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친구들에게 추천하는 유일한 재즈 책이다. 이 책은 작은보석이다. 내용에 대한 근접성이 훌륭한 독주를 결정한다면 다이어의책은 그중 하나다.˝

키스 자렛(피아니스트)

그럼에도 이 경우가 연극이나 음악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모든 예술은 동시에 비평이다. 작가 혹은 작곡가가 다른 작가 혹은 작곡가의 작품을 인용하거나 재창조할 때 그 점은 가장 분명하다. 모든 문학, 음악, 미술은
"그것에 대한 설명, 가치 판단, 그들이 존재하는 전통과 맥락을 포함한다." - P272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재즈는 블루스에서 자라났다. 시작부더 재즈는 청중과 연주자가 공유하고 있는 공동체를 통해 발전했다. 1930년대 캔자스시티에서 레스터 영과 함께 호킨스의 연주를 들으러 간 찰리 파커와 같은 젊은 연주자들은 그다음 날 새벽에 벌어지는 애프터아워스 잼riouse"에서무대 주인공들과 함께 연주하는 기회를 잡았다. 마일즈 데이비스와 맥스 로치 Max Roach 도 맨 처음에는 음악을 듣는 것으로 도제 수업에 참가했다가 나중에 만든 52번가들까지 파커를 쫓아다닌 끝에 그와 함께 무대에 서게 되었다. 존 콜트레인, 허비 행콕Herbie Hancock, 재키 배클jackie - P273

McLean을 거쳐서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이끌었던 연주자들 중 다수도 매클린이 "마일즈 데이비스 대학"이라고 이름붙였던 밴드를 학교 삼아 등교했던 인물들이다.
재즈가 이러한 방식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에재즈의 기원에서 시작된 활기찬 힘은 오늘날과 관련을 맺고독특하게 남아 있다. 어떤 색소폰 주자는 가끔 다른 연주자의 악절을 인용하는데 하지만 그는 색소폰을 들 때마다, 비록부족한 기량일지라도, 자기 발 앞에 놓인 전통의 맥락 속에서자동적으로 그리고 함축적으로 논평하지 않을 수 없다. 최악의 경우 이 논평은 단순한 반복을 포함하며(끝도 없는 콜트레인 모방이 그것이다), 때때로 이전에는 단지 간단하게 언급되었던 가능성을 탐험하기도 한다. 그리고 최상의 경우에 이 논평은 형식의 가능성을 확장한다.
- P274

이상적으로 보자면 옛 노래의 새로운 버전은 실질적으로재창작이고 작곡과 즉흥 연주 사이의 가변적인 관계는 자기자신을 지속적으로 보충해 온 재즈의 능력 중 하나다. 피아노소나타 〈열정Appassionata> 작품 57에 관해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베토벤에게 처음 떠오른 것은 곡에서 등장하는 순서와는 달리 주제가 아니라, 코다coda‘에서 등장하는 중요한 변주였으며, 말하자면, 그는 변주에서 거꾸로 주제를 끌어왔다고보는 것이 합당하다."라고 썼다. 이와 매우 유사한 일들은 재즈에서 종종 벌어진다. 솔로의 과정에서 어떤 연주자는 잠깐,
그리고 거의 우연히 한 악절을 연주하는데 그것은 새로운 곡의 기초가 되며 그 새로운 곡 역시 즉흥 연주에 사용된다. 그리고 이들 즉흥 연주는 차례차례 또 다른 악절들을 낳고 그것은 발전하여 하나의 작품이 된다. 듀크 엘링턴 밴드의 연주자들은 그들이 솔로에서 연주하는 몇몇 릭lick"을 듀크가 적어 놓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곡을 만들어 자기의 이름으로 발표하는 점에 종종 불만을 나타냈다. 물론 그들은 오로지 듀크의 천재성만이 그 악절의 잠재성을 파악하고 자신이 - P275

