허구의 기미를 만들어 냈기 때문에 머지않아 은유는 한 편의 이야기와장면으로 확장되어 나갔다. 그럼에도 동시에 이 장면들은 하나의 곡 혹은 음악가의 특별한 성격에 대한 기록이 되기를 의도했다. 그러니 이제 당신이 읽게 될 내용은 허구인 동시에 상상적 비평이라고도 할 수 있다. - P9

유화는 브리튼 전투나 트라팔가 해전을 묘사할 때마저도 기이하게 고요함을 남긴다. 반면에 사진은 빛뿐만이 아니라 소리까지도 느끼게 한다. 좋은 사진은 보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들리는 것마저 갖고 있다. 사진은 훌륭할수록 그 안에서 소리가 들린다. 최고의 재즈 사진은 사진 속 주인공이 내는 소리로 가득 차 있다. 버드랜드 무대에 선 쳇 베이커를 찍은 캐럴 리프Carol Reiff의 사진에서 우리는 작은 무대의 프레임 안에 담긴 연주자의 소리만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나이트클럽에 깔리는 잡담 소리, 유리잔을 부딪는 소리까지 듣게 된다. 비슷하게 힌턴의 사진에서는 벤이 신문을 넘기는 소리와피 위가 다리를 꼬면서 내는 바스락거리는 옷 소리를 듣는다.
만약 우리에게 사진을 해독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우리의상상을 계속 펼치거나 사진이 실제로 들려주고 있는 소리를더 이상 들을 수 없을까? 혹은 심지어 최고의 사진이 보여 주고 있는 한순간을 넘어서, 그것이 그전부터 말해 왔거나 지금막 말하려던 점도 보거나 듣지 못하게 되는 걸까? - P14

길 양쪽 들판은 밤하늘처럼 어두웠다. 들판은 아주 평평해서만약 당신이 차고에 서 있다면 자동차 불빛이 지평선 위의별처럼 보일 것이다. 그 불빛은 한 시간가량 당신을 향해 달려오다가 빨간 미등尾을 보이며 동쪽으로 유령처럼 사라진다. 나지막이 들리는 자동차 엔진 소리를 빼면 소음은 없었다. 어둠은 너무도 한결같아서 불빛에 흔들리고 있는 뻣뻣한밀밭을 전조등이 큰 날로 획 베어 가듯 스치며 지나갈 때운전자는 비로소 자신이 길 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동차는 빛의 경로를 밝히며 길 한쪽의 어둠을 제설기처럼 밀고 나간다. 생각이 스르르 무뎌지며 눈꺼풀이 무거워짐을 느끼자 그는 자신을 깨우기 위해 억지로 눈을 깜박이고 다리한쪽을 문질렀다. 그는 일정하게 시속 50마일(시속 80킬로미정도)로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차창밖 풍경은 너무도 광활하고 변할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 차는 더 이상 움직이지않는 듯 느껴졌다. 달을 향해 조금씩 이동하고 있는 우주선처럼・・・・・・  - P19

- 어디 가서 곧 아침 드실 수 있도록 차 세울게요.
- 곧?
- 한 200마일쯤 가서요.
듀크는 웃었다. 그들은 시간을 시간 단위가 아니라 마일로 셌는데, 오줌 한 번 누고 다음에 커피 한 잔을 마시려고 차를 세울 때까지 종종 지나가게 되는 100마일(약 160킬로미터)을 큰 단위의 거리로 삼고 있었다. 200마일이면 첫 배고픔이밀려오고 뭘 먹으려고 다음에 정차할 때까지의 거리였다. 심지어 50 마일쯤에 한 장소를 만나더라도 그들은 그냥 지나쳐서 달렸다. 정차는 너무도 바라는 일이었지만 멈춰 봤자 원하는 만큼 될 리 없었다. 결국 원하는 대로 차를 멈추는 건 한없이 연기되었다.
- 도착하면 깨워 줘.
좌석 끝과 문틈에 그의 모자를 베개 삼아 구겨 넣으면서듀크가 말했다. - P22

어디에서인가부터 들려오는 긴장 때문이었다. 그가 색소폰을 한쪽으로 기울여 솔로로 깊게 빠질 때면, 색소폰이 수직으로부터 점점 더 기울어져 나중에는 마치 플루트처럼 수평으로 들렸다. 사람들은 그가 악기를 들고 있다는 인상을 전혀 받지 않았다. 오히려 악기가 점점 더 가벼워져 그로부터 떠다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그러기를 바랐던 것처럼 그는 악기를 잡아 내리려고 하지않았다. - P26

재즈란 한 사람의 독자적인 소리를 만드는 일에 관련한다. 누군가와 다른 길을 발견하고 그다음 날 밤에는 결코 전날 밤과 똑같이 연주하지 않는 것이 재즈다. 반면 군대란 모든사람을 동일하게, 구분할 수 없게, 유사한 모습으로, 비슷한생각으로, 모든 것은 그날과 그다음 날에도 같게 남게 하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게 만들기를 원한다. 모든 것은 올바른 각도와 날 선 모습으로 있어야 한다. 레스터의 침대 시트는 그의사물함의 금속 앵글처럼 단단히 접혀 있었다. 그들은 병사들의 머리를 나무 블록을 자르듯이 깎아 완전한 사각형을 만들려고 했다. 심지어 군복은 신체를 개조해 사각형 인간을 만들려는 듯 디자인되었다. 곡선과 부드러움이란 없었고 색깔과고요함도 없었다. 2주라는 시간 속에서 한 사람이 완전히 다른 세계에 온 자신을 갑자기 발견하는 것은 믿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 P29

