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와 허구, 몽상이 뒤섞인

그러나 아름다운 순간들



시정이 흐르는 제프 다이어의 글은 재즈와 그 음악을 만든 사람들을 지금, 여기로 데리고 온다. 그는 여러 일화를 통해 자신이 음악을 들었던 방식 위에 그림을 그려 나가면서 역경에 처한 재즈 음악인의 삶을 재구성한다. 호텔방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레스터 영, 자동차 운전대를 붙든 채 경찰에게 손등을
얻어맞고 있는 텔로니어스 멍크, 찌그러진 자전거를 타고뉴욕의 길거리에서 분노를 쏟아 내는 찰스 밍거스………
술과 약물, 차별, 고된 여정 속에서 오직 음악만이 그들을
추동하는 힘이다. 슬프고도 기이한 순간은 다이어의 글로써
마침내 생명을 얻고, 모두가 멈추어 있는 사진 속에서 재즈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벤은 물가로 가서 연주하는 것을 점점 더 좋아하게 되었다. 코펜하겐 시절, 클럽이 영업을 마치면 그는 항구로 걸어가하얀 태양이 회색 바다 위로 솟아오를 때까지 그곳에서 연주했다. 바다는 완벽한 청중이었다. 그의 연주를 들어 주는 완벽한 귀 모든 음을 조금 더 깊게 만들어 주고 그 음을 좀 더길게 끌도록 만들어 줬다. 대양의 아침 햇살 속에서 혹은 초저녁에 흐르는 안개 속에서 뱃사람들은 정박한 배의 난간에기댄 채, 부둣가 사람들은 하역 일손을 멈춘 채 색소폰을 통해 항구의 분위기를 달래는 그의 연주를 들었다. - P147

그의 연주는 파도처럼 강하고 평화로웠다. 마치 육지라는 물결을 따라 떠돌다가집으로 향하는 커다란 배에 지나지 않는다는 듯 외치고 있었다. 바닷물은 부두를 찰싹였고 그는 필요한 만큼 느린 박자를 유지했으며 굵은 밧줄은 긴장감을 더하며 점점 더 팽팽해지고 있었다. 연주 소리를 듣고 온 갈매기 떼는 원을 그리다가느린 박자에 맞춰 그네를 타듯 날아다녔다. 어느 날 고래 두마리는 수면 위로 모습을 보여 주기 바로 전까지 올라와 물결과도 같은 블루스의 울음소리를 듣더니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꼬리를 내보이며 물결 밑으로 사라졌다. 벤의 연주를 대양의 깊은 곳으로 옮겨간 것이다. 누군가가 벤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했을 때 벤은 다른 종족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또 다른 - P147

종족에 대한 알 수 없는 일체감을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암스테르담에서 그는 녹음으로 우거진 어두운 운하에서도 연주했다. 영국에서는 첼시 다리를 도보로 건너 템스강 둑길을 따라 걸어갔는데 다리의 불빛은 맞은편에서 걸어가는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호의 가진 표정을 전달해 주었다. 가는세로줄 무늬 양복에 우산을 쓴 비즈니스맨, 스카프를 매고 하이힐을 신은 여자들. 그는 템스강을 내려다보았다. 이제는 너무 늙어 천천히 흐르고 있는 강물, 다리들은 강물의 방향이구부러져 시야에서 사라질때까지 계속 뻗어 있었다. 그때는저녁 퇴근 시간이었고, 모두가 펍에 모이거나 이파리가 떨어저 가지 사이로 노란색 불빛이 보이는 각자의 집으로 서둘러가는 시간이었다. 저녁은 푸른 밤안개 속에서 헤엄쳤고 가로등 빛은 강물을 따라 흘러 바다로 향했다. 우습게도 이 풍경은 그의 향수를 자극했다. 하지만 그가 그리워하게 된 장소는바로 런던이었다. 잉크처럼 푸른 하늘,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불빛, 이 모든 것 밑에서 흐르는 템스강의 길고 느린 하품. 이들을 바라보기만 했음에도 그것은 하나의 추억처럼, 마치 과거에 이 풍경에 대해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던 것 같은 느낌이든다.
- P148

그는 외로움과 함께 다녔지만 일종의 위로로서 자신의 사운드도 함께 지니고 다녔다. 색소폰은 그의 집이었다. 색소폰과 모자는 착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사는 곳이었다. 포크파이 해트와 트릴비는 늘 그의 뒤통수에 젖혀져 있었지만,
그것들은 마치 스컬캡 skullcaps 처럼 늘 그 자리에 붙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이 불굴의 모자가 여전히 머리 위에 있을때 그는 기분이 좋았다. 그것은 이제 그가 가장 밀착하고 있는 물건이고 오랫동안 멀리 떠난 자에게 주는 온기이며 자신의 침대에 누워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모자와 색소폰 하나의 전통. 결코 떠날 필요가 없는 그의 집. - P156

우리는 오솔길을 따라가다가 우리의 발자국을 다시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숲의 끝으로 향했다가 그를 본 거예요. 큰 몸집의 그는 외투로 몸을 감싸고있었고 머리 위에 얹힌 포크파이 해트는 너무도 어색해 보이더군요. 난 그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어요. 하지만 그 찰나에방해하고 싶지 않은 행복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평선 너머 구름 사이로 태양이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몇몇 나무들은 검은 실루엣이 되었지만 다른 나무들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었어요. 잎을 통해 떨어지는 옛 빗방울로 젖은 고요함이 숲을 가득 채우고 있었죠. 새들은 높은 나무 위에서 날아올라 들판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고요. 벤은 그 숲의 끝에 있었어요. 산 입구 문기둥에 기대어 멀리 농가에서 피어오르는연기가 들판 위를 지나고, 구름이 천천히 언덕 위를 넘는 것을 바라보면서 말이죠. 우리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그곳에 있었어요. 마치 이런 장소에서는 처음 보는 아름다운 새 한 마리와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말이죠.
사람들은 그의 음악이 제게 어떤의미인지를 물어요. 전그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날 오후가 떠올라요. 그날은 제게그의 음악과 같았어요.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게 전부예요. - P158

미국은 그의 얼굴에 계속해서 불어닥치는 폭풍이었다. 그가말하는 미국이란 백인들의 미국이었으며 백인들의 미국이란 그가 혐오하는 미국의 모든 것을 의미했다. 바람은 보통사람들보다 그를 더욱 강하게 때렸다. 사람들은 미국을 미풍微風이라고 여겼지만 그는 그 속에서 분노의 소리를 들었다.
심지어 나뭇가지도 조용하고 미국 국기가 별무늬의 스카프처럼 건물 한쪽에 드리워져 있을 때도 그에게는 분노의 소리가 들렸다. 그는 그 분노가 자신에게 돌진해 오는 강도로 고함을 쳤으며 그 분노를 향해 돌진했다. 두 개의 거대한 힘이대륙 크기의 길 위에서 서로 충돌했다. - P161

분노는 그를 떠난 적이 없었다. 심지어 그가 조용할 때도 분노의 불씨는 한순간에 폭발할 듯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가침묵하고 있을 때도 그의 머리는 소리치고 있었다. 그조차도자신이 왜 이러는지, 왜 이런 방식을 택하는지를 몰랐지만,
다른 방식이 아니라 이렇게 해야 하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분노는 에너지의 한 형태였고 그를 쓸고 지나가는 불길의 일부였다. 그것이 바로 그의 몸이 점점 더 커지는 이유였고 그는 자기 내부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담으려고 했다 물론자신을 전부 담으려면 그는 빌딩만 한 몸을 가져야 했겠지만 그는 매 순간마다 온도가 급격하게 변하는 어떤 나라와 같았다 물론 온도가 어떻든 그것은 끓고 있었지만 끓는 추위, 끓는 더위, 끓는 비, 끓는 얼음. - P162

그의 몸에는 고유의 날씨가 있었다. 몇 달을 주기로 형태가바뀌었고 갑자기 50파운드(약 23킬로그램)가 쪘다가 다시 빠르게 몸무게가 줄었다. 가끔 뚱뚱했고 간혹 건장한 체격을갖고 있을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늘 몸이 점점 커졌고 그의몸은 오래된 스웨터 같은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그는 다이어트를 시도하고 치료약도 먹었지만 일상적으로 서너 끼의 식사를 하룻저녁에 해치웠다. 한 끼 식사는 사이드 메뉴, 추가 메뉴로 접시가 탑처럼 쌓였고 식사는 아이스크림 서너 그릇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는 아이스크림을 충분히 먹었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무슨 맛이든, 어떤 제조법이든 상관이 없었다. 그는 다이어트로 40파운드(약 18킬로그램)를 한 번에 뺐지만 그 누구도 그의 몸이 변했다는 사실을알아차리지 못했다. 마치 집 한 채만 한 도서관에서 얇은 책몇 권을 뺀 것과 같았다. 각자 고유의 사운드를 찾아야 하며그래서 각자 고유의 크기를 가져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전통은 ‘크면 클수록 좋다‘고 명했다. 몸무게는 그를 결코 느림보로 만드는 법이 없었다. 그는 뚱뚱해질수록 더욱 치열해졌고터질 만큼 꽉 찬 여행 가방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의 삶에 비해 그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그에비해 삶은 미미하고 하찮았으며 그보다 몇 사이즈 작은 재킷처럼 움직일 때마다 찢어져 버릴 듯했다. - P163

밍거스 밍거스 밍거스, 그것은 명사가 아니라 하나의 동사였다. 심지어 생각마저도 행동의 한 형식, 내면화된 운동의한 형식이었다.
그는 점차 자신의 악기가 갖고 있는 무게와 차원을 떠안았다. 그의 몸은 너무 거대해져 베이스가 마치 침낭처럼 무게를 가늠할 수 없이 어깨에 간단히 매달린 물건처럼 보였다. 그가 커질수록 베이스는 점점 더 작아졌다. 그는 베이스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가지고 놀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조각하듯이 베이스를 연주한다. 다루기 힘든 돌을 깎아서 음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밍거스는 마치 레슬링을 하듯 연주한다. 베이스를 가까이에 놓고 그 안으로 파고들어, 베이스의 목을 잡고 내장을 거둬 내듯 현을 뜯는다. 그의 손가락은 펜치처럼강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엄지와 검지로 벽돌을 쥐고서 힘을 주자 벽돌에 움푹 파인 자국이 생기는 것을 봤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누구도 소유한 적이 없는 땅에서 자란어느 아프리카 꽃의 분홍색 잎사귀에 벌이 날아와 앉듯이 부드럽게 현을 다뤘다. 그가 베이스를 활로 켜면 교회 예배에서수천 명의 사람이 들려주는 콧노래와 같은 소리가 났다.
밍거스 핑거스. - P164

사진 속의 밍거스는 앉아 있었다. 그가 의자에 앉아 있는모습은 지나친 힘에 눌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하지만 밍거스에 관한 모든 것은 과잉이었다. 그는 『뉴욕타임스The NewYork Times 를 들고 아무 데나 펼친 뒤 쭉 펼쳐 놓고는, 자신이신문을 바라보는 것이 늘 그렇듯 ‘이건 무슨 개똥 같은 소리야‘라는 눈빛으로 보고 있다. 그는 신문을 참을성 있게 읽지않았다. 마치 상대의 옷깃을 잡듯 두 손으로 신문을 움켜쥐고여기저기서 몇 줄을 골라 읽다가 앞뒤 건너뛰고, 한 부분에서잠시 멈췄다가 한 단락 천체를 훑어보고 다시 앞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그는 한 기사를 네댓 번 읽었음에도 제대로 읽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난독증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마는주름이 잔뜩 잡혀 있었고 입술은 노인이 어떤 말을 들었을 때처럼 그 단어를 발음하기 위해 입 모양을 만들려는 모습이었다. 의자는 그가 움직일 때마다 삐거덕거렸다. 신문을 보면서는 계속해서 도넛을 먹었는데 두 쪽으로 쪼갠 것을 한 손에쥐고 마치 뱀이 새를 잡아먹듯 한 조각씩 입으로 던져 넣고는씹어 삼켰다. 그러고는 커피로 입안을 가신 뒤 신문에 떨어진부스러기를 쓸어내렸다. 다 읽은 뒤에는 역겹다는 듯, 마치 더이상 읽는 것을 단 한 순간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 P165

