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마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바빴다.
3층과 1층을 오르락내리락...
바람빠진 올리브같다.
뚱뚱하고 늙은 올리브처럼 숨을 쉭쉭 쉬면서 다닌다. 오늘도 지쳤다라고 쓰려니 어쩐지 쓸쓸타. 비 때문인가.




보니 몰래 바람을 피운다는 말은 롱웨이 록을 맴도는 갈매기들만큼이나, 해안에서 보면 점보다도 더 작게 보이는 그 갈매기들만큼이나 먼 이야기 같았다. 이런 말들은 하먼에게 별 의미가 없었다. 어떻게 의미가 있겠는가? 이런 말은 아내에게서 그를 갈라놓을 열정을 뜻하는데. 하먼은 그럴 마음이 없었다. 보니는 그의 인생에 동력장치와 같았다. 일요일 아침에 데이지와 보내는시간이 애틋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것은 새를 관찰하는 취미를 함께하는 것처럼 관심의 공유에 가까웠다. 그는 다시 잡지로 눈을 돌렸고, 아들 중 하나가 그 비행기를 탔다면 어땠을까생각하고 내심 몸서리를 쳤다. - P150

나뭇잎들은 이제 반쯤 떨어지고 없었다. 노르웨이 단풍은 아직 노란빛을 잃지 않았지만 사탕단풍의 붉은 주황빛 잎들은 벌써 대부분 떨어져 땅바닥에 뒹굴었고, 비죽 튀어나온 팔과 조그만 손가락처럼 보이는 황량한 가지는 해골처럼 을씨년스러웠다.
하먼은 데이지 곁의 소파에 앉았다. 그 젊은 커플이 더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더니, 데이지 말이 레스 워시번 부부가 파티와체포 사건 이후로 그들을 쫓아냈다는데, 그후로 그들이 어디 사는지는 모르겠고 티모시는 여전히 제재소에서 일하는 걸로 안다고 했다.
보니 말이 여자애가 죽도록 굶는 병이라던데. 그런데 사실인지는 모르겠어." 하먼이 말했다.
데이지가 고개를 저었다. "죽도록 굶는 젊고 예쁜 여자들 기사에서 읽었어요. 스스로 체중을 통제하고 싶어서 그러는데, 외려 그게 통제를 벗어나게 되고, 그다음엔 멈출 수가 없는 거죠.
너무나 슬픈 일이에요." - P160

자꾸 떠올랐다. 그리고 예쁘장한 니나 화이트가 마리나의 카페밖에서 티모시 버넘의 무릎에 앉아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생각했다. 넌 아냐, 넌 아냐, 넌 아냐.
일요일 아침, 하늘에는 구름이 낮게 깔려 있고, 데이지의 거실안 작은 스탠드에서 불빛이 반짝였다. "데이지, 그냥 이 말을 하고 싶어. 나는 당신이 대답하거나, 어떤 식으로도 책임감을 느끼길 바라지 않아. 당신이 뭘 어떻게 해서 그런 게 아냐. 당신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었을 뿐이지." 그는 잠시 기다렸다가 데이지의 푸른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어."
하먼은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친절하고 부드럽게 거절하리란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데이지의 부드러운 팔이 자신을 끌어안고,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반짝이고, 그녀의 입술이 제 입술에 포개졌을 때 몹시 놀랐다. - P185

그는 예금계좌에서 레스 워시번에게 임대료를 지불했다. 보니가 얼마나 빠른 시일 내에 알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몇 달은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무엇을 기다렸던가? 새로운 인생을 밀어내는 산고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던가? 세상이다시 서서히 깨어나는 2월이 되자 공기는 냄새부터가 가벼워 - P185

지고, 조금씩 더 길어진 낮이 눈 덮인 들판에 더 오래도록 남아들을 보랏빛으로 물들였다- 하먼은 두려웠다. 오래된 추억을헤집는 질문들을 던지며 시작된 그들이 ‘섹파‘ 였을 때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애틋한 관심으로 시작된 그것은 니나의 짧은삶에 대한 애정과 애도를 나누며 그의 가슴에 한 줄기 사랑의 빛을 선사했다. 이 모두는 이제 누가 뭐래도 격렬하고 무르익은 사랑이 되었으며, 그의 심장도 이 사실을 아는 듯했다. 하먼은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뛴다고 생각했다. 레이지보이 의자에 앉아있어도 심장 박동이 들리고, 갈비뼈 바로 아래에서 펄떡이는 심장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심장은 거세게 뛰면서 계속 이렇게지낼 수는 없다고 경고하는 듯했다. 젊은이들만이 사랑의 가혹함을 견딜 수 있는가, 하먼은 생각했다. 계피색 가녀린 니나는예외였지만, 그리고 모든 게 뒤집히고 뒤가 앞이 되어버린 듯,
니나에게 바통을 이어받은 것만 같았다. 절대 절대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 P186

하지만 하먼이 그후 언제나 기억하게된 것은 책상 위의 서류철을 갑작스럽게 만지작대다가 다시 하먼을 마주하던 의사의 몸과 그의 동작이었다. 하먼이 지금 알지못하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는 듯이, 인생은 뼈와 마찬가지로서로 얽혀 직조되며 어긋난 뼈는 치유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하지만 하먼은 알 수 없었다. 이런 병에 걸렸을 때는 누구도알 수 없다. 그는 이제 데이지 포스터의 너그러운 몸이라는 환각적인 세상에 살면서 그날 - 언젠가는 그날이 오리란 걸 알았다만을, 그가 보니를 떠나거나 보니가 그를 쫓아낼 그날만을기다렸다. 둘 중 어느 것이 먼저 일어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언젠가는 일어날 것이었다. 머핀 루크가 개심술(開心術)을 기다리듯이, 수술대에서 죽게 될지, 살게 될지 알지 못하면서 개심술을기다리듯이. - P187

6월 어느 날, 키터리지 부부에게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당시헨리는 예순여덟, 올리브는 예순아홉이었고, 두 사람은 딱히 젊은 부부는 아니었지만 늙었다거나 아파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일 년이 지나자, 뉴잉글랜드 지역의 작은 해안 마을 크로스비주민들은 모두 입을 모았다. 그 사건으로 키터리지 부부는 변했다고 헨리는 요즘 우체국에서 마주치면 인사로 우편물만 잠시들어 보였다. 그의 눈을 바라보면 방충망을 쳐놓은 현관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그는 외동아들이 갓 결혼한 신부와 함께 캘리포니아로 갑자기 이사 갔을 때조차-사람들은 이 일이 키터리지부부를 크게 낙심시켰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순진한 표정의쾌활한 남자였기에, 이는 더욱 슬픈 일이었다.  - P189

그는 마치 귀에 들어간 물이라도 빼려는 듯 고개를 한 번 홱저었다. 잠시 후, 그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그는 다시고개를 돌려 바닷물로 눈길을 주었고, 두 사람 모두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두 사람은 결혼 초기에 많이 싸웠다. 올리브가 지금처럼 지긋지긋해하는 싸움도 많았다. 하지만 결혼 후 어느 시기가 되면, 어떤 종류의 싸움은 더는 하지 않게 된다고, 그 이유는지나온 날이 남아 있는 날들보다 더 많아진 시점에서는 사물이달라지기 때문이라고 올리브는 생각했다. 산 아래 이쪽 물가에서는 바람이 살을 에는 듯 매서운 편인데도, 올리브의 팔에 햇살 - P221

