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제까지 시에 관한 글들을 모은 세 권의 책(『여성이글을 쓴다는 것은 여성, 시하다』 『여자짐승아시아하기)을 출간했습니다. 그 책들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생체시학‘이라 부를 수 있겠다고 언젠가 생각한 적 있습니다. 몸에게서 이름과 인종과 피부 색깔과 취향과 그 모든 것을 제거한 몸, ‘돼지‘의 시학이지요. 나중에 그 돼지를 ‘여자짐승‘
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는가려움과 갈증과 배고픔과 결핍의 비명과 갈망이 제 몸의지금이고 직감이듯이 시의 직감도 그와 같지요. 지금의직감으로, 그 모든 것을 떨군 몸뚱이의 내밀성으로 저는 시를 감지하지요. - P18

황인찬

몸뚱이의 내밀성으로 시를 감지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선생님의 시는 항상 몸에 대한 것이었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어쩌면 선생님 시에서 무의식이 큰 힘을 발휘하는 것 또한 바로 그 몸에 대한 깊은 천착에 의한 것이 아닐까 헤아려보게 됩니다. 돼지의 시학이 결국 폭력과 죽음을 통해서, 즉 육체성의 무력화를통해서 드러난다는 것도 의미심장하게 생각되는데요. 선생님의 세계에서 죽음이란 몸과 참 가까운 것처럼 보입니다. ‘죽음의 자서전』 역시 죽음을 탐구하는 작업이었고요.
원래는 몸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을 이어가려 했지만, 죽음을 함께 짚어가며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쭙고 싶은데요. 선생님의 시에서 죽음이란 무엇일까요. - P19

김수영 시인의 「눈」에서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라는 구절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김수영이 생각한 죽음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김수영은 왜 젊은 시인에게 "눈더러 보라고" 기침을 하고 "가슴의 가래"를 뱉으라 했을까요? 저는 김수영이 죽음을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같은 상태라 지각했다고 생각합니다. 김수영이 생각하기에죽음을 잊어버린 젊은 시인은 시인이 아니었지요. 그러니죽음을 잊어버리지 않은 시인은 눈에게 살아 있다고, 아 - P20

지 죽지 않았다고, 죽음으로 살아 있다고 마음껏 말해야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김수영에게는 죽은 자야말로 시인이고, 가래를 뱉을 수 있는, 죽음으로 산 자였지요. 저는아주 오래전에 김수영론으로 박사학위논문을 쓴 적이 있는데요. 그때 저는 레퍼런스 없이 제 생각만으로 논문을써서 제출했습니다. 그러자 심사위원 중 한 분이 강렬하게 레퍼런스를 100개 이상 달아오지 않으면 통과를 시켜주지 않겠다 해서 기호학을 가져다가 도식적으로 김수영시를 분해했습니다.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김수영이 참으로 형식적인 시를 썼다는 것입니다. 그는 계산이 참 정확했습니다. 일상어를 쓰는 시적 혁명을 도모했지만, 시 안에서의 형식은 참으로 도식적이었습니다. 저는그가 시에서 주로 ‘생활, 죽음, 자유, 혁명, 고독‘을 다루고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제 논문의 챕터를 나누었습니다.
시를 쓸 때마다 김수영은 ‘생활, 죽음, 자유, 혁명, 고독‘의반대편에 위치한 구절과 에피소드 들을 도식적으로 배열했어요. - P21

사실 저는 죽은 자의 죽음이 아니라 산 자의 죽음을 쓴 것입니다. 저는 살아서 바리공주의 여행을 하고 싶었습니다.
바리공주처럼 저의 죽음인 저의 바깥을 왕복하고 싶었습니다. 죽음을 왕복하면서 만난, ‘나의 죽음‘을 포함한 죽음의 존재들은 몇 인칭일까요? 저의 죽음을 ‘나‘라고 부를수 있을까요? ‘나‘가 유령 화자로 말을 시작하자 제 죽음은 인칭을 특정할 수 없는 ‘너(희)‘가 되었어요. 저는 제가죽은 후 ‘나‘라는 단독 자아로 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죽음은 ‘나‘를 ‘나 아닌 것‘으로 만들 겁니다. ‘나‘
는 아마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지 않을 겁니다. ‘나‘가 죽은그곳에, ‘내‘가 여럿이 된 그곳에 그 시들이 ‘나‘를 기다리 - P24