계속 진행 중인 실연 비평의 과정 속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가닥은 재즈 연주자의 독자적 스타일의 진화에 관한 것이다. 오해의 여지가 없는 자신만의 소리와 스타일을 갖는다는것은 재즈에서 위대함의 전제 조건이다. 하지만 재즈에서 빈번하게 보는 경우처럼 여기에는 명백한 역설이 작동한다. 자기다운 소리를 내는 연주자들도 다른 누군가와 비슷한 소리를 시도하면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신인시절을 되돌아보면서디지 길레스피는 말했다. "모든 연주자는 이전에 등장한 누군가를 바탕으로 시작한다. 그러다가 결국에 연주에서 자신만의 것을,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게 된다."10 결국엔 마일즈 데이비스도 디지 같은 소리를 시도했으며 그 이후의 수많은 트럼펫 주자들-가장 최근에는 윈턴 마살리스Wynton Marsalis—이마일즈와 같은 소리를 시도한다. 심지어 연주자들은 종종 실패를 통해 자기 소리를 갖게 된다. 다시 디지의 말이다. "내가했던 전부는 로이 엘드리지처럼 연주하려는 시도였다.  - P277

앞선 언급들에도 불구하고 재즈는 밀봉된 형태로 있다. 그것을 생기 넘치는 예술 형태로 만드는 것은 재즈가 부분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역사를 흡수하는 재즈의 놀라운 능력이다.
다른 증거가 남지 않는다고 해도 미래의 컴퓨터는 재즈 카탈로 그로부터 미국 흑인의 역사 전체를 재구성할 것이다. 나는 심지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를 다룬 묘사음악으로고안된 엘링턴의 《검은색, 갈색 그리고 베이지색》과 같은 명백한 작품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아치 셰프의 <아티카 블루스Attica Blues〉, 또는 <맬컴, 맬컴 언제나 맬컴Malcolm, Malcolm,
Semper Malcolm〉, 밍거스의 〈수동적 저항자를 위한 기도문Prayer For Passive Resistance>, 혹은 맥스 로치의 《모음곡 지금 자유를Freedom Now Suite》과 같은 작품들을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의도하는 바는 "새로운 바이올린의 영혼을 담은 음색이 데카르트 시대의 위대한 혁신 중 하나에 속하는 것에는충분한 이유가 있다"1는 아도르노의 관찰처럼 보다 일반적이다. 아도르노의 주장을 정교하게 만들면서 프레드릭 제임 - P282

Fredric Jameson은 "긴 지배력을 통해서 바이올린은 개인적주체성의 출현과 밀접한 정체성을 지켜 왔다"고 언급했다.
아도르노는 17세기부터 시작되는 한 시대를 언급하고 있는데 그의 언급은 20세기, 그러니까 루이 암스트롱에서부터 마일즈 데이비스에 이르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의식에서 출연하는 트럼펫의 정체성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1940년대부터 트럼펫의 정체성은 색소폰과 경쟁했고 그것으로 인해보충되었다. 오넷 콜먼에 따르면 "흑인이 작성한, 그들의 영혼을 담은 최고의 선언문은 테너 색소폰을 통해 나왔다. "18여기서 콜먼은 주로 테너와 알토 색소폰을 구분했지만그의 주장은 테너 색소폰과 문학 또는 그림과 같은 다른 표현 수단과의 보다 큰 구분에서도 진실을 담고 있다. 이 점은중요하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역사를 흡수한 재즈는 테너색소폰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역사를 빨아들인 재즈의 능력은 이 음악이 없었다면 자신들을 표현할 매개가 부족했을 천재들의 수준을 높은 단계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 P283

페퍼에 대한 언급은 정반대 편에 있다. 왜냐하면 재즈가주로 흑인에 의해 만들어진 음악이기는 하지만, 오로지 흑인의 경험만을 표현하는 매체가 아니란 점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기 때문이다(엘링턴의 《검은색, 갈색 그리고 베이지색》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가 백인들과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이는 흑인 민족주의 운동이 부정적인 면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 백인 밴드 리더인 스탠켄턴StanKenton 은 재즈가 잠재적으로 그 시대의 고통에 찬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이 논쟁의 개념을 확장시켰다. "난 오늘날의 인류가 이전 시대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사건을 통과하고 있다고 본다.  - P284