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만은 오후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선체 밖에 엔진이 달린 모터보트가 다이아몬드 코브 쪽으로 물살을 가르며 지나갔다. 뱃머리가 높이 들려 있었다. 더 멀리로는 붉은 돛과 하얀 돛을 단 소형 요트가 한 척 떠 있었다. 물이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거의 만조였다. 홍관조 한 마리가 노르웨이 소나무에앉아 지저귀었고, 볕을 담뿍 빨아들이던 베이베리 관목 앞에서는 향이 풍겼다.
서서히, 헨리가 방향을 돌려 가까이에 있는 나무 벤치 위에 앉더니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두 손에 머리를 묻었다. "올리, 그거알아?" 올려다보는 그의 눈은 고단했고, 눈 주위 피부는 붉었다.
"결혼하고 수십 년을 같이 사는 동안, 당신은 한 번도 사과를 한적이 없는 거 같아. 무슨 일에도."
이내 그녀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내리쬐는 햇살 아래 얼굴이불타는 듯했다. "음, 미안, 미안, 미안해." 그녀가 머리 위에 꽂혀 있던 선글라스를 빼내어쓰며 말했다. "그런데 정확히 무슨뜻이야?" 그녀가 물었다.  - P222

그리고 올리브는 그 일 이후 내면의 비밀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늘 눈물을 흘렸기에. 마치 소년과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여드름쟁이 붉은 머리 소년과 그 겁에질린 얼굴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기에, 그녀는 소년원 정원에서 오후 작업에 열심일 소년을 그려보았다. 간수의 허락을 받은 올리브는 오늘 소 프로에서 산 원단을 가지고 소년에게 원예용 작업복을 만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자꾸 마음이쓰였다. 미드코스트 파워에 다니는 남자에게 어쩔 수 없이 마음을 주었을 캐런 뉴턴처럼. 연모의 정으로 가련히 시들어가는 캐런처럼, "내 할머니라고 해서 내가 꼭 당신을 사랑하란 법은 없잖아요"라고 말하는 아이를 낳은 캐런처럼. - P224

튤립은 터무니없이 아름답게 피었다. 튤립이 자라는 언덕에서 한낮의 햇살이 넓게 퍼졌다. 올리브의 부엌 창에서도 튤립이보였다. 노란색, 하얀색, 분홍빛, 진홍빛의 튤립이 올리브가 깊이를 각각 달리하여 구근을 심었더니 튤립은 예쁘게 불규칙했다. 산들바람이 튤립을 살며시 휘청이게 하면, 형형색색이 떠다니는 마법의 수중(中) 들판처럼 보였다. 헨리가 몇 년 전에 짜넣은 ‘툭 튀어나온 방‘ - 창틀 바로 밑에 작은 침대를 넣어도 될만큼 커다란 베이 윈도우가 있었다ㅡ에 누워서도 튤립과 활짝핀튤립에 내리쬐는 햇살이 보였다. 올리브는 누울 때마다 귀에갖다 대던 트랜지스터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때로는 잠깐씩 졸기도 했다. 매일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다보니, 하루 중 이맘때면 올리브는 몹시 피곤했다. 날이 밝아올 무렵이면 개를 데리고 차에 올라 강으로 갔다. 강변을 따라 3 마일을 걷고 다시 3마일을 걸어 돌아오다보면, 선조들이 옛날에 한쪽 포구에서 다른포구로 노를 저어 갔던 넓은 띠 같은 강물 위로 해가 떠올랐다. - P264

마치 예뻐지고 싶어했던 젊은 시절의 루이즈의 노력이 염색한 금발과 짙은 분홍 립스틱, 수다스러움과 조심스럽게 맞춰 입었던 옷차림, 비즈와 팔찌와 좋은 구두 등(올리브는 기억하고있었다)이 외려 루이즈의 본질을 가리고 있었던 듯했다. 슬픔과고립으로 이런 것들이 다 벗겨지고, 아마도 약에 잔뜩 취해 있으니, 놀라우리만치 아름다운 얼굴과 더불어 연약함 속에서 루이즈의 본질이 드러나는 것만 같았다. 정말로 아름다운 늙은 여자는 보기 어려운데, 하고 올리브는 생각했다. 젊었을 때 예뻤던여자라면 아름다움의 잔상은 볼 수 있겠지만 지금 올리브의 눈 - P272

에 보이는 것과 같은 아름다움은 보기 어려웠다. 다른 세상의 눈처럼 빛나는 갈색 눈은 조각상처럼 고운 뼈대 안에 쏙 들어가 있고, 피부는 광대뼈 양쪽으로 팽팽했으며, 입술도 아직 탱탱했고,
하얀 머리칼은 작은 갈색 리본으로 옆으로 묶고 있었다.
"차를 만들었는데." 루이즈가 말했다.
"됐어. 하지만 고마워."
"그래, 그럼." 루이즈가 가까운 의자에 우아하게 앉았다. 그녀는 암녹색의 기다란 스웨터 같은 가운을 입고 있었다. 캐시미어로군, 올리브는 대번에 알아보았다.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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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7-21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집에 사다둔 통통한 올리브 절임병이 있어서
산님 말씀하시는 ‘바람빠진 올리브‘ 비유는 어떤 경우에 쓰시는 걸까?
그러고 보니 저는 바람 빠진 올리브를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서 갸우뚱.


올리브 카트리지, 알라딘 서재 열혈 마니아분들 중 안 읽으신 분 이제 거의 없으신가봐요. 대세 책...저도 슬슬 압박 느끼고 갑니다

2022-07-24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쟁일기 - 우크라이나의 눈물
올가 그레벤니크 지음, 정소은 옮김 / 이야기장수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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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가 봄에 선물해준 버츄오플러스를 며칠전에야 개봉했는데 우크라이나에서 만든 제품이었다. ‘우크라이나‘,국가명이아니라 상징성이 되어버린 대명사에 멈칫했다. 전쟁이 일기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전쟁으로 삶이 무너진 사람들이 먼 곳이 아니라 곁에 있음을 깨닫게해준 단순하고 명징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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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7-21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진행 중인 전쟁에 대한
글을 보고 있노라니 참...

지금의 삶이 너무 비현실적이어
서 놀라게 됐습니다.

2022-07-24 14: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푸틴은 왜 그만두지 못할까요?
 

  지금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올해로 8년이다. 전에 살던 곳은 4층이었고 바로 위에 옥상이 있어서 빨래도 널고 볕 좋은 날에는 책도 바람을 맞게 해주고는 했다. 반지하에 살다가 널찍하고 밝고 4층이란 거에 혹해서 이사했는데 기쁨도 잠시, 천정부터 벽까지 모서리마다 벽지가 느슨해지고 슬금슬금 얼룩이 생기기 시작했다. 곰팡이의 악몽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겉만 번드레할 뿐 날림으로 지은 집은 당시의 내 모습이기도 했다. 밤이면 꿈마다 속절없이 와르르 무너져내리고 아침이 되면 다시 짓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겨우 틈이 나는 휴일이면 옥상 그늘에 책을 널어놓고 뒹굴뒹굴하며 책들과 놀았다. ‘이 책은 언제 샀던가‘, 언제 읽은 거지.‘ ‘내용이 뭐더라‘ 자문자답하는 시간은 책과 나 사이의 관계를 돌아보고 세계를 다시 정립하는 시간들이 되어주었다. 그런 날들마다 노을은 어찌나 장엄하던지 ‘곰팡이쯤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가 되어버렸다.

  ‘다시, 올리브‘를 읽으려니 ‘올리브 키터리지‘부터 찾게 된다. 요즘 내가 그렇다.

  책 위에 먼지가 소복하다.