하지만 강력한 당신, 바로 군대는 그들을 꺾어 버린다. 그러나 약함, 그것은 군대가 마주할 때 무력해지는 존재다. 왜냐면 그것은 힘에 의존한 대립의 개념에서 멀리 떨어져있기 때문이다. 나약함을 상대로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상대에게 고통이 될 뿐이다. 그리고 영은 그 고통에 휩싸여있었다. - P35

그는 이야기했고 드문드문 사람들이 앉아 있는 작은 법정은 그를 주목하고 있었다. 뻣뻣한 자세의 청중이었지만 그들은 그의 모든 말에 귀를기울였다. 마치 솔로연주처럼 그것은 한 편의 이야기여야 했고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노래여야 했다. 그가 말하는 것에 사람들이 집중하기가 어려울 때면 그의 말은 더욱 느려지고 조용해지고 뜸을 들이다가 문장 중간에서 멈춰 섰다. 그의목소리가 부르는 노래는 사람들을 매혹하고 설득했다. 갑자기 청중의 집중은 유리잔이 맞부딪히는 소리, 얼음통에서 달그락거리며 얼음을 퍼내는 소리,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사이로 이야기 소리가 들릴 것처럼 영에게 익숙하게 느껴졌다. - P49

죽음은 더 이상 변방에 있지 않았다. 그가 종종 침대에서창가로 걸어오는 구간에서, 그가 지금 어느 쪽에 있는지 알지못하는 그 순간에도 떠다니고 있는 무엇이었다. 가끔 자신이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자기를 꼬집는 사람처럼영은 자신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기 위해 맥박을 느끼려고 했다. 보통 그는 자신의 맥박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손목에서도, 가슴에서도, 목에서도. 더 귀를 기울일 때면 먼 곳에서 열리고 있는 장례식의 낮은 북소리 혹은 지하에 묻힌 누군가가눅눅한 땅바닥을 두드리는 것 같은 둔중하고 느린 고동 소리가 들렸다. - P54

밴드 멤버 중에 누군가가 솔로를 연주할 때면 그는 일어나서춤을 추었다. 조용하게 발장단을 맞추고 손가락을 튕기다가무릎과 팔꿈치를 들어 올려 돌리고, 머리를 흔들고, 팔을 편채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늘 금세 넘어질 것처럼 보였다.
그는 한 지점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일부러 어지러움을 느끼면서 휘청거리며 피아노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그가 춤을 출때면 웃었는데 그것은 센 술을 처음 맛본 곰처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그에게 가장 적절한 반응이었다. 그는 재미있는 사람이었고 그의 음악도 재미있었으며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뱉는 말은 대부분 농담이었다. 그의 춤은일종의 지휘였으며 음악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는 방식이었다. 그는 곡의 내부로 들어가야 했다. 그 음악은 자신의 일부였으며 그것을 내면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목재를 드릴로 파고드는 것처럼 그는 자신의 음악으로 작업해 들어갔다.  - P69

멍크의 음악을 정확히 듣기 위해서는 그를 봐야 한다. 그의밴드에서 가장 중요한 악기는 편성이 어떻든 간에 그의 몸이다. 실제로 그는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았다. 그의 몸이 악기였으며 피아노는 그가 원하는 비율과 양으로 그의 몸이 뿜어내는 소리의 수단일 뿐이다. 몸만 빼놓고 모든 것을지운다고 해도 우리는 그가 드럼을 연주하는 것을 상상할 수있다. 그의 발은 하이해트hi-hat‘를 계속 움직이고 있으며 양팔은 서로 엇갈리며 움직인다. 그는 육체의 음악의 모든 여백을 채워 넣고 있다. 그를 보지 않으면 그 여백은 빈 공간처럼들리지만 그를 보고 있으면 심지어 피아노 독주도 사중주처럼 꽉 찬 소리를 얻는다. 눈은 귀가 놓친 것을 듣는다. - P70

재즈에는 마음대로 연주하는 것이라는 환상이 존재하고, 멍크는 마치 이전에 피아노를 본 적도 없는 사람처럼 연주했다. 발꿈치를 이용해 모든 각도에서 건반을 내려치고 마치카드 한 묶음을 다루듯이 건반을 훑어버리거나, 만지기에는건반이 너무 뜨겁다는 듯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그의 손은 하이힐을 신은 여성처럼 건반 위를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클래식 피아노의 방식으로 보자면 이는 잘못된 연주다. 모든 것은 예상과는 달리 구부러지고 비스듬한 모양이었다. 그가 만약 베토벤을 연주했다면 악보를 정확하게 지키면서도건반을 치는 방식, 손가락이 건반에 닿는 각도를 불안정하게함으로써 그 곡이 스윙하게 만들고 곡의 내부를 뒤집어 멍크 - P71

