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마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바빴다.
3층과 1층을 오르락내리락...
바람빠진 올리브같다.
뚱뚱하고 늙은 올리브처럼 숨을 쉭쉭 쉬면서 다닌다. 오늘도 지쳤다라고 쓰려니 어쩐지 쓸쓸타. 비 때문인가.




보니 몰래 바람을 피운다는 말은 롱웨이 록을 맴도는 갈매기들만큼이나, 해안에서 보면 점보다도 더 작게 보이는 그 갈매기들만큼이나 먼 이야기 같았다. 이런 말들은 하먼에게 별 의미가 없었다. 어떻게 의미가 있겠는가? 이런 말은 아내에게서 그를 갈라놓을 열정을 뜻하는데. 하먼은 그럴 마음이 없었다. 보니는 그의 인생에 동력장치와 같았다. 일요일 아침에 데이지와 보내는시간이 애틋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것은 새를 관찰하는 취미를 함께하는 것처럼 관심의 공유에 가까웠다. 그는 다시 잡지로 눈을 돌렸고, 아들 중 하나가 그 비행기를 탔다면 어땠을까생각하고 내심 몸서리를 쳤다. - P150

나뭇잎들은 이제 반쯤 떨어지고 없었다. 노르웨이 단풍은 아직 노란빛을 잃지 않았지만 사탕단풍의 붉은 주황빛 잎들은 벌써 대부분 떨어져 땅바닥에 뒹굴었고, 비죽 튀어나온 팔과 조그만 손가락처럼 보이는 황량한 가지는 해골처럼 을씨년스러웠다.
하먼은 데이지 곁의 소파에 앉았다. 그 젊은 커플이 더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더니, 데이지 말이 레스 워시번 부부가 파티와체포 사건 이후로 그들을 쫓아냈다는데, 그후로 그들이 어디 사는지는 모르겠고 티모시는 여전히 제재소에서 일하는 걸로 안다고 했다.
보니 말이 여자애가 죽도록 굶는 병이라던데. 그런데 사실인지는 모르겠어." 하먼이 말했다.
데이지가 고개를 저었다. "죽도록 굶는 젊고 예쁜 여자들 기사에서 읽었어요. 스스로 체중을 통제하고 싶어서 그러는데, 외려 그게 통제를 벗어나게 되고, 그다음엔 멈출 수가 없는 거죠.
너무나 슬픈 일이에요." - P160

자꾸 떠올랐다. 그리고 예쁘장한 니나 화이트가 마리나의 카페밖에서 티모시 버넘의 무릎에 앉아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생각했다. 넌 아냐, 넌 아냐, 넌 아냐.
일요일 아침, 하늘에는 구름이 낮게 깔려 있고, 데이지의 거실안 작은 스탠드에서 불빛이 반짝였다. "데이지, 그냥 이 말을 하고 싶어. 나는 당신이 대답하거나, 어떤 식으로도 책임감을 느끼길 바라지 않아. 당신이 뭘 어떻게 해서 그런 게 아냐. 당신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었을 뿐이지." 그는 잠시 기다렸다가 데이지의 푸른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어."
하먼은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친절하고 부드럽게 거절하리란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데이지의 부드러운 팔이 자신을 끌어안고,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반짝이고, 그녀의 입술이 제 입술에 포개졌을 때 몹시 놀랐다. - P185

그는 예금계좌에서 레스 워시번에게 임대료를 지불했다. 보니가 얼마나 빠른 시일 내에 알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몇 달은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무엇을 기다렸던가? 새로운 인생을 밀어내는 산고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던가? 세상이다시 서서히 깨어나는 2월이 되자 공기는 냄새부터가 가벼워 - P185

지고, 조금씩 더 길어진 낮이 눈 덮인 들판에 더 오래도록 남아들을 보랏빛으로 물들였다- 하먼은 두려웠다. 오래된 추억을헤집는 질문들을 던지며 시작된 그들이 ‘섹파‘ 였을 때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애틋한 관심으로 시작된 그것은 니나의 짧은삶에 대한 애정과 애도를 나누며 그의 가슴에 한 줄기 사랑의 빛을 선사했다. 이 모두는 이제 누가 뭐래도 격렬하고 무르익은 사랑이 되었으며, 그의 심장도 이 사실을 아는 듯했다. 하먼은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뛴다고 생각했다. 레이지보이 의자에 앉아있어도 심장 박동이 들리고, 갈비뼈 바로 아래에서 펄떡이는 심장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심장은 거세게 뛰면서 계속 이렇게지낼 수는 없다고 경고하는 듯했다. 젊은이들만이 사랑의 가혹함을 견딜 수 있는가, 하먼은 생각했다. 계피색 가녀린 니나는예외였지만, 그리고 모든 게 뒤집히고 뒤가 앞이 되어버린 듯,
니나에게 바통을 이어받은 것만 같았다. 절대 절대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 P186