렌턴의 말이 다소 자화자찬-자신의 음악에 대한 무언의 광고 같은 느낌이 든다면 대신에 우리는 음악과 전혀 이해관계가 없었던 한 권위 있는 인물의 말을 들을 차례다. 마틴루터킹박사Dr. Martin Luther King Jr. 의 1964년 베를린 재즈페스티벌의 개막 연설은 시민권 쟁취를 위한 흑인의 투쟁이재즈를 예술로서 인정받으려는 재즈 음악가의 투쟁과 나란히놓여 있다는 사실을 각성시키기에 충분했다. 연설에서 킹은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고통, 희망, 기쁨을 선명하게 만드는작업을 오래전 작가와 시인들이 떠맡았지만 이제는 음악이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흑인들이 살아온 경험의중심에는 오로지 재즈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더 나아가
"미국에서 흑인의 특별한 투쟁은 오늘날 모든 사람의 보편적인 투쟁과 동질적이다."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살아 있는 관계다. 어느 날 탄생한 재즈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그 사람과, 세기가 함축하고 있는 것을 대표하고있으며 단순히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조건뿐만 아니라 역사전체의 조건을 표현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 P285

롤린스, 마일즈, 재키 매클린, 콜트레인, 아트블레이키 등. 하지만 약물에 중독되어 본 적이 없는 음악인들의 명단은 중독자들의 명단보다 훨씬 덜 인상적이다. 약물 중독은 직접적으로(아트 페퍼, 재키 매클린, 엘빈 존스Elvin Jones,
프랭크 모건Frank Morgan, 소니 롤린스, 햄프턴 호스HamptonHawes, 쳇 베이커, 레드 로드니Red Rodney, 제리 멀리건 등) 혹은간접적으로 그들을 감옥으로 끌고 갔다. 정신병동으로 가는길은, 엄청난 고통으로 가는 길이지만, 활짝 열려 있었다. 멍크, 밍거스, 영, 파커, 파월, 로치 등 1940~1950년대 재즈의주도적인 인물들은 일종의 정신적 붕괴로 고통받았고 벨뷰종합병원은 약간의 과장을 더한다면 모던 재즈의 고향 버드랜드와 거의 같은 위치에 있었다.
문학도들은 셸리와 키즈 John Keats"의 이른 죽음을 일상적으로 본다. 서른 살과 스물여섯 살에 각각 세상을 떠난 그들의 삶은 낭만적 고통의 불운한 경고로 가득 차 있다. 슈베르트Franz Schubert의 삶에서 역시 우리는 낭만적 재능의 정수를본다. 심지어 그것은 꽃피우자마자 소진되어 버렸다. 이 세 명의 삶에서 우리는 때 이른 죽음은 그들 창의성의 조건이었다 - P287

처음부터 재즈의 양식 안에는 위험한 무엇인가가 내재하고 있었다는 주장이 통속극처럼 보인다면 우리는 쉽게도 재즈가 과연 그런 상처를 벗어날 수 있었을까, 잠깐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음악은 계속 앞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는 디지 길레스피의 언급은 금세기의 어느 시기에나 인용되어 왔고, 실제로 1940년대부터 재즈는 불같은 힘과 과격함으로 숲을 모조리 태우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이토록 급진적으로 발전한예술 형식이 거대한 통행료를 지불하지 않은 채 과연 흥분의절정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만약 재즈가 ‘현대인의 보편적투쟁‘과 왕성한 관련을 맺고 있다면 그것을 만든 사람들이 그투쟁의 상처를 피해 가는 것은 과연 가능했을까? - P290