누구도 밍거스를 참고 견딜 수 없었고 밍거스 역시 누군가에게 혹은 그 무엇에게도 참고 견디기를 거부했다. 그는 자기 방식에 무엇도 개입할 수 없다고 마음먹었다. 그 무엇도.
그렇게 진행된 그의 삶은 일종의 장애물 코스였다. 만약 그가배를 타고 있었다면 그 배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것과 같았다. 그 무렵 자신의 행동이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 깨달았을 때, 이미 그의 행동들은 기이한 방식으로 그 값을 전부 치르고 있었다. - P167

밍거스에게 모순은 존재하지 않았다. 벌어진 일 혹은 그가말한 것은 자동적으로 진실함을 부여했다. 아울러 그의 음악은 모든 구분을 폐지하기로 서약했다. 작곡된 것과 즉흥적인것, 원시적인 것과 세련된 것, 거친 것과 부드러운 것, 공격적인 것과 서정적인 것. 사전에 편곡된 것은 반사적인 즉흥성을 반드시 갖고 있어야 했다. 그는 음악의 뿌리로 돌아가서음악의 진보를 만들고 싶었다. 가장 미래 지향적인 음악은전통을 가장 깊이 파 들어간 음악이었다. 그것이 그의 음악이었다. - P167

그래서 사람들은 버드, 호크, 레스터 영을 어디서든 들을 수 있다. 에릭은그들만큼 광범위하게 들을 수는 없겠지만 어디선가 누군가는 늘 그를 부를 것이고, 그 부름이 간절하다면 에릭은 대답하고 그것이 들리도록 할 것이다.
에릭 에릭 에릭.
밍거스가 죽었을 때 우리는 그를 듣기 위해 그토록 간절히 그를 부를 필요가 없을 테다. 모두가 해야 할 일은 베이스를 집어 드는 것. 그곳에 밍거스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디아니 Johnny Dyani, 홉킨스 Fred Hopkins, 헤이든Charlie Haden의 연주 속에서 밍거스를 들었다. 그를 통해 페티퍼드OscarPettiford, 블랜턴Jimmy Blanton 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던 것처럼.
그래서 밍거스는 그의 아들에게 에릭 돌피 밍거스라는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것은 추모가 아니라 기대였다. - P186

그래서 점점 더 피아노에 의존했다. 하지만 이내 그의 손가락은 건반을 치기에도 너무 경직되어 버렸다. 연주가불가능하자 그는 작곡에 더욱 몰두했다. 그는 마일즈와 달랐다. 마일즈는 음악을 들으면 자기 머리에 있는 것을 악기로 간단하게 옮겼다. 밍거스는 음악을 완성하기까지는 그 음악이들리지 않았다. 작곡은 소리 없는, 관중 없는 연주였으며 그래서 작곡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연주를 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연주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중이었다. 밍거스의 음악은 바로 밍거스였다. 그 음악의 움직임은 단순히 그의 움직이었고 그가 움직임을 잃기 시작하자 음악도 운동량을 잃기 시작했다. 그의 음악은 거대하고 움직이지 않는, 하나의 명사가 되었다. - P191

태양이 그를 녹여 주기를, 그의 피 흐름을 막고 있는 얼음 덩어리를 풀어 주길 바라면서 그는 멕시코로 여행을 갔다. 그는 사막의 고요한 열기로 둘러싸여 태양 아래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엔 커다란 솜브레로sombrero‘의 책으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육체는 너무도 고요해 그는 자신이 숨을 쉬고있다는 것마저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무엇도 움직일 수 없었다.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 구리 심벌즈였다. 태양은 바람한 점 없고, 모래 한 알 꿈쩍하지 않는, 변하지 않는 하늘에3일 동안 같은 자리에 매달려 있었다. - P195

이것이 그가 늘 연주해 온 방식이며 그는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는 한 음을 연주할 때마다 그 음에 작별을 고했으며 때때로 그 작별 인사마저도 하지 않았다. 늘 사랑받아온, 사람들이 연주되길 바라는 오래된 노래들이 있다. 연주자들은 그 곡들을 끌어안고 새로운 느낌, 신선함을 부여한다.
하지만 쳇은 그 노래에 상실감을 안긴 채 내버려둔다. 쳇이 연주할 때 그 곡은 위안이 필요했다. 감정으로 둘러싸여 있는것은 그의 연주가 아니었다. 그 곡 자체가 상처의 느낌을 갖고있었다. 음 하나하나는 그와 함께 좀 더 머물도록 애를 쓰며그에게 애원했다. 노래 자체가 그 연주를 듣고 있는 누군가에게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제발, 제발, 제발.
- P201

그래서 그의 연주를 들으며 이 노래에 담긴 아름다움이아닌 지혜를 깨닫는다. 그 곡들을 한데 모으면 한 권의 책처럼 마음에 대한 꿈의 안내자가 된다. <안녕이라고 말할 때마다Every Time We Say Goodbye>, <당신과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믿을 수 없어요! Can‘t Believe You‘re In Love With Me〉, 〈오늘 밤 당신의 모습 The Way You Look Tonight>, <내 마음속에 왔어요 YouGo To My Head〉, 〈난 너무 사랑에 쉽게 빠져요! Fall In Love TooEasily>, <당신 같은 사람은 없을 거야There Will Never Be AnotherYou〉, 이것으로 완벽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소설을 합쳐도 남녀에 관해, 그들 사이에 떠 있는 별 같은 섬광의 순간에 대해이 노래들보다 더욱 잘 이야기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른 연주자들은 정교화하거나 변형시킬 수 있는 악절과선율을 위해 옛 노래들을 탐색한다.  - P201

자신이 아니라 가죽 코트를 입은 한 노인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거울로 가까이 다가가자 그를 향해 발을끌면서 걸어오는 그 남자의 보다 자세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굴에 그어진 나무껍질 같은 주름, 수염, 길고 가느다란 머리카락, 먼발치의 지평선을 바라보는 듯한 멍한 눈동자 그가 인도 끝으로 다가가자 노인 역시 그렇게 했다. 지나가는 차들을 가만히 쳐다보았고 이전에 유럽에서 본 나이 든여인들의 모습처럼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고난과 아픔에 있는 그 여인들도 표정은 그들을 편안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입술을 다물면 고통은 그 안에 있었고 그것이 울음으로 터져 나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왜냐하면 울음이 나왔을 때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상처받았는가를 인정해야 했고그건 참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인지 판단한 그는 노인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동시에 벌어지는 그의 움직임, 거울 속 몸짓을 지켜보았다. 지나간 일들이얼마나 중요했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했기 때문에, 그는 심지어 생각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는 매섭게 부는 바람을 향해서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 P205

노래들은 그들의 복수를 담고 있었다. 쳇은 때가 되면 계속해서 그 곡들을 버렸지만 늘 다시 그 곡으로 돌아가곤 했다.
자신이 원할 때 그는 그 곡을 골라 단 몇 마디의 속삭임만으로도 그 곡을 울게 만들었지만 이제 그 곡들은 아무런 느낌이 없었고 그의 연주를 통해 아무런 감동도 남기지 않았다.
그는 트럼펫을 들었지만 단 한 숨도 불어넣을 수 없었으며,
갈수록 가사가 있는 노래를 불렀지만 그의 목소리는 아기의머리칼처럼 성기고 연약했다. 때때로 그는 자신의 옛 노래들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려 했고 그 곡들은 그전에 느꼈던 감정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과 호흡은 곡을 얼마나쉽게 장식해 주었던가. 하지만 이제 그 곡들은 쳇에게 애처로움만을 느꼈다 - P216

고통은 그곳에 없었다. 어떻게 하다가그러한 소리가 났던 것뿐이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그는 그러한 소리를 냈던 것이다. 조금 빠르고, 조금 느리게,
하지만 늘 같은 그루브로 한 가지의 정서, 한 가지의 스타일,
한 가지의 소리. 단 한 가지 변화가 있었다면 그의 쇠락, 기교의 퇴화에서 발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운드의 퇴화도 그의 음악을 고양시켰다. 만약 그의 기교가 그에게 가해진 손상을 견뎌 냈더라면 그가 불어넣은 정서의 환영은 없을 것이기때문이다.
그의 삶에서 파기된 약속, 허비된 재능, 소모된 능력이 몰고 온 비극에 주목했던 사람들도 역시 틀리기는 마찬가지다. 그에게는 재능이 있었으며 진짜 재능은 허비되지 않고 완전히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자만이 재능을 낭비한다. 하지만 자신이 수행할 수 있는 것그 이상을 약속하는 특별한 종류의 재능도 있다. 여기에는 비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것이 쳇이 했던 방식이고 그래서 우리는 그의 언주 속에서 조용한 긴장을 듣게 된다. 약속. 그것은 늘 영원히 계속됐을 것이다. 설사 그가 그토록 많은 주삿바늘을 꽂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 P218

자신이 태어난 오클라호마 어디에든간다면, 사막에 있는 바위가 되면 어떨까 그는 상상해 봤다.
바위는 죽은 게 아니었다. 그것들은 다른 무엇인 양 행세하면서 대양의 바닥에 누워 있는 물고기의 육지 버전이다. 바위는행위로부터 사물이 되고자 열망하며 명상하는 구루guru이자불자였다. 열기의 물결은 사막이 숨을 쉬고 있다는 징표였다.
타일이 반짝이는 욕실에서 그는 거울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그 무엇도 반사되지 않았다. 그는 거울 바로 앞까지 다가가 정면을 응시했지만 자신의 모습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고 그의 뒤에 걸려 있는 두텁고 하얀 수건만 보였다. 그는 미소를 지었지만 거울은 응답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두려움 같은 것은 없었다. 그는 흡혈귀나 좀비를 떠올렸지만 생명이 없는 영역 안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거울을 응시했고 전 세계의 음반과 잡지에 실린 수백 장의 그의 사진들을 떠올렸다. 그는 거실 테이블로 가서 몇 해 전 LA에서 클랙스턴이 찍은 사진을 표지로 담은 음반을 찾아냈다.  - P220

겠다고 여러 차례 내동자유로로 들어설 즈음에 핏속으로 빠르게 도는 헤로인에 의해 그의 정맥은 밝은 빛을 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위장안에서도 빛이 나는 것 같았으며 시야는 밝아졌다. 맨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차를 몰다가 속력을 내면서 느린 차들을 앞서가기 시작했다. 몸이 타오르는 느낌이 들자 창문을 내리고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가는 뜨거운 바람을 맞자 젖어 있던 그의얼굴은 금세 말랐다. 코끝에서 무릎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을즐기면서, 달려오는 푸른 공기를 느끼면서 그는 자유로를 따라 빠르게 차를 몰았다. 타이어는 잿빛 함성을 질러 댔고 차의 흰색 천장은 춤을 추었다.  - P229

색소폰의 음색은 긴 햇살처럼 맑았으며 그림자처럼 선명했다. 그는 자동차의 배기 소리보다 더 커지도록 라디오 볼륨을 높였고 자동차 서랍을 뒤져 먼지 낀 선글라스를 꺼내어 쓰고 깊은 녹색광선을 즐겼다. 그 속에서 색소폰 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밝고 아름다운 은빛 질주를 들려줬다 마치 쾌청하면서도 더운 날, 새들이 아무런 소리도 없이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따라 그는 차를 꺾었다. 느리게 커브를 돌면서 곁눈질로 태평양을 바라보았다. 곡선 차로가 끝나자 곧게 뻗은 푸른 대양의 거대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다리는 그 위로 저물고 있는 태양을 떠받치고 있었고 파도는 마치 갈매기 떼를 덮치려는 듯 바위와 모래사장 위에서 부서지고 있었다. - P230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운동장에서 그의 음악을 듣고 있다는사실이 느껴진다. 운동장에 수감자들이 흩어져 있는 방식에서 공간의 완벽함이 엿보인다. 비록 그는 여전히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지만 그것은 마치 점점 더 장벽 안에 갇히게 되는,
움직일 공간마저 줄어드는 무엇처럼 느껴진다. 결국에 그 선율이 할 수 있는 것은 통곡하는 것, 작은 감옥 벽에 머리를 부딪고 흐느끼는 누군가가 되는 것뿐이다. - P258

