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업을 하는 젊은 예술가의 손길뿐만 아니라 그의 생각까지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마사초의 성인을 베껴 그린 후, 미묘한 수정을 가미한 미켈란젤로는 베드로의 뻗은손을 다시 그렸다. 이번에는 90도를 돌려서 위에서 보면 어떤모습일지 상상하며 그린 것이다. 이것은 놀라운 개념적 도약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가 조각가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해가 된다. 3차원적 예술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 소묘 작품은 받침대 위에 전시되어 있어서 주변을 돌아 그 뒷면을 볼 수 있다. 그렇게 뒤로 돌아가 보니뒷면에 손을 하나 더 그려놓은 것이 보인다. 이 손은 살과 근육을 모두 발라낸 오싹한 느낌의 해골이다. 어쩌면 그는 성 베드로를 눈으로 해부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피렌체 산토 스피리토의 병원에서 실제 시체를 해부할 때 이 종이를 재활용해서그렸는지도 모른다. 종이를 낭비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어느 쪽이든, 나는 내 손을 한참 바라보면서 이 젊은 예술가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프로젝트의 규모에 혀를 내두른다. 그가 사물을 얼마나 정확히 얼마나 깊은 곳까지 보고 싶어 했는지 상상조차 하기힘들다. - P282

오전 10시가 되어 미술관이 문을 열자 나는 피렌체에서 로마으로 이동한다. 미켈란젤로 커리어 초기의 성공들을 뛰어넘어 시
"스티나 예배당 안에 착지한다. 실은 로마 시스티나 예배당의 분위기를 내려고 위대한 천장화를 머리 위에 재현해 놓은 전시실이다. 몇 분 후 벌떼처럼 몰려든 순례자들이 주변에 걸린 그림들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친 후 곧바로 카메라를 위쪽으로 치켜든다. 그들이 서 있는 자리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곳에 비슷한 자세로 붓을 위로 쳐든 스스로를 미켈란젤로가 끄적거리듯 그린 그림이 있다는 걸 떠올리고 나는 혼자 쿡쿡 웃는다. 이 자화상에서 그는 고개를 90도 각도로 젖히고 팔을 12시방향으로 뻗고 있다. 적어도 570일간 그런 자세로 일했을 것이다. 그 낙서 옆에 그는 그의 척추, 엉덩이, 물감 튄 얼굴, 그리고
‘두개골이라는 ‘관‘ 안에 갇힌 뇌의 상태에 대해 불평하는 소네트를 적어두었다. 소네트는 들떠서 사진을 찍어대는 전시실의 관 - P283

람객들을 놀라게 할 만한 말로 끝을 맺는다. "이곳은 만족스럽지않다. 나는 화가가 아니다."
그 말들을 생각하며 다시 쿡쿡 웃는다. 자신 없어 하는 거장의 말을 듣는 것이 즐겁다. 아마 우리들 대부분은 그런 말을 들으면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전시가 시작된 후 내내 나는 미켈란젤로의 짜증과 절망이 섞인 편지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결과도 없이 시간만 낭비하고 있어.… 신이시여, 도와주소서!"가 제일 자주 눈에 띄는 대사다. 사실 그가 작업을 시작한 후 처음 몇십 번의 조르나타는 완전 실패였다. 회반죽을 제대로 바르지 못한 아마추어적인 실수 때문이었다. 그는 교황에게 작업을 포기하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이 엄청난 커미션의 영광을 즐기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는 듯했다. - P284

미켈란젤로는 빈 종이 한 장만 있으면 모든 근심을 잊고 혼신의 힘을 바쳐 주어진 과제를 해냈고, 씁쓸한 불평 따위는 일 이후에나 하는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어려운 일을 해내는 이보다 나은 방법이 또 있을까?
4년의 작업 끝에 천장화가 완성되자 "온 세상이 그 작품을 보려고 몰려오는 소리가 들린다"라고 그의 동시대인은 전하지만 미켈란젤로는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그동안 그려오던 예배당 천장화 작업을 끝냈습니다. 교황이 매우 만족했습니다"라고 그의 아버지에게 편지로 전했을 뿐이다. 그런 다음 덧붙였다. "다른 일들은 바랐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건 제가 시대를 잘못 타고 난 때문인 듯합니다. 지금은 제가 하는 예술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시대예요."
오늘날 우리는 이 호의적이지 않은" 시대를 하이 르네상스High Renaissance 혹은 전성기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 P287

1490년대에 제작된 그의 <피에타(미켈란젤로의 걸작이며 피에타의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가된 작품 - 옮긴이)가 거장의 명성에 걸맞는 걸작이라면 이 <론다니니 피에타 Rei Rondanini(미켈란젤로의 유작이며 성 베드로 대성당의Pieti〈피에타>와는 달리 성모가 예수를 선 채로 끌어안고 있는 구도 때문에 축 늘어진 예수의 몸이 부각되어 더 처연한 느낌을 자아낸다 - 옮긴이)에서는 고통과 내밀한 슬픔이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사랑과 경건함 그리고 기진맥진한 몸과 마음을 표현한 그 소묘들을 다시 바라본다. 그리고 머리와 심장의 요구에 손으로 부응하려 애를 쓰며 하얀 종이 앞에 구부정한 몸으로 앉아 있는 노인을 상상한다. 미켈란젤로를 미켈란젤로로 만드는 건 그다음에 그가 한 일이다. 습작을 해본 다음 그는 일어나서 그 스케치를 현실화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그는 죽기 며칠 전까지도 말을잘 듣지 않는 대리석을 망치와 끌로 두드리고 있었다. - P292