재즈를 느낀다는 것은 실제 그것이 일어날 때는 너무도 미묘하지만 그냥 스윙만 하고 있는 밴드들의 상당수 재즈 카탈로그(와 많은 실황 연주)의 시들한 연주와 비교했을 때는 틀림없는 차이가 있다. 이러한 지식(혹은 느낌)은 가파르고 위태로운 쇠락의 길로 들어선 재즈 연주자가 특별히 재즈에서 위대한 연주를 만들어냈을 때 그것이 연주 기교의 범위 밖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직면하게 한다. 모든 연주자가 동의하듯이 연주 당시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하며 자기 경험에 의존하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 연주에 자신을 바쳐야 한다. 찰리 파커는 말했다. "음악은 너의 경험이고, 너의 생각이며, 너의 지헤다. 그것과 살아 보지 못했다면 그것은 결코 너의 색소폰을 통해 나올 수가 없다."25 비밥 시대의 많은 음악인들은 헤로인에 중독되었는데 오랜 중독자 찰리 파커가 끝이 없는 음악 창작 능력을 전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이든 그들의 몸속으로 그 약물을 넣기를 원했기 때문이다(레드 로드니는 대표적인 예다). 그것은 현재 운동계에 약물이 범람하고 있는 상황과 유사하다. 경쟁자들은 기록의 기준이 화학적약물의 도움 없이는 도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고 보고있기 때문이다. - P292

이 지점에서 콜트레인의 이름이 나와야 하는 것은 놀랍지않다. 앞서 이야기했던 모든 흐름은 그에게로 수렴한 음악속에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들불처럼 진화한 재즈 안에서 내재적이며 불가피했던 위험의 느낌은 콜트레인 안에서 선명하게 들린다. 1960년대 초부터 그가 죽음을 맞이한1967년까지 콜트레인은 마치 그가 자신의 음악을 앞으로 밀고 나가고 있으며 동시에 음악으로부터 모진 채찍을 맞고 있는 것 같은 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는 존재하는 형식의 규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속적인 압박을 스스로에게 가하면서 비밥 연주자로서의 자신을 끝마쳤다. 5년 동안 함께했던콜트레인, 엘빈 존스, 지미 개리슨 Jimmy Garrison, 매코이 타이너 McCoy Tyner의 클래식 쿼텟classic quartet‘은 다른 예술 형태가접근해 본 적이 거의 없는 표현의 절정으로 재즈를 끌어올렸다. 이를 이끈 사람은 콜트레인이다. 하지만 그는 전적으로리듬 섹션에 의존했으며 그들은 초 단위를 쪼개는 반응으로콜트레인의 미로와 같은 즉흥 연주를 통해 단순히 그를 단순히 따라갔던 것이 아니라 보다 큰 분투로 콜트레인을 몰아붙였다.  - P295

프리재즈가 점점 더 소음처럼 느껴지고 점점 더 음악처럼 들리지 않는 상황으로 해체되어 가자 청중은 줄어 갔고 재즈-록으로 돌아선 음악인의 숫자는 늘어 갔다. 많은 사람들이암흑기로 여겼던 1970년대 퓨전 시대 이후에 1980년대는 밥에서 유래했다고 재천명한 재즈가 감상자와 연주자들의 새로운 세대를 장악하고 있는 흥미로운 부활을 목격하고 있다.
재즈는 결코 대규모 청중을 위한 음악이 될 수 없으며 이 음악으로 개업한 음악인의 삶은 여전히 재정적으로 위태롭지만 비밥 탄생기에 수반되었고 1960년대 뉴뮤직에서 내면화되었던 위험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긴박한 위험의 느낌은 재즈 감성에 내재적이었기에 혹시 이 음악은 중요한 활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오늘날 재즈의 상황은 무엇일까? - P299

재즈가 연주되고 있는 환경도 바뀌었다. 뉴욕에 있는 클럽 가운데는 빌리지 뱅가드는 최고의 보기이며 좀 더 근자의장소로는 니팅 팩토리 Knitting Factory 를 꼽을 수 있는데, 이러한 소수의 클럽만이 오로지 음악에 헌신하면서 값비싼 덫을깔아 놓지 않고 오로지 청중과 출연자들이 분위기를 만들도록 배려하고 있다. 반면에 호화로운 치장의 서퍼 클럽supperclub 들이 점차 재즈가 연주되는 장소의 대세가 되어 가고 있다. 때때로 ‘정숙‘을 내건 클럽의 정책은 연주자들로 하여금 저녁 식사 테이블에서 들리는 너무 큰 잡담 소리와 싸우지 않도록 배려했지만 그만큼 음악도 호화로운 저녁 식사를 즐기고 있는 청중에게 상당부분 맞춰 달라는 의미였다.  - P300