  곰팡이 때문에 책을 관리하던 습성이 이제 사라져버린 것이다. 습관처럼 내가 자주 중얼거리는 ‘나쁜 게 꼭 다 나쁜 것만은 아니고, 좋은 게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는 것이 여기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쌓인 먼지만큼 기억에도 먼지가 앉아서 책은 처음처럼 새롭다. 아니, 처음보다 더 또릿또릿 읽힌다. 등장인물들이 한 명씩 살아서 말 걸고 바라보고 자기네들끼리 속닥거린다. 어이가 없다. 혼자 비실비실 웃으며 읽는다. ‘이거 좋은 일이지.‘



헨리 키터리지는 오랫동안 이웃 마을에서 약사로 일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여름날 약국으로 이어지는 큰길로 들어서기전 마지막 구간의 가시덤불에서 야생 라즈베리가 송알송알알이맺힐 때나, 매일 아침 하루도 빠짐없이 약국으로 차를 몰았다.
은퇴한 지금도 그는 여전히 일찍 일어나 예전에 그런 아침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떠올렸다. 마치 세상이 혼자만의 비밀인 듯이.
발밑에서 타이어가 부드럽게 구르고 햇살이 이른 아침 안개를가르고 모습을 드러내는 동안, 오른쪽으로는 만(灣)이, 그다음엔키 크고 늘씬한 소나무들이 잠시 보였다. 코끝을 간질이던 솔숲 향기와 소금기 짙은 공기, 그리고 겨울이면 찬 공기에서 묻어나는 냄새를 그는 얼마나 좋아했던가.  - P9

았지만, 그렇다고 데니즈와 사랑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천성이과묵한 데니즈의 성품 때문에 그는 오히려 올리브를 전에 없이더욱 간절히 원하게 되었다. 올리브의 날카로운 의견과 탱탱한가슴, 격렬한 감정 변화와 갑작스레 터져 나오는 큰 웃음은 그의내면에 아프도록 격심한 욕정을 새로이 불러일으켰고, 때로 어둠 속에서 가쁜 숨을 몰아쉴 때 떠오르는 건 데니즈가 아니라 묘하게도 그녀의 젊고 건강한 남편-동물적인 소유욕에 무너지는 젊은 사내의 걱정이었다. 뭇 사내가 몸속 깊이 어둡고 이끼낀 땅의 비밀을 간직한 여성들의 세계를 사랑하듯, 아내를 사랑하는 행위에서만은 헨리 키터리지도 다른 모든 사내와 다를바가 없었다.
"세상에." 올리브는 헨리가 제 몸에서 내려올 때면 진땀을 빼며 말했다. - P24

헨리의 천성에 쉽게 융화되었다. 헨리의 나날은 순조로웠다. 라디에이터의 쉭쉭대는 속삭임도, 누가 가게 안으로 들어설 때 나는 작은 벨 소리도, 마룻바닥의 삐걱임도, 금전등록기가 ‘카칭하고 열리는 소리도. 당시 그는 가끔씩 약국이 조용하고 원활히돌아가는 건강한 자율신경계 같다고 생각했다.
저녁이면 아드레날린이 샘솟으며 긴장감이 감돌았다. "나는종일 요리하고 청소하고 식구들 뒤치다꺼리나 하고!" 올리브가비프스튜 한 그릇을 헨리 앞에 탁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다들목을 빼고 내가 뭘 해주기만을 기다리잖아." 경계경보에 팔뚝의살갗이 따끔거렸다. - P27

약국에서 헨리는 그녀가 멍하니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예상치 못했건만 그 자신의 삶도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갑자기 그렇게 되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경계해야만 했다. 실수를 할 수도 있었다. 우선, 클리프 모트에게 이제 강심제에 이뇨제를 추가 복용하기 시작했으니 칼륨 섭취를 위해바나나를 먹으라고 말하는 걸 잊었다. 티벳 집안 여자들은 에리트로마이신 때문에 잠을 설친 적이 있었다. 음식과 함께 복용하라고 말하는 걸 그가 잊었던가? 일도 느려졌다. 알약을 병에 담기 전에 두세 번씩 세면서 자신이 타자로친처방내용을 조심스레 확인하는 날도 많았다. 집에서는 올리브가 말을 하면 집중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눈을 크게 뜨고 바라봤다. 그러나 사실은 마음이 딴 데 가 있었다. 올리브가 무섭도록 낯설었다. 아들은 종종 그를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 P42

봄이 왔다. 낮이 길어지고 남은 눈이 녹아 도로가 질척했다.
개나리가 활짝 피어 쌀쌀한 공기에 노란구름을 보태고, 진달래가 세상에 진홍빛 고개를 내밀었다. 헨리는 모든 것을 데니즈의눈을 통해 그려보았고, 그녀에게는 아름다움이 폭력이리라 생각했다. 콜드웰 씨네 농장을 지나다가 ‘아기 고양이를 그냥 드립니다‘ 라고 쓴 안내문을 본 헨리는 다음 날 작은 고양이 배변함과 고양이 사료, 그리고 발이 얼마나 하얀지 휘핑크림 그릇 속을지나온 것 같은 작고 검은 아기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약국에들어섰다. - P43

 그는 먼 북쪽으로 가 작은 집에서 데니즈와 사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북쪽 어디라도 일자리는 구할 수 있을 터이다. 그녀가 아이를 가질 수도 있겠지. 아빠를 좋아할 어린 딸아이를 여자아이들은 아빠를 좋아하니까.
"그래, 좀 들어보자. ‘과부 위로꾼‘ 아, 미망인은 어떠시던?"
어둠 속에서 올리브가 침대에서 물었다.
"힘들어하지." 그가 대답했다.
"안 힘든 사람이 어딨어."
다음 날 그와 데니즈는 친밀한 침묵 속에서 일했다. 그녀는 계산대에, 그는 안쪽 조제실에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데니즈가 그에게 기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그녀가 슬리퍼스가 된듯, 또는 그가 고양이가 된 듯 두 사람의 내면은 서로에게 부비대고 있었다. 하루 일과가 끝날 때 그가 말했다. "내가 자네를돌봐줄게." 그의 목소리는 일렁이는 감정으로 충만했다.
데니즈는 그의 앞에 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헨리는 그녀의 외투를 여며주었다. - P47

그리고 올리브가 몇 주 동안이나저녁만 먹고 나면 바로 침실로 들어가 베개에 얼굴을 묻고 통곡한 후에야 헨리는 올리브가 짐 오케이시를 사랑했으며, 어쩌면짐도 그녀를 사랑했을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헨리는 한 번도 올리브에게 묻지 않았고, 그녀도 헨리에게 말하지않았다. 데니즈를 향한 아프도록 절실한 감정에 대해 그가 한 번도 말하지 않은 것처럼. 그리고 어느 날, 데니즈가 다가와 제리의 청혼에 대해 알렸고 그는 말했다. "가"
그는 카드를 창턱에 놓는다. ‘친애하는 헨리‘ 라고 쓰는 그녀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그후로 다른 헨리를 알게 되었을까? 알 도리가 없었다. 토니 쿠지오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성당에서는 아직도 헨리 시보도를 위해 촛불을 켜는지도 알지 못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불현듯 데이지 포스터가 춤추러 가는이야기를 할 때 내비치던 미소가 생각난다. 방금 데니즈의 카드에 대해, 데니즈가 자신의 인생을 행복해한다는 사실에 대해 느낀 안도감이 갑자기, 묘하게도 뭔가 소중한 것을 잃은 듯한 상실감으로 변한다. "올리브." 그가 불러본다. - P55