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의 화자인 ‘너(죽음)‘는 인칭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제죽음의 인칭은 몇 인칭일까 자주 생각해봤어요. 아마 육인칭이나 칠인칭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시를 쓰는 것자체가 일인칭에서 육인칭이나 칠인칭으로 건너갔던 순간을 쓰는 것이 아닐까요? - P25

바람이 창문 아래서 두려움에 떤다.
바람은 침묵치료를 견디지 못한다.
가만히 있어, 소리치는 침묵은 어떤 나라 같다.
사정없이 내리쬐는 빛 아래 드넓은 운동장엔 아무도 없다.
다 치료받으러 갔다.
평평하고 광활한 운동장, 그러나 그 안은 스텐처럼 싸늘하다.
바람은 합창단에 가입했다 쫓겨난다.
바람의 목소리는 나무 꼭대기에 붙은 나뭇잎 두 개를 떨게 할 만름 높이 올라갈 수 있지만
탁자의 잔들이 모조리 깨질 만큼 예리하지만 음정이 계속 틀리는 바람, 박자를 못 맞추는 바람. 악보를 못 읽는 바람.
두 옥타브 올라갔다가 세 옥타브 떨어지는 바람. - P26

바람이 다리를 떤다. 바람이 창문을 떤다.
바람은 긴장을 견디지 못한다.
바람은 기분이 잘 상한다.
바람의 불안이 극도로 커진다. 교실의 전등이 모두 흔들린다.
바람이 미술치료 시간에 그려놓은 밤바다를 보라. 물결치는 수억만의 머리카락을 보라.
전봇대가 윙윙 운다.
입술 밖으로 전류가 흐른다.
싸늘한 운동장이 벌벌 떤다.
바람에게 누가 귓속말하나 보다.
바람은 흰 이빨 블록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가지런한 문장들을 견디지 못한다. - P27

바람이 어디선가 험한 메시지를 받아온 사람처럼 포효한다.
바람에게 최면을 걸어야겠다.
바람에게 수면치료를 해야겠다.
바람은 바람들과 파란 하늘을 날고 있었다.
바람이 집에 도착하니 바람의 장례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엄마 아빠가 바람을 입관하고 있었다.
이제 바람은 더욱 심해진다.
펼쳐진 영혼처럼 울먹인다.
귓속말로 명령을 계속 받는가 보다.
바람 속에 몇백의 아이가 들어 있다. 바람은 그 아이들하고만 얘 - P27

기한다. 그 아이들하고만 산다.
바람은 다중인격이다.
바람은 구강애호증이다.
바람에게 공갈젖꼭지를 물려야겠다.
바람에게 진정제를 놔줘야겠다.
바람의 두 팔을 결박해야겠다.
바람은 상담치료를 견디지 못한다.
바람은 밖에만 있지 않다.
바람은 꿈 분석을 싫어한다.
바람은 빙 둘러앉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 P28

바람은 걸레 같은 가면 아래서
회오리치는 무의식의 대륙들과 만나는 걸 싫어한다.
거대한 풍선처럼 천천히 부풀어 오르다가 의자 모서리에 찔려 터진다. 통곡한다.
저물녘 붉은 물감을 칠한 바람이 폭발한다. 몇 시간째 데굴데굴구르며 회오리친다. 번개 친다.
바람에게서 바람이 뽑혀나가며 지르는 비명.
바람은 자유연상을 못 견딘다.
연상의 끝에는 꼭 무시무시하게 일어서는 밤바다가 있다.
바람은 일인실을 견디지 못한다. 바람은 육인실을 견디지 못한다.
바람은 관에 못이 쳐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유골함도 견디지 못한다. - P28

바람은 견디지 못한다.