비밥은 공식을 통해 연주하는 음악이 되었고 그 음악의 문법은 계승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년이 창문으로 공을 던진다"와 같은 문장처럼 간단한 것이 되었다.
1940년대에는 그 누구도 이처럼 창문으로 공을 던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사람들은 짜릿함을느꼈다. 이제는 그 행위 자체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여전히 비밥이 흥미롭다면 던진 공은 얼마나 단단하며 창문은몇 조각으로 깨져 나가는지를 보고 싶을 뿐이다. 오늘날 비밥연주자들이 최선을 다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공중에서춤을 추며 흩어지는 유리 조각과 공이 날아간 아름다운 곡선이다. 느린 곡에서 공은 우아하게 튀어 오르고 유리창은 진동할 것이다. 하지만 창문은 깨지지 않은 채 남아 있을 테다. - P302

여전히 드리워져 있는 콜트레인의 긴 그림자, 그리고 비밥의 언어 안에는 여전히 새롭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남아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이들은 오늘날 재즈 연주자들이 직면한 다음의 보다 큰 질문의 한 부분일 뿐이다.
재즈에서 새롭고 중요한 작품이란 여전히 남아 있을까?"_지난 100년 동안 재즈가 급진적인 진화를 이룩했음에도, 그러기가 무섭게 청중과 연주자들은 모두 전통 속에서 최근의흐름을 바라보고 있다. 블룸이 말한 대로 우리는 이것을 "영향력에 대한 열망"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생각지도 않 - P302

1960년대의 급진적인 재즈가 전통으로부터 단절하려는 태도로 지배되었다면 1980년대의 신고전주의는 전통을 인정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만들자마자 거의 무너지는 위험에 처했다. 재즈의 전통이란 혁신과 즉흥 연주에 있기 때문에 대담한 우상파괴를 하는 것만큼이나 전통주의 역시 혁신적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예술이란 대부분 과거에 헌신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재즈는 늘앞만을 바라봤는데 그런 점에서 가장 급진적인 작품은 동시에 종종 가장 전통적이기도 하다(다름 아닌 세기의 전환을 제시했고 그렇게 인식되었던 오넷 콜먼의 음악은 그가 포트워스에서 자라면서 들었던 블루스에 흠뻑 젖어 있다). 어느 쪽이든모든 종류의 복고주의는 죽음을 맞이한다. 음악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어야 한다는 원칙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 P303

시간을 아우르는 음악 통합과 더불어서 지정학적 음악통합이라는 동일한 경향도 공존하고 있다. 1960년대 음악인들은 명백한 아시아, 아프리카 리듬과 악기를 그들의 음악과뒤섞는 작업을 더욱 빈번하게 시도했다. 라틴과 아프리카 재즈는 현재 확고한 스타일이지만 가장 개성적이고 독창적인음악적 비옥화의 일부는 비서구 음악으로부터 최초로 영감을 끌어낸 음악인 중 하나인(파로아 샌더스의 1967년 앨범 《완전 일체 Tauhid》에서 동양적 블루스인 <재팬Japan>을 들어 보라)샌더스와 돈 체리와 같은 연주자로부터 여전히 나오고 있다.
특히 체리는 계속 진행 중인 창조적인 발전 속에서 놀랄 정도로 월드 뮤직의 비율을 담고 있다.  - P308

동시에빌에반스 또는 버드파월의 후계자이며최근의 독주 작품의 많은 부분에서 리듬과 즉흥 연주에 대한흔들리지 않는 헌신을 담으면서, 블루노트blue note‘에 대한 어떤 첨가도 없이 자신을 재즈의 전통 안에 위치시킨다. 최상의작품들에서 자렛은 그의 음악 속에 떠다니는 모든 종류의 음악들을 섭렵하되 아무런 의식적 노력이나 부담감 없이 이질적인 영향들을 결합한다. 그는 창작 과정에서 자신만의 방식을취할 때면 마음을 깨끗하게 비워 놓은 상태에서 음악이 단순히 그를 통과해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스레드길과 보위의 음악을 듣는 즐거움은 공통의 음악적 유산의 여러 측면을 가지고 얼마나 다르게 그것들을 조합하는가, 그 차이의 크기를 인식하는 것이라면, 반면에 자렛의 음악들 듣는 즐거움은 심지어 상이한 음악적 자료들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로 모인음악에서 파생되는 것이며 그 본질은 전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자렛의 천재적 즉흥성에 있다.  - P312