 "올리브, 그가 부르고, 그녀가 돌아본다. "당신, 날떠나지 않을 거지, 그렇지?"
"아, 또 무슨 소리야, 헨리. 사람 참 지겹게 만드는 재주 있다.
니까." 그녀는 얼른 수건에 손을 닦는다.
헨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올리브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평생 말하지 못할 것이다). 데니즈 때문에 죄책감을 느꼈던 그오랜 세월 동안, 데니즈에 대한 작은 미련 한 톨을 마음 한구석에 간직하고 있었다는 걸 아니지, 그런 생각은 감히 품을 수도없어 그는 곧 아니라며 이 생각을 떨쳐버릴 것이다. 누가 스스로를 남의 행복에 배 아파하는 좀스러운 사람이라 생각하겠는가.
말도 안 된다.
"데이지한테 남자가 있다." 그가 입을 열었다. "곧 두 사람을초대해야겠어." - P56

만(灣)에서는 하얀 포말이 부서지고 파도가 밀려들어 조그만돌멩이들이 바닷물에 쓸려가며 달그락거렸다. 정박해 있는 요트들의 돛대를 때리는 케이블 소리도 띠잉띵 울려왔다. 소년이 고등어를 손질하며 대가리와 꼬리, 반짝이는 내장을 발라내 선창에서 집어던지면 갈매기 몇 마리가 그것들을 잡아채려고 내려오면서 끼룩끼룩 울어댔다. 케빈은 차 안에 앉아 창문을 반쯤 열어놓고 이런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차는 마리나에서 멀지않은 풀밭에 대놓았다. 좀더 먼 선창 곁 자갈길 진입로에는 트럭두 대가 주차돼 있었다. - P57

"아버진 여기서 가능한 한 먼 곳으로 가고 싶었던 거 같아요.
사람들이 그러잖아요. 시간과 공간적으로 먼 곳으로 가라고. 그게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케빈은 대화를 마무리 지으려고 무덤덤하게 말을 꺼냈다. "아버진 작년에 간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재혼은 안 하셨고, 제가 집을 떠난 다음에는 거의 뵙지 못했어요."
‘케빈이 학위를 받을 동안 연구비며 장학금을 받아 대학을 다널 동안 아버지는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곳에 갈 때마다 그곳엔 희망이 있어 보였다. 모든 곳이 처음에는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좋았어. 여기라면 살 수 있을 거야. 여기서라면 쉴 수 있을 거야. 어울릴 수 있을 거야. 남서부의 거대한 하늘, 사막의 산 위에 걸쳐진 그림자, 끝이 붉은 선인장, 노란꽃이 피는 선인장, 혹은 끝이 민숭민숭한 선인장까지, 처음에 투손으로 이사했을 때는 이 모든 것이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그는 혼자서, 그다음엔 대학 친구들과 같이 하이킹을 했다. 광막한먼지투성이와 거친 해안선 사이의 강렬한 대조 가운데 선택을해야만 했다면 아마 그는 투손을 골랐을 것이다. - P79

물이 다시 차오르고, 두 사람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둘이다시 물속에 가라앉았을 때 그의 다리에 뭔가가 걸렸다. 오래된파이프였고,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다음번 파도가 다시 몰려올 때 두 사람은 모두 머리를 한껏 높이 쳐들고 한번 더 크게 숨을 쉬었다. 키터리지 선생님이 위에서무어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도와줄 사람이 오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패티가 떠내려가지 않게만 하면 되었다. 소용돌이치며 두 사람을 집어삼키는 바닷물속에 다시 잠겼을 때 그는 패티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그녀의 팔을 꼭 붙잡았다. 널 놓지 않을게. 파도가 칠 때마다 햇살이반짝이는 짠 바닷물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케빈은 그녀의 눈을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그 옛날 여왕처럼 줄넘기를 하던 소녀, 지금은 바다에 빠진 젖은 머리의 여인이 두 사람의 구조만을 바라며 바다의 힘만큼이나 격렬하게그를 붙잡고 있는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오, 미친, 이우스운, 알 수 없는 세상이여! 보라. 그녀가 얼마나 살고 싶어하는지, 그녀가 얼마나 붙잡고 싶어하는지. - P86

그녀는 공중전화로 가서 맬컴의 번호를 돌렸다. 번호는 오래전부터 기억하고 있었지만 이십이 년 동안 단 한 번도 그의 집에전화를 건 적은 없었다. 이십이 년이면 그녀는 신호음을 들으며생각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아주 오랜 시간이라고 생각할걸. 그러나 앤지에게 시간은 하늘만큼이나 크고 둥글었고, 시간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바로 음악과 신을, 왜 바다가 깊은지를 이해하려는 것과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일들을 이해하려 애썼지만 앤지는 오래전부터 그러지 않는 방법을 알았다.
맬컴이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그의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맬컴" 그녀가 나지막이입을 열었다. "난 더이상 당신을 만날 수 없어요. 정말 미안하지만 더는 못 하겠어요." 침묵. 아내가 바로 곁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럼 안녕." 그녀가 말했다. - P97

올리브는 크리스가 왜 굳이 친구를 많이 사귀려 들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크리스는 그런 면에서 올리브를 닮았다. 말이 많은 걸 견디지 못한다. 사람들은 내가 등만 돌리면 바로 수군거릴 것이다. "사람을 절대 믿지 마라." 수십 년 전에, 누가 마른 소똥 한 바구니를 현관 문 앞에 갖다 놓은 후로 올리브의 어머니가 그녀에게 말했다. 헨리는 그런 사고방식에 짜증을 냈지만 헨리 자신부터가 짜증나는 사람이기도 했다. 인생이 시어스백화점 카탈로그에서 말하는 것처럼 모두가 미소 짓고 있는 광경인 듯, 남편은 언제나 순진하기만 했다. - P123

그녀가 오늘 종일 뿌듯하게 여겼던 이 드레스로 변신한 그 꽃들수잔이 자신의 하객들에 대해 무어라 말하는 소리가 들리고방충문이 다시 쾅 닫히더니 정원은 조용해졌다. 누가 자기를 이방에서 발견하기 전에 거실로 내려가야 한다. 몸을 숙이고 저 신부의 뺨에 입 맞춰야 할 것이다. 그러면 담뿍 미소를 담고 뭐든지 다 아는 그 얼굴로 주위를 빙 둘러볼 그 뺨에.
아, 그 생각을 하니 아프다. 침대에 내려앉는 올리브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온다. 몇 달 전만 해도 거의 죽어가던, 완전히포기할 뻔했던, 이따금 너무나 아픈 심장에 대해 수잔은 무얼알까? 그녀가 운동을 안 하는 것도, 콜레스테롤 수치가 하늘을찌를 듯한 것도 모두 사실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핑계일 뿐이다. 실로 사위어가는 것은 그녀의 영혼임을 숨기는 핑계일 뿐이다. - P128

스웨터는 망가지고, 신발은 브래지어와 같이 던킨 도너츠 화장실 쓰레기통 속으로 던져져 쓰고 버린 화장지와 오래된 생리대 더미에 덮여 있다가 다음 날 대형 쓰레기통 안으로 구겨져들어갈 것이다. 사실 닥터 수가 올리브 가까이에서 살 거라면,
수잔이 스스로에 대해 계속 의구심을 갖도록 올리브가 이것 조금, 저것 조금을 가져가지 못할 이유는 없다. 올리브가 스스로에게 작은 기쁨을 선사하는 것이다. 크리스토퍼는 자기가 뭐든 다안다고 생각하는 여자와 살 필요는 없다. 뭐든 다 아는 사람은아무도 없으니까. 사람은 자기가 뭐든 다 안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니까.
"가" 올리브가 마침내 입을 열고는 겨드랑이 아래로 핸드백을 챙기면서 거실을 가로지르는 여정을 준비한다. 머릿속으로꽃무늬 드레스 밑에서 두근대는 자신의 심장을, 그 커다란 붉은근육을 그리면서.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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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아프리카 작가의 유목민적인 소설