전시를 둘러보다가 작품 라벨에서 "독학self-taught" 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그 표현은 ‘민중 예술folk art‘ 이라는 용어 대신 쓰이기 시작한 예술계의 전문용어인데 현실은 그 단어의 원래 의미와 전혀 관계가 없다는 걸 생각하면 이상한 용어 선택이다. 내가알기로는 이 퀼트 제작자들 중 누구도 독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루시 T. 페트웨이는 어머니와 이모할머니에게서 퀼트를배웠고 그들은 또 자기들보다 나이 든 여자들에게서 배웠을 것 - P296

이다. 퀼트는 노예해방 이전부터 있었던 오래된 전통이고, 아마도 서아프리카 지역의 관습에서 일부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또 동년배들과 경쟁도 하고 아이디어를 훔치기도 하면서 기술을 배우고 연마했을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살던 시대의 피렌체처럼 지스 벤드에도 인구 한 명당 예술가의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았다.
퀼트는 다른 예술 장르보다 공개적인 성격이 훨씬 강했다.
봄이 오면 여자들은 퀼트를 볕에 넣어야 했어요. 빨랫줄에 걸어서…. 크레올라 페트웨이가 설명한다. 루시 T는 "보통 퀼트를열다섯 점에서 스무 점씩 내다 널었어요. 그보다 더 많을 때도있었고요.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퀼트 구경을 하느라 도랑에 빠지기도 했죠!" 크레올라는 어릴 때 걸어서 퀼트 구경을 하고 다녔다. 연필과 종이를 들고 동네를 슬슬 돌아다니면서 거장들의작품을 보고 "패턴을 베껴서 내 퀼트를 만드는 데 썼죠." - P297

메트의 현대 미술 전시관에 걸린 그 작품은 야생적이고 대담하고 도전적이다. 그것이 외풍이 술술 들어오는 통나무 오두막집에서 잠든 그녀의 아이를 덮은 이불이었을 때 어땠을지는 상상으로 그려볼 수밖에 없다. 1930년대는 지스 벤드가 곤궁했던시기였다. 대공황이 터지고 목화 가격이 폭락하면서 백인 부재지주에게 소작료를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빚 수금업자들이 조직적으로 급습을 해서 농기구와 가축, 가재도구들을압수해버리자 사람들은 숲으로 들어가 식량과 땔감을 구해야만했다. 그렇게 곤궁한 시기에 케네디는 이 작품을 만들었다. 그녀도 이 용어를 썼는지 모르지만 내게는 이것이야말로 예술의 정의 그 자체로 보인다. 과분하게 아름다운 것. - P298

일요일 아침이다. 나는 지금까지 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퀼트 작품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만든 사람을 생각하고 있다. 보통죽은 지 오래된 예술가를 떠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인 이 미술관에서 그건 꽤 기분 좋은 예외였다. 로레타 페트웨이가 지금 이순간 어디에 있을지 추측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분명 지스벤드에 있을 것이고 그곳에 있는 플레전트 그로브 뱁티스트 교회에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녀는 여행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런전시가 열려서 축하받을 수 있는 자리에도 오지 않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퀼트는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흑인 투표권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로 열띤 투쟁이 벌어지던 와중에 마틴 루서 킹이 플레전트 그로브에 와서 연설을 한 바로 그해다. 이 집회에 대한 보복으로 지스 벤드를 주변 공동체와 이어주던 중요한 수단이었던 페리 서비스가 취소됐고 지금까지도 복구 되지 않았다. - P300

혼자 생각에 잠긴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처럼 세계적으로 장대한 곳에서 얻는 깨달음치고는 좀 우습긴 하지만, 바로 의미라는 것은 늘 지역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은 자신의 상황에 갇힌 사람들이 아름답고, 유용하고, 진실된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조각조각 노력을 이어 붙여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교훈까지 말이다. 미켈란젤로 시대의 피렌체, 심지어 미켈란젤로 시대의 로마마저 이런 면에서는 로레타 페트웨이가 살던 시절의 지스벤드와 다르지 않다. 이제 더 이상 전성기 르네상스와 같은 개념을 빌어 생각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새로 만든 회반죽을 바르고, 거기에 그림을 그리고, 회반죽을 조금 더 바르고, 거기에 그림을 조금 더 그리는 한 사람을 생각할 것이다. - P302