존 버거는 "하나의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은 모든 예술의본성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라고 썼다.4 버거가 공식화한 것이 제시하는 힘, 다시 말해 "앞서 존재했던 무수한, 인식하지 못했던 고요와 비교했을 때 발생한 순간의 모순"은 자렛이 손가락이 건반을 건드렸을 때만큼 강렬하게 느끼게 하는것은 없다. 알프레드 브렌델Alfred Brendel이 슈베르트를 연주하기 시작할 때, 그 순간의 느낌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렛이 즉흥 연주를 시작할 때만큼 강렬하지는 못하다. 왜냐하면 설사 우리가 어떤 곡을 이전에 들어 본 적이 없다고하더라도 우리는 그 곡이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재창조되고있고 그것을 목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는 스타이너가 말하는 원초의 공화국republicof the primary"이 제거된 무대에 있는 것이다. 특별하게도 창조의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는 느낌은 자렛의 음악적 과정에서는 거의 사라지지 않는다. 자렛의 음악에서 끊임없는 창조는버거가 말한 ‘순간‘을 의미하며 그것은 음악이 지속되는 매순간 속에 담겨 있다. 시간이 그의 음악을 직접 생성하고 있다는 느낌이 이토록 피부에 와 닿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 P313

자렛은 특별하며 그래서 우리는 그를 듣는 경험을 한다.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오늘날의 감상자들은 동시대의 연주자들과 비슷한 문제를 직면하고 있다. 요즘의 재즈 앨범을 플레이어에 걸어 놨을 때, 다시금 블룸을 인용하자면 "우리는가급적이면 독창적인 목소리를 듣는다. 만약 그 목소리가 그의 선배들, 동료들과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그 목소리가 말하려고 하는 바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듣기를멈춘다. "36재즈의 경우 이 점은 아마도 오늘날의 연주자들보다도 과거의 대가들에게 강하게 적용될 것이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는 이제는 『율리시스Ulysses』가 『오디세이아"보다도 먼저 나온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율리시스』를 더 먼저 보게 되므로 정확하게 같은 이치로 사람들은 마일즈를 암스트롱보다 먼저, 콜트레인을 호킨스보다 먼저 듣고 있다.  - P314

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설령 사람들은 옛 대가들의 음반을 실제로 들은 적이 없더라도 우연히 접한 거의모든 재즈곡에서 루이 암스트롱, 레스터 영, 콜먼 호킨스, 아트 테이텀, 버드 파월을 듣게 된다. 어쩌다가 버드 파월의 음악에 관심이 생긴 경우에도 그가 그렇게 특별한지를 느끼기는 어렵다. 그 역시 다른 피아니스트들과 비슷하게 들리기 때문이다(실제로 그 이유는 다른 모든 피아니스트가 버드 파월처럼 연주하기 때문이지만). 과거와 관련을 맺는 긍정적인 측면은 전통 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전진하면서 더 많은 발견의항해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강의 출구를 따라가는것 대신에 강의 근원을 추적해 가는 것이다. 더 깊이 거슬러올라갈수록 우리는 앞서간 사람들의 특별한 성질을 인식할수 있다. 고조할아버지의 사진을 보면서 그의 얼굴에서 나타나는 손자들의 근원을 인식하는 것과 비슷하다. - P315

전통이 지속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음악의 진화와 발전을통해 과거의 대가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장해 준다. 한편으로 옛 음반들은 디지털로 새롭게 마스터링되고 새로운 소리로 재포장되어 새로운 녹음처럼 보인다. 가장 새로운 사운드 - P315

의 음악 중 일부는 과거의 음악에 흠뻑 젖어 있기도 하다. 전진과 후진에 대한 생각, 과거와 현재, 옛것과 새로운 것에 대한 감각이 영구히 지속되는 오후의 황혼 속에서 서로 녹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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