하지만 하먼이 그후 언제나 기억하게된 것은 책상 위의 서류철을 갑작스럽게 만지작대다가 다시 하먼을 마주하던 의사의 몸과 그의 동작이었다. 하먼이 지금 알지못하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는 듯이, 인생은 뼈와 마찬가지로서로 얽혀 직조되며 어긋난 뼈는 치유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하지만 하먼은 알 수 없었다. 이런 병에 걸렸을 때는 누구도알 수 없다. 그는 이제 데이지 포스터의 너그러운 몸이라는 환각적인 세상에 살면서 그날 - 언젠가는 그날이 오리란 걸 알았다만을, 그가 보니를 떠나거나 보니가 그를 쫓아낼 그날만을기다렸다. 둘 중 어느 것이 먼저 일어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언젠가는 일어날 것이었다. 머핀 루크가 개심술(開心術)을 기다리듯이, 수술대에서 죽게 될지, 살게 될지 알지 못하면서 개심술을기다리듯이. - P187

6월 어느 날, 키터리지 부부에게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당시헨리는 예순여덟, 올리브는 예순아홉이었고, 두 사람은 딱히 젊은 부부는 아니었지만 늙었다거나 아파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일 년이 지나자, 뉴잉글랜드 지역의 작은 해안 마을 크로스비주민들은 모두 입을 모았다. 그 사건으로 키터리지 부부는 변했다고 헨리는 요즘 우체국에서 마주치면 인사로 우편물만 잠시들어 보였다. 그의 눈을 바라보면 방충망을 쳐놓은 현관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그는 외동아들이 갓 결혼한 신부와 함께 캘리포니아로 갑자기 이사 갔을 때조차-사람들은 이 일이 키터리지부부를 크게 낙심시켰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순진한 표정의쾌활한 남자였기에, 이는 더욱 슬픈 일이었다.  - P189

그는 마치 귀에 들어간 물이라도 빼려는 듯 고개를 한 번 홱저었다. 잠시 후, 그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그는 다시고개를 돌려 바닷물로 눈길을 주었고, 두 사람 모두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두 사람은 결혼 초기에 많이 싸웠다. 올리브가 지금처럼 지긋지긋해하는 싸움도 많았다. 하지만 결혼 후 어느 시기가 되면, 어떤 종류의 싸움은 더는 하지 않게 된다고, 그 이유는지나온 날이 남아 있는 날들보다 더 많아진 시점에서는 사물이달라지기 때문이라고 올리브는 생각했다. 산 아래 이쪽 물가에서는 바람이 살을 에는 듯 매서운 편인데도, 올리브의 팔에 햇살 - P221

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만은 오후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선체 밖에 엔진이 달린 모터보트가 다이아몬드 코브 쪽으로 물살을 가르며 지나갔다. 뱃머리가 높이 들려 있었다. 더 멀리로는 붉은 돛과 하얀 돛을 단 소형 요트가 한 척 떠 있었다. 물이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거의 만조였다. 홍관조 한 마리가 노르웨이 소나무에앉아 지저귀었고, 볕을 담뿍 빨아들이던 베이베리 관목 앞에서는 향이 풍겼다.
서서히, 헨리가 방향을 돌려 가까이에 있는 나무 벤치 위에 앉더니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두 손에 머리를 묻었다. "올리, 그거알아?" 올려다보는 그의 눈은 고단했고, 눈 주위 피부는 붉었다.
"결혼하고 수십 년을 같이 사는 동안, 당신은 한 번도 사과를 한적이 없는 거 같아. 무슨 일에도."
이내 그녀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내리쬐는 햇살 아래 얼굴이불타는 듯했다. "음, 미안, 미안, 미안해." 그녀가 머리 위에 꽂혀 있던 선글라스를 빼내어쓰며 말했다. "그런데 정확히 무슨뜻이야?" 그녀가 물었다.  - P222