인생은 길다. 그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다. 젊어서 죽으면 인생은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요절하지 않으면 다 자란 후에도 추가로남은 몇십 년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50년, 60년 어쩌면 70년 정도 남은 시간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형이 죽고 나서 나는 어찌어찌 메트로 오는 길을 찾게 됐다.
그리고 성년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 여정이라기보다는 그동안추구하던 성장과 변화를 마무리 짓는 최종 목적지 같은 시기라생각하는 쪽이 편했다. 형보다 더 나이 든 사람이 된 지금이 이상하고 부자연스럽다. 어릴 적 올라가서 놀던 나무보다 키가 더커지면 이런 느낌일까. 그러나 이제는 내 삶이 지금 보이는 지평선 너머까지 뻗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 정도의 관록은 갖추게 되었다. 삶은 휘청거리고 삐걱거리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테고, 그 방향을 나 스스로 잡는 편이 낫다는 것도 알게 됐다. 다시말해 내 삶은 여러 개의 챕터로 되어 있고, 그 말은 현재의 챕터를 언제라도 끝낼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 P305

스러운 광경이지만 점차 신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리를 지키며 서 있는 동안에는 계속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다. 거의 완벽한 직장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이제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더 이상 완벽한 직장이 아닐지도몰랐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이 전시실에서 벌어진다고 생각하던 한때가 있었고, 명상과 같은 고요함을 감사한 마음으로음미했다. 그러나 요즘은 생각이 미술관 밖으로 휘리릭 날아가서 몸과 마음이 움찔거리고 안절부절못하기 일쑤다. 나는 이제더 이상 고요하고 정돈된 환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제 더이상 경기장 밖에 서서 게임을 잠자코 지켜보지 않아도 된다. 전시실을 찾는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을 지켜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이 큰 도시와 넓은 세상을 어떻게 만나게 해줄지를 계획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 P306

파트타임으로 하는 비정규직 일자리에 불과하다. 평생 이 일을 하면서 살아갈 것이라고 상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인생은길고, 이 일은 구석에 서서 사람들을 지켜보는 대신 그들을 이끌고 다니면서 글자 그대로 세상을 탐험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봄이 오고 일을 시작할 날짜가 다가오면서 나는 가이드를 하기위해 조사하고, 투어내용을 적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들려줄 준비를 하는 내가 얼마나 신나 하고 있는지 문득 깨닫는다. 이야기를 하는 일, 나만의 것을 만드는 일이다. - P307

그렇다, 그럴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은 위안을 준다.
힘이 나게 한다. 그리고 순수하다. 빈센트의 <붓꽃>을 보고 있자면 가난과 자신을 괴롭히는 상념들에서 벗어나 그 생기 넘치는단순함 속에서 영원히 살고 싶은 화가의 염원이 느껴진다. 그러나 몸을 돌려 우리 앞에 놓인 것을 직면해야 하는 시간은 오고야만다. 빈센트의 이야기가 슬픈 것은 그가 삶을 살아내는 능력을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보다 운이 좋다는 사실에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이 감사하다. 내 이야기는 행복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P315

가끔은 지루하고 가끔은 숨 막히게 아름다운 일상. 아무리 중차대한 순간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기저에 깔린 신비로움이 숭고하다 할지라도 복잡한 세상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간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그림 하단이 있다. 그곳에서 그림의 톤은 다시 한번 변화한다. 거기에는 슬픔에 겨워 쓰러진 어머니를 돌보는 연민 가득한 사람들이 있다. 수동적인 구경꾼들과 달리 그들의 마음은 같은 방향, 즉 선행으로 향하고 있다. 그림의 이 마지막 부분은 따르고 싶은 모범이다.  - P320

내 앞에 펼쳐진 삶에서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필요한 경우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다른 이들도 나를 위해 그렇게 해줄 것이라는 게 나의 희망이다. 이제 형은 세상에 없다. 나는 그 상실을 느낀다. 형은 그림에서 성모 마리아를 돌보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린 채 몸을 굽히고 있는, 칭찬받아 마땅한 현실적인 사람들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지금도 형의 초상화, 티치아노가 그린 듯한 밝고 솔직한 형의 얼굴이 선명하게 살아 있고, 그 모습에서 나는 위안을 찾는다. 이 그림이라면 확실히 내가 메트 바깥으로 품고 나갈 수 있을 것이다. - P320

미술관이 문을 닫을 시간이 가까워올 때까지도 나는 계단 맨 꼭대기의 내 자리에 서 있다. 저 아래 그레이트 홀은 소란스럽기그지없다. 사람들이 바다처럼 몰려가 맡겨뒀던 옷을 찾아 입고, 지도를 보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세상을 떠나일상과 삶으로 돌아가는 수순을 밟고 있다.
많은 경우 예술은 우리가 세상이 그대로 멈춰 섰으면 하는 순간에서 비롯한다. 너무도 아름답거나, 진실되거나, 장엄하거나, 슬픈 나머지 삶을 계속하면서는 그냥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순간 말이다. 예술가들은 그 덧없는 순간들을 기록해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 그들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것들은 덧없이 흘러가버리지 않고 세대를 거듭하도록 계속 아름답고, 진실되고, 장엄하고, 슬프고 기쁜 것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고 믿게 해준다. 그리고 이곳 메트에 유화물감으로 그려지고, 대리석에 새겨지고, 퀼트로 바느질된 그 증거물들이 있다. - P324