연주할 수 없는 많은 종류의 곡이 있다는 점에서 기술적으로멍크는 제한된 연주자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것을 연주할 수 있었으며 기교가 그에게 제약이 되지는 않았다. 확실히 그 누구도 멍크의 작품을 그가 연주하듯이 치지못했으며 (피아노를 정석으로 연주하면 표현할 수 없는 미세한온갖 것들이 그의 작품에 존재한다), 그만큼 그는 누구보다도기교적이었다. 공평한 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지만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전혀 생각할 줄 몰랐으니까.
그는 마치 방금 전에 친 음에 놀랐다는 듯이 모든 음을연주했다. 마치 건반 위의 손가락에서 나오는 모든 음은 오류를 수정하는 것 같았고, 그 타건 역시 차례대로 수정되어야할 오류가 되어 곡은 결코 의도했던 방식으로 끝나지 않을 듯보였다.  - P72

그의 손가락은 늘 자기자신에게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하나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었고 그것은 멍크의 독특한 논리였다. 다시말해 누군가가 거의 예상하지 못했던 음을 연주하면 그 곡은처음 예상과는 뒤바뀐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곡의 핵심에서아름다운 멜로디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뒤집혀 잘못 짚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의 음악을 듣는 일은 꼼지락거리는 누군가를 지켜보는 것과 같았으며, 그가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꼈다. - P73

멍크의 음악이 늘 스스로 무너질 듯 들리는 것처럼, 한순간에 무너질 것같이 보이는 다리의 모습은 흥분을 안겨 준다.
그의 음악을 그저 기발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기발하다는 말로는 차이를 설명할 수 없다. 기발하다는 것은 낮은 판돈이다. 하지만 멍크는 높은 판돈을 건다. 그의 음악은 위험을 감수했으며 기발하다는 것에는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색다른 점을 느낄 때 기발하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멍크의 음악보다 기발한 것은 보기드물다. 멍크는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이든 자기 요구와 논리로 만들어 놓은 원칙의 수준에 올려놓았다. - P74

사물들 사이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했던 날들도 있었다.
그때 하루를 지내는 문법과 사건들을 이어 주는 구문론은 몸땅 무너져 있었다. 단어와 행동 사이의 관계를 잊어버려 문을통해 들어가는 일 같은 간단한 것조차도 알지 못해 아파트의방들은 미로가 되었다. 그는 사물을 사용하는 방법을 기억하지 못해, 사물과 그 기능이 자동적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방에 들어갈 때는 문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란 듯 보였다.  - P78

마지못해 아파트로 돌아오면서 그는 넓게 트인 강물의 줄기 너머로 해가 지는 것을 보기 위해 허드슨강을 따라 걸었다. 허기진 바람이 담배 연기를 냉큼 집어삼켰다. 멍크는 델리를, 또한 그녀를 위해 쓰고 있으며 누구도 손댈 수 없는 개인적인 피아노 작품을 떠올렸다. 쓰기 시작하면 그 곡은 곧 마무리 될 것이다 그는 아무런 즉흥 연주도 없이 무반주로, 쓴그대로 이 곡을 연주하고 싶었다. 그는 빌리가 변하는 것을원치 않았고 그녀를 위한 이 곡도 바뀌지 않기를 원했다. 강건너편을 바라보자 황갈색 석양이 튜브에서 짜낸 물감처럼강과 하늘이 맞닿은 선을 타고 번지고 있었다. 몇 분 동안 하늘은 빛이 사라질때까지 어두운 노란빛으로 물들었다.  - P84

왜냐하면 지금 사람들은 스스로가 참을 만한 절망이 반복되는일상의 일부분, 일상 속에 녹아든 모든 시간의 압축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후회할 수도 있고 동시에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을 수도 있는 시간 그때 모든 남자가 오직 바라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설사 지구 반대편에 있을지라도 자신을 떠올리는 누군가의 존재입니다. 한 여인이 눅눅하게 젖어 내려가는 도시를 느끼면서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라디오의 음악을 들을 때 그녀는 노란빛으로 물든 창문 너머에 존재하는 삶들을 바라보며 상상합니다. 싱크대 앞에 선 한남자를, 텔레비전 앞에 모인 한 가족을, 커튼을 치는 연인을,
라디오에서 나오는 같은 곡을 들으며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 누군가를 말이죠. - P98

그가 느끼고, 만지고 본 모든 것에 관해 오케스트라로 쓴 일대기였다. 그는 소리의 작가였으며 그가 작업 중-인 것은 거대한 음악적 소설이었다. 그것은 늘 보태져야 할것이 있으면서 궁극적으로는 그 자체에 관한, 그 곡을 연주하고 있는 밴드의 동료들에 관한 것이었다…………비는 잠시 잦아들다가 곧이어 전보다도 더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자동차 앞창으로 내다보는 것은 폭포수를 통해바깥을 보는 것과 같았다. 바람은 광인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해리는 운전대를 꽉 잡으면서듀크쪽을 슬쩍 쳐다보았다. 이태풍이 그의 작품 안으로 들어오는 데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궁금해하면서. - P101

사진이란 시간의 최면에 빠진 이미지야. 그 이미지가 최면에서 깨어나 되살아나길 기다린다는 것은 자네와 방에 앉아서 자네가 최면에서 깨어나 움직이고 말하기를 기다리는것과 같지. 마치 자네가 있는 곳에서 여기저기에 알아보고 자네와 함께 그곳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드네.
버드, 버드……? 내 말 그리고 자네 말 모두를 내가 하길원한다면 내가 그렇게 하지. 아마도 듣고만 있는 자네를 보면서 난 뭔가를 알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어쩌면 자네 삶의 고통과 <망각Oblivion>, <통곡Wail>, <환각Hallucination>, <약간 미친Un Poco Loco>과 같은 곡의 활기찬 음악적 낙관주의가 어떻게 조화할 수 있었는지를 깨달을 수도 있겠지. 난 자네가 연주한 모든 곡이 자네 삶에 관한 고통스러운 소설로부터 뜯어낸 한 페이지였으면 해. 난 <유리 장벽>이 우울 속에서 걷다Walking in the Blue」의 자네 판본이었으면 하거든. 물론 이 곡은피아노 소품 형태로 얼어붙은 교향곡처럼 들리지만 말이야. - P106