뒤틀린 음들의 일진광풍이 불었지만 솔로로 나갈 것 같은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누구도 움직이지 않는다. 죄수들은있던 그 자리에, 아트의 주위에 그냥 서 있다. 그는 캔버스에쓰러졌다가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는 권투 선수처럼 보인다.
마치 부러진 이처럼 불분명한 음들을 뱉어 내더니 심판의 카운트를 사다리로 삼아 자신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다. 죄수들은 듣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의 음악이 고귀한 것은 아니지만 위엄, 자기 존중, 자부심 혹은 사랑보다 더 깊은, 영혼보다 더 깊은 무엇에 관한 것임을 알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육체의 복원이다. 지금으로부터 세월이 흐른 후 그의 육체가 계속되는 고통의 저장고가 되어 갈 때 아트는 이날의 교훈을 떠올릴 것이다. 일어설 수 있다면 연주할 수 있고, 연주할 수 있다면 아름답게 연주할 수 있다. - P258

그런데 순간적으로 그는 비틀거린다. 무엇을 연주하고 있는지 잊은 채, 카운트의 여덟, 아홉 번째 난간을 붙잡는다. 그러더니 모든 것을 불러 모아 가장 높은 음을 향해 오른다. 결국 그 음에, 아주 정확하게, 도달한다. 깨끗하게 날아오른다.
도약의 가장 높은 곳에서, 중력이 다시 작동하기 전에, 완벽한무중력의 순간, 찬란하고 명징하고 고요한 순간이 온 것이다.
그러고는 다시 떨어진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면서 블루스의 깊은 탄식 속으로 잦아들면서 수감자들은 지금까지의 연주가 내내 무엇이었는지를 깨닫는다. 추락하는 꿈. - P259

부서질 수 있는지를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 동시에 침묵은 가시적인 것이다. 시간에 포착되어 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장소에 침묵이 존재하도록, 시간이 멈추도록 하기 위해서다. 뭔가는 반드시 침묵을 깨뜨린다. 그러면 시간은 다시 흘러간다. 교도관들은 갑자기 생성된 바리케이드와 같은 순간이 쌓여 가면서 긴장이 고조되어 감을 느낀다. 바리케이드를 통과하려고 하면 폭동을 유발할지도 모른다. 침묵은 군불을 땐다. 그 시간이 길수록 열기는 높아간다.
그보다 과격한 폭력은 결국 소음으로 폭발해서 터져 나올 것이다. 침묵은 금속과 고함과 불꽃의 굉음이 된다. 소총 안전핀을 제거하는 소리만으로도 폭동을 촉발하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마치 시계 초침의첫움직임처럼 작동해 현실을 일깨우고 시간을 흐르게 한다. 침묵은 천천히 넓어져 가는 지평선,
멀리 보이는 풍경과도 같으며 교도소의 벽을 무의미하고 사소한 것으로 만든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상관없는 존재처럼되어 버린 교도소장이 사무실에서 나와 그늘 속에 조용히 서있다.
- P260

그러니까 그가 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 최소한으로 의식할 때 최고의 연주가 나온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지점에 이르자 연주는 테크닉에 대한 자연스러운 망각 상태가 되었다. 이제, 자신의 만년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는 음악에 완전히 몰두하는 단계에 이르렀고 자신에 대한 의식을 일상적으로 벗어나 거의 자동적으로 스스로를 넘어서서 연주한다. 모든 음이 블루스의 위안을 담고 있으며 심지어 단순한 악절도 마치 위대한 진혼곡처럼 듣는 이의마음을 찢어 놓는다. 이 점을 인식하자 그는 오랫동안 의아해하고, 의심하고 갈망해 온 점에 대해 확신에 가까운 것을 느낀다 인생을 조졌던 행위에도 불구하고 그의 재능은 탕진되지 않았다는 것.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유약함은 그에게 핵심적인 면이었다. 연주에서 그것은 힘의 원천이었다. - P261

모던 재즈의 역사는 이처럼 병실에서 생을·과장과 면마감하는 연주자들의 역사다. 흰색 벽과 의료진의 가운은 어둠과 음악으로 채워진 밤의 세계를 부정하는 듯하다. 심지어의사가 이야기하는 중에도 아트는 그가 말하는 내용을 잊어버린다. 일분마다 몇 초씩 잠이 드는 것 혹은 그렇게 해서 시간 속에서 몇 장면씩을 도려내는 것과도 같다. 그는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해 왔다. 그래서 마치 하루의 시간 리듬이 빨라져서 의식이 있는 몇 분과 30초 동안의 잠이 수시로 반복된다. 깜빡거림. 코카인, 헤로인, 메타톤 그리고 싸구려 와인 하루 4리터. 결국 그의 몸은 남용으로 금이 가고 그들에게 지배된다. 병과 수술은 그에게 손상과 공포를 남겼다. 비장脾臟은파열되어 들어냈고 그 후에도 폐렴, 탈장, 간 질환, 위 손상이이어졌다. 배는 부풀어 올랐다. - P262

의사는 화가 난 듯이 그를 쳐다보다가 한숨을 뱉고서는지금 자기 입장에서 더 이상 노력해 봤자 결국 쓸모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의사는 이 사람이 실질적으로 사고 정지의 가수면 상태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면담은 의사의 의자가 리놀륨 바닥 위에서 소리 없이 뒤로 미끄러지면서 끝났다. 진료기록을 뒤적이는 것은 회의장악수처럼 형식적인 행동이다. 그는 조용히 앉아 있던 부인에게 몇 가지를 설명한다. 부인은 남편이 지금이 몇 월인지를 모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라도 된다는 듯 매번 미소만을 짓고 또 지었다. 반면에 환자 자신은 다시 좀비가되어 방 안을 훑어보고 있다.
의사는 평소보다도 더욱 알아보기 힘든 글씨로 공책에몇 가지를 휘갈겨 적는다. 그 가운데는 이 환자가 녹음했다는음반 몇 장을 잊지 말고 들어 봐야 한다는 메모도 포함되어있었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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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예술의 창조자는 반신반인의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실수투성이인 인간들이다. 강박증과 손상된인격을 가진

-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Adorno


우리는 오로지 우리 자신만을 듣고 있다.

-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

오래전에 나 자신이 관습적인 비평 같은 것에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음을 알았다. 내가 떠올린 것을 일깨웠던 은유와 직유는 음악 속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점점부족함을 느꼈다. 더욱이, 가장 간단한 직유마저도 허구의 기미를 만들어 냈기 때문에 머지않아 은유는 한 편의 이야기와장면으로 확장되어 나갔다. 그럼에도 동시에 이 장면들은 하나의 곡 혹은 음악가의 특별한 성격에 대한 기록이 되기를 의도했다. 그러니 이제 당신이 읽게 될 내용은 허구인 동시에 상상적 비평이라고도 할 수 있다. - P9

유화는 브리튼 전투나 트라팔가 해전을 묘사할 때마저도 기이하게 고요함을 남긴다. 반면에 사진은 빛뿐만이 아니라 소리까지도 느끼게 한다. 좋은 사진은 보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들리는 것마저 갖고 있다. 사진은 훌륭할수록 그 안에서 소리가 들린다. 최고의 재즈 사진은 사진 속 주인공이 내는 소리로 가득 차 있다. 버드랜드 무대에 선 쳇 베이커를 찍은 캐럴 리프Carol Reiff의 사진에서 우리는 작은 무대의 프레임 안에 담긴 연주자의 소리만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나이트클럽에 깔리는 잡담 소리, 유리잔을 부딪는 소리까지 듣게 된다. 비슷하게 힌턴의 사진에서는 벤이 신문을 넘기는 소리와피 위가 다리를 꼬면서 내는 바스락거리는 옷 소리를 듣는다.
만약 우리에게 사진을 해독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우리의상상을 계속 펼치거나 사진이 실제로 들려주고 있는 소리를더 이상 들을 수 없을까? 혹은 심지어 최고의 사진이 보여 주고 있는 한순간을 넘어서, 그것이 그전부터 말해 왔거나 지금막 말하려던 점도 보거나 듣지 못하게 되는 걸까? - P14

길 양쪽 들판은 밤하늘처럼 어두웠다. 들판은 아주 평평해서만약 당신이 차고에 서 있다면 자동차 불빛이 지평선 위의별처럼 보일 것이다. 그 불빛은 한 시간가량 당신을 향해 달려오다가 빨간 미등尾을 보이며 동쪽으로 유령처럼 사라진다. 나지막이 들리는 자동차 엔진 소리를 빼면 소음은 없었다. 어둠은 너무도 한결같아서 불빛에 흔들리고 있는 뻣뻣한밀밭을 전조등이 큰 날로 획 베어 가듯 스치며 지나갈 때운전자는 비로소 자신이 길 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동차는 빛의 경로를 밝히며 길 한쪽의 어둠을 제설기처럼 밀고 나간다. 생각이 스르르 무뎌지며 눈꺼풀이 무거워짐을 느끼자 그는 자신을 깨우기 위해 억지로 눈을 깜박이고 다리한쪽을 문질렀다. 그는 일정하게 시속 50마일(시속 80킬로미정도)로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차창밖 풍경은 너무도 광활하고 변할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 차는 더 이상 움직이지않는 듯 느껴졌다. 달을 향해 조금씩 이동하고 있는 우주선처럼・・・・・・  - P19

- 어디 가서 곧 아침 드실 수 있도록 차 세울게요.
- 곧?
- 한 200마일쯤 가서요.
듀크는 웃었다. 그들은 시간을 시간 단위가 아니라 마일로 셌는데, 오줌 한 번 누고 다음에 커피 한 잔을 마시려고 차를 세울 때까지 종종 지나가게 되는 100마일(약 160킬로미터)을 큰 단위의 거리로 삼고 있었다. 200마일이면 첫 배고픔이밀려오고 뭘 먹으려고 다음에 정차할 때까지의 거리였다. 심지어 50 마일쯤에 한 장소를 만나더라도 그들은 그냥 지나쳐서 달렸다. 정차는 너무도 바라는 일이었지만 멈춰 봤자 원하는 만큼 될 리 없었다. 결국 원하는 대로 차를 멈추는 건 한없이 연기되었다.
- 도착하면 깨워 줘.
좌석 끝과 문틈에 그의 모자를 베개 삼아 구겨 넣으면서듀크가 말했다. - P22

어디에서인가부터 들려오는 긴장 때문이었다. 그가 색소폰을 한쪽으로 기울여 솔로로 깊게 빠질 때면, 색소폰이 수직으로부터 점점 더 기울어져 나중에는 마치 플루트처럼 수평으로 들렸다. 사람들은 그가 악기를 들고 있다는 인상을 전혀 받지 않았다. 오히려 악기가 점점 더 가벼워져 그로부터 떠다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그러기를 바랐던 것처럼 그는 악기를 잡아 내리려고 하지않았다. - P26

재즈란 한 사람의 독자적인 소리를 만드는 일에 관련한다. 누군가와 다른 길을 발견하고 그다음 날 밤에는 결코 전날 밤과 똑같이 연주하지 않는 것이 재즈다. 반면 군대란 모든사람을 동일하게, 구분할 수 없게, 유사한 모습으로, 비슷한생각으로, 모든 것은 그날과 그다음 날에도 같게 남게 하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게 만들기를 원한다. 모든 것은 올바른 각도와 날 선 모습으로 있어야 한다. 레스터의 침대 시트는 그의사물함의 금속 앵글처럼 단단히 접혀 있었다. 그들은 병사들의 머리를 나무 블록을 자르듯이 깎아 완전한 사각형을 만들려고 했다. 심지어 군복은 신체를 개조해 사각형 인간을 만들려는 듯 디자인되었다. 곡선과 부드러움이란 없었고 색깔과고요함도 없었다. 2주라는 시간 속에서 한 사람이 완전히 다른 세계에 온 자신을 갑자기 발견하는 것은 믿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 P29