세상이 이토록 형형색색으로 화려하고 충만하며, 그런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며,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들을 정성을 다해 만들려는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이신비롭다. 예술은 평범한 것과 신비로움 양쪽 모두에 관한 것이어서 우리에게 뻔한 것들, 간과하고 지나간 것들을 돌아보도록일깨워준다. 예술이 있는 곳에서 보낼 수 있었던 모든 시간에 고 - P324

마운 마음이다. 나는 다시 이곳에 돌아올 것이다.
10년 전, 배치된 구역에 처음 섰을 때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것들이 있었다. 때때로 삶은 단순함과 정적만으로 이루어져 있을 때도 있다. 빛을 발하는 예술품들 사이에서 방심하지 않고 모든 것을 살피는 경비원의 삶처럼 말이다. 그러나 삶은 군말 없이살아가면서 고군분투하고, 성장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기도 하다.
5시 30분이 되자 나는 클럽으로 부착하는 해진 넥타이를 떼고서 중앙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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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에게는 혐오가 많았고, 이 온화하고 뛰어나며 매력적이고 독실한 남자가 그런 혐오에 대해 사과하기는커녕, 그 미움을 정당화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건 무시무시한혐오였다. 루이스는 자기 신념에 독선적이었다. 전투적 기독교인은그래도 무방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단히 지적이고 고등 교육을받은 남자가 자기 의견과 편견에 독선적으로 군다는 건 허용해도 좋을 일이 아니다. 오직 인사이드 클럽만이 지지할 일이다. - P426

루이스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였던 J. R. R. 톨킨도 많은 분야에서 루이스와 같은 견해를 보였고 독실한 기독교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톨킨의 소설에서는 그 모든 것이 완전히 다르게 나타난다. 톨킨이 악을 다루는 방식을 보자. 톨킨의 악당들은 오크와 검은 기수들(고블린과 좀비들: 신화적인 존재들이다.), 그리고 인간으로보인 적도 없고 인간 같은 구석도 없는 어둠의 군주 사우론이다.
이들은 사악한 인간이 아니라 인간 내부의 악의 화신이며, 증오의보편 상징이다. 잘못된 일을 하는 인간들은 완성된 인물이 아니라보완 요소로 작동한다. 사루만은 간달프의 어두운 자아이고, 보로미르는 아라고른의 어두운 자아다. 뱀혓바닥 그리마는 거의 대놓고 세오덴 왕의 약한 부분이다. 놀랍도록 혐오스러운 타락한 골룸도 있기는 하다.  - P427

하지만 『반지의 제왕 3부작을 읽는 그 누구도 골룸을 미워하거나, 미워하라는 요구를 받지 않는다. 골룸은 프로도의 그림자다. 그리고 모험을 완수하는 존재는 영웅이 아니라 그림자 쪽이다. 톨킨이 악을 "타자"에게 투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진짜 타자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톨킨은 이 점을 아주 분명히 드러낸다. 톨킨의 윤리는 꿈의 윤리처럼 보상 성격을 띤다. 마지막 "답"은 미지의 상태로 남는다. 하지만 책임감이 받아들여지기에, 너그러움이 살아남는다. 그리고 황금률‘이 개가를 울린다. 사실 『반지의 제왕을 좋아한다면 골룸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루이스의 경우, 책임감은 적과 싸워 이기는 기독교 영웅이 - P427

라는 형태로만 나타난다. 사랑이 아니라 미움의 승리다. 적은 자기자신이 아니라 온전히 타자이며 악마들린 자다. 이렇게 투사하면저자가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고, 실제로 이 이야기들 몇 개는잔인함이 지배한다. 루이스의 우주 3부작 주인공 랜섬은 이 책의주요작 『다크 타워』에도 나온다. 랜섬의 몇 마디는 진정 인사이드클럽답게 아주 겸손하면서도 대단히 아는 체하는 투로 나온다. 나는 언제나 골룸이 더 좋다.
루이스는 우주 3부작 중에서 첫 권인 『침묵의 행성에서」핵심 장면들만 보더라도 SF 작가로 불려야 한다. 여기에 나오는 화성 풍경과 거주자들에 대한 묘사는 웅장하다. 선명하고, 감정적으로 강력하며, 정말로 기이하다. SF는 그 후 줄곧 그 장면을 흉내 냈다. 다크 타워』에도 그런 시각적인 힘이 넌지시 보이기는 하지만,
민망할 정도로 순진한 성적 색채 때문에 약화되고 말았다. 루이스는 자기 소재를 통제하지 못한다. 깊은 무의식의 소재를 끌어내는사람이라면 가끔 그 속에 잠긴다 해도 탓할 수 없다. - P428