파리에서 자네는 반쯤 빈 클럽에서 연주했고 때로는 딴 데가 있는 사람처럼 연주했어. 심지어 연주할 때 자네는 등을다쳐서 이전과는 같은 반사 신경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된 운동선수처럼 행동했지. 늘 손가락을 건반에 닿게 하려고 애써야 하는 상황을 의식하면서 말이야. 너무 많은 집중은 기교에는 도움을 주지만 재즈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위해서 남겨놔야 하는 것에는 적절하지 않은 줄을 알면서도 말이야. - P123

당신이 그에게 감사를 표하고, 완벽하게 진심 어린 순간을 느끼며 마음이 자랑스러움으로 가득할때, 그와 악수를 나누며 그를 쳐다봤을 때 그의 두 눈에도 눈물이 솟구쳐 양쪽 볼에는 달팽이가 지나간 듯한 눈물 자국이남아 있었다는 점이다. 열차가 서서히 출발할 때 당신은 그에게 다시 손을 흔들면서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는 그를 보았을 것이다. 때론냅킨, 손수건, 테이블 덮개 역할을 하는 양복 한 벌을 입고서 손을 흔들어 답례하고 있는 거구의 술 취한 남자를. - P138

그는 외로움을 마치 악기 케이스처럼 짊어지고 다녔다. 외로움은 결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공연이 끝나고 팬들과의 대화도 끝나면 우연히 그 곁을 지나던 사람들이 그의 친구가 되어 주었고, 바에 앉아 모두가 떠난 시간까지 홀로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 열쇠를 찾고, 조용한 자물쇠 구멍 주변을 헤매며 긁다가, 결국 문을 열고 그가 떠나던 때와 똑같은상태로 머물러 있는 아파트로 들어가 소파 위에 색소폰 케이스를 던져 놓았다. 이 모든 일이 끝나면, 이미 늦은 시간이지만, 그는 계속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고, 누군가가 커피를끓일 때의 달그락거리는 소리, 음료를 만들 때 거품이 일어나는 소리를 듣고 싶은 순간을 늘 만났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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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솔아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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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작가의 소설을 다 읽을 수 없기에 ‘젊은 작가상 작품집‘은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고 매년 읽게 된다. 새롭게 만나거나 다시 되돌아보는 작가들의 고군분투와 치열함을 응원하고 싶고, 축복하고 싶어진다. 한 편 한 편으로 소설의 세계가 확장 되어가는 것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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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두 시. 내 앞의 길은 텅 비어 있었고, 하늘은 검지만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 작은 아기가 자신을 창조하고 안식처가 되어주었으며 이제부터는 자신을 더 넓은 세상으로 안내해줄 몸에서 고픈 배를 채우려 젖을 빠는 모습을 떠올렸고,
아기를 위한 기도를 읊조렸고, 변화를 위해 기도했다. 나는 우주에게 속삭였다. 이 아기가 가득 채워지게 해달라고.

[욕구들] 마지막 페이지

내 어머니가 이런 말을 들었다면 기겁했을 테지만,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나는 어머니가 나를 사랑했다는 걸 알고 있고, 돌아가시기 전 몇 년 동안은심지어 어머니가 나를 좋아하고 기특해하고 가깝게 느끼는 것같다는 느낌까지 받았지만, 생애의 많은 부분을 나는 우리 사이에 몇 가지 배선이 초기부터 어긋났고 중추적 접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거나 유지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지닌 채 살아왔다. 어머니와 나의 언니 오빠 사이에는 더 자연스럽고 편안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고, 나는 체질적으로도 기질적으로도 아버지와 더 비슷했고 어떤 식으로든 아버지와 더 잘 맞았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내가 매우 결정적인 측면에서 어머니의 원에 속하지 못한다고 느끼고, 나에 대한 어머니의 애착이얼마나 확실한지 혹은 안정적인지 결코 확신하지 못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나와 어머니의 대화에는 언니와 어머니의 대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껄끄러움이 있었고, 우리 둘 사이에는 서로 진정으로 잘 맞는다고 느끼지 못했던 듯 약간이지만 조심스러워하는 면이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수년간 나는 어머니와함께 있을 때면 내향적이고 화가 나 있고 어두운, 마치 질풍노도를 겪는 청소년처럼 느껴졌다.  - P328

분노는 식별하기가 쉽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이를 악물게되고 피가 뜨거워진다. 화를 내고 침을 뱉고 싶어진다. 나는여러 해 동안 어머니가 나를 화나게 만든다는 것을, 그리고 그근원이 뭔지는 몰라도 우리 사이의 거리가 나를 초조하고 안절부절못하게 만들고 씁쓸한 분노로 가득 채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이해하게 된것, 혹은 다가가게 된 것이 있다. 프로비던스에서 만난 그 8월오후 같은 날들을 돌이켜보기 전까지는 제대로 들춰본 적도없었던 그것은 그 분노 아래 깊이 흐르고 있던 슬픔이었고, 너무나 격렬해서 평범한 단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도 없는 연결에 대한 갈망이었다. 목소리로 표현했다면 그것은 울부짖음으로, 더없이 길고 더없이 외로운 곡소리로 나왔을 것이다. - P329