- 「바람의 장례」 전문 「피어라 돼지』 - P29

당시에 저는 문학동네 온라인 지면에 시도 아니고 산문도아닌 ‘시산문‘이라 스스로 명명한 글들을 연재하고 있었는데 다시는 그 글들을 쓸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온세상을 향하여 이 나라가 저 생때같은 아이들에게 한 짓을보십시오!" 하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살아있는 어른이라니, 참으로 저 자신이 수치스러웠습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정부는 국민에게 참으로 나쁜 짓을 많이 해왔습니다. 시인이란 인간은 원래 무턱대고 무한한 자유를 동경하는 자들이 아닙니까? 자신의 시의 목적을 정치적 운동에 두지 않더라도 어느 시인이나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시인들이 그 현장에 가서 생일시를 쓰고, 지금도 끊임없이 낭독회를 열고, 학생들 가족과 연대해 책을출간하는 것도 그런 연유일 것입니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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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낸 김혜순의 시집

또 다른 별에서 (1981)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1994)
우리들의 음화 (1995)
불쌍한 사랑 기계 (1997)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 (2000)
한 잔의 붉은 거울 (2004)
당신의 첫(2008)
슬픔치약 거울크림(2011)

自序


가슴과 함께 뇌가 작동을 시작한 시한폭탄처럼 폭발하려고 한다. 그러나 거울을 보면언제나 같은 얼굴, 같은 표정, 같은 水面.

이 시집의 시들은 첫 시집 이후의 시들을간추려 모은 것이다. 또, 시집을 내주고, 만들어주는 분들께 감사드린다.

진정코 한번 멋들어지게 폭발하고 싶다.
그래서 이 껍질을 벗고 한줌의 영혼만으로
저 공중 드높이..…....

1985년 여름
김혜순

기어다니는 나비


음악이 피리 구멍에서 나오듯
느타리버섯이 진창에서 벗어나오듯

어두운 자궁 속에서 고고의 힘찬 울음이 터져나오듯
쓰러진 육체의 구멍 속에서부터 고통에 찬 영혼이 벗어나오듯

그렇게 무거운 살을 털어버리며
영겁의 기억의 무게를 벗으며
터져나오려는
수천의 무지개빛 종소리를 틀어쥐고
고치를 벗어나 더듬이를 세우고
형형색색의 날개를 펴 마악,
저 푸른 하늘로 투신하려 할 때
갑자기 스러지듯 드러눕는
무심한 번개 한 자락
내 두 날개를 짓뭉개버렸지 - P11

전염병자들아
- 숨차게


푸르게, 시리게, 촉, 수, 만, 켜들고, 달려, 가라, 달려, 가라, 전신을, 파, 먹는, 구, 더, 기, 들에겐, 전신을, 주고, 다리, 사러, 온, 사람에겐, 다리, 팔고, 신나게, 경매를 외쳐라. 토하고, 싸고, 흘리며, 모두, 모오두, 나눠, 줘라, 네, 심지를, 꺼내 보여라. 뛰어라. 앓는, 몸아, 너를, 부르거든, 큰, 소리로, 살아있다살아있다, 외쳐, 대라. 도착하진, 말고, 떠, 나, 기만, 하, 거, 라. 주사, 바늘들이, 빠져, 달아나고, 희디흰,침대, 가, 다, 부서지도록,피똥이,튀고, 토, 사물과, 악취가, 하늘, 높이, 날리도록, 달리기만 하거라. 생명이, 나갔다가들어오고, 출발했다가도착하며, 생, 명, 을, 부렸다가다시, 지고, 또, 다, 시, 달려, 나가는, 않는, 몸아! 저기, 저기, 쳐다봐라, 유화, 물감으로, 그려진, 행복이, 액자,
속에 담겨 있고, 이제, 막, 기쁨의, 사, 카, 린, 이, 강, 물, 처, 럼, 네, 피, 속으로 들어가고 있구나, 누군가, 살아있냐 묻거든, 머리를, 깨부수고, 촉, 수, 를, 보여, 줘, 라.