감정적인 성향에 더 흥미가 가기는 한다. 감정 선호가 예술적으로 위험이 더 크기 때문이다. 「미지와의 조우에서는 때로 감정이 마음을 움직인다. 영화 내내 아이들이 정말로 중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외계인들이 순수한 빛 속에 잠긴 어린아이 같고 가냘프고 거의 태아처럼 보이는 모습으로 처음 나타난 순간에는 깊은 반향이 울린다. 하지만 그러다가 스필버그가 재앙 같은 클로즈업으로 그 순간을 날려 버린다. 손재주 참! 아무도 아무 일도 조용하게나 수월하게 하지 못한다. 카메라에 필름을 넣는 장면마저 그렇다.
모두가 거대한 상어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모든 움직임이격하고 부산하다. 그래도 배우들은 워낙 훌륭해서 그 모든 어려움을 뚫고도 개성과 믿음이 가는 반응들을 다진다. 우리는 배우들과함께 느끼고, 동조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또 과도한 흥분이내려앉고 볼륨이 커지고 만다. - P435

도리스 레싱은 위험을 감수하지만 게임을 하지는 않는다.
유머나 재치나 장난기를 기대하고 레싱의 책을 찾는 사람은 없고, 레싱의 작품에서 장난과 속임수와 조작이라는 의미에서의 게임을 찾을 사람도 없을 것이다. 시카스타』 서문에서 레싱은 특유의 솔직한 태도로 현대 소설가가 SF에 진 빚에 대해 말한다. 점잖은 "사변 소설"로 도피하지도 않고 자신의 책을 과학소설로 소개하고 있으니, 나도 고맙게 이 책을 과학소설로 평하련다. 과학소설은 지금까지 가식적인 이들에게 사과하고 무지를 고집하는 사람들에게스스로를 설명하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허비했으니 말이다.
누가 썼는지 모르고 시카스타』를 읽었다면, 저명한 작가가 새로운 모드에 어색해하면서 쓴 작품이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을 것 같다. 유감이지만 이렇게 말했을 터이다. 열심이지만 욕심이 과하고, 구성이 나쁘며, 편집도 나쁜데, 발전가능성은 아주큰, 전형적인 첫 소설이라고.  - P437

싸구려 매문가나 괴짜도 아닌, 주목할 만한 작가가 이런 투사가 담긴 윤리를 내미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불안하다. 시카스는 기독교 서적이 아닌데도 칼뱅파스럽다. 인류는 뿌리부터 무책임하다고 단언하고 있지 않은가. 구원은 노력이 아니라 은총으로만 이루어지고, 영혼의 수고가 아니라 탄원과 개입으로 이루어진다. 그것도 소수의 선택받은, 뽑힌 사람들에게만 나머지는 심판/대학살/종말의 저주에 처한다. 이것은 최근 유사과학에 흔하고, 자연히 근본주의를 뒷받침하는 주제다. 이 사상의 뿌리는 아마 근동에 있을 텐데, 서구에서는 힘든 시기, 사람들이 절망에 대한 조언을 구할 때마다 나타났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호감이 가지 않고 근본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기에, 보편성을 획득한적은 없다. 대부분의 예술가에게도 동조하기 힘든 사상이다. 이 사상은 세상에 비극이나 자선이 있을 자리를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 P440

레싱은 가끔 한 번씩 훈계를 멈추고 자신이 뛰어든 세계를돌아본다. 그런 순간에는 작가가 그곳에 있고, 그곳에 속한다는사실을 의심할 수가 없다. 레싱이 전통적인 소설을 쓰지 않는 것은 전통적인 정신의 소유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레싱은 전혀 리얼리즘 작가가 아니다. 그렇다고 판타지 작가도 아니다. 오래된 구분은 이제 무의미하니, 폐기해야 마땅하다. 비평가들보다 먼저 우리소설가들부터 그 구별을 넘어서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레싱이 어색하게 움직이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레싱은 앞으로 나아간다. 나라면 SOWE, 또는 우리-본질의 느낌(substance-of-we-feeling,
대체 본래 뜻이 더 나쁜지 줄임말이 더 나쁜지 모르겠다.) 같은 것을 곱씹고 싶지 않겠지만, 6번 구역에 가려면 SOWF를 거쳐야 할지도 모른다. 6번 구역이란 하데스이고, 티베트 『사자의 서」에 나오는 풍경이며, 무의식의 외딴 영역이고, 경계 세계이자 그 이상으로, 개념과 - P442

심상으로서는 참으로 아름답다.
지적인 소설, 아이디어 기반의 소설들은 너무 자주 의견을제시하는 소설로 빠져든다. 방자해진 과학소설은 다른 어떤 예술보다 더 광대한 소재를 가지고서도, 그럴 권리도 없이 고함을 치고설교를 한다. 레싱의 의견, "과학"과 "정치" 등등에 대한 레싱의 혹평은 거의 소설을 망칠 뻔했다. 하지만 그런 의견들 아래에, 그 너머에, 작가의 통제를 벗어나서, 어쩌면 작가의 의식적인 의도마저반하는 창조적인 영혼이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권위를 발휘하여테러리스트의 어린 시절을 묘사하거나, 생명의 문 앞에 모여들어우는 영혼들을 상상할 수 있는 작가가.... 그리고 그렇게 비틀거리면서 힘겹게 돌아다니는 책은 결점을 상쇄하고, 읽을 만한 가치가 있으며, 불멸하는 다이아몬드와도 같다. - P443