유년기의 그 상실들은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 것이었을까?
그 허기는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 것이었을까? 그 상실과 허기에는 혼란이 거부가, 혹은 상처가 얼마나 섞여 있었을까?
그리고 그 후 자아의 고갱이는 얼마나 결핍되고, 얼마나 권리를 박탈당하고, 얼마나 슬픔과 자기혐오로 가득한 상태가 되었을까? 본질적으로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정도에 관한 답이며, 또한 강박적으로 훔치는 이와 자기를 베는 이와 억지로 토하는 이, 그리고 그보다 덜 극단적인 방식이지만 역시나 자신에게 잔인한 행동을 하는 이들의 차이 역시 정도의 차이다. - P334

재닛과 캐슬린은 표현 수단은 다르지만 표현하는 감정은 동일하다. 그것은 감정들이 자신을 너무 가득 채우고 있다는 느낌, 너무 배가 고프고 너무 절실히필요하고 자신의 몸에 비해 그 감정이 너무 크다는 느낌, 그러므로 그 느낌들을 방출해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애초에 그런느낌을 가진 것에 대해 자신을 벌하려는 강박이다.
이 모든 행동에는 말할 것도 없이 분노가 있다. 당신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것을 주지 않은 어머니에 대한 분노, 너무나많은 필요를 느끼게 했으면서 그 필요를 채워주지 않은 어머니에 대한 분노, 그리고 무엇이었든 필요를 느꼈던 자신에 대한 분노. 그러나 그 분노 아래에는 가장 강력한 슬픔도 자리하고 있다. 사랑받지 못했다고, 자신은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라고 느끼는 아이의 슬픔,  - P335

알리는 것. 물론 이것이 굶기의 목표이며, 너무나 조심스레감춰져 있어서 자기 자신조차 모를 수 있는 숨겨진 의제다. 자해하는 이는 자기 존재의 중심에 있는 고통을 눈에 보이게 만들기 위해 칼로 긋는다. 거식증 환자는 자신의 허기와 취약성을 분명히 보이게 만들기 위해 굶는다. 극단적인 이들은 이렇게 선언한다. 이게 나라는 사람이고, 이게 내가 느끼는 것이고,
이게 내가 필요한 걸 얻지 못할 때 일어나는 일이라고. 그들은가장 핵심적인 인간의 갈망에, 그러니까 인정받고 알려지고자하는 욕망에, 당신이 어떤 사람이라서 또한 당신이 어떤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에 서라운드 입체음향으로 목소리를 부여한다. 또한 그 갈망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뿌리를 내리는 슬픔에도. - P338

다른 사람들이 믿음직하게 그 필요를 충족해주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허기는 참을 수 있는 것이 되고 분노와 막막함은 견디기 쉬워질 것이다. 한마디로 당신은 안전하다고, 당신이 알려져 있다고, 혹은 최소한 알려질 수 있다고 느낀다. 반대로 만약 그런초기의 조율과 안심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러한 안전함과 인정의 감각을 내면화하지 못했다면, 허기는 더욱 까다로운 문제가 되고, 분노와 막막함은 표면에 더 가까운 곳으로 옮겨가고, 슬픔의 바다는 더 넓고 깊어진다. - P339

무언극이 시작되는 시점은 허기가 우리를 압도할 때, 허기가 언어의 체계화 역량을 초과할 때다. 언어가 제 역할을 하지못할 때 우리는 다시 몸에 의지하게 되고, 우리가 느끼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을 말하려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는 몸의 행동과 강박과 충동을 허락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여자는 손으로 초코바 하나를 감싸 쥔다. 자기 팔의 여린 피부에서 피를 뽑아낸다. 목구멍에 손가락을 쑤셔 넣는다. 상징으로재편성된 사물과 신체 부위와 음식의 세계들이 세계들이우리 문화에서 여자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할당된 세계들이라는 건 우연이 아니다 속에는 여성의 슬픔의 언어 전체가 감춰져 있다. 이 언어가 평범한 언어를 대신하고, 평범한 언어에대한 절망을 드러낸다.  - P339

철학자 헤겔은 욕망을 결여, 부재로 상정했다. 라캉 역시 이관념을 한층 더 전개하여, 욕망을 이전에 유쾌한 것 혹은 만족스러운 것으로 경험했으나 이후 상실하고 만 무엇에 대한 갈망으로 묘사했다. 두 사람 다 불완전함, 빠져 있는 무엇, 초기에 발생하고 이후 결코 회복되지 않은 어떤 분리에 대한 근본적인 의식이 욕망의 본질적 부분이라 믿었다. 그 ‘무엇‘이 묻혀버린 기억이든, 아니면 한때 경험했으나 이제는 놓쳐버린 사랑이든 인정이든 안전함이든, 아니면 그런 경험에 대한 결코 충족된 적 없는 소망이든 간에 그것은 우리를 계속 쫓아다니며괴롭히고, 우리 정신의 소맷자락을 잡아당기고, 영원히 순환하는 허기의 회로를 만든다.  - P340