! - P14

사연


너는 하나의 단어가 되었다
욕설과 증오가 반죽이 된
하나의 찬란한 이름이 되었다
오늘밤 나는 그 이름에게
더러운 옷을 입히고 두 손목을
포승줄로 꽝꽝 결박지어
이 거리 저 거리로 이랴이랴 몰고 다닌다

나도 스무 살박이 하나의 단어가 되었다
나를 향해 서러운 단어들이
기억의 숲 깊은 곳에서 몰려나왔다
그리고 어느덧 서글픈 문장들이 나를 둘러쌌다
가슴에 피멍든 사랑을 품고
거렁뱅이가 된 나는 하나의 이름이 되었다 오늘밤 나는 그 이름의 머리에 꽃 하나 꽂아주었다
더러운 처녀에게 비웃음 나는 향수도
토닥토닥 뿌려주었다

오늘밤 늙은 우리는 한 장의 종이 조각이 되었다
때묻은 기억일랑 세월로 짓뭉개버린 - P18

한 장 종이에 박힌 못난 두 얼굴이 되었다
밤새껏 구겨쥐었다 다시 펴보는
냄새 나는 사연이 되었다
늙은 얼굴에 비명을 감추고
한껏 웃어보려고 입술을 비틀며
시궁창 같은 사연에 가슴 설레는
낯선 두 남녀가 되었다 - P19

日沒


노을 속에 머리칼을 처박고
서 있다보면,
나의 발부터 야금야금 먹어치우는
밤의 정체를 숨죽여 바라보다보면,
긴 행렬을 짓고
개울을 가로질러 가는
물새떼들을 보다보면
뒤따라 슬픔이 자르듯이
가슴에 새겨지는 것을 보다보면,
얼굴엔 눈물이
생선 비늘처럼 꽂히는 것을
강물에 비춰보다보면,
나무들이 이리저리 돌아서고
들판이 한없이 접히는 것을 어지러워하다보면,
느닷없이
플래시를 터뜨리듯
내 뺨에 철썩 처얼썩 떨어지는
그의 손바닥을 보다보면
내 얼굴에서 강둑에 떨어져 번득이는
비늘을 보다보면, 내 눈알을 쏘아보다보면 - P20

비상 먹은 달이
팽팽하게 떠올라오지 - P21

비명


겨울 산 나무들은
비명을 질러댄다
머리를 땅에 처박고
긴 목으로 일렁이며
가랑이를 공중에 쫙 벌린 채
거꾸로 선 나무들은
비명을 질러댄다
입으로 흙이 들어가서
위장이 꽉 막히도록
놀란 머리카락들이
땅속에서 철사줄처럼
팽팽해지도록
비명을 질러댄다
겨울 산에 가보라
겨울 나무들이 벗은 살에
매운 매를 맞으며
땅속에 얼굴을 파묻은 채
막힌 비명을
질러대는 것이 보이리라 - P23

추운 겨울 밤이 오면
산의 나무들은 더욱 큰
비명을 질러댄다
아무도 모르게 죽은
사람들의 머리채와
거꾸로 선 나무들의
머리채가 서로 맞닿아
질긴 매듭이 지워지고
더욱 큰 비명들이 터져나온다.
추운 겨울 밤
산 나무들은 더욱 큰 소리를 질러 삼킨다
두 가랑이를 휘저으며
그 아래 열 손가락을
부챗살처럼 펴고 펄렁이며
겨울 밤 나무들은
꽉 매인 가슴을 쥐어뜯고 울부짖는다
겨울 밤 산에 올라보라
거기 내가 네 발 아래
물구나무서서
차가운 별빛 같은 매를 맞으며 - P24

매서운 바람 같은 두 손바닥의 질타를
참고 있는 것이 보이리라
언 땅속에서 눈물을 비비고
막힌 사연을 품고
공포에 떨며떨며
비명만 질러대고
있는 것이 보이리라 - P25




나에게 찬물을 끼얹고는
두 주먹으로 가슴을 움켜들고 다니다가,
홍두깨로 사지를 좌악 밀어놓고는
아스팔트 위에 내동댕이도 쳐보다가,
그 위로 버스도 구르고, 탱크도 구르게
하다가, 또 싫증나면
밀가루 같은 것을 솔솔 뿌려
얼굴도 토닥거려주다가,
시퍼런 칼을 들고 나타나서는
머릿속을 쫑쫑 누비고 다니다가도
끓는 물 속에 풀썩 팽개쳐버리는,
하얗게 세어버린 내 머리카락을
물 속에 흔들어 건진 다음
양념에 무쳐 맛있게도 냠냠 칼국수를
말아먹는,
여름 한낮의