그리고 올리브는 그 일 이후 내면의 비밀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늘 눈물을 흘렸기에. 마치 소년과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여드름쟁이 붉은 머리 소년과 그 겁에질린 얼굴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기에, 그녀는 소년원 정원에서 오후 작업에 열심일 소년을 그려보았다. 간수의 허락을 받은 올리브는 오늘 소 프로에서 산 원단을 가지고 소년에게 원예용 작업복을 만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자꾸 마음이쓰였다. 미드코스트 파워에 다니는 남자에게 어쩔 수 없이 마음을 주었을 캐런 뉴턴처럼. 연모의 정으로 가련히 시들어가는 캐런처럼, "내 할머니라고 해서 내가 꼭 당신을 사랑하란 법은 없잖아요"라고 말하는 아이를 낳은 캐런처럼. - P224

튤립은 터무니없이 아름답게 피었다. 튤립이 자라는 언덕에서 한낮의 햇살이 넓게 퍼졌다. 올리브의 부엌 창에서도 튤립이보였다. 노란색, 하얀색, 분홍빛, 진홍빛의 튤립이 올리브가 깊이를 각각 달리하여 구근을 심었더니 튤립은 예쁘게 불규칙했다. 산들바람이 튤립을 살며시 휘청이게 하면, 형형색색이 떠다니는 마법의 수중(中) 들판처럼 보였다. 헨리가 몇 년 전에 짜넣은 ‘툭 튀어나온 방‘ - 창틀 바로 밑에 작은 침대를 넣어도 될만큼 커다란 베이 윈도우가 있었다ㅡ에 누워서도 튤립과 활짝핀튤립에 내리쬐는 햇살이 보였다. 올리브는 누울 때마다 귀에갖다 대던 트랜지스터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때로는 잠깐씩 졸기도 했다. 매일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다보니, 하루 중 이맘때면 올리브는 몹시 피곤했다. 날이 밝아올 무렵이면 개를 데리고 차에 올라 강으로 갔다. 강변을 따라 3 마일을 걷고 다시 3마일을 걸어 돌아오다보면, 선조들이 옛날에 한쪽 포구에서 다른포구로 노를 저어 갔던 넓은 띠 같은 강물 위로 해가 떠올랐다. - P264

마치 예뻐지고 싶어했던 젊은 시절의 루이즈의 노력이 염색한 금발과 짙은 분홍 립스틱, 수다스러움과 조심스럽게 맞춰 입었던 옷차림, 비즈와 팔찌와 좋은 구두 등(올리브는 기억하고있었다)이 외려 루이즈의 본질을 가리고 있었던 듯했다. 슬픔과고립으로 이런 것들이 다 벗겨지고, 아마도 약에 잔뜩 취해 있으니, 놀라우리만치 아름다운 얼굴과 더불어 연약함 속에서 루이즈의 본질이 드러나는 것만 같았다. 정말로 아름다운 늙은 여자는 보기 어려운데, 하고 올리브는 생각했다. 젊었을 때 예뻤던여자라면 아름다움의 잔상은 볼 수 있겠지만 지금 올리브의 눈 - P272

에 보이는 것과 같은 아름다움은 보기 어려웠다. 다른 세상의 눈처럼 빛나는 갈색 눈은 조각상처럼 고운 뼈대 안에 쏙 들어가 있고, 피부는 광대뼈 양쪽으로 팽팽했으며, 입술도 아직 탱탱했고,
하얀 머리칼은 작은 갈색 리본으로 옆으로 묶고 있었다.
"차를 만들었는데." 루이즈가 말했다.
"됐어. 하지만 고마워."
"그래, 그럼." 루이즈가 가까운 의자에 우아하게 앉았다. 그녀는 암녹색의 기다란 스웨터 같은 가운을 입고 있었다. 캐시미어로군, 올리브는 대번에 알아보았다.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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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7-21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집에 사다둔 통통한 올리브 절임병이 있어서
산님 말씀하시는 ‘바람빠진 올리브‘ 비유는 어떤 경우에 쓰시는 걸까?
그러고 보니 저는 바람 빠진 올리브를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서 갸우뚱.


올리브 카트리지, 알라딘 서재 열혈 마니아분들 중 안 읽으신 분 이제 거의 없으신가봐요. 대세 책...저도 슬슬 압박 느끼고 갑니다

2022-07-24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