˝모든 자서전은 스토리텔링이다. 모든 글은 자서전이다.˝ 2003년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소설가 J. M. 쿳시의 말이다. 소설과 더불어 자전적인 글을 써왔지만, 그러면서도 한없이 내성적인 작가의 말이기에 예사로이 들리지 않는다. 그의 발언은 자서전이라 하더라도 허구적 요소가 들어가는 것은 불가피하며, 허구적인글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글을 쓰는 주체의 자전적인 요소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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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한림원의 노벨문학상 선정위원회 위원장 안데르스 올슨이 그를 2021년 수상자로선정하면서 ˝동아프리카에서의 식민주의 영향, 뿌리가 뽑혀 이주하는개인들의 삶에 대한 식민주의의 영향을 시종일관 연민을 갖고 천착했다˝고 한 것은 아주 적절한 평가다. 뿌리가 뽑힌 사람들에 대한 연민은역사의 바람에 떠밀려 영국으로 망명했고 차별에도 불구하고 그곳에뿌리를 내리려 했던 그 자신에 대한 감정이기도 했다.
이렇듯 그의 문학은 그의 삶과 불가분의 것이다. 그는 아프리카를떠남으로써 아프리카를 더 크고 더 넓고 더 겸손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학자로서도 그랬고 창작을 하는 작가로서도 그랬다. 그는 공간적으로는 아프리카에서 멀어졌지만 심리적으로는 아프리카에 더 가까이있었고, 이것이 그를 영어권 문학에서 좀처럼 찾기 힘든 따뜻하면서도예리하고, 예리하면서도 따뜻한 이슬람 동아프리카 작가로 만들었다.
결국 ˝모든 글은 자서전이다˝라는 쿳시의 말처럼 구르나의 소설들은 일종의 기다란 자서전이다. 동아프리카 출신 이슬람 작가의 탈식민적 자서전으로 인해 영문학은 한층 더 풍요로워졌다. 그래서 이 겸손한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그동안 과소평가되었던 그의소설들이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해설(왕은철) 중에서

어디를 가나 그들은 유럽인들이 자신들보다 먼저 와 있다는 것을알게 되었다. 유럽인들은 군인들과 관리들을 보내, 그들을 노예로 만드는 데만 관심 있는 적들로부터 지켜주러 왔다고 말하게 했다. 그들이 말하는 것으로 보아, 다른 무역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 것같았다. 장사꾼들은 유럽인들에 대해 얘기하며 놀라워했다. 그들의잔인함과 무자비함에 기가 질려 있었다. 그들은 한푼도 내지 않고 최고의 땅을 가져가고, 이런저런 술수를 부려 사람들이 자신들을 위해일하게 만들죠. 그 사람들은 아무리 질기고 냄새가 나도 그냥 아무것이나 먹어요. 그 사람들 식욕은 메뚜기떼처럼 끝도 없고 품위도 없죠.
여기도 세금, 저기도 세금을 매기고, 어기는 자는 감옥에 처넣거나 매질을 하고, 심지어 목매달아 죽여요. 그 사람들이 세우는 첫번째 것은감옥이고, 다음은 교회고, 다음은 모든 거래를 지켜보고 세금을 매기기 위한 시장 건물이죠. 살 집을 짓기도 전에 그런 것부터 만드는 거죠. - P100

저녁때쯤 그들은 산 위쪽 기슭의 작은 정착지 가까이에서 멈췄다.
다음날 차를 따고 떠나기 전에 그곳에서 장사를 할 생각이었다. 칼라싱가는 개울둑 옆 무화과나무 밑에 차를 세웠다. 둑에 무성한 초록색풀이 무릎 높이로 자라 있었다. 유수프는 옷을 벗고 물로 뛰어들었다.
물이 너무 차서 소리를 지르면서도 몇 분 동안 버텼다. 오래지 않아 그는 온몸의 감각이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칼라싱가는 그에게산꼭대기의 눈이 녹아서 개울로 흘러드는 거라고 말했다. 땅은 나무들과 풀들로 푸르렀다. 그들이 산그늘 속에 야영지를 마련할 때 대기는새들의 노랫소리와 흐르는 물소리로 가득했다. 유수프는 강둑을 따라조금 걷다가 개울 속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커다란 바위들 위로 올라갔다. 다른 둑 위에 서서 넓은 공터 너머로 짙은 바나나나무 숲이 있는 것을 보았다. 곧 그는 폭포가 있는 곳까지 가서 걸음을 멈추고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비밀스럽고 마법적인 분위기였지만 따뜻하고조화로운 기운이 있었다. 거대한 양치류와 대나무들이 물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는 물보라를 통해서 폭포 뒤 바위에 짙은 어둠이 드리워진 것을 보았다. 동굴이 있다는 암시였다.  - P106

"낙원이 이럴 거라고 생각하면 기분좋지 않아?" 하미드가 물소리로가득한 밤공기 속에서 부드럽게 물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폭포들이 있다고 생각해봐. 유수프, 이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걸 상상해봐라. 그곳에서 세상의 모든 물이 흘러나온다는 것을너는 아니? 낙원에는 네 개의 강이 있단다. 강들은 동서남북 여러 방향으로 흘러서 신의 정원을 사등분하고. 그래서 어디에나 물이 있는 거야. 누각 밑, 과수원 옆, 테라스 옆, 숲 옆의 길에도 물이 있는 거지."
"어디에 그런 정원이 있다는 거야?" 칼라싱가가 물었다. "인도에?
인도에는 폭포가 있는 정원이 많아. 그런 곳이 당신의 낙원이야? 그게아가 칸이 사는 곳이야?"
"신은 일곱 개의 하늘을 만드셨지." 하미드는 칼라싱가를 무시하고유수프에게만 얘기하듯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서서히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천국은 칠층에 있는데 그 자체도 칠층으로 나뉘어 있지. 가장 높은 곳이 제네트 알아든, 즉 에덴동산이야.
털북숭이 신성모독자는 거기에 들어갈 수 없어. 제아무리 천 마리의사자처럼 으르렁거려도 안 돼." - P111

 그걸 법에 따라 산다고 하는구나." 그가 말했다. 그는 자신이말하는 방식과 어조를 통해 긴장의 순간이 지나갔으며, 대화가 더우스운 쪽으로 흘러갔으면 한다는 표시를 했다. 여하튼 우리가 저 젊은이에게 나쁜 인상을 줄 필요는 없잖아."
유수프는 당시 열여섯 살이었다. 젊은이라는 말이 그의 귀에는 고상하게 들렸다. 키가 크다거나 심지어 철학자로 묘사하는 것만큼이나 멋지게 들렸다. 그는 약간 광대 같은 몸짓으로 만족감을 표했다. 세 사람은 그의 바보 같은 짓을 보며 웃었다. 그러면서 빚쟁이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아들을 전당잡혀야 했던 남자에 관한 얘기는 적당히 넘어갔다. 그러나 유수프는 후세인이 하미드에 관해 했던 얘기의 일부를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성공하고 싶은 그의 욕망과 아지즈 아저씨의 여행에 관한 그의 불안감에는 스스로에 대한 불신과 실패에 대한 예감이깃들어 있었다.  - P12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신의 말씀을알지도 못한대."
그들은 오랫동안 그렇게 하려고 기다렸던 것처럼 그를 철저하게 심문했다. 그는 아무것도 숨기려 하지 않았다. 마님이 그것에 대해 뭐라고 했느냐? 그녀는 어떻게 생겼니? 그는 그녀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다. 그녀를 본 적이 없었다. 그분의 신앙심이 깊다는 얘기 없었니? 그런 얘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상인이 사원에 가라고 하지 않았니? 아니, 상인은 그를 가게에서 일하도록 놔두고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았다. 기도하지 않으면 벌거벗은 채로 창조주에게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않았니? 아니,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또한 창조주에 대해서도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신의 말씀 없이 너는 어떻게 기도를 할 수있었니?  - P134