하지만 강력한 당신, 바로 군대는 그들을 꺾어 버린다. 그러나 약함, 그것은 군대가 마주할 때 무력해지는 존재다. 왜냐면 그것은 힘에 의존한 대립의 개념에서 멀리 떨어져있기 때문이다. 나약함을 상대로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상대에게 고통이 될 뿐이다. 그리고 영은 그 고통에 휩싸여있었다. - P35

그는 이야기했고 드문드문 사람들이 앉아 있는 작은 법정은 그를 주목하고 있었다. 뻣뻣한 자세의 청중이었지만 그들은 그의 모든 말에 귀를기울였다. 마치 솔로연주처럼 그것은 한 편의 이야기여야 했고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노래여야 했다. 그가 말하는 것에 사람들이 집중하기가 어려울 때면 그의 말은 더욱 느려지고 조용해지고 뜸을 들이다가 문장 중간에서 멈춰 섰다. 그의목소리가 부르는 노래는 사람들을 매혹하고 설득했다. 갑자기 청중의 집중은 유리잔이 맞부딪히는 소리, 얼음통에서 달그락거리며 얼음을 퍼내는 소리,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사이로 이야기 소리가 들릴 것처럼 영에게 익숙하게 느껴졌다. - P49

죽음은 더 이상 변방에 있지 않았다. 그가 종종 침대에서창가로 걸어오는 구간에서, 그가 지금 어느 쪽에 있는지 알지못하는 그 순간에도 떠다니고 있는 무엇이었다. 가끔 자신이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자기를 꼬집는 사람처럼영은 자신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기 위해 맥박을 느끼려고 했다. 보통 그는 자신의 맥박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손목에서도, 가슴에서도, 목에서도. 더 귀를 기울일 때면 먼 곳에서 열리고 있는 장례식의 낮은 북소리 혹은 지하에 묻힌 누군가가눅눅한 땅바닥을 두드리는 것 같은 둔중하고 느린 고동 소리가 들렸다. - P54

밴드 멤버 중에 누군가가 솔로를 연주할 때면 그는 일어나서춤을 추었다. 조용하게 발장단을 맞추고 손가락을 튕기다가무릎과 팔꿈치를 들어 올려 돌리고, 머리를 흔들고, 팔을 편채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늘 금세 넘어질 것처럼 보였다.
그는 한 지점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일부러 어지러움을 느끼면서 휘청거리며 피아노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그가 춤을 출때면 웃었는데 그것은 센 술을 처음 맛본 곰처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그에게 가장 적절한 반응이었다. 그는 재미있는 사람이었고 그의 음악도 재미있었으며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뱉는 말은 대부분 농담이었다. 그의 춤은일종의 지휘였으며 음악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는 방식이었다. 그는 곡의 내부로 들어가야 했다. 그 음악은 자신의 일부였으며 그것을 내면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목재를 드릴로 파고드는 것처럼 그는 자신의 음악으로 작업해 들어갔다.  - P69

멍크의 음악을 정확히 듣기 위해서는 그를 봐야 한다. 그의밴드에서 가장 중요한 악기는 편성이 어떻든 간에 그의 몸이다. 실제로 그는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았다. 그의 몸이 악기였으며 피아노는 그가 원하는 비율과 양으로 그의 몸이 뿜어내는 소리의 수단일 뿐이다. 몸만 빼놓고 모든 것을지운다고 해도 우리는 그가 드럼을 연주하는 것을 상상할 수있다. 그의 발은 하이해트hi-hat‘를 계속 움직이고 있으며 양팔은 서로 엇갈리며 움직인다. 그는 육체의 음악의 모든 여백을 채워 넣고 있다. 그를 보지 않으면 그 여백은 빈 공간처럼들리지만 그를 보고 있으면 심지어 피아노 독주도 사중주처럼 꽉 찬 소리를 얻는다. 눈은 귀가 놓친 것을 듣는다. - P70

재즈에는 마음대로 연주하는 것이라는 환상이 존재하고, 멍크는 마치 이전에 피아노를 본 적도 없는 사람처럼 연주했다. 발꿈치를 이용해 모든 각도에서 건반을 내려치고 마치카드 한 묶음을 다루듯이 건반을 훑어버리거나, 만지기에는건반이 너무 뜨겁다는 듯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그의 손은 하이힐을 신은 여성처럼 건반 위를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클래식 피아노의 방식으로 보자면 이는 잘못된 연주다. 모든 것은 예상과는 달리 구부러지고 비스듬한 모양이었다. 그가 만약 베토벤을 연주했다면 악보를 정확하게 지키면서도건반을 치는 방식, 손가락이 건반에 닿는 각도를 불안정하게함으로써 그 곡이 스윙하게 만들고 곡의 내부를 뒤집어 멍크 - P71

연주할 수 없는 많은 종류의 곡이 있다는 점에서 기술적으로멍크는 제한된 연주자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것을 연주할 수 있었으며 기교가 그에게 제약이 되지는 않았다. 확실히 그 누구도 멍크의 작품을 그가 연주하듯이 치지못했으며 (피아노를 정석으로 연주하면 표현할 수 없는 미세한온갖 것들이 그의 작품에 존재한다), 그만큼 그는 누구보다도기교적이었다. 공평한 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지만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전혀 생각할 줄 몰랐으니까.
그는 마치 방금 전에 친 음에 놀랐다는 듯이 모든 음을연주했다. 마치 건반 위의 손가락에서 나오는 모든 음은 오류를 수정하는 것 같았고, 그 타건 역시 차례대로 수정되어야할 오류가 되어 곡은 결코 의도했던 방식으로 끝나지 않을 듯보였다.  - P72

그의 손가락은 늘 자기자신에게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하나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었고 그것은 멍크의 독특한 논리였다. 다시말해 누군가가 거의 예상하지 못했던 음을 연주하면 그 곡은처음 예상과는 뒤바뀐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곡의 핵심에서아름다운 멜로디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뒤집혀 잘못 짚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의 음악을 듣는 일은 꼼지락거리는 누군가를 지켜보는 것과 같았으며, 그가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꼈다. - P73

멍크의 음악이 늘 스스로 무너질 듯 들리는 것처럼, 한순간에 무너질 것같이 보이는 다리의 모습은 흥분을 안겨 준다.
그의 음악을 그저 기발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기발하다는 말로는 차이를 설명할 수 없다. 기발하다는 것은 낮은 판돈이다. 하지만 멍크는 높은 판돈을 건다. 그의 음악은 위험을 감수했으며 기발하다는 것에는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색다른 점을 느낄 때 기발하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멍크의 음악보다 기발한 것은 보기드물다. 멍크는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이든 자기 요구와 논리로 만들어 놓은 원칙의 수준에 올려놓았다. - P74

사물들 사이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했던 날들도 있었다.
그때 하루를 지내는 문법과 사건들을 이어 주는 구문론은 몸땅 무너져 있었다. 단어와 행동 사이의 관계를 잊어버려 문을통해 들어가는 일 같은 간단한 것조차도 알지 못해 아파트의방들은 미로가 되었다. 그는 사물을 사용하는 방법을 기억하지 못해, 사물과 그 기능이 자동적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방에 들어갈 때는 문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란 듯 보였다.  - P78

마지못해 아파트로 돌아오면서 그는 넓게 트인 강물의 줄기 너머로 해가 지는 것을 보기 위해 허드슨강을 따라 걸었다. 허기진 바람이 담배 연기를 냉큼 집어삼켰다. 멍크는 델리를, 또한 그녀를 위해 쓰고 있으며 누구도 손댈 수 없는 개인적인 피아노 작품을 떠올렸다. 쓰기 시작하면 그 곡은 곧 마무리 될 것이다 그는 아무런 즉흥 연주도 없이 무반주로, 쓴그대로 이 곡을 연주하고 싶었다. 그는 빌리가 변하는 것을원치 않았고 그녀를 위한 이 곡도 바뀌지 않기를 원했다. 강건너편을 바라보자 황갈색 석양이 튜브에서 짜낸 물감처럼강과 하늘이 맞닿은 선을 타고 번지고 있었다. 몇 분 동안 하늘은 빛이 사라질때까지 어두운 노란빛으로 물들었다.  - P84

왜냐하면 지금 사람들은 스스로가 참을 만한 절망이 반복되는일상의 일부분, 일상 속에 녹아든 모든 시간의 압축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후회할 수도 있고 동시에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을 수도 있는 시간 그때 모든 남자가 오직 바라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설사 지구 반대편에 있을지라도 자신을 떠올리는 누군가의 존재입니다. 한 여인이 눅눅하게 젖어 내려가는 도시를 느끼면서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라디오의 음악을 들을 때 그녀는 노란빛으로 물든 창문 너머에 존재하는 삶들을 바라보며 상상합니다. 싱크대 앞에 선 한남자를, 텔레비전 앞에 모인 한 가족을, 커튼을 치는 연인을,
라디오에서 나오는 같은 곡을 들으며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 누군가를 말이죠. - P98

그가 느끼고, 만지고 본 모든 것에 관해 오케스트라로 쓴 일대기였다. 그는 소리의 작가였으며 그가 작업 중-인 것은 거대한 음악적 소설이었다. 그것은 늘 보태져야 할것이 있으면서 궁극적으로는 그 자체에 관한, 그 곡을 연주하고 있는 밴드의 동료들에 관한 것이었다…………비는 잠시 잦아들다가 곧이어 전보다도 더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자동차 앞창으로 내다보는 것은 폭포수를 통해바깥을 보는 것과 같았다. 바람은 광인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해리는 운전대를 꽉 잡으면서듀크쪽을 슬쩍 쳐다보았다. 이태풍이 그의 작품 안으로 들어오는 데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궁금해하면서. - P101

사진이란 시간의 최면에 빠진 이미지야. 그 이미지가 최면에서 깨어나 되살아나길 기다린다는 것은 자네와 방에 앉아서 자네가 최면에서 깨어나 움직이고 말하기를 기다리는것과 같지. 마치 자네가 있는 곳에서 여기저기에 알아보고 자네와 함께 그곳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드네.
버드, 버드……? 내 말 그리고 자네 말 모두를 내가 하길원한다면 내가 그렇게 하지. 아마도 듣고만 있는 자네를 보면서 난 뭔가를 알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어쩌면 자네 삶의 고통과 <망각Oblivion>, <통곡Wail>, <환각Hallucination>, <약간 미친Un Poco Loco>과 같은 곡의 활기찬 음악적 낙관주의가 어떻게 조화할 수 있었는지를 깨달을 수도 있겠지. 난 자네가 연주한 모든 곡이 자네 삶에 관한 고통스러운 소설로부터 뜯어낸 한 페이지였으면 해. 난 <유리 장벽>이 우울 속에서 걷다Walking in the Blue」의 자네 판본이었으면 하거든. 물론 이 곡은피아노 소품 형태로 얼어붙은 교향곡처럼 들리지만 말이야. - P106

파리에서 자네는 반쯤 빈 클럽에서 연주했고 때로는 딴 데가 있는 사람처럼 연주했어. 심지어 연주할 때 자네는 등을다쳐서 이전과는 같은 반사 신경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된 운동선수처럼 행동했지. 늘 손가락을 건반에 닿게 하려고 애써야 하는 상황을 의식하면서 말이야. 너무 많은 집중은 기교에는 도움을 주지만 재즈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위해서 남겨놔야 하는 것에는 적절하지 않은 줄을 알면서도 말이야. - P123

당신이 그에게 감사를 표하고, 완벽하게 진심 어린 순간을 느끼며 마음이 자랑스러움으로 가득할때, 그와 악수를 나누며 그를 쳐다봤을 때 그의 두 눈에도 눈물이 솟구쳐 양쪽 볼에는 달팽이가 지나간 듯한 눈물 자국이남아 있었다는 점이다. 열차가 서서히 출발할 때 당신은 그에게 다시 손을 흔들면서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는 그를 보았을 것이다. 때론냅킨, 손수건, 테이블 덮개 역할을 하는 양복 한 벌을 입고서 손을 흔들어 답례하고 있는 거구의 술 취한 남자를. - P138

그는 외로움을 마치 악기 케이스처럼 짊어지고 다녔다. 외로움은 결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공연이 끝나고 팬들과의 대화도 끝나면 우연히 그 곁을 지나던 사람들이 그의 친구가 되어 주었고, 바에 앉아 모두가 떠난 시간까지 홀로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 열쇠를 찾고, 조용한 자물쇠 구멍 주변을 헤매며 긁다가, 결국 문을 열고 그가 떠나던 때와 똑같은상태로 머물러 있는 아파트로 들어가 소파 위에 색소폰 케이스를 던져 놓았다. 이 모든 일이 끝나면, 이미 늦은 시간이지만, 그는 계속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고, 누군가가 커피를끓일 때의 달그락거리는 소리, 음료를 만들 때 거품이 일어나는 소리를 듣고 싶은 순간을 늘 만났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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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솔아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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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작가의 소설을 다 읽을 수 없기에 ‘젊은 작가상 작품집‘은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고 매년 읽게 된다. 새롭게 만나거나 다시 되돌아보는 작가들의 고군분투와 치열함을 응원하고 싶고, 축복하고 싶어진다. 한 편 한 편으로 소설의 세계가 확장 되어가는 것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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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두 시. 내 앞의 길은 텅 비어 있었고, 하늘은 검지만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 작은 아기가 자신을 창조하고 안식처가 되어주었으며 이제부터는 자신을 더 넓은 세상으로 안내해줄 몸에서 고픈 배를 채우려 젖을 빠는 모습을 떠올렸고,
아기를 위한 기도를 읊조렸고, 변화를 위해 기도했다. 나는 우주에게 속삭였다. 이 아기가 가득 채워지게 해달라고.