너.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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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질문이기에,
이 책을 완성한 건 내가 아니다.
김혜순

저는 그해에도 사직서를 냈다가 다시 안식 학기를 보내고있었어요. 수업이 없고 여유 시간이 생겨 제가 도맡아 엄마를 모시고 앰뷸런스를 불러 타고 병원과 호스피스를 전전했습니다. 결국 엄마의 임종을 맞이하고, 엄마 집을 정리하는 일까지 했지요. 그 와중에 시를 적었습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어서 적은 것들입니다. 그 이후에는 시가 떠올라도 거의 적지 않고 있어요. 후배 시인의 조언대로 시와 멀어져야 할까요? 『죽음의 자서전』부터『날개 환상통』을 거쳐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에 이르기까지 저는 참 많이도 죽음 사건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죽음 3부작이 되었지요. 시인이란 존재는본래 죽음에의 선험적 직관을 표출하는 존재이지만, 그래서 내내 자신의 끝을 미리 살아내는 존재이지만, 이 시기에는 제 자신이 죽음으로서의 저를 좀 더 느낀 건 아닌가생각되기도 합니다. 저는 죽음 사건으로 비탄에 빠진 사람들의 연대와 죽음에의 선험적 직관 사이에서 헤매고 있었습니다. 이 시들을 쓰면서 저는 죽은 후의 ‘나‘는 ‘단수"
가 아니라 ‘복수‘라는 시적 경험을 하게 되었지요. 그러자복수의 화자가 말을 하는 시끄러운 시들이 폭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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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들이여, 딸들이여, 친구들이여
-목소리를 찾기를.


-라이베리아 대통령 엘렌 존슨 설리
아프리카에서 민주적으로 당선된 첫 여성 대통령, 노벨상 수상 소감,
2011년 12월 오슬로

학대가 없다면 당연히 치유가 필요없지 않을까? 치유는 필수조건임이 분명하지만 성매매 여성은 치유를 위해 더많은 혼란과 복합성 속에서 탐색해 나가야만 한다. 사회는 성매매 본질을 그릇되게 단정해버려 성매매 경험 당사자들이 앞으로 나아가고 그 경험을 넘어서려는 노력을 심각하게 방해한다. 돈은 성학대를 정당화하고 침묵하게 할 뿐 아니라 모호하게 하는 데도 무자비하게 효과적이다. 성매매여성의 피해자성 자체가 모호함 속에서 흐려지고 덮인 상태에서, 피해자 자격이 있다고 이해하는 데 첫번째 장애물이 있을 때 치유가 얼마나 더 어려울까?
- P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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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닷 2024-01-01 0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성매매가 보편화된다면 성매매 내에서 일어나는 비정상적인 교류와 태도 또한 모두 보편화되어야 하지만 사람들을 이렇게 대우하는 현실은 정상적이지 않다. 그러므로성매매를 보편화하려는 시도는 비정상을 정상화하려는 시도이고, 이 비정상적인 교류 방식은 인간 고통을 야기하므로 비도덕성을 인정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성매매의 정상화 전략들을 먼저 인식하고 이해하여야만 거부할 수 있다. 이 전략들은 집단적 정신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마치 현명하게 나이 든 개인처럼 성매매는 빈번히 ‘가장 오래된 직업‘으로 불리고, 그 적법함이 세월에 의해 수여된다.
성매매 경험을 ‘성노동‘으로 눈가림하려는 전략과 같고, 둘 다 같은 목적을 공유하니 같은 맥락이다. 이 묘사 뒤에는 분명히 고의적인 의도가 있다. 성매매를 품위와 결합시키려는 의도이고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부끄럽지 않아야 용인할 만하기 때문이다. - P347