"기분 나빠하지 마라." 그들의 두려움이 절정에 달했을 때 하미드가유수프에게 말했다. "네 잘못이 아니다. 네가 가르침을 받았는지를 확인하지 않았으니 우리가 죄인이다. 너는 지난 몇 달 동안 우리와 함께있었잖니.....
"그런데 어떻게 네 아저씨는 그토록 오랫동안 너를 그런 상태로 놔둔 거니?" 마이무나가 물었다. 책임을 같이 져야 할 사람을 찾는 것 같았다.
유수프는 속으로 생각했다. 우선 그는 제 아저씨가 아니에요. 그는 칼릴의 말을 떠올리며 웃음을 참으려고 애썼다. 그는 그들이 슬퍼하게두고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게 어쩐지 부적절한 것 같아 그대로 있었다. 그는 그들이 충격과 두려움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혐오감을 느꼈다. 계산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연기 같았다. - P135

하미드는 테라스에 서서 겁먹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들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유수프는 하미드가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후세인의 말을 떠올리며, 하미드 스스로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유수프는 산에 사는 은둔자가 높은 위치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어리석음에 고개를 젓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하미드의 두 어린 아들이 그의 옆에 서 있었다. 그런데 아샤도마이무나도 거기에 없었다. 유수프는 칼라싱가가 나와서 그들처럼 내다보면 싶었지만 그도 거기에 없었다. 그는 그를 만나러 가서 그 여행에 대해 얘기해줬다. 칼라싱가는 여행의 중요성에 대해 열광적으로 얘기하며 그에게 이상한 충고를 했다. 매주 한 번씩 네 귀에 오일을 한 방울넣는 걸 잊지 마라. 곤충과 벌레가 알을 낳는 걸 막기 위해서다. 유수프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가 질척거리는 길로 화물차를 몰고 와서 차에서 뛰어내려 그들이 지나갈 때 극적으로 인사를 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칼라싱가는 중요한 순간이면 늘 그렇게 인사를 했다. 어쩌면 떨어져 있는게 현명한지도 몰라. 유수프는 짐꾼들이 그의 터번과 꼬인 수염을 보고 비웃던 일을 떠올리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 P153

그들이 높은 산자락에서 내려가면서 지형이 매일 바뀌었다. 땅이 점점 건조해지면서 정착지들의 규모가 더 줄어들었다. 며칠이 지나자 그들은 고원으로 내려와 있었다. 걸음을 뗄 때마다 먼지와 모래 구름이일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관목들이 엄청나게 비틀리고 휘어져 있었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고문인 것 같았다. 짐꾼들은 자신들이 들어서는삭막한 곳을 바라보면서, 더이상 노래하지 않고 패기도 잃었다. 멀리거대한 동물들의 무리가 보이자 그들은 다시 활기를 띠었다. 멀리 보이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두고 입씨름을 했다. 유수프는 처음 며칠 동안 속이 뒤집히고 기진맥진하고 열이 나면서 몸이 아팠다. 가시들이발목과 팔을 파고들었고 몸에는 벌레 물린 자국투성이였다. 그는 엄청나게 가혹한 땅에서 어떤 것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 P156

유수프는 그들이 왜 아지즈 아저씨를 사이드라고 부르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해 보이고, 하루에 다섯 번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했고 초연함을 유지했다. 기껏해야 지체되면 얼굴을 찌푸리거나 불운한 일이 바로잡히는 동안 굳은 자세로 서서 초조해하는 정도였다. 그는 말을 자주 하지 않았고 보통은 하루가 끝났을때 모하메드 압달라하고만 길게 얘기했다. 그러나 유수프는 그날의 여정에서 일어난 중요한 일은 무엇이든 그가 알고 있다고 느꼈다. 이따금 유수프는 그가 짐꾼들의 우스꽝스러운 행동들을 지켜보며 껄껄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한번은 그가 저녁기도 후에 유수프를 매트로 부르더니 어깨에 한 손을 짚었다. "네 아버지 생각나니?" 그가 물었다.
유수프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지즈 아저씨는 잠시 기다렸다가 아무말도 못하는 유수프를 향해 서서히 미소를 지었다. - P157

아지즈 아저씨의 출발 준비를 유수프가 거들 때, 상인이 가볍게 기침을 하면서 그를 제지했다. "너, 지난밤에 또 걱정했구나. 술탄이 한말 때문에 걱정되더냐?"
유수프는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 또 걱정했다! 그는 가망 없이 약점을 들켜버린 것만 같았다. 그들 모두가 밤에 그를 혼비백산하게 만든 개들과 짐승들과 형체없는 허공들에 대해 알고 있다는말일까? 어쩌면 그가 자주 소리를 질러 사람들이 비웃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 P167

"저들이 행복해하는 걸 봐라." 그가 웃음기 없이 말했다. "물가로 가는 어리석은 짐승 무리 같구나. 우리 모두는 저렇다. 무지 때문에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편협한 존재들이다. 저들이 뭣 때문에 흥분하는지아니?"
유수프는 저 자신도 비슷한 기분이라 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그들이 잠을 잘 수 있고 물건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마당이 있는 집을 빌린 다음, 아지즈 아저씨가 유수프에게 말했다. "내가 처음에 이 도시에 오기 시작했을 때는 잔지바르 술탄의 아랍인들이 이곳을 운영했었다. 그들은 오만인이었다. 오만인이 아니었다면 그들의 하인이었다. 오만인은 재능이 탁월한 사람들이지. 아주 능력이 많아. 자기들을 위한 작은 왕국들을 세우려고 이곳에왔어. 잔지바르에서 이곳까지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더 멀리까지 갔어. 마룽구 너머의 오지 숲까지 들어가고 거대한 강까지 갔어.
그들은 거기에도 왕국을 세웠지. 그래, 거리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지.  - P174

그들은 타야리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도시에는 좁은 길들이 미로처그럼 당황스럽게 펼쳐져 있었다. 길들은 작고 깨끗한 뜰과 광장으로 갑자기 이어졌다. 어두운 거리의 대기에서는 사람들로 가득한 방에서 나는 냄새처럼 친숙하고 오염된 냄새가 났다. 폐수가 개울을 이뤄 집의문턱 바로 옆에서 흐르고 있었다. 빌린 집의 마당에서 잠을 잘 때, 바퀴벌레와 쥐가 그들의 몸 위를 기어다니고 굳은살이 박인 발가락을 뜯어먹고 식량 자루들을 찢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음냐파라는 새로운 짐꾼들을 고용해 더 멀리까지 가지 않기로 계약된 짐꾼들을 대체했다.
그들은 며칠 후에 다시 출발했다. 타야리를 떠난 후에는 좋은 시간을보냈다. 약한 비가 걸음을 재촉했다. 몸이 서늘해지자 그들은 노래를부르기 시작했다. 여행에 지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조차 힘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일부는 너무 아파서 노래든 농담이든 소용없었다.
그것이 걸핏하면 수풀로 잽싸게 뛰어들어가야 하는 그들의 괴로움을덜어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동료들은 이제 침묵하는 대신 그들이 고통에 겨워 지르는 소리에 슬픈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몸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봐라." 아지즈 아저씨가 유수프에게 말했다. 그의 변함없는 아득한 미소가 얼굴 구석에 다시 감돌기 시작했다. "우리의 용감한 빈 압달라를 봐라. 그의 몸이 얼마나 말도 안되게 약해지고 믿을 수 없게 되었는지 봐라. 더 약한 사람이 저렇게 맞았다면 회복 못하겠지만 그는 회복할 것이다. 문제는 저것보다 더 나쁘다는 거다. 우리의 본성도 너무 비열하고 믿을 수 없기 때문이지. 내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지 못했더라면 나는 술탄이 화가 나서 하는얘기를 믿었을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서 부숴버리고 싶은 뭔가를 보는거다. 그가 우리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가 그를 만족시키는 데 동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우리 몸을 스스로에게맡길 수 있고, 우리 몸이 스스로의 행복과 기쁨을 돌볼 수 있게 할 수있다면 좋을 텐데 유수프, 너는 사람들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다. 너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다른 유수프가그랬던 것처럼 너도 밤에 꿈을 꾸고 그것을 해석해 우리를 구원할 수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지즈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 P215