누구나 가끔은 기분이 가라앉지만, 어떤 사람은 가라앉았다가 다시 올라오지 못한다. 우울증은 유일하게 임상적으로 치명적일 때가 잦다고 인정받은 정신질환이다. 자살로 끝날 때가 너무많다. 미합중국에만 4000만에서 6500만의 우울증 환자가 있다.
그중 3분의 2는, 그러니까 진단 사례의 대다수는 여성이다. 주부나임금 노동자나 비슷하고, 집에서 아기를 키우든 사무실에 나가서경력을 쌓든 차이가 없다.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타고난 패배자로여기도록 배운 사람은 승리자처럼 생각하기가 힘들어진다. 매기스카프의 미완의 과제는 여성의 우울증이라는 큰 문제를 다루는 대단한 책이다.
우울증이란 무엇인가?
"자꾸만 결정을 내렸다가 흩어 버려요..." 이 사람은 브렌다, 병원과 진료소에서 인터뷰하여 이 책에 수록한 많은 목소리 중하나다. "내가 뭔가를 애도하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뭘 애도하는 - P465

건지는 모르겠는 기분이죠." 다이애나의 말이다.
스카프는 말한다. "인생을 계속 이어지는 실로 본다면, 우울증은 그 실이 엉키고 뭉치고 뒤얽힌 자리…… 조정이 실패했다는 신호다." 그 증상으로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없음, 생각하고 기억하는 능력이 손상됨, 결정을 하지 못함, 과민함, 극심한 피로(또는 주체하기 힘든 활동성), 수면 장애, 성교 불능 또는 불감, 슬픔, 그리고 스스로와 스스로의 고통을 제외한 그 무엇에도 관심을 갖지 못함 등이 있다. "기분 상태 자체가 경험의 필터가 되어서, 즐겁거나기쁜 경험은 하나도 그 필터를 통과하지 못한다" - P466

지시하는 내용이라곤 이것뿐이다. 스카프는 우울증을 "정의한 다음에 그 안을 색칠하지 않는다. 이 책 전체가 우울증의 정의이고, 스카프가 내미는 우울증의 그림은 개별 사례 연구와 스카프가 논하는 이론과 치료법들로부터 자라나고 그곳에 계속 뿌리를 둔다. 이 논의들은 이 분야에서 보기 드문 폭과 냉정함을 갖추고 있다. 스카프는 자신의 의향을 분명하게 드러내면서도 우리에게 생각할 자유를 남겨 둔다. 즉각적인 확신을 제시하는 일은 없다. 이 책은 전문 용어 없이 접하기 쉬운 저널리스트 스타일로 쓴대중 심리학 저술이다. 그들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책이다. 그렇다고 유행 심리학"도 아니다. 의견을 주입하지는 않아도, 살펴볼 수있도록 내놓기는 한다. 이 책은 대단히 사려 깊고, 그렇기에 비판은 거의 하지 않는다. 게다가 경탄스러울 정도로 온화하다. 전통 심리학의 ‘남성이-표준‘ 요새와 래디컬 페미니즘의 ‘남성은적‘ 전초 - P466

기지 사이 전쟁터에서 냉정을 유지하기란 늘 쉬운 일이 아닌데, 매기 스카프는 결코 흥분하지 않는다. 심지어 프로이트의 그 유명한 말 "우리는 여자가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영영 모를 것이다."
조차도 대처해 낸다. 지금이서평을 쓰고 있는 나를 비롯해서 어떤 여자들은 이 얼빠진 발언을 들으면 자동으로 입에 거품을 문다. 그 지루하기까지 한 남성 인지의 오만이라니. 대체 "우리"가 누구란 말인가? 다시, 또다시 남성이 인간이고 여성은 비정상이라는식 아닌가. 그런데 스카프는 온화하게 "다소 얄궂은 발언이다."라고 하고 논의를 계속한다.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은 사실상 그 질문을 반쯤 조롱하는 질문에서 철저히 진지한 질문으로 바꿔 놓는 작업이다. 대체 여자의 삶에 무엇이 부족하면 우울증 상태로 이어질수 있나? 여자들은 다양한 인생의 단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 P467

아, 저 질문에 갈채를 보낸다. 갈채와 환호를
부제 ‘여성의 인생에 존재하는 압력점‘을 잘못 보면 이 책이 예측 가능한 위기 대처 매뉴얼인가 싶어진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생단계" 란 단순히 10대부터 70대까지 여섯 번의 10년씩을 말하고, 각 단계마다 하나 또는 여러 명의 인터뷰가 예시가 된다. 각각의 인터뷰가, 인터뷰 속 여자들 모두가 어둠 속의 목소리다. 상실,
애도, 공포, 절망, 분노, 고독의 목소리, 청소년기에 처음 겪는 큰 상실은 바로 아동기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여자는 어린 시절의 안전을 성인의 독립성과 맞바꿔야 하는데, 사랑이 따르지 않으면 그 과 - P467