어떤 이들은 성매매 여성들을 성소수자로 표현하기 위해 성매매 여성을 동성애 그룹에 포함시키려고도 시도했다. 성매매는 성적 지향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에서 이시도는 잘못됐다. 그렇게 묘사하려는 시도는 마치 이 세상에서 좀 더 부유한 곳에 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옷을 짓는 개발도상국가에 사는 빈곤한 사람이 마치 성을 표현하는 활동을 한다는 제안과도 흡사하다.
이 전략은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그릇된 전제에 기대어 성매매와 관련한 생각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며, 성소 - P347

수자들의 적법한 권리를 합당하게 주장할 수 없는 성매매가 그럴 권리가 있는 것처럼 상정하면서 성매매와 관계된정치적 풍토를 바꾸려 한다. 극단적으로 찬성매매 단체들은 이 개념을 신속히 받아들이고 그 허구를 이용해 성소수자 축제에서 행진까지 했다! 그 행진이 환영받은 게 놀랍다.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자신들이 이용된다는 사실을 알수 없다니 놀랍다. - P348

성매매를 보편화시키려고 공모하는 모든 시도들 속에서 성매매 경험을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보이는데 이를 극명하게 나타내는 예를 하나 살펴볼만하다. 전 세계 성소수자 축제에서 행진하는 성매매 옹호론자들은 현재 성소수자그룹에 주어진 합법적인 권리와 시민권이 자신들에게 옮겨갈 거라는 희망과 의도를 품은 채 고의적이고 계획적인 연대를 한다는 사실을 나도 그들도 잘 알고 있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성매매 지지 활동을 하는 이들이 성소수자 권리에 동승하고 있다. 이런 활동들이 너무나도 명백하게 부적격하다는 사실을 성매매의 진실을 아는사람들과 성매매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인지해서 다행이다. 우리 성매매 여성들은 성소수자로 우리 자신을 인식하지 않았을 뿐더러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전적으로 장담할 수 있다. - P348

탈성매매가 득의만면하게 기쁘고 즐거운 팡파르로 반겨질 거라고 예상한다면 모든 경우가 다 그렇지 않다고 할수는 없지만, 나의 경우는 확실히 아니었다. 성매매를 벗어나자 성매매를 살아내던 삶에서 그것으로 인해 휘청거리는 매일을 살게 되었다. 성매매를 견뎌내던 삶에서 면밀히검토하는 삶으로 바뀌었다. 그 삶 각각에는 나름의 고통이있지만 바뀐 삶에서는 분열되는 느낌과 새로운 씨름을 해야 했다. 예를 들어, 현재의 나와 8년 전 엄마 집을 걸어 나왔던 열네 살짜리 소녀 사이의 유효한 연결고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아이는 누구였을까? 나는 누구였을까? 그 소녀와 나 사이의 거리를 잇는 단 한 가지가 수 많은 것들 중에서 썩고 악취 나는 경험이고, 그 경험이 소녀를 빚어냈을때 대체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연결 지을 수 있을까? 성장이 아니었다. 내 자신을 한참 벗어나 자라고 있었다. 나를성매매에서 살아남게 도와준 나의 장점들과 열네 살 자신이 지녔던 기본적인 요소들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내 안에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 P351

마음이 다른 차원에서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리고실현할 수 있으리라 상상할 수 없어 이전에는 적어도 드러내고 원할 엄두를 내지도 못하던 일들을 원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타자를 치는 지를 가장 먼저 배우고 싶었다.
열여섯 살에 체포되었을 때 아동 법원의 명령으로 더블린 남쪽에 있는 기술학교에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때 워드프로세서를 알게 되었다. 수주 안에 기술학교에서 옮겨졌고 머지않아 거리 성매매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워드프로세서에 대해서는 결코 잊지 않았다. 화면에서 글씨들이 조작되는 모습을 놀라 쳐다봤고 매혹적인 발명을 알게 됐다고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생각도 처리할 수 있는 방식으로보였다. 글쓰기를 갈무리할 완벽한 방법으로 보였다. - P355