[욕구들] 마지막 페이지

내 어머니가 이런 말을 들었다면 기겁했을 테지만,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나는 어머니가 나를 사랑했다는 걸 알고 있고, 돌아가시기 전 몇 년 동안은심지어 어머니가 나를 좋아하고 기특해하고 가깝게 느끼는 것같다는 느낌까지 받았지만, 생애의 많은 부분을 나는 우리 사이에 몇 가지 배선이 초기부터 어긋났고 중추적 접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거나 유지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지닌 채 살아왔다. 어머니와 나의 언니 오빠 사이에는 더 자연스럽고 편안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고, 나는 체질적으로도 기질적으로도 아버지와 더 비슷했고 어떤 식으로든 아버지와 더 잘 맞았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내가 매우 결정적인 측면에서 어머니의 원에 속하지 못한다고 느끼고, 나에 대한 어머니의 애착이얼마나 확실한지 혹은 안정적인지 결코 확신하지 못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나와 어머니의 대화에는 언니와 어머니의 대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껄끄러움이 있었고, 우리 둘 사이에는 서로 진정으로 잘 맞는다고 느끼지 못했던 듯 약간이지만 조심스러워하는 면이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수년간 나는 어머니와함께 있을 때면 내향적이고 화가 나 있고 어두운, 마치 질풍노도를 겪는 청소년처럼 느껴졌다.  - P328

분노는 식별하기가 쉽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이를 악물게되고 피가 뜨거워진다. 화를 내고 침을 뱉고 싶어진다. 나는여러 해 동안 어머니가 나를 화나게 만든다는 것을, 그리고 그근원이 뭔지는 몰라도 우리 사이의 거리가 나를 초조하고 안절부절못하게 만들고 씁쓸한 분노로 가득 채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이해하게 된것, 혹은 다가가게 된 것이 있다. 프로비던스에서 만난 그 8월오후 같은 날들을 돌이켜보기 전까지는 제대로 들춰본 적도없었던 그것은 그 분노 아래 깊이 흐르고 있던 슬픔이었고, 너무나 격렬해서 평범한 단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도 없는 연결에 대한 갈망이었다. 목소리로 표현했다면 그것은 울부짖음으로, 더없이 길고 더없이 외로운 곡소리로 나왔을 것이다. - P329

유년기의 그 상실들은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 것이었을까?
그 허기는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 것이었을까? 그 상실과 허기에는 혼란이 거부가, 혹은 상처가 얼마나 섞여 있었을까?
그리고 그 후 자아의 고갱이는 얼마나 결핍되고, 얼마나 권리를 박탈당하고, 얼마나 슬픔과 자기혐오로 가득한 상태가 되었을까? 본질적으로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정도에 관한 답이며, 또한 강박적으로 훔치는 이와 자기를 베는 이와 억지로 토하는 이, 그리고 그보다 덜 극단적인 방식이지만 역시나 자신에게 잔인한 행동을 하는 이들의 차이 역시 정도의 차이다. - P334

재닛과 캐슬린은 표현 수단은 다르지만 표현하는 감정은 동일하다. 그것은 감정들이 자신을 너무 가득 채우고 있다는 느낌, 너무 배가 고프고 너무 절실히필요하고 자신의 몸에 비해 그 감정이 너무 크다는 느낌, 그러므로 그 느낌들을 방출해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애초에 그런느낌을 가진 것에 대해 자신을 벌하려는 강박이다.
이 모든 행동에는 말할 것도 없이 분노가 있다. 당신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것을 주지 않은 어머니에 대한 분노, 너무나많은 필요를 느끼게 했으면서 그 필요를 채워주지 않은 어머니에 대한 분노, 그리고 무엇이었든 필요를 느꼈던 자신에 대한 분노. 그러나 그 분노 아래에는 가장 강력한 슬픔도 자리하고 있다. 사랑받지 못했다고, 자신은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라고 느끼는 아이의 슬픔,  - P335

알리는 것. 물론 이것이 굶기의 목표이며, 너무나 조심스레감춰져 있어서 자기 자신조차 모를 수 있는 숨겨진 의제다. 자해하는 이는 자기 존재의 중심에 있는 고통을 눈에 보이게 만들기 위해 칼로 긋는다. 거식증 환자는 자신의 허기와 취약성을 분명히 보이게 만들기 위해 굶는다. 극단적인 이들은 이렇게 선언한다. 이게 나라는 사람이고, 이게 내가 느끼는 것이고,
이게 내가 필요한 걸 얻지 못할 때 일어나는 일이라고. 그들은가장 핵심적인 인간의 갈망에, 그러니까 인정받고 알려지고자하는 욕망에, 당신이 어떤 사람이라서 또한 당신이 어떤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에 서라운드 입체음향으로 목소리를 부여한다. 또한 그 갈망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뿌리를 내리는 슬픔에도. - P338

다른 사람들이 믿음직하게 그 필요를 충족해주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허기는 참을 수 있는 것이 되고 분노와 막막함은 견디기 쉬워질 것이다. 한마디로 당신은 안전하다고, 당신이 알려져 있다고, 혹은 최소한 알려질 수 있다고 느낀다. 반대로 만약 그런초기의 조율과 안심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러한 안전함과 인정의 감각을 내면화하지 못했다면, 허기는 더욱 까다로운 문제가 되고, 분노와 막막함은 표면에 더 가까운 곳으로 옮겨가고, 슬픔의 바다는 더 넓고 깊어진다. - P339

무언극이 시작되는 시점은 허기가 우리를 압도할 때, 허기가 언어의 체계화 역량을 초과할 때다. 언어가 제 역할을 하지못할 때 우리는 다시 몸에 의지하게 되고, 우리가 느끼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을 말하려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는 몸의 행동과 강박과 충동을 허락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여자는 손으로 초코바 하나를 감싸 쥔다. 자기 팔의 여린 피부에서 피를 뽑아낸다. 목구멍에 손가락을 쑤셔 넣는다. 상징으로재편성된 사물과 신체 부위와 음식의 세계들이 세계들이우리 문화에서 여자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할당된 세계들이라는 건 우연이 아니다 속에는 여성의 슬픔의 언어 전체가 감춰져 있다. 이 언어가 평범한 언어를 대신하고, 평범한 언어에대한 절망을 드러낸다.  - P339

철학자 헤겔은 욕망을 결여, 부재로 상정했다. 라캉 역시 이관념을 한층 더 전개하여, 욕망을 이전에 유쾌한 것 혹은 만족스러운 것으로 경험했으나 이후 상실하고 만 무엇에 대한 갈망으로 묘사했다. 두 사람 다 불완전함, 빠져 있는 무엇, 초기에 발생하고 이후 결코 회복되지 않은 어떤 분리에 대한 근본적인 의식이 욕망의 본질적 부분이라 믿었다. 그 ‘무엇‘이 묻혀버린 기억이든, 아니면 한때 경험했으나 이제는 놓쳐버린 사랑이든 인정이든 안전함이든, 아니면 그런 경험에 대한 결코 충족된 적 없는 소망이든 간에 그것은 우리를 계속 쫓아다니며괴롭히고, 우리 정신의 소맷자락을 잡아당기고, 영원히 순환하는 허기의 회로를 만든다.  - P340

하지만 균형 감각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어쩌면 여자들에게는 유난히 더 어려운 일일 수 있다. 페미니스트 저메인 그리어는 1999년에 완전한 여성』을 출간한 뒤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의 프로그램 <더 커넥션>과 한 인터뷰에서자신이 점점 더 자주 목격하게 된 어떤 광경을 묘사했다. 그것은 울고 있는 여자들의 모습이었다.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며 서 있는 여자의 얼굴을 타고 주룩주룩 흘러내리던 눈물,
화장실에서 나오던 어떤 여자의 울어서 빨갛게 된 눈, 영화관에서 클리넥스 티슈를 한 움큼 쥐고서 털썩 자리에 주저앉던여자 우는 것은 언제나 사적인 일이며, 실컷 우는 것은 남몰래 하는 일이지만, 그리어는 우는 행위의 배후에 있는 슬픔이개인적 현상일 뿐 아니라 문화적 현상이라고 보았고, 그것은수십 년에 걸친 사회변화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여전히 여자 - P341

지난 몇 년 동안 사람들이 나에게 무슨 작업을 하고 있느냐고물을 때면 나는 매우 축약적이고 반어적인 답변을 내밀었다.
"아, 여자들과 식욕에 관한 책이에요. 알잖아요. 뭐, 불안, 죄책감, 자기혐오, 소외, 슬픔, 그런 얘기요." 이 대답은 효과가 있었다. 적어도 사람들을 질리게 하고, 이어질 질문을 단칼에 잘라버리는 것 같았다는 점에서는 (나는 프로젝트 진행 중에 내 작업에 관해 말하는 걸 아주 싫어한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지나자 그런 대답을 반복하는 일에 진저리가 났다. 무엇보다저 말이 내가 실제로 느끼는 감정보다 훨씬 더 어둡고 냉소적으로 들리기 때문이었다. 욕구-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만족시키는 일 - 때문에 많은 여자들이 엄청나게 고군분투하며, - P347

욕구가 고통스러운 감정의 조류를 헤쳐나가야 하는 장거리 수영인 것은 맞지만, 만약 내가 정반대 방향으로 흐르는 다른 조류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다면, 즉 어느 정도 희망을 느끼지 못했다면 이 주제를 다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기에 내가 욕구라는 주제에 관해 보인 그 모든 어두운아이러니와, 한 여자가 만족을 향해 묵묵히 무거운 걸음을 옮기는 동안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걸림돌에 관한 나의 그 모든확신에도 불구하고, 내 책상 위에는 작은 희망의 토템들도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종잇조각, 인터뷰 원고, 자료 폴더, 컴퓨터 파일 들이, 고통의 조류를 거슬러 헤엄쳐 마침내 반대편 해안에 도착한 여자들이 들려준 이야기들과 그들이 해안 기슭에지은 새로운 욕망의 제단들이. - P348