하지만 균형 감각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어쩌면 여자들에게는 유난히 더 어려운 일일 수 있다. 페미니스트 저메인 그리어는 1999년에 완전한 여성』을 출간한 뒤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의 프로그램 <더 커넥션>과 한 인터뷰에서자신이 점점 더 자주 목격하게 된 어떤 광경을 묘사했다. 그것은 울고 있는 여자들의 모습이었다.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며 서 있는 여자의 얼굴을 타고 주룩주룩 흘러내리던 눈물,
화장실에서 나오던 어떤 여자의 울어서 빨갛게 된 눈, 영화관에서 클리넥스 티슈를 한 움큼 쥐고서 털썩 자리에 주저앉던여자 우는 것은 언제나 사적인 일이며, 실컷 우는 것은 남몰래 하는 일이지만, 그리어는 우는 행위의 배후에 있는 슬픔이개인적 현상일 뿐 아니라 문화적 현상이라고 보았고, 그것은수십 년에 걸친 사회변화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여전히 여자 - P341

지난 몇 년 동안 사람들이 나에게 무슨 작업을 하고 있느냐고물을 때면 나는 매우 축약적이고 반어적인 답변을 내밀었다.
"아, 여자들과 식욕에 관한 책이에요. 알잖아요. 뭐, 불안, 죄책감, 자기혐오, 소외, 슬픔, 그런 얘기요." 이 대답은 효과가 있었다. 적어도 사람들을 질리게 하고, 이어질 질문을 단칼에 잘라버리는 것 같았다는 점에서는 (나는 프로젝트 진행 중에 내 작업에 관해 말하는 걸 아주 싫어한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지나자 그런 대답을 반복하는 일에 진저리가 났다. 무엇보다저 말이 내가 실제로 느끼는 감정보다 훨씬 더 어둡고 냉소적으로 들리기 때문이었다. 욕구-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만족시키는 일 - 때문에 많은 여자들이 엄청나게 고군분투하며, - P347

욕구가 고통스러운 감정의 조류를 헤쳐나가야 하는 장거리 수영인 것은 맞지만, 만약 내가 정반대 방향으로 흐르는 다른 조류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다면, 즉 어느 정도 희망을 느끼지 못했다면 이 주제를 다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기에 내가 욕구라는 주제에 관해 보인 그 모든 어두운아이러니와, 한 여자가 만족을 향해 묵묵히 무거운 걸음을 옮기는 동안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걸림돌에 관한 나의 그 모든확신에도 불구하고, 내 책상 위에는 작은 희망의 토템들도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종잇조각, 인터뷰 원고, 자료 폴더, 컴퓨터 파일 들이, 고통의 조류를 거슬러 헤엄쳐 마침내 반대편 해안에 도착한 여자들이 들려준 이야기들과 그들이 해안 기슭에지은 새로운 욕망의 제단들이. - P348

또한 힘겹게 이뤄낸 변화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희망에 이르는 과정이 갑작스럽거나 극적인 경우는 매우 드물며, 자아의 - 새로워지고 향상되고 마침내 충만되는 수리가 우리가원하는 만큼, 혹은 소비주의 문화가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암시하는 만큼 깔끔하게 성취되거나 온전하게 실현되는 일은 결코 없다. 희망은 의지와 끈기와 믿음에 관한 것이고, 대개 감지하기도 어려울 만큼 너무나 점진적인 개인적 변화와 사회적 변화에 관한 것이며, 사람이 일상적으로 치러내야 하는 고군분투, 그 진부하고 혹독한 영광에 관한 것이다.  - P349

흑백논리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는 식욕 관련 강박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배워야 하는 방법이다. 초점을내면으로 (혹은 당신의 선택에 따라 천국 쪽으로) 돌리고, 자아를고요하게 만들고, 허기에 단순히 반응하기보다 허기의 진짜근원을 파악하는 법을 배울 것. 그과정에서 더 영양가 높은것으로, 그러니까 관계는 아름다움이는 신이든, 당신이 채움을어떻게 정의하든, 무엇이든 당신을 채워주는 것으로 그 공허의 일부를 채우는 법을 배우라는 것이다. - P352

우리가 원하는 것, 중요함이라고 표시된 선반에 들어 있는것은 물론 연결이고 사랑이다. 인간 허기의 가장 깊은 근원에이름이 있다면 바로 그것일 것이다. 너무나 많은 여자들이 들어가 살고 있는 억제의 상자들을 조각조각 박살 낼 수 있는도구는, 공허함을 산산조각 내고 그 밑에 묻혀 있는 희망을 드러낼 수 있는 커다란 망치는 바로 그것일 것이다. 사랑-사랑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안고 안기고자 하는 사랑받아야 하는입장에서 당신이 한 경험이 훼손되었거나 불완전했더라도 사랑을 주고자 하는 욕망은 모든 허기에 항상 붙어 있는 상수이며, 거식증 환자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다이어트하는 사람들을 잇는 연결고리이고, 음식을, 섹스를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노력 뒤에 자리한 필요와 간절함의 끊임없는 박동이다. 우리는 이 광막한 느낌을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묻혀 있던 갈망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피할 수 없는 인간 조건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며, 일종의 영적 갈망의 한 형태로 볼수도 있고,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결국 이해는 이해에 그칠 뿐이다.  - P357