그들은 말없이 몇 분 동안 앉아 있었다. 유수프는 삶의 얼레가 자신의 손에서 돌아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는 얼레가 저항을 받지 않고 돌아가게 놔뒀다. 그리고 일어나서 그곳을 떠났다. 그는 부모에 대또한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하지 못했다는 죄의식에 가슴이 멍해져 오랫동안 혼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부모가 자신을 아직도 생각하고 있는지, 아직도 살아 계신지 궁금했다. 그는 자신이 그 답을 알아내고 싶은마음이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는 이 상태에서 떠오르는 다른 기억들에 저항할 수 없었다. 버림받았을 때의 모습들이 홍수처럼 밀려왔다.
그들 모두가 그가 스스로를 방치하도록 만들었다. 그의 삶은 사건들로이뤄져 있었다. 그는 파편들 위로 고개를 들고 있으려 했고 더 가까운지평선에 눈길을 주며 앞에 놓여 있는 것에 대해 부질없이 알려고 하기보다 무지를 택했다. 자신이 살았던 삶에 대한 속박에서 그를 풀려나게 할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 P229

우선 그는 너의 아저씨가 아니야. 그는 칼릴을 생각하면서 자신이느끼는 우울함과 갑작스러운 자기연민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지었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면 그도 그렇게 될 것이었다. 칼릴처럼 신경질적이고 호전적이고, 사방으로부터 포위되고, 의존적이고 미지의 한복판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 그는 손님들과 주고받는 칼릴의 끝없는 농담과 불가능해 보이는 그의 쾌활함을 떠올리고 실제로는 그것이숨겨진 상처를 감추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고향으로부터 어마어마하게 떨어진 곳에 사는 칼라싱가처럼, 그리움에 애가 타고 잃어버린 완전함에 대한 생각에서 위로받으며, 악취나는 이런저런 곳들에 갇혀 있는 그들 모두처럼. - P229

유수프는 악몽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칼릴에게 자신이여행중에 아주 자주 살이 말랑말랑한 동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껍질에서 막 열린 공간으로 나왔는데, 혐오스럽고 괴상하게 생긴 짐승이 잡석들과 가시들 속으로 난 길을 맹목적으로 짓이기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지의 곳 한가운데를 맹목적으로 통과하는 그들 모두가 그런 상태였다고 말했다. 자신이 느꼈던 공포는 두려움과는다른 것이었다고 말했다. 진짜로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았고, 꿈속에서죽음의 가장자리 너머에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장사를 하려고 그런 공포를 극복해가면서 그토록 원하는것이 궁극적으로 무엇인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 P235

유수프가 돌아갔을 때 가게는 닫혀 있고 칼릴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매트는 잠자리를 위해 벌써 깔려 있었다. 유수프는 몸을누이며 칼릴이 돌아오면 물어볼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인내심을 갖고그를 기다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혼자 있게 되어서 기뺐다. 그런데 기다림이 길어지자 걱정되기 시작했다. 어디 갔지? 둥근달이 4분의 1쯤 하늘에 떠올라 있었다. 너무 가깝고 무거워 보여 쳐다보고 있자니 답답했다. 가장자리가 검은 구름들이 달무리 옆에서 쏜살같이 달리면서 뒤틀린 형태로 바뀌었다. 검은 구름들이 그의 뒤쪽 하늘을 가득 채우더니 별들을 가려버렸다.
그는 폭풍의 따뜻한 도리깨질이 몸을 때리는 통에 갑자기 잠에서 깼다. 그 주위로 엄청난 비가 쏟아지고 있었고, 거세지는 바람이 테라스를 때려댔다. 달은 사라지고 없었지만 떨어지는 물이 밝은 회색빛을발해 어둑한 수풀과 나무들을 비추면서 그것들을 바다 밑의 거대한 둥근 돌처럼 보이게 했다. - P285

음지 함다니가 한숨을 쉬었다. "너는 아무것도 모르냐?" 그가 날카롭게 물었다. 그러고는 더이상 아무 얘기도 하지 않을 것처럼 말을 멈췄다. 그런데 잠시 후 그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게 자유를 선물로 주었어. 그녀가 줬지. 그녀가 그걸 줄 수 있다고 누가 말해줬을까? 나는 네가 얘기하는 자유가 뭔지 알아. 내가 태어난 순간 가지고 있던 자유지. 이 사람들이 넌 내 것이다. 나는 너를 소유한다고 할때, 그것은 비가 지나가는 것이나 하루의 끝에 해가 지는 것과 같은 거야. 그들이 좋아하든 말든 다음날 아침해는 다시 뜬다고. 자유도 마찬가지야. 그들은 너를 가두고 쇠사슬로 묶고 네가 가진 하찮은 것까지모두 남용하지만, 자유는 그들이 가져갈 수 있는 게 아니야. 네가 쓸모없어질 때도 여전히 너를 소유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네가 태어난날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내 말 알아듣겠니? 이것은 나한테 하라고 주어진 일이야. 저 안에 있는 사람이 이것보다 더 자유로운 것을 나한테줄 수 있겠니?"
유수프는 그것이 노인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지혜가 담겨있는 건 틀림없었지만 그것은 인내와 무력감의 지혜였다. 그 자체로찬탄할 만한 것일지 모르지만, 약자를 못살게 구는 자들이 여전히 사람을 깔고 앉아 더러운 방귀를 뀌어대는 한 그렇지 않았다. 유수프는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전에는 자신에게 그렇게 많은 말을 한 적이 없으며 지금쯤 아마 그랬던 것을 후회할지도 모르는 노인을 자신이 슬프게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P292

 그러면 그녀는 미소 지으며 한 손으로 그의 볼을 만져발그레하게 물들일지 몰랐다. 당신은 몽상가라고 말하면서, 이보다 더완전한 그들만의 정원을 만들겠다고 약속할지도 몰랐다.
그는 부모에 대한 가책을 느끼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을것이었다. 자신들의 자유를 위해 수년 전에 그를 버린 사람들이었다.
이제는 그가 그들을 버릴 차례였다. 그가 붙잡혀 있는 것으로부터 그들이 느꼈던 안도감은 이제 끝났다. 그는 스스로를 위한 삶을 살고자했다. 자유롭게 평원을 돌아다니면서 언젠가 그들한테 들러 그런 삶을시작하도록 어려운 교훈을 가르쳐준 것에 고맙다고 할지도 몰랐다. - P305

