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예술의 창조자는 반신반인의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실수투성이인 인간들이다. 강박증과 손상된인격을 가진

-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Adorno


우리는 오로지 우리 자신만을 듣고 있다.

-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

오래전에 나 자신이 관습적인 비평 같은 것에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음을 알았다. 내가 떠올린 것을 일깨웠던 은유와 직유는 음악 속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점점부족함을 느꼈다. 더욱이, 가장 간단한 직유마저도 허구의 기미를 만들어 냈기 때문에 머지않아 은유는 한 편의 이야기와장면으로 확장되어 나갔다. 그럼에도 동시에 이 장면들은 하나의 곡 혹은 음악가의 특별한 성격에 대한 기록이 되기를 의도했다. 그러니 이제 당신이 읽게 될 내용은 허구인 동시에 상상적 비평이라고도 할 수 있다. - P9

유화는 브리튼 전투나 트라팔가 해전을 묘사할 때마저도 기이하게 고요함을 남긴다. 반면에 사진은 빛뿐만이 아니라 소리까지도 느끼게 한다. 좋은 사진은 보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들리는 것마저 갖고 있다. 사진은 훌륭할수록 그 안에서 소리가 들린다. 최고의 재즈 사진은 사진 속 주인공이 내는 소리로 가득 차 있다. 버드랜드 무대에 선 쳇 베이커를 찍은 캐럴 리프Carol Reiff의 사진에서 우리는 작은 무대의 프레임 안에 담긴 연주자의 소리만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나이트클럽에 깔리는 잡담 소리, 유리잔을 부딪는 소리까지 듣게 된다. 비슷하게 힌턴의 사진에서는 벤이 신문을 넘기는 소리와피 위가 다리를 꼬면서 내는 바스락거리는 옷 소리를 듣는다.
만약 우리에게 사진을 해독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우리의상상을 계속 펼치거나 사진이 실제로 들려주고 있는 소리를더 이상 들을 수 없을까? 혹은 심지어 최고의 사진이 보여 주고 있는 한순간을 넘어서, 그것이 그전부터 말해 왔거나 지금막 말하려던 점도 보거나 듣지 못하게 되는 걸까? - P14

길 양쪽 들판은 밤하늘처럼 어두웠다. 들판은 아주 평평해서만약 당신이 차고에 서 있다면 자동차 불빛이 지평선 위의별처럼 보일 것이다. 그 불빛은 한 시간가량 당신을 향해 달려오다가 빨간 미등尾을 보이며 동쪽으로 유령처럼 사라진다. 나지막이 들리는 자동차 엔진 소리를 빼면 소음은 없었다. 어둠은 너무도 한결같아서 불빛에 흔들리고 있는 뻣뻣한밀밭을 전조등이 큰 날로 획 베어 가듯 스치며 지나갈 때운전자는 비로소 자신이 길 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동차는 빛의 경로를 밝히며 길 한쪽의 어둠을 제설기처럼 밀고 나간다. 생각이 스르르 무뎌지며 눈꺼풀이 무거워짐을 느끼자 그는 자신을 깨우기 위해 억지로 눈을 깜박이고 다리한쪽을 문질렀다. 그는 일정하게 시속 50마일(시속 80킬로미정도)로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차창밖 풍경은 너무도 광활하고 변할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 차는 더 이상 움직이지않는 듯 느껴졌다. 달을 향해 조금씩 이동하고 있는 우주선처럼・・・・・・  - P19

- 어디 가서 곧 아침 드실 수 있도록 차 세울게요.
- 곧?
- 한 200마일쯤 가서요.
듀크는 웃었다. 그들은 시간을 시간 단위가 아니라 마일로 셌는데, 오줌 한 번 누고 다음에 커피 한 잔을 마시려고 차를 세울 때까지 종종 지나가게 되는 100마일(약 160킬로미터)을 큰 단위의 거리로 삼고 있었다. 200마일이면 첫 배고픔이밀려오고 뭘 먹으려고 다음에 정차할 때까지의 거리였다. 심지어 50 마일쯤에 한 장소를 만나더라도 그들은 그냥 지나쳐서 달렸다. 정차는 너무도 바라는 일이었지만 멈춰 봤자 원하는 만큼 될 리 없었다. 결국 원하는 대로 차를 멈추는 건 한없이 연기되었다.
- 도착하면 깨워 줘.
좌석 끝과 문틈에 그의 모자를 베개 삼아 구겨 넣으면서듀크가 말했다. - P22

어디에서인가부터 들려오는 긴장 때문이었다. 그가 색소폰을 한쪽으로 기울여 솔로로 깊게 빠질 때면, 색소폰이 수직으로부터 점점 더 기울어져 나중에는 마치 플루트처럼 수평으로 들렸다. 사람들은 그가 악기를 들고 있다는 인상을 전혀 받지 않았다. 오히려 악기가 점점 더 가벼워져 그로부터 떠다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그러기를 바랐던 것처럼 그는 악기를 잡아 내리려고 하지않았다. - P26