정을 해방이 아니라 버려짐으로 여길 수 있고, 그러면 희망과 신뢰가 아니라 슬픔과 두려움 속에서 인생에 대처해야 한다. 인생의 매단계마다 이런 패턴이 일어나거나 되풀이될 수 있다. 그리고 언제나 자립을 성취하는 일, 세상에서 자유롭게 존재하고 행위하는 자아를 획득하는 일은 여자에게 "사람들이 나에게 뭘 원하지?" 묻기를 부추기고 여자가 "난 뭘 하고 싶고, 무엇이 되고 싶지?"라고 물으면 얼굴을 찌푸리는 문화적인 편견에 방해를 받는다. - P468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겨우 25년에서 30년쯤 늦게 노벨문학상을 받고, 다음해에는 이탈로 칼비노가 상을 받는다면………아니, 백일몽은 그만 꾸자. 그사이 여기에 1945년부터 1960년까지 써 낸 칼비노의 단편 선집이 윌리엄 위버, 아치볼드 콜훈, 페기라이트의 멋들어진 번역으로 찾아왔다.
접시에는 개구리, 소스팬에는 뱀, 수프 안에는 도마뱀, 타일 위에는 두꺼비들로 야생동물 가득한 부엌, 동굴 속에는 양, 덤불에는 돼지, 공터에는 소, 여기에는 닭, 저기에는 기니피그로 길짐승 가득한 숲 금전 등록기는 무시하고 크림퍼프와 젤리롤에 파묻힌 도둑들이 가득한 패스트리집, 벌거벗은 채로 모피 상점을 습격해서 담비털, 비버털, 양털을 강탈해다가 깜짝 놀란 가게 직원에게 "모피 토시에 팔이 엉킨 거대한 인간 곰처럼 보이게 된 늙은 거지……. 이 직원의 반응은 그야말로 칼비노스럽다. "귀엽기도 해라!" 이러니 말이다. - P487

칼비노의 초기 단편들은 정확하고, 섬세하고, 친절하고, 건조하고, 말도 안 되고, 자주 이런 동물생명과 인공생명의 침입 또는 상호 침투라는 주제를 따라간다. 기이함이 질서를 전복하는 이야기다. 복잡한 주제이다 보니 더 정확하게 판별할 수가 없고, 이야기 속의 한갓 아이디어로 뽑아낼 수도 없다. 이것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이고, 심리학적이며, 매혹적인 주제다. 사실 칼비노가 워낙지적으로 흥미로운 작가이다 보니 독자는 칼비노가 보이지 않는도시들』이나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 같은 반(反)서사" 스턴트를 소화해 내는 것이 강력한 서사 재능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한다. 이 책에서 여러분은 서스펜스 패러다임의 "지뢰밭"에선 순수하고 단순한 이야기꾼을 볼 수 있다. 지뢰가 터질까, 터지지 않을까? 나는 미처 내가 일곱 페이지 동안 숨을 참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 P488

소설 속에 담긴 세련된 사색은 주목할 만하고, 훌륭하며, 캘리포니아스럽다. 유럽에 집착하는 많은 동부 해안의 사상은 진짜 동부를 아우르지 않는다. 이 책에서 드물게 언급되지만 구조적으로 아주 중요한 사티야그라하 (Satiyagraha)나무위(無違) 같은 개념은, 다 낯선 말이고 서부에서나 하는 무엇, 아니면 셀마에서나하는 뭔가라고 여기는 독자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나쁠 것은 없다. 일반 독자보다 잘 알아야 마땅한 비평가들이 그걸 몰라서 이 책을 저평가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건 빠르고, 책장이 잘 넘어가고, 재미있는 좋은 여름 휴가용 책이다. 또 그이상의 무엇이기도 하고, 주목받아 마땅하다. 궁극의 폭력 행위에 - P526

대해 비폭력적으로 쓰려고 시도하면서 캐럴린 시는 아주 오래된비폭력 전통에 소설의 바탕을 두었다. "남자의 세상"에 대해 여자로서 쓰면서 여성 연대와 인간의 친절로 분노를 갈아 냈다. 캘리포니아 토양에 다진 이 단단한 기반 위에, 섬세하고 뛰어나며 놀라운 와츠타워 같은 책을 지었다. - P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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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누군가의 경험이 다른 누군가의 경험에 대한 부정, 부인, 반증이 될 수가 있겠어요? 제가 훨씬 경험이 많다 해도, 여러분의 경험은 여러분의 진실이에요. 어떻게 누군가의 존재가 다른 누군가가 틀렸다는 증명이 될 수 있겠어요? 설령 여러분이 저보다 훨씬 젊고 영리하다 해도, 제 존재는 저의 진실이죠. 전 제 경험을 제공할 수 있고, 여러분은 그걸 받아들이지 않아도 돼요. 사람들은 서로 상충할 수가 없어요. 오직 말만 서로 상충할 수 있지요. 무기로 쓰기 위해 경험에서 떼어낸 말들, 상처를 만들고 주체와 객체 사이를 찢고 객체를 드러내고 착취하면서 주체는 숨기고 방어하는 말들이요. - P266