또한 힘겹게 이뤄낸 변화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희망에 이르는 과정이 갑작스럽거나 극적인 경우는 매우 드물며, 자아의 - 새로워지고 향상되고 마침내 충만되는 수리가 우리가원하는 만큼, 혹은 소비주의 문화가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암시하는 만큼 깔끔하게 성취되거나 온전하게 실현되는 일은 결코 없다. 희망은 의지와 끈기와 믿음에 관한 것이고, 대개 감지하기도 어려울 만큼 너무나 점진적인 개인적 변화와 사회적 변화에 관한 것이며, 사람이 일상적으로 치러내야 하는 고군분투, 그 진부하고 혹독한 영광에 관한 것이다.  - P349

흑백논리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는 식욕 관련 강박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배워야 하는 방법이다. 초점을내면으로 (혹은 당신의 선택에 따라 천국 쪽으로) 돌리고, 자아를고요하게 만들고, 허기에 단순히 반응하기보다 허기의 진짜근원을 파악하는 법을 배울 것. 그과정에서 더 영양가 높은것으로, 그러니까 관계는 아름다움이는 신이든, 당신이 채움을어떻게 정의하든, 무엇이든 당신을 채워주는 것으로 그 공허의 일부를 채우는 법을 배우라는 것이다. - P352

우리가 원하는 것, 중요함이라고 표시된 선반에 들어 있는것은 물론 연결이고 사랑이다. 인간 허기의 가장 깊은 근원에이름이 있다면 바로 그것일 것이다. 너무나 많은 여자들이 들어가 살고 있는 억제의 상자들을 조각조각 박살 낼 수 있는도구는, 공허함을 산산조각 내고 그 밑에 묻혀 있는 희망을 드러낼 수 있는 커다란 망치는 바로 그것일 것이다. 사랑-사랑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안고 안기고자 하는 사랑받아야 하는입장에서 당신이 한 경험이 훼손되었거나 불완전했더라도 사랑을 주고자 하는 욕망은 모든 허기에 항상 붙어 있는 상수이며, 거식증 환자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다이어트하는 사람들을 잇는 연결고리이고, 음식을, 섹스를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노력 뒤에 자리한 필요와 간절함의 끊임없는 박동이다. 우리는 이 광막한 느낌을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묻혀 있던 갈망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피할 수 없는 인간 조건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며, 일종의 영적 갈망의 한 형태로 볼수도 있고,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결국 이해는 이해에 그칠 뿐이다.  - P357

그때의 나는 모든 집착에 따라붙는 전형적인 착각, 즉 욕망의 대상을 문제가 아닌 해결책으로 여기는 착각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체중과 먹는 일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면 나머지는 따라서 해결될 것이며 평화로운 상태를 찾게 될 것이고 엄밀히 말해 내가 음식을 먹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먹어도되는 자유는 느끼게 될 거라는 착각. 그리고 그다음에는... 내게 딱 맞는 남자가 나를 사랑하게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평화를 찾게 될 거라는 착각. 내가 세련되고 성숙하고 침착하게 보일 수 있다면, 그러면 나는 세련되고 성숙하고 침착한 사람이 될 거라는 착각. 내 인생을 정상적으로 여겨지는 형태와 형식에 끼워 맞출 수 있다면, 그러면 나도 정상적으로 느껴질 것이고 문제들은 해결될 거라는 착각. 이런 착각의 잡탕에다음주까지 더하니 명료한 정신과 변화의 가능성은 모두최소한도로 줄어들었고, 내가 얻은 건 망상의 회전목마, 끝없이 맴도는 서글픈 악순환의 세월이었다. - P361

작은 걸음마들은 아무리 자신 없어 망설이는 것처럼 보이고요점을 벗어난 것처럼 보여도, 변화로는 아니라도 최소한 정보로는 이끌어준다. 걸음마를 내딛는 것은 고통스럽다. 멀쩡한한 끼를 다 먹으면 당신이 얼룩처럼, 암소처럼 무가치하고 역겹게 느껴지지만, 동시에 당신에게는 들여다볼 무언가가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검토해야 할 감정들이 남겨진다. 헤어진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지 않는다. 그러면 집에 혼자 앉아 갈망과 공포로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지만, 그래도 당신이 그 불편한 감정을 참아낼 수 있다는 것, 그 또한 지나간다는 것을배우게 된다. - P363

내 생각에 열쇠는 통찰보다는 기꺼이 해보겠다는 마음과 더깊은 관계가 있고, 통찰은 기꺼이 하려는 마음에 비해 상대적으로 쓸모가 없다. 내 식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었다면 나는 아흔 살이 되어서도 상담치료를 받고 있었을 것이고, 그때까지도 가족과 과거에 관해 한탄조로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을 것이다. 만족시켜야 할 필요와 인정받아야 할 저 필요, 이 작은 상처와 저작은 실망, 누구, 무엇, 어디, 언제, 왜, 왜 나야.
기꺼이 할 마음-기꺼이 실험하고,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기꺼이 끌을 집어 들고 바위와 저항을 쪼아나가는 일에 동참하려는 마음이 없는 상태에서 그런 이야기는 상당히 공허할 수 있으며, 그런 서사에는 행위가 없고 갈등도 별로 없으며극도로 희미하게 남은 플롯의 윤곽만 있다. 기꺼이 하려는 마음은 통찰의 맷돌에 넣고 돌릴 곡물이다.  - P364

당신 자신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되고저 서사의 빈틈을 채우거나 서사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게 된다. 기꺼이 하려는 마음은 막막함에 대한 해독제이기도 하며 그 자체로 믿음의 낟알이다. 당신은 아기처럼 작은 한 걸음을 떼고, 또 한 걸음을 옮긴다. 이 작은 벼랑에서 뛰어내리고 저 작은 벼랑에서 뛰어내린다. 그 일을 충분히 오랫동안 지속하면 그러는 사이 어디쯤에선가 자신이 공허함과 절망의 순간들을 지나 살아남을 수 있음을, 고통을 기쁨으로 상쇄할 수 있음을, 공포 대신 안전함을 느낄 수 있음을 이해하기시작한다. 이 믿음을 영적인 것으로 정의하는 아니든, 갓 생겨나기 시작한 이 믿음을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고 하든 호의적인 우주나 어떤 더 높은 힘이나 신에 대한 믿음이라고 하든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믿음이란 당신이 힘든 밤들을 견디게 도와주고 좋은 밤들을 음미하게 도와주는 신비로운 감정의 저수지를 의미한다. 이것이 있으면허기가 나를 죽이지 않으리라는 걸, 나에게 필요한 도움과 영양을 실제로 내가 찾아낼 수 있다는 걸, 내가 괜찮으리라는 걸마음속에서부터 믿을 수 있다.
- P365

그래서 이대로 충분한가? 상태가 비교적 괜찮은 날, 더없이 괜찮은 날 나에게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내게 주어진 축복을 하나하나 꼽아볼 것이고, 힘들게 얻어낸 친밀한 관계들에관해, 두려움을 상대로 한 작은 승리들에 관해, 친구들과 개와숲과 일에 관해 말할 테지만, 그래도 완전한 확신을 갖고 대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완전히 확신하는 답, 최종적인 휴식의 장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침내 모든 욕구를 이해하고충족하는 일, 가장 높은 봉우리에 도달하는 일이란 가능하지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흡족함의 순간들, 별안간 몸과 마음과정신이 나란히 연결되는 순간들이 있고, 마치 우주가 보낸 선물처럼 기대하지 않고 있을 때 찾아오는, 내가 잘 먹여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들이 있다. 이런 순간들은 더없이 소박하게 포장되어 도착한다. 내 개가 보내는 사랑의 시선으로, 친구와 나누는 농담으로, 여기서 느끼는 애정의 불씨, 저기서 느끼는 이해로 그 순간들은 내가 막 노를 젓기 시작할 때 수면을 비추는 아침 햇빛 속에서, 완벽한 한 끼 식사, 완벽한 한 문 - P370

장, 어떤 손길, 어떤 눈빛 속에서 온다. 마침내 이 삶에서 얻는가장 좋은 것일지도 모를 순간들이 있다. 섬광처럼 스치는 만족감, 얼핏얼핏 희미하게 반짝이는 희망의 빛과 맛, 파이처럼깊이 음미하며 완전히 누려야 할, 아주 잠깐의 순간들이. - P371

진통은 다섯 차례 왔고 그때마다 언니는 열심히 힘을 주었으며 산과 의사의 격려가-그거예요, 잘하고 있어요ㅡ쏟아졌고 그러자 경이롭게도 작은 사람이, 추상에서 갑자기 구체적인 형태를 띠게 된 특별한 존재가 나타났다. 나는언니의 왼쪽 무릎 옆에 서서 언니가 내 손바닥을 밀며 힘을줄 수 있도록 언니의 왼발을 잡고 있었다. 마지막 진통과 밀어내기를 하는 동안 나는 아래를 보고 있었는데 그때, 그 몇 초사이에 작고 둥근 아기 머리통의 곡선이 나타났고, 그런 다음갑자기 어깨가 나타났고, 그런 다음 아주 작은 몸 전체가 아직도 태아 자세로 말린 채 작디작은 주먹을 작디작은 가슴에 꼭 - P375

붙인 채 나타났다. 한 명의 인간이, 겨우 몇 초 더 탯줄로 엄마와 붙어 있다가 이내 탯줄이 잘리며 분리되고 스스로 숨을 쉬게 되자 입을 열어 최초의 숨 가쁜 흐느낌을 뱉어냈다.
나중에 나는 친구들에게 이 경험을 두고 숨 막히게 감격적인 기적과 드라마 <엑스파일>의 한 에피소드를 섞어놓은 것같았다고 묘사했다. 글자 그대로 그렇게 밀어내는 일과 그렇게 피를 보는 일, 그리고 분홍빛이 돌기 전까지는 섬뜩한 회색빛을 띠던 아기의 피부에는 거의 원초적으로 영화적인 뭔가가있었다. 자연 세계와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사는 우리에게 이런 종류의 일은 대부분 공포 영화나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고, 실제 분만이 진행되는 동안 잠시 나는 마치 영화를볼 때처럼 내가 그 장면에 속해 있지 않은 듯한 어떤 분리의감각을 느꼈고, 온몸을 때리는 충격과 함께 일순 도저히 믿을수 없다는 생각도 스쳤다.  - P376

그러나 바로 다음 몇 초야말로 내가 정말로 기억하고 싶은순간이다. 탄생이란 정말로 자연의 가장 특별한 위업이기 때문이고, 내가 여성의 몸에 대해 그때만큼 깊은 존경심이나 경외감을 느낀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몸을 창조하는 몸. 생명을 창조하고, 그런 다음 그 생명을 자신의 생명줄과 수액으로 - P376

된 망으로 품고 보호하고 영양을 공급하고, 이어서 세상으로내보내 인간의 삶 자체를 생성하는 데 필요한 정교한 지식과기가 막힌 능력을 갖추고 있는 여자의 몸. 나의 언니가 대단한집중력과 우아함으로 이 존재를 세상에 내어놓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 그리고 자궁을 벗어난 최초의 순간의 아기 - 작지만완벽한 모양을 갖춘 귀와 손톱과 발가락, 그 완벽하게 복제된존재를 지켜보는 일.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이 새로운 생명의약동하는 힘과 잠재력을 느끼고, 인류 자체의 잠재력을, 세상에 나가 암 치료법을 개발하거나 100미터 달리기 신기록을 세우거나 아니면 한 인간으로서 기쁨과 슬픔과 내밀한 고군분투의 삶을 살아갈 잠재력을 느끼는 일. 우리 각자가 수많은 타인들의 삶에 닿아 그들의 삶을 돌이킬 수 없이 형성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기적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 그리고 이 기적이 모두 한 여자의 몸 안에서 시작되어 한 여자의 몸에서 솟아나는일이라는, 숨 막히게 감동적인 사실. - P377