그때의 나는 모든 집착에 따라붙는 전형적인 착각, 즉 욕망의 대상을 문제가 아닌 해결책으로 여기는 착각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체중과 먹는 일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면 나머지는 따라서 해결될 것이며 평화로운 상태를 찾게 될 것이고 엄밀히 말해 내가 음식을 먹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먹어도되는 자유는 느끼게 될 거라는 착각. 그리고 그다음에는... 내게 딱 맞는 남자가 나를 사랑하게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평화를 찾게 될 거라는 착각. 내가 세련되고 성숙하고 침착하게 보일 수 있다면, 그러면 나는 세련되고 성숙하고 침착한 사람이 될 거라는 착각. 내 인생을 정상적으로 여겨지는 형태와 형식에 끼워 맞출 수 있다면, 그러면 나도 정상적으로 느껴질 것이고 문제들은 해결될 거라는 착각. 이런 착각의 잡탕에다음주까지 더하니 명료한 정신과 변화의 가능성은 모두최소한도로 줄어들었고, 내가 얻은 건 망상의 회전목마, 끝없이 맴도는 서글픈 악순환의 세월이었다. - P361

작은 걸음마들은 아무리 자신 없어 망설이는 것처럼 보이고요점을 벗어난 것처럼 보여도, 변화로는 아니라도 최소한 정보로는 이끌어준다. 걸음마를 내딛는 것은 고통스럽다. 멀쩡한한 끼를 다 먹으면 당신이 얼룩처럼, 암소처럼 무가치하고 역겹게 느껴지지만, 동시에 당신에게는 들여다볼 무언가가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검토해야 할 감정들이 남겨진다. 헤어진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지 않는다. 그러면 집에 혼자 앉아 갈망과 공포로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지만, 그래도 당신이 그 불편한 감정을 참아낼 수 있다는 것, 그 또한 지나간다는 것을배우게 된다. - P363

내 생각에 열쇠는 통찰보다는 기꺼이 해보겠다는 마음과 더깊은 관계가 있고, 통찰은 기꺼이 하려는 마음에 비해 상대적으로 쓸모가 없다. 내 식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었다면 나는 아흔 살이 되어서도 상담치료를 받고 있었을 것이고, 그때까지도 가족과 과거에 관해 한탄조로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을 것이다. 만족시켜야 할 필요와 인정받아야 할 저 필요, 이 작은 상처와 저작은 실망, 누구, 무엇, 어디, 언제, 왜, 왜 나야.
기꺼이 할 마음-기꺼이 실험하고,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기꺼이 끌을 집어 들고 바위와 저항을 쪼아나가는 일에 동참하려는 마음이 없는 상태에서 그런 이야기는 상당히 공허할 수 있으며, 그런 서사에는 행위가 없고 갈등도 별로 없으며극도로 희미하게 남은 플롯의 윤곽만 있다. 기꺼이 하려는 마음은 통찰의 맷돌에 넣고 돌릴 곡물이다.  - P364

당신 자신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되고저 서사의 빈틈을 채우거나 서사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게 된다. 기꺼이 하려는 마음은 막막함에 대한 해독제이기도 하며 그 자체로 믿음의 낟알이다. 당신은 아기처럼 작은 한 걸음을 떼고, 또 한 걸음을 옮긴다. 이 작은 벼랑에서 뛰어내리고 저 작은 벼랑에서 뛰어내린다. 그 일을 충분히 오랫동안 지속하면 그러는 사이 어디쯤에선가 자신이 공허함과 절망의 순간들을 지나 살아남을 수 있음을, 고통을 기쁨으로 상쇄할 수 있음을, 공포 대신 안전함을 느낄 수 있음을 이해하기시작한다. 이 믿음을 영적인 것으로 정의하는 아니든, 갓 생겨나기 시작한 이 믿음을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고 하든 호의적인 우주나 어떤 더 높은 힘이나 신에 대한 믿음이라고 하든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믿음이란 당신이 힘든 밤들을 견디게 도와주고 좋은 밤들을 음미하게 도와주는 신비로운 감정의 저수지를 의미한다. 이것이 있으면허기가 나를 죽이지 않으리라는 걸, 나에게 필요한 도움과 영양을 실제로 내가 찾아낼 수 있다는 걸, 내가 괜찮으리라는 걸마음속에서부터 믿을 수 있다.
- P365

그래서 이대로 충분한가? 상태가 비교적 괜찮은 날, 더없이 괜찮은 날 나에게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내게 주어진 축복을 하나하나 꼽아볼 것이고, 힘들게 얻어낸 친밀한 관계들에관해, 두려움을 상대로 한 작은 승리들에 관해, 친구들과 개와숲과 일에 관해 말할 테지만, 그래도 완전한 확신을 갖고 대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완전히 확신하는 답, 최종적인 휴식의 장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침내 모든 욕구를 이해하고충족하는 일, 가장 높은 봉우리에 도달하는 일이란 가능하지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흡족함의 순간들, 별안간 몸과 마음과정신이 나란히 연결되는 순간들이 있고, 마치 우주가 보낸 선물처럼 기대하지 않고 있을 때 찾아오는, 내가 잘 먹여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들이 있다. 이런 순간들은 더없이 소박하게 포장되어 도착한다. 내 개가 보내는 사랑의 시선으로, 친구와 나누는 농담으로, 여기서 느끼는 애정의 불씨, 저기서 느끼는 이해로 그 순간들은 내가 막 노를 젓기 시작할 때 수면을 비추는 아침 햇빛 속에서, 완벽한 한 끼 식사, 완벽한 한 문 - P370