재즈란 한 사람의 독자적인 소리를 만드는 일에 관련한다. 누군가와 다른 길을 발견하고 그다음 날 밤에는 결코 전날 밤과 똑같이 연주하지 않는 것이 재즈다. 반면 군대란 모든사람을 동일하게, 구분할 수 없게, 유사한 모습으로, 비슷한생각으로, 모든 것은 그날과 그다음 날에도 같게 남게 하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게 만들기를 원한다. 모든 것은 올바른 각도와 날 선 모습으로 있어야 한다. 레스터의 침대 시트는 그의사물함의 금속 앵글처럼 단단히 접혀 있었다. 그들은 병사들의 머리를 나무 블록을 자르듯이 깎아 완전한 사각형을 만들려고 했다. 심지어 군복은 신체를 개조해 사각형 인간을 만들려는 듯 디자인되었다. 곡선과 부드러움이란 없었고 색깔과고요함도 없었다. 2주라는 시간 속에서 한 사람이 완전히 다른 세계에 온 자신을 갑자기 발견하는 것은 믿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 P29

하지만 강력한 당신, 바로 군대는 그들을 꺾어 버린다. 그러나 약함, 그것은 군대가 마주할 때 무력해지는 존재다. 왜냐면 그것은 힘에 의존한 대립의 개념에서 멀리 떨어져있기 때문이다. 나약함을 상대로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상대에게 고통이 될 뿐이다. 그리고 영은 그 고통에 휩싸여있었다. - P35

그는 이야기했고 드문드문 사람들이 앉아 있는 작은 법정은 그를 주목하고 있었다. 뻣뻣한 자세의 청중이었지만 그들은 그의 모든 말에 귀를기울였다. 마치 솔로연주처럼 그것은 한 편의 이야기여야 했고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노래여야 했다. 그가 말하는 것에 사람들이 집중하기가 어려울 때면 그의 말은 더욱 느려지고 조용해지고 뜸을 들이다가 문장 중간에서 멈춰 섰다. 그의목소리가 부르는 노래는 사람들을 매혹하고 설득했다. 갑자기 청중의 집중은 유리잔이 맞부딪히는 소리, 얼음통에서 달그락거리며 얼음을 퍼내는 소리,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사이로 이야기 소리가 들릴 것처럼 영에게 익숙하게 느껴졌다. - P49

죽음은 더 이상 변방에 있지 않았다. 그가 종종 침대에서창가로 걸어오는 구간에서, 그가 지금 어느 쪽에 있는지 알지못하는 그 순간에도 떠다니고 있는 무엇이었다. 가끔 자신이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자기를 꼬집는 사람처럼영은 자신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기 위해 맥박을 느끼려고 했다. 보통 그는 자신의 맥박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손목에서도, 가슴에서도, 목에서도. 더 귀를 기울일 때면 먼 곳에서 열리고 있는 장례식의 낮은 북소리 혹은 지하에 묻힌 누군가가눅눅한 땅바닥을 두드리는 것 같은 둔중하고 느린 고동 소리가 들렸다. - P54

밴드 멤버 중에 누군가가 솔로를 연주할 때면 그는 일어나서춤을 추었다. 조용하게 발장단을 맞추고 손가락을 튕기다가무릎과 팔꿈치를 들어 올려 돌리고, 머리를 흔들고, 팔을 편채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늘 금세 넘어질 것처럼 보였다.
그는 한 지점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일부러 어지러움을 느끼면서 휘청거리며 피아노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그가 춤을 출때면 웃었는데 그것은 센 술을 처음 맛본 곰처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그에게 가장 적절한 반응이었다. 그는 재미있는 사람이었고 그의 음악도 재미있었으며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뱉는 말은 대부분 농담이었다. 그의 춤은일종의 지휘였으며 음악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는 방식이었다. 그는 곡의 내부로 들어가야 했다. 그 음악은 자신의 일부였으며 그것을 내면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목재를 드릴로 파고드는 것처럼 그는 자신의 음악으로 작업해 들어갔다.  - P69

멍크의 음악을 정확히 듣기 위해서는 그를 봐야 한다. 그의밴드에서 가장 중요한 악기는 편성이 어떻든 간에 그의 몸이다. 실제로 그는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았다. 그의 몸이 악기였으며 피아노는 그가 원하는 비율과 양으로 그의 몸이 뿜어내는 소리의 수단일 뿐이다. 몸만 빼놓고 모든 것을지운다고 해도 우리는 그가 드럼을 연주하는 것을 상상할 수있다. 그의 발은 하이해트hi-hat‘를 계속 움직이고 있으며 양팔은 서로 엇갈리며 움직인다. 그는 육체의 음악의 모든 여백을 채워 넣고 있다. 그를 보지 않으면 그 여백은 빈 공간처럼들리지만 그를 보고 있으면 심지어 피아노 독주도 사중주처럼 꽉 찬 소리를 얻는다. 눈은 귀가 놓친 것을 듣는다. - P70