여성의 몸은 페미니즘이 가장 덜 건드린 미개척지 중 하나일 수도 있고 어쩌면 최후의 미개척지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여자의 욕구, 그리고 자유와 권리 의식과 기쁨을 품고 자기 욕구를 마음껏 채울 수 있는 여자의 능력은 진보의 표지인 동시에 진보에 대한 은유다. 우리는 얼마나 허기져 있는가? 얼마나채워져 있는가? 얼마나 갈등하고 있는가? 집으로 향하는 동안나는 이런 생각도 했다. 자신의 몸으로 방금 새로운 생명을 낳았고 이제 그 생명을 먹이고 어를 준비를 하고 있는 나의 쌍둥이 언니에 관해, 모든 여자들과 그들의 몸에 관해, 우리 중얼마나 많은 이들이 몸을 축복이나 선물이 아니라 적이자 수치의 장소로 여기고 있는지에 관해, 우리 중 너무나 많은 이들이 문득 자신의 엉덩이와 허벅지와 가슴을 느끼고 볼 때마다 느끼게 되는 절망과 질색하는 마음에 관해, 그 몸들이 과소평가되고 망각되고 무시되고 가장 잔인한 멸시의 원천이 되고마는 경악스러운 가능성의 강도에 관해.
- P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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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라인 냅Caroline Knapp, 1959~2002

우리 시대 여성의 내면을 치열하고도 아름답게 묘사한 에세이스트이자 저널리스트, 
1959년 저명한 정신분석가 아버지와 화가이자 주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쌍둥이로 태어났다. 브라운대학을 졸업한 뒤 <보스턴 비즈니스 저널> <보스턴 피닉스> <살롱> 등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흔들었던 욕구, 의존, 강박 등을 정직하게 드러낸 글쓰기로 많은 독자들과 평단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2002년 4월, 마흔둘이라는 이른나이에 폐암을 진단받은 뒤 오랜 연인이었던 사진작가 마크 모렐리와 결혼했으며 그해 6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20년 가까이 시달린 알코올의존증을 고백한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 반려견에 대한 깊은 애착에 대해 성찰한 《남자보다 개가 더 좋아》, 생전 칼럼을 묶은 유고 에세이《명랑한 은둔자》 등의 책을 남겼다. 《욕구들》은 저자가 거식증으로 고통받았던 시절을 회고하면서 식욕, 성욕, 애착,
인정욕, 만족감 등 여성의 다양한 욕구와 사회 문화적 압박에 대해 유려하게 써나간 생애 마지막 책으로, 암 진단을 받기 2개월 전에 탈고했으며 그가 죽은 다음 해에 출판되었다. 이 책에는 그가 써온 글 가운데서도 특별히 밀도 높은성찰의 시선이 담겨 있어, 독자들에게 더없이 깊은 인상을남겼다.


캐럴라인 냅Caroline Knapp지적이고 유려한 회고록 성격의 에세이를 쓴 작가. 정신분석가 아버지와 화가 어머니 사이에서 쌍둥이로 태어났다. 1981년 브라운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20년 가까이 저널리스트로 살았다.
살면서 몇몇 끔찍한 중독에 빠진 경험이 있는데, 삶의 압박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땐 술로, 그런 자기 자신을 호되게 통제하고 싶을 땐 음식을 거부했다. 이런 자신의 깊은 내면 이야기를 솔직하게, 우아하게, 또렷하게 고백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Drinking》은 알코올 중독의 삶을, 《욕구들Appetites》은다이어트 강박증과 섭식장애에 관한 기록이다. 《개와 나Pack of Two》는 개를 향한 지나친 애착을 다룬다. 자신을 직시하며 그 감정과 생각의 결을 낱낱이 드러내는 글쓰기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나,
2002년 마흔둘이라는 이른 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캐럴라인 냅은 이 책 《명랑한 은둔자》에서 혼자 살고 혼자 일했고,
가족과 친구와 개와 소중한 관계를 맺으며 자기 앞의 고독을 외면하지 않았던 삶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강함과 약함을 있는 그대로받아들이면서 결국 삶의 명랑을 깨달은 저자로부터, 우리는 만난적 없지만 오래 이어온 듯한 우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그의 재능이다.

흔히 말하듯 가장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나는 항상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해왔지만, 그럼에도 아주 결정적인 면에서 나는 페미니즘의 배를 완전히 놓쳤고, 내 생각에 페미니즘의 여정에서 진정으로 변화를 일으킨 국민들로 여겨지는 거대한 변화들을 놓쳤다. 이런 생각은 2세대 페미니즘 전성기에대한 낭만적 가정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항상 내가 1978년이아니라 1968년에 대학생이 되었다면 상당히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며, 나 자신과 다른 여자들에 대해 더 급진적인 관점을 갖게 되었을 것이고, 나의 개인적 의식과 정치적 의식이더욱 정교하게 엮였을 것이라는, 어쩌면 순진할 수도 있는 믿음을 항상 품고 있었다. 어쨌든 2세대 페미니즘은 여러 측면에서 욕구에 관한 자유, 취할 자유ㅡ성적 자유, 법적 자유, 경제적 자유, 남자들만큼 저돌적으로 야심을 펼치고 권리를 주장할 자유, 온갖 다양한 형태의 허기를 가질 자유와 그 허기를 충족할 자유를 요구하는 운동이었으니 말이다.  - P242

나는 시대정신에 잘 휩쓸리는 부류인데, 아마 그런 특징이 이 낭만적인 생각의 바탕이 된 것 같다. 만약 내가 사랑의 여름에 스물한 살이었다면, 나는 우드스톡에 가고 헤이트애시베리로 이사하고 행진하고 시위하면서 나 자신, 내 몸, 내 욕구에 대해 더건강한 관점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나 자신의 육체가 아니라실재하는 외부의 적들, ‘기득권층‘, 가부장제, 베트남전쟁에 맞 - P242

서 싸우지 않았을까?
이런 질문은 답할 수 없는 질문일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저 질문들은 페미니즘이 어디까지도달했는지, 여성의 허기와 관련해 페미니즘 운동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자유를 향한 투쟁이 우리 세대 여자들에게 욕구의 경험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고 바꾸지 못했는지에 관한질문이다. 내가 페미니즘의 전형적인 상속인이라는 것, 2세대페미니즘 행동주의가 수많은 방식의 가능성들에 대한 나의 의식을 형성했다는 것, 그것이 나에게 모든 종류의 허기들을 충족할 수 있는 지적 수단과 실질적 수단 모두를 제공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페미니즘이 지닌 변화의 잠재력은 어째선지 내게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페미니즘의 집단적이고 급진적힘은 끝내 내게 몸에 밴 감각으로 들어서지 못했다. 프로비던스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동안 나는 특히 여성 문제에끌렸다. 차별과 낙태, 여성이 당하는 폭력에 관한 글을 썼다.
여성의 건강, 언론에 나타나는 성차별, 문화적 이미지에 관해 - P243

서도 썼다. 심지어 나는 식사장애가 있는 (다른) 여자들에 관한 글도 썼다. 그런데 사적인 영역에서는 조용히 굶으며 나를
‘반쯤 죽음으로 몰고 갔다. 바로 이런 것이다. 지적인 신념은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정서적 뿌리는 없다는 것. 페미니즘의힘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몸으로는 알지 못한다는 것. - P244

나는 이런 현상을, 일종의 핵심을 놓쳤다는 이런 느낌을 주로 다른 이들과의 차이에서 알아차렸다. 친구들 중 나보다10~15세 연상인 여자들, 특히 대학 시절과 초기 성인기를 보스턴이나 샌프란시스코, 뉴욕 등 대규모 활동가 공동체가 있는 도시에서 보낸 이들은 거의 몸의 세포까지 페미니즘의 신념들을 흡수한 것처럼 보인다. 나는 바로 이렇게 극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내적인 변화가 혁명적 변화의정수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내게는 너무나 부럽게 느껴지는 육체적 느낌이 배어 있다.  - P244

문화가 우리 삶에 그토록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는 이유가운데 하나가 이것이다. 그와 같은 정보 공백 속으로, 섹스가무엇인지 혹은 어떤 것일 수 있는지에 관한 솔직한 논의의 부재가 남겨놓은 구멍 속으로,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서 새어나온 메시지들이 스며들면서 우리에게 점점 더 명료하게 보이고들리게 되었다. 바로 그때 문화는 어조와 초점을 대대적으로바꿀 태세를 하고 있었고, 유난히 시각적이고 강렬한 종류의소비주의가 부상하고 있었으며, 쏜살같은 시각적 해일이 덩치를 불려가고 있었으니, 우리는 바로 그런 것들을 붙잡고 매달 - P249

린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몸을 이해해보겠다고 황급히 광고와 영화와 텔레비전에 나온 이미지들을 흡수했는데, 이 이미지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육체적 아름다움과 성적 무력함에 대한 시각적 선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미성숙한 육체와 초연한 눈빛을 지닌 젊은 여자들, 가장 상품화된 방식과 가장 유체 이탈적인 방식으로, 극도로 성적인 존재로만 그려진 여자들, 우리는 남자아이들에게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고, 그러면 남자아이들은 우리의 신체 부위들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미모와 가슴 크기를 은밀히 측정하고, 우리의 순위를 매겼다.  - P250

내가 고등학생이 될 즈음 만개한 성혁명이 나를 포함해 또래 여자아이들에게 제공한 도구 상자는 속이 절반쯤 비어 있었던 것 같다. 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그에 부합하는 ‘성적인 존재‘라는 것이 정말로 의미하는 바에 대한 의식은 별로 없는 상태. 방문은 열렸지만 방안의 조명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 이는 ‘함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는 식의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표현의 자유를 옹호했던 성혁명과, 운동의 방향이 생식의 자유와 성적 건강이라는 더욱 구체적인 영역으로 기울어 있던 여성운동 사이의 (실제로 상당한) 차이에서 온 부산물이었는지도 모른다. - P256

우리가 선택되는 대신 선택할 수 있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음식이나 옷에 대한 욕구를 이야기할 때처럼 우리의 성적욕구들에 대해서도 솔직히 말할 수 있도록 양육되었다면, 신체 부위나 가슴의 모양이나 허벅지 사이즈 같은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성적인 몸 자체를, 그 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만져질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검토하고 이해하도록 격려받았다면 우리의 느낌은 어땠을까? 이런 종류의 사고 틀은 당시 우리 의식 안에 존재하지 않았고, 우리 중 다수에게 30대나 40대 ㅡ 한 여자의 인생에서 행위 주체성이라는 개념이 오랜 세월의 분투 끝에 마침내 뼛속에 자리잡게 되는 시기에 접어들기 전까지는 계속 존재하지 않을 터였다.  - P257

그 시절에 페미니즘 성정치 이론을 내가 접할 수 있었더라면, 나는 집단의식 속에서 남자들의 몸이 여자들의 몸을 가려왔던 길고도 깊은 역사가 있었음을, 수십 년 동안 성적 ‘정상 상태‘에 관한 문화적 정의와의학적 정의 모두 전적으로 남성의 성기능, 남성의 욕구, 남성의 체질을 기준으로 한 것이었음을 판단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 P258

나의 몸에 대해 처음부터 두려움과 단절감을 느꼈던 나는거식증이 지닌 이런 측면을 매우 환영했고, 거식증이 주는 차가운 금속 같은 무성성의 감각을 필요로 하며 부추겼던 것 같다. 거식증을 앓던 몇 년 동안 나는 달리기를 했다. 3~5킬로미터씩 달리는 일에는 마치 강제 행진처럼 의무적이고 징벌적인 느낌이 있었다.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운동화 끈을 묶고서동부 프로비던스 거리들을 달리기 시작해 나를 밀고 나아갔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의지의 시험이었고, 온몸은 긴장한 채 달리기에 저항했으며, 성냥 같은 두 다리는 너무나도 멈추고 싶어했다. 내가 달리던 동네는 사랑스러운 곳이었지만 고요했고 - P267

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많았으며 우아한 빅토리아풍 건물들이줄지어 서 있었다-나는 그런 점을 잘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풍경에서 어떤 즐거움도 느끼지 못했다. 두 발과 빼빼 마른 허벅지에 주의를 집중하고 펌프질하듯 다리를 옮기고 옮기고 또옮기며 칼로리만을 생각했다. 1.5킬로미터면 100칼로리를 태웠으니 요거트 반 통 분량이야, 3킬로미터니 200, 점심 식사에맞먹는 칼로리군. 내 몸은 기계였다. 아니 적어도 나는 내 몸이 기계이길 원했다. 꼼꼼하게 검토하고 손볼 수 있으며, 인풋과 아웃풋을 측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 몸이 느끼는 고통은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쾌락을 느낄 몸의 능력은 내게 무의미한 것이었다. 리비도는 살과 함께 사라졌고, 관능성은 머나먼 옛 기억이자 다른 사람들이나 경험하는 것이 되었다. 나는 내 머릿속에서, 오직 머릿속에서만 살았다. - P268