"계획에 대해서는 나중에 얘기하게 될 거다. 네가 나를 위해 가장잘할 수 있는 게 뭔지 찾아보자꾸나." 아지즈 아저씨가 쾌활하게 말했다. "나는 이런 여행들에 지쳐가고 있다. 네가 나를 위해 그걸 좀 해줄수 있지 않을까 싶다. 너는 옛친구 차투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지. 그런데 조심해라. 너희 둘 다. 칼릴! 너도, 북쪽 국경에서 독일인과 영국인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거라는 얘기가 있다. 어제 오후 시내에 들어갔다가 상인들에게서 들은 얘기다. 언제라도 독일인들이 자기 군대를 위해 짐꾼으로 쓰려고 사람들을 납치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니 정신바짝 차려라. 그들이 오는 걸 보면 즉시 가게를 닫고 숨어라, 너희도독일인들이 무슨 짓을 할 수 있는지 들었잖느냐? 좋아, 어서 하던 일해라." - P315

 땅은 사람들의 발자국들로 헤집어져 있었고 혼란스러움이 대기를 떠돌았다. 그는 수피나무 그늘 너머에서 똥무더기 여러 개를 발견했다. 개들이 벌써 그것을 조금씩 먹고 있었다. 개들은 그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흘깃 보았다가 곁눈질로 경계했다. 그들은 몸을 살짝 틀어 자신들이 먹는 것을 그의 탐욕스러운 눈길로부터지켰다. 그는 너무 놀라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렇게 더러운 것을 먹는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다. 개들은 똥을 먹고 사는 자를 보았을 때 즉각 알아보았던 것이다.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비겁이 산후의 점액으로 뒤덮여 달빛에반짝이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어떻게 그것이 숨쉬는 것을 보았는지를떠올렸다. 그건 버림받은 것에 대한 첫번째 두려움의 탄생이었다. 지금, 개들의 품위 없는 굶주림을 보면서, 그는 그것이 뭐가 될지 알 것만 같았다. 그가 정원에서 문의 빗장이 걸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도 여전히 행진하는 행렬이 눈에 보였다. 그는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고 따끔거리는 눈으로 그 행렬을 뒤쫓았다. -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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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자주,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
슬픔이 가득 담긴 소년의 눈, 역설적인 ‘낙원‘.
유수프는 낙원을 만나게 될까? 낙원이 있기는 한 걸까?
이제 100페이지, 더딘 걸음으로 그의 여정을 따라간다.

유수프에게 그것은 몇 년에 걸쳐 사로잡혀 살면서 얻게 된 평정심을 깨뜨리는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지즈 아저씨의 가게에서 불행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볼모로그곳에 와 있다는 사실을, 즉 아버지가 진 빚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그가 아지즈 아저씨에게 저당잡혀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가 수년에 걸쳐 너무 많은 돈을 빌렸고, 그것이 호텔을 팔아서 갚을 수 있는 수준 이상이라는 것을 추측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혹은 그의 아버지가 운이 없었거나, 자기 것이 아닌 돈을 어리석게 써버렸는지도 몰랐다. 칼릴은 그에게 그것이 사이드가 일하는 방식이라고 말해주었다. 그 결과 그에게는 뭐든 필요해질 때, 그 필요한 일을 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이드에게 돈이 급해지면, 몇 명의 채권자를 희생시켜 그 돈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 P70

 그들의 음성이나 특유의 성향 - 어머니의 웃음, 마지못해 짓는 아버지의 웃음에 대한 생각이 다시 그를 안심시켰다. 그가 그들을 애타게 그리워한다는 말이 아니었다. 사실 시간이 쌓여갈수록 그들을 점점 덜 그리워했다. 그것은 차라리 그들과 헤어진 것이 그의 삶에서 가장 기억할 만한 사건이라는 의미였다. 그는 그것에 대해곰곰이 생각해보았고,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슬퍼했다. 그는 그들에 대해 알아야 했거나 그들에게 물어볼 수도 있었던 것들을 생각해보았다. 그를 겁에 질리게 했던 격렬한 싸움들. 바가모요를 떠난 후 물에빠져 죽었을 두 소년의 이름. 나무들의 이름. 그런 것들에 대해 그들에게 물어볼 생각만이라도 했더라면, 스스로 너무 무지하다고 느끼거나그토록 위험하게 모든 것으로부터 표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을지도 몰랐다. 그는 주어진 일을 했고, 칼릴이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완수했으며, 그 ‘형‘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그리고 허락을 받을 때면,정원에서 일했다. - P71

"키자나 음주리 "아름다운 소년이로군. 모하메드 압달라가 유수옆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얼룩덜룩하고 비늘이 덮인 듯 느껴지는 손으로 그의 턱을 잡고 말했다. 유수프는 고개를 흔들어 놓여났다. 턱이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이리 와 너, 사이드께서 아침에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신다. 너는 우리와 같이 가서 장사를 하며 문명과 야만의 차이에 대해 배우게 될 거다. 지저분한 가게에서 노는 대신에………… 이제 좀컸으니 세상이 어떤지 돌아볼 때가 되었지."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유수프의 악몽 속에서 어슬렁거리던 개들이 떠오르는 약탈자의 얼굴이었다.
유수프는 공감을 바라며 칼릴에게 갔지만, 칼릴은 그를 가엾게 여기지도 그의 운명을 함께 슬퍼해주지도 않았다. 오히려 웃으면서 장난처럼 팔을 때렸다. 유수프는 몹시 아팠다. "너, 여기 정원에 앉아 놀고싶지? 저 미치광이 음지 함다니처럼 카시다 노래나 하고 싶지? 정원은거기에도 많아. 사이드한테 괭이를 빌릴 수도 있을 거다. 야만인들과거래하려고 몇십 개는 가지고 다닐 테니까. 야만인들이 괭이를 좋아하거든. 왜 그런지 누가 알겠니? 그들은 싸움도 좋아한다더라.  - P76

 그들은이틀 낮과 하룻밤을 기차로 이동했다. 기차는 자주 서고 속도도 별로높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대지에 야자나무와 과일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가장자리의 초목들 사이로 작은 농장들과 농원들이 보였다. 기차가 멈출 때마다 짐꾼들과 보초들은 무슨 일인지 보려고 플랫폼으로 우르르 내려갔다. 그중 일부는 전에도 이 경로로 이동해본 적이 있어서 역무원들과 플랫폼 상인들과 안면이 있는 터라 지체 없이 그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들은 전해줄 메시지와 선물을 건네받았다. 이른오후의 더위로 정적이 감돌 무렵 도착한 어느 역에서, 유수프는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했다. 오후 중반쯤 되자 기차가 카와에서멈췄다. 그는 긴장한 채 조용히 기차 바닥에 앉아 있었다. 누군가 그를알아보고 그의 부모를 당황하게 만들면 어쩌나 싶었다. 나중에 지대가점점 높아지면서 그들의 여정은 동쪽을 향했고, 나무들과 농장들은 더드물어졌다. 초원들이 이따금 울창한 잡목림으로 이어졌다. - P81

산밑의 공기는 쌀쌀했고, 햇빛은 유수프가 전에 보지 못한 자주색을띠고 있었다. 이른아침에는 산봉우리가 구름에 가려졌지만, 해가 더강해지기 시작하면서 구름들이 사라지고 얼음으로 덮인 봉우리가 드러났다. 한쪽으로는 평평한 평지가 길게 뻗어 있었다. 이곳에 와본 적이 있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기를 산 뒤쪽으로 가축을 키우고 동물들의 피를 마시는 먼지 빛깔의 전사 부족이 산다고 했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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