재즈에는 마음대로 연주하는 것이라는 환상이 존재하고, 멍크는 마치 이전에 피아노를 본 적도 없는 사람처럼 연주했다. 발꿈치를 이용해 모든 각도에서 건반을 내려치고 마치카드 한 묶음을 다루듯이 건반을 훑어버리거나, 만지기에는건반이 너무 뜨겁다는 듯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그의 손은 하이힐을 신은 여성처럼 건반 위를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클래식 피아노의 방식으로 보자면 이는 잘못된 연주다. 모든 것은 예상과는 달리 구부러지고 비스듬한 모양이었다. 그가 만약 베토벤을 연주했다면 악보를 정확하게 지키면서도건반을 치는 방식, 손가락이 건반에 닿는 각도를 불안정하게함으로써 그 곡이 스윙하게 만들고 곡의 내부를 뒤집어 멍크 - P71

연주할 수 없는 많은 종류의 곡이 있다는 점에서 기술적으로멍크는 제한된 연주자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것을 연주할 수 있었으며 기교가 그에게 제약이 되지는 않았다. 확실히 그 누구도 멍크의 작품을 그가 연주하듯이 치지못했으며 (피아노를 정석으로 연주하면 표현할 수 없는 미세한온갖 것들이 그의 작품에 존재한다), 그만큼 그는 누구보다도기교적이었다. 공평한 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지만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전혀 생각할 줄 몰랐으니까.
그는 마치 방금 전에 친 음에 놀랐다는 듯이 모든 음을연주했다. 마치 건반 위의 손가락에서 나오는 모든 음은 오류를 수정하는 것 같았고, 그 타건 역시 차례대로 수정되어야할 오류가 되어 곡은 결코 의도했던 방식으로 끝나지 않을 듯보였다.  - P72

그의 손가락은 늘 자기자신에게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하나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었고 그것은 멍크의 독특한 논리였다. 다시말해 누군가가 거의 예상하지 못했던 음을 연주하면 그 곡은처음 예상과는 뒤바뀐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곡의 핵심에서아름다운 멜로디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뒤집혀 잘못 짚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의 음악을 듣는 일은 꼼지락거리는 누군가를 지켜보는 것과 같았으며, 그가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꼈다. - P73

멍크의 음악이 늘 스스로 무너질 듯 들리는 것처럼, 한순간에 무너질 것같이 보이는 다리의 모습은 흥분을 안겨 준다.
그의 음악을 그저 기발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기발하다는 말로는 차이를 설명할 수 없다. 기발하다는 것은 낮은 판돈이다. 하지만 멍크는 높은 판돈을 건다. 그의 음악은 위험을 감수했으며 기발하다는 것에는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색다른 점을 느낄 때 기발하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멍크의 음악보다 기발한 것은 보기드물다. 멍크는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이든 자기 요구와 논리로 만들어 놓은 원칙의 수준에 올려놓았다. - P74

사물들 사이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했던 날들도 있었다.
그때 하루를 지내는 문법과 사건들을 이어 주는 구문론은 몸땅 무너져 있었다. 단어와 행동 사이의 관계를 잊어버려 문을통해 들어가는 일 같은 간단한 것조차도 알지 못해 아파트의방들은 미로가 되었다. 그는 사물을 사용하는 방법을 기억하지 못해, 사물과 그 기능이 자동적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방에 들어갈 때는 문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란 듯 보였다.  - P78

마지못해 아파트로 돌아오면서 그는 넓게 트인 강물의 줄기 너머로 해가 지는 것을 보기 위해 허드슨강을 따라 걸었다. 허기진 바람이 담배 연기를 냉큼 집어삼켰다. 멍크는 델리를, 또한 그녀를 위해 쓰고 있으며 누구도 손댈 수 없는 개인적인 피아노 작품을 떠올렸다. 쓰기 시작하면 그 곡은 곧 마무리 될 것이다 그는 아무런 즉흥 연주도 없이 무반주로, 쓴그대로 이 곡을 연주하고 싶었다. 그는 빌리가 변하는 것을원치 않았고 그녀를 위한 이 곡도 바뀌지 않기를 원했다. 강건너편을 바라보자 황갈색 석양이 튜브에서 짜낸 물감처럼강과 하늘이 맞닿은 선을 타고 번지고 있었다. 몇 분 동안 하늘은 빛이 사라질때까지 어두운 노란빛으로 물들었다.  - P84