조정이 아주 천천히 그 패러다임을 바꾸기 시작했다. 돌이켜볼 때 조정이 그토록 급진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나 자신의 몸과 전투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작동하는 관계를 맺은 첫걸음이었던 것이다. 조정이 나를 바꿨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팔은 강하고 유능한 팔로 발달해갔다. 앞팔은 굳건해지고 근육질이 되어갔고, 위팔은 탄탄해지더니 정교한 근육의 골들이 만들어졌고, 어깨가 둥글고 강해졌다. 조정은 사실 다리의 스포츠라 여겨지지만-노를 젓는 힘은 대부분 허벅지와 엉덩이의 큰 근육들에서 나온다-  - P268

소비주의의 요란한 소음이 한창 울리는 가운데, 페미니즘은 메아리 비슷한 무엇, 저 멀리 다른 세대의 시계에서 들리는째깍 소리 같은 것이 되었다. 내가 보스턴으로 이사한 무렵에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자체가 혁명의 광채를 잃었고, 그 대신 극단주의, 유머감각 결여, 사납고 드센 남자 증오 등 못마땅하게 여겨지는 속성들만을 연상시키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고, 몇몇 영역에서는 아직까지도 계속 그런 시선을 받고 있다. - P280

그 시절 나는 분명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불렀지만 그건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다소 반사적인 반응이었고, 이제는중요성이 사라진 것 같다는, 다 지난 옛날 일 같다는 스멀스멀한 느낌이 꽤 뚜렷이 기억난다. 이는 베트남전쟁과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무관심과 환멸에 밀려난 정치적 행동주의 전반에 다 해당하는 일이었지만, 페미니즘 전선에 특히 더 들어맞는 말이었던 것 같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뿐 아니라 페미니즘의 성공 자체도 운동의 절박성에 찬물을 끼얹었다. 우리 세대 여자들은 더이상 전투를 위해 무장하지 않았고, 전방에 나서야 하는 일도 전혀 없었다. 스포츠를 하러 운동장에 들어가거나 대학에 들어가거나 취업 면접을 보러 가기 위해서 힘겹게 밀고 나갈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혼자 힘으로 임대료와 공과금을 지불했고, 필요할 때는 낙태를 했으며, 우리가 궁극의자유라고 느끼던 자유, 다시 말해 역사에 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우리의 권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자유, 그 권리가 얼마나 힘겹게 얻어낸 것이며 얼마나 - P281

최근에야 얻어낸 것인지 잊어도 되는 자유, 1960년대 방식의페미니즘은 다소 따분하고 너무 극적이라는 듯 하품을 하고어깨를 으쓱하며 돌아보는 자유를 누렸다. 의식화 단체? 질경파티? 참나.
나는 이것이 매우 강력한 조합이자 또한 매우 강력한 상실이었다고 생각한다. 외현화하는 소비주의 사고방식-구매하라, 쇼핑하라, 지출하라-의 폭발적 확산과 페미니즘의 가시성과 추동력 감소가 어쩌다 발을 맞추어 진행된 것이다. 그로인해 거짓 약속이 공기를 한층 더 무겁게 했고, 욕망의 정의들이 가장 바로잡기 어려운 방식들로 왜곡되었다. 또한 시각까지 왜곡되었다. 페미니즘에 낀 짙은 망각의 안개에 가려, 권리와 전인성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이 결코 끝난 게 아니라는 씁쓸한 사실이 눈에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그 시기를 회상하면굶기가 만들어주던 구조와 통제감을 포기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안정감을 뿌리 깊이 뒤흔들었는지 떠오른다. 내 몸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세상 속으로 다시 들어가려는일이 너무나 버겁게 느껴졌다.  - P282

2세대 페미니즘은 아주 짧은 기간이나마 그 패러다임을 폭파했다. 2세대 페미니즘은 여자들에게 욕망의 온전한 어휘들을, 욕망이라는 주제에 대한 여자들 자신의 견해를 피력할 언어-편협한 견해 대신 폭넓은 견해를 물질적 비전 대신 사회적 비전을, ‘립스틱‘이나 ‘바닥 광택제‘ 대신 ‘권리‘와 ‘권한‘ 같은 단어를 제공했으며, 그 생각을 널리 알릴 확성기를 제공했다. 1980년대에 자취를 감춘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그언어가 지닌 힘, 그 언어를 형성한 여성의 분노와 초점이 지닌결합력, 그리고 그 힘이 만들어낸 두터운 공동체 의식과 자매애 말이다. - P284

가짜 신들에게 매달리던 희망을 바른 길로 이끌고, 초점을다시 자신의 마음으로 돌리고, 자신의 개인적 고통을 더 큰 맥락에서 보는 법을 배우고, 몸과 정신을 연결하게 되는 것. 말할 것도 없이 이런 것이 혁명적 작업의 본질이며, 그 일에는언제나 프레임을 다시 짤 수 있는 언어의 잠재력이, 통찰을 촉진하고 사실들을 재배열하며 낡은 패러다임을 무너뜨릴 언어의 능력이 필요하다.  - P307

그 일을 위해서는 소비주의에, 여전히 남성의 욕구를 충족하는 방향으로 엄격하게 구축된 기업문화와 정치 문화에,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까지 깊이 새겨진가정들에 정면으로 충돌해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내는 일이 필요하다. 그 비전은 좀처럼 포착되지 않아 잘 논의되지 않을 수도 있고, <글래머>나 <레드북>에는 존재하지 않는 비전일 수있으며, 외현화하는 문화의 요란한 소음 때문에 분별해내기가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비전은 분명히 만들어진다.
비록 그 비전이 넓은 사회적 의미에서는 정치적이지 않을 수있지만, 무엇이 효과 있고 무엇이 적합하며 무엇이 중요한지를 정의하는 일에서, 즉 개인적 정치에서는 분명 변화를 일으킨다. 어느 교회 지하실에 모여 허기와 포만이라는 개념을 재정의하던 한 무리의 여자들, 굶기를 재정의한 패션모델, 상담 - P310

실에 앉아 감각성에 이르는 새로운 길을 닦아가는 심리 치료사와 내담자, 홀로 강물 위에서 스컬을 하며 강함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있는 한 사람. 공적인 전쟁터들이 오늘날에는 사적인 전쟁터가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두 전투에 적용되는 역학은 대체로 동일하다. 무엇이든 당신을 몸과, 자신과, 다른 여자들과 연결하는 것은 당신을 자유롭게 할수 있다. 무엇이든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우리의 빈 곳을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 P311

그러나 음식이 있기 전에 먼저 눈물이 있다. 체중의 수치가 그힘을 잃으려면 우리는 먼저 그만큼 강력하고 오래된 무언가를느껴야 한다.
나는 거식증을 놓아보내고 애도하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아주 뚜렷이 기억한다. 그것은 거식증이 주던 예측 가능하지만헛된 안전함의 상실 때문에 우는 것이며, 이는 사실 자기 자신, 바로 그런 안전함을 필요로 하며 굶는 것 외에는 안전함을확보할 다른 방법이 없다고 느끼는 불쌍하고 겁먹은 자신 때문에 우는 것이다. 내게 그 일은 상담치료중에 일어났던 것같은데, 구체적인 기억은 정확히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그 애도에 대한 감각기억은 남아 있다. 굶기를 그만두고 초창기에 - P315

느끼던 광란이 서서히 조용하고 집요한 슬픔으로, 정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허함으로, 마치 어떤 무거움이 만물의 모서리로 기어들어와 꿈쩍 않고 버티고 있는 것처럼 쇼핑으로도술로도 어떤 집착으로도 몰아낼 수 없는 허함으로 바뀌어가던몇 년에 대한 감각기억이. - P316

울었다. 그날 오후에는 울지 않았다. 시간은 늪처럼 흘렀다. 나는 이를 악물고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일분일 분을 힘겹게헤치고나가, 평소와 똑같은 무감각한 집중력으로 사과와 치즈조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바로 이 기억이 그 서글프고 금욕적인 존재에 대한 애달픈 비통함으로, 그리고 너무도 어리둥절한 상실감으로 나를 가득 채웠다. 그 강철 같은 방어벽을, 무슨 일이 있어도 끈기로 버텨내는 능력을 포기한다는 것은 분명 무서웠지만, 그와 함께 기이한 슬픔도 느꼈다. 마치 굶기를뒤로하고 떠난다는 것이 어떤 씁쓸하지만 필수적인 위안에,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깊디깊게 신뢰할 수 있었던 자기 보호의한 방법에 작별 인사를 고하는 일인 것처럼.
치료사가 물었다. 거식증이 당신을 무엇으로부터 보호했던건가요?
그것으로부터죠 라고 나는 대답했다. 그건 바로 그 허함, 바로 그 절망과 실망의 강도, 바로 그 눈물, 항상 가까스로 흘리지 않고 버텨냈고 부인했고 굶음으로써 쫓아버렸던 그 눈물,
한마디로 슬픔이었다. - P318

슬픔은 통찰에 완강히 저항한다. 나는 불안과 죄책감과 자기혐오의 조각들을 끼워 맞춰 퍼즐을 완성할 수 있고, 어디까지가 문화이며 어디까지가 몸과 자아로부터의 소외인지 깔끔한 선을 그어 구분할 수 있으며, 내 거식증의 역사를 이루는각각의 조각들에 대한 근원을 이런 순간과 저런 순간으로, 이런 교훈과 저런 메시지로 거슬러 올라가 추적할 수도 있다. 이모든 것의 저변에 슬픔이 흐르고 있다. 슬픔은 대지처럼 깊이자리하면서도 동시에 자유롭게 떠도는 듯하고, 욕구의 문제를끌어당겨 거기에 강렬하고 독특한 빛을 비추는 아주 신비로운힘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모든 개별적 갈망은 그 이글거리는 빛을 받으면 흐릿해져 구별할 수도 없게 된다. 거식증은나를 이런 슬픔의 감정에서 보호해주지 못했고, 거식증에서회복했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진 않았다.  - P319

"욕망은 절대 파괴되지 않는 영구성을 지니고 있다. 욕망은소멸하지 않는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이 한 말이다. 그는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일에는 근본적으로 만족시킬 수없는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그러니까 우리는 추구와 갈망의 조건인 허기의 경험과, 일시적 만족을 줄 수는 있지만 언제나 새로운 추구와 새로운 갈망에 밀려나고 마는 채워짐의 경험 사이에 감도는 긴장을 처음부터 지닌 채 이 세상에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 P320

프로이트는 인간의 ‘죽음의 본능‘에 관해 썼다. 이 말은 실제로 삶을 끝내고 싶다는 바람보다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들어 있음 직한 그 초기의 마취 상태와도 같은 지극한 행복의상태를, 원함과 존재함 사이에 긴장이 존재하지 않는 장소를,
완전한 평온함과 안도감의 상태를 되찾고 싶어하는 갈망과 더깊은 관계가 있다.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때때로 그 상태로돌아가기도 하지만-음악이나 리듬이나 일이나 섹스에 완전히 몰입할 때, 마약을 하거나 술을 마실 때, 기도에 완전히 몰입할 때, 혹은 둥글게 만 몸을 사랑하는 사람의 몸에 딱 붙이고 반쯤은 잠들고 반쯤은 깨어 있는 상태로 누워 있을 때 우리는 그 상태에 들어간다-더 영구적인 상태로서는 이미 상실된 상태이며, 단지 그 상태에 대한 기억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뒤섞이고 바래고 희석된 채로 우리의 영혼 속에 접혀 들어가 있을 뿐이고, 그마저 언젠가는 그저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것으로, 속삭임처럼 희미한 아픔으로, 무엇인가가 실로 빠져있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으로만 남게 된다.
-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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