언제나 글을 썼다. 10대에는 종잇조각들, 상자, 맥주 받침 뒤에다 끄적거리곤 했다. 공책, 책 앞뒤에 붙은 백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곳에서 급하게 찢어 낱낱이 흐트러진 종이 쪽지들로 가방이 꽉 차곤 했다. 영수증은 모두 펼쳐서, 납작하게 눌러 뒷면에 반 정도만 알아볼 만한 낙서로 뒤덮었다. 한번은 여성 경찰관에게 붙잡혔는데 그 경찰관이 내시와 운문 들을 읽는 부끄러움을 참아야 했는데,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이거 네가 쓴 거니?"라고 물었다. 수치가 증발했다. 비웃을 거라 짐작했다. 대신 그 경찰관이 감동해나도 감동받았다. 내가 살던 삶이 내게 적합하지 않음을 누군가 생각해줬다는 사실을 알아서 좋았다. - P355

그다음해 봄까지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을 결정했고, 더블린시티대학의 저널리즘 과정을 신청했다.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다. 그 대학을 처음 걸어 들어갈 때 느꼈던 두려움을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의 조합이나 말은 없다.
면접을 보려고 갔을 때, 나는 미지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내게 맞지 않거나 나를 인정하지 않는 틀에 스스로를 끼워넣는 시도를 하고 있었고 혹 맞았다 하더라도 그곳에 속하지 못하는 그 어떤 것으로 스스로를 인식했으면서도 한편으론 내가 그곳에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그럴 테면 그러라지 내 네모난 자신을 동그라미에 끼워 넣을 테다라고 생각했다. 내 자신을 위해 새로운 삶, 새로운존재를 얻으려고 세상과 관계 맺는 새로운 방법 그리고 처음으로 내가 기대하는 용어로 세상이 나와 다시 관계 맺도 - P357

성매매 경험 당사자가 사회에 통합되는 일만이 어려운건 아니다. 더 크고, 더 중요하고 더 어려운 일이 있다. 성매매 경험 당사자는 자기자신과의 통합 또한 배워야만 한다. 섹스가 첫 번째 장애물이고 바로 다음과 같은 문제가있다. 우리 여성들은 수많은 성매매를 통해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스스로를 성행위에서 분리하는 방법을 배웠다.
느낌과 우리 자신을 단절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서 벨트를푸는 행위와 같이 성매매를 표상할 만한 작은 행위에도 파블로프 실험의 개처럼 느낌을 멈추고 차단하게 된다. 보통의 삶을 살려는 희망을 붙잡는다면 이런 반응을 되돌릴 수있다고 여겨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한가지 요소가 있다. 성매매 경험이 있는 여성과 파트너 사이의 깊은 신뢰관계이다. - P361

거리에서 개발 허가 공지 사항을 읽으며서 있었는데 어떤 이유에선지 내가 몸을 돌렸을 때 한 남자맞은편 길을 걸으며 나를 보는 모습을 보았다. 즉각적으아마도 이 글을 쓰는 중이어서 였겠지만)이 곳이 아닌다른 곳에 이렇게 서 있었더라면 그 남자는 나를 성매매 여것이라고 추측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보통거리에 서 있으면 엄청난 사생활, 익명의 사생활이 주어진다. 그 반대 상황을 경험하지 않고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탈성매매 인생에서 긍정적인 부분중 하나이다. 이새로운 현실, 내가 단순히 여성으로 인식된다는 이 고요하고새로운 이해, 몸을 파는 여자나 천박한 여자 혹은 문란하다고 도덕적으로 낙인이 찍혔거나 더러운 여자가 아니라 그냥 여자 말이다. - P365

아무런 수식어가 붙지 않은 여성으로서 여겨지는 느낌을 알기 전에도 이미 수년 동안 여성이었다. 하지만 마침내이제 나와 비성매매 여성으로서 나의 새로운 정체성이 머뭇거리며 만나 친밀하게 연결되는 새로운 현실을 경험한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 느낌은 차분하고 평화로운 질감을가진다.
이 느낌을 꼭 붙든 채 더 쌓아나가고 싶고, 내 자신에대해 생각할 때 언제나 이렇게 더 가깝게 다가가 성매매 경험을 들여다보면서 그 경험을 그저 응시하는데 머물지 않고 현재의 나로부터 이전의 나를 풀어줄 수 있는 때가 오기를 바란다. -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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