왜냐하면 지금 사람들은 스스로가 참을 만한 절망이 반복되는일상의 일부분, 일상 속에 녹아든 모든 시간의 압축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후회할 수도 있고 동시에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을 수도 있는 시간 그때 모든 남자가 오직 바라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설사 지구 반대편에 있을지라도 자신을 떠올리는 누군가의 존재입니다. 한 여인이 눅눅하게 젖어 내려가는 도시를 느끼면서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라디오의 음악을 들을 때 그녀는 노란빛으로 물든 창문 너머에 존재하는 삶들을 바라보며 상상합니다. 싱크대 앞에 선 한남자를, 텔레비전 앞에 모인 한 가족을, 커튼을 치는 연인을,
라디오에서 나오는 같은 곡을 들으며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 누군가를 말이죠. - P98

그가 느끼고, 만지고 본 모든 것에 관해 오케스트라로 쓴 일대기였다. 그는 소리의 작가였으며 그가 작업 중-인 것은 거대한 음악적 소설이었다. 그것은 늘 보태져야 할것이 있으면서 궁극적으로는 그 자체에 관한, 그 곡을 연주하고 있는 밴드의 동료들에 관한 것이었다…………비는 잠시 잦아들다가 곧이어 전보다도 더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자동차 앞창으로 내다보는 것은 폭포수를 통해바깥을 보는 것과 같았다. 바람은 광인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해리는 운전대를 꽉 잡으면서듀크쪽을 슬쩍 쳐다보았다. 이태풍이 그의 작품 안으로 들어오는 데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궁금해하면서. - P101

사진이란 시간의 최면에 빠진 이미지야. 그 이미지가 최면에서 깨어나 되살아나길 기다린다는 것은 자네와 방에 앉아서 자네가 최면에서 깨어나 움직이고 말하기를 기다리는것과 같지. 마치 자네가 있는 곳에서 여기저기에 알아보고 자네와 함께 그곳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드네.
버드, 버드……? 내 말 그리고 자네 말 모두를 내가 하길원한다면 내가 그렇게 하지. 아마도 듣고만 있는 자네를 보면서 난 뭔가를 알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어쩌면 자네 삶의 고통과 <망각Oblivion>, <통곡Wail>, <환각Hallucination>, <약간 미친Un Poco Loco>과 같은 곡의 활기찬 음악적 낙관주의가 어떻게 조화할 수 있었는지를 깨달을 수도 있겠지. 난 자네가 연주한 모든 곡이 자네 삶에 관한 고통스러운 소설로부터 뜯어낸 한 페이지였으면 해. 난 <유리 장벽>이 우울 속에서 걷다Walking in the Blue」의 자네 판본이었으면 하거든. 물론 이 곡은피아노 소품 형태로 얼어붙은 교향곡처럼 들리지만 말이야. - P106

파리에서 자네는 반쯤 빈 클럽에서 연주했고 때로는 딴 데가 있는 사람처럼 연주했어. 심지어 연주할 때 자네는 등을다쳐서 이전과는 같은 반사 신경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된 운동선수처럼 행동했지. 늘 손가락을 건반에 닿게 하려고 애써야 하는 상황을 의식하면서 말이야. 너무 많은 집중은 기교에는 도움을 주지만 재즈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위해서 남겨놔야 하는 것에는 적절하지 않은 줄을 알면서도 말이야. - P123

당신이 그에게 감사를 표하고, 완벽하게 진심 어린 순간을 느끼며 마음이 자랑스러움으로 가득할때, 그와 악수를 나누며 그를 쳐다봤을 때 그의 두 눈에도 눈물이 솟구쳐 양쪽 볼에는 달팽이가 지나간 듯한 눈물 자국이남아 있었다는 점이다. 열차가 서서히 출발할 때 당신은 그에게 다시 손을 흔들면서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는 그를 보았을 것이다. 때론냅킨, 손수건, 테이블 덮개 역할을 하는 양복 한 벌을 입고서 손을 흔들어 답례하고 있는 거구의 술 취한 남자를. - P138

그는 외로움을 마치 악기 케이스처럼 짊어지고 다녔다. 외로움은 결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공연이 끝나고 팬들과의 대화도 끝나면 우연히 그 곁을 지나던 사람들이 그의 친구가 되어 주었고, 바에 앉아 모두가 떠난 시간까지 홀로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 열쇠를 찾고, 조용한 자물쇠 구멍 주변을 헤매며 긁다가, 결국 문을 열고 그가 떠나던 때와 똑같은상태로 머물러 있는 아파트로 들어가 소파 위에 색소폰 케이스를 던져 놓았다. 이 모든 일이 끝나면, 이미 늦은 시간이지만, 그는 계속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고, 누군가가 커피를끓일 때의 달그락거리는 소리, 음료를 만들 때 거품이 일어나는 소리를 듣고 싶은 순간을 늘 만났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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