장, 어떤 손길, 어떤 눈빛 속에서 온다. 마침내 이 삶에서 얻는가장 좋은 것일지도 모를 순간들이 있다. 섬광처럼 스치는 만족감, 얼핏얼핏 희미하게 반짝이는 희망의 빛과 맛, 파이처럼깊이 음미하며 완전히 누려야 할, 아주 잠깐의 순간들이. - P371

진통은 다섯 차례 왔고 그때마다 언니는 열심히 힘을 주었으며 산과 의사의 격려가-그거예요, 잘하고 있어요ㅡ쏟아졌고 그러자 경이롭게도 작은 사람이, 추상에서 갑자기 구체적인 형태를 띠게 된 특별한 존재가 나타났다. 나는언니의 왼쪽 무릎 옆에 서서 언니가 내 손바닥을 밀며 힘을줄 수 있도록 언니의 왼발을 잡고 있었다. 마지막 진통과 밀어내기를 하는 동안 나는 아래를 보고 있었는데 그때, 그 몇 초사이에 작고 둥근 아기 머리통의 곡선이 나타났고, 그런 다음갑자기 어깨가 나타났고, 그런 다음 아주 작은 몸 전체가 아직도 태아 자세로 말린 채 작디작은 주먹을 작디작은 가슴에 꼭 - P375

붙인 채 나타났다. 한 명의 인간이, 겨우 몇 초 더 탯줄로 엄마와 붙어 있다가 이내 탯줄이 잘리며 분리되고 스스로 숨을 쉬게 되자 입을 열어 최초의 숨 가쁜 흐느낌을 뱉어냈다.
나중에 나는 친구들에게 이 경험을 두고 숨 막히게 감격적인 기적과 드라마 <엑스파일>의 한 에피소드를 섞어놓은 것같았다고 묘사했다. 글자 그대로 그렇게 밀어내는 일과 그렇게 피를 보는 일, 그리고 분홍빛이 돌기 전까지는 섬뜩한 회색빛을 띠던 아기의 피부에는 거의 원초적으로 영화적인 뭔가가있었다. 자연 세계와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사는 우리에게 이런 종류의 일은 대부분 공포 영화나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고, 실제 분만이 진행되는 동안 잠시 나는 마치 영화를볼 때처럼 내가 그 장면에 속해 있지 않은 듯한 어떤 분리의감각을 느꼈고, 온몸을 때리는 충격과 함께 일순 도저히 믿을수 없다는 생각도 스쳤다.  - P376

그러나 바로 다음 몇 초야말로 내가 정말로 기억하고 싶은순간이다. 탄생이란 정말로 자연의 가장 특별한 위업이기 때문이고, 내가 여성의 몸에 대해 그때만큼 깊은 존경심이나 경외감을 느낀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몸을 창조하는 몸. 생명을 창조하고, 그런 다음 그 생명을 자신의 생명줄과 수액으로 - P376

된 망으로 품고 보호하고 영양을 공급하고, 이어서 세상으로내보내 인간의 삶 자체를 생성하는 데 필요한 정교한 지식과기가 막힌 능력을 갖추고 있는 여자의 몸. 나의 언니가 대단한집중력과 우아함으로 이 존재를 세상에 내어놓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 그리고 자궁을 벗어난 최초의 순간의 아기 - 작지만완벽한 모양을 갖춘 귀와 손톱과 발가락, 그 완벽하게 복제된존재를 지켜보는 일.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이 새로운 생명의약동하는 힘과 잠재력을 느끼고, 인류 자체의 잠재력을, 세상에 나가 암 치료법을 개발하거나 100미터 달리기 신기록을 세우거나 아니면 한 인간으로서 기쁨과 슬픔과 내밀한 고군분투의 삶을 살아갈 잠재력을 느끼는 일. 우리 각자가 수많은 타인들의 삶에 닿아 그들의 삶을 돌이킬 수 없이 형성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기적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 그리고 이 기적이 모두 한 여자의 몸 안에서 시작되어 한 여자의 몸에서 솟아나는일이라는, 숨 막히게 감동적인 사실. - P377

여성의 몸은 페미니즘이 가장 덜 건드린 미개척지 중 하나일 수도 있고 어쩌면 최후의 미개척지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여자의 욕구, 그리고 자유와 권리 의식과 기쁨을 품고 자기 욕구를 마음껏 채울 수 있는 여자의 능력은 진보의 표지인 동시에 진보에 대한 은유다. 우리는 얼마나 허기져 있는가? 얼마나채워져 있는가? 얼마나 갈등하고 있는가? 집으로 향하는 동안나는 이런 생각도 했다. 자신의 몸으로 방금 새로운 생명을 낳았고 이제 그 생명을 먹이고 어를 준비를 하고 있는 나의 쌍둥이 언니에 관해, 모든 여자들과 그들의 몸에 관해, 우리 중얼마나 많은 이들이 몸을 축복이나 선물이 아니라 적이자 수치의 장소로 여기고 있는지에 관해, 우리 중 너무나 많은 이들이 문득 자신의 엉덩이와 허벅지와 가슴을 느끼고 볼 때마다 느끼게 되는 절망과 질색하는 마음에 관해, 그 몸들이 과소평가되고 망각되고 무시되고 가장 잔인한 멸시의 원천이 되고마는 경악스러운 가능성의 강도에 관해.
- P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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