사람들이 객관성을 갈망하는 이유는, 주관적이라는 건 취약하고 훼손당할 수 있는 형체를 갖춘다는 뜻, 그런 몸이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에요. 특히 남자들이 그런 일에 익숙하지가 않죠. 남자들은 내주지 말고 공격하라고 훈련받으니까요. 서로를 믿고, 우리만의 언어로, 우리가 서로 대화하는 언어로, 즉 어머니말로 우리의 경험을 말하려고 하는 건 여자들에게 더 쉬운 일일 때가 많아요.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힘을 주죠. - P266

기묘한 리얼리즘이지만, 기묘한 현실이다.
아무리 이상하다 해도, 제대로 만든 SF는 모든 진지한 소설과 마찬가지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사람들이 정말로무엇을 하고 무엇을 느끼는지, 어떻게 이 거대한 자루에서, 이 우주의 배 속에서, 앞으로 태어날 것들의 자궁이며 전에 있었던 것들의 무덤에서, 이 끝없는 이야기에서 사람들이 다른 모든 것과 어떻게 관계 맺는지에 대해 설명하려는 한 가지 방법이다. 모든 소설이그러하듯 SF 안에는 남자(Man)마저도 자기가 원하는 자리, 자기가속한 자리에 둘 여유가 있다. 야생 귀리를 잔뜩 따고 또 뿌리고, 어린 우므에게 노래를 불러 주고, 우르의 농담을 듣고, 도롱뇽을 구경하고, 그러고도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만큼 시간이 있다. 아직거둬야 할 씨앗들이 있고, 별들의 가방 속엔 공간이 있다. - P301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할까요? 헤밍웨이부터 메일러까지, 멸종 위기의 어리석은 마초들은 다 두려워하죠. 여자가 살아온 경험을, 여자의 판단으로 쓰는 것보다 더 전복적인 행동은 없어요. 버지니아 울프는 1930년에 그 사실을 알고 말했지요. 우리들은대부분 그 말을 잊어서 1960년대에 다시 발견해야 했어요. 하지만이제는 여자들이 쓰고, 출판하고, 예술의 유대, 학문의 유대, 페미니스트 유대로 서로의 글을 읽은 지 한 세대가 다 됐어요. 계속 이렇게 한다면 2000년도쯤에는 역사상 처음으로!한 세대 이상사회에서 활동적이고 창조적인 세력으로 의식을 갖고 살아 있는여자들의 통찰과 발상과 판단을 갖게 되겠지요. 그리고 우리의 딸과 손녀딸들은 우리처럼 0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여자들의 말, 여자들의 작품을 살아 있고 힘 있게 지키는 것..
전 그게 지금부터 15년간, 그리고 또다시 50년간 작가이자 독자로서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 P314

지난봄에 제인 오스틴의 설득을 서로에게 읽어 준 후, 내 배우자와 나는 시험 삼아, 큰 기대 없이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를 읽어 보기로 했어요. 오스틴이 글을 썼을 때는 사람들이 아직 많이들 소리 내어 읽었고, 작가도 자기 텍스트를 듣고 목소리에 운율을 맞춘 게 분명했지요. 하지만 울프는,
너무나 지적이고 교묘하고... 그래서, 우리가 겪은 문제라고는 오직 터져 나오는 눈물, 기쁨의 고함, 그 외에 다른 지적 흥분과 주체할 수 없는 감정 표현에 낭독이 자꾸 지연되었다는 사실뿐이었어요. 가능하다면 난 두 번 다시 버지니아 울프를 소리 없이 읽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읽으면 울프의 작품 절반은 놓치는 거예요. - P327

이 글의 나머지 내용은 내가 글을 쓸 때 실제로 무슨 일을한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전체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어디에들어가는지 분석해 보려는 시도가 될 것이다.
이 과정에는 다섯 가지 기본 요소가 있는 것 같다.


1. 언어의 패턴 단어들의 소리
2. 구문과 문법의 패턴, 단어와 문장이 서로 연결되는 방식.
그 연결이 상호 연결되어 더 큰 단위(문단, 절, 장)를 형성하용 있는 방식, 즉 작품의 시간적 움직임, 템포, 속도, 보폭, 그리 - P342

고 형태,
(주시에서는 특히 서정시에서는 이 두 가지 패턴화가 작품의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분명하고 두드러지는 요소이다. 말의 소리, 운율, 울림, 리듬, 즉시의 "음악" 요소 말이다. 산문에서 소리 패턴은 훨씬 미묘하고 느슨하며 사실상 압운, 조화, 유운 등등은 피해야 한다. 그리고문장나누기, 문단 나누기, 시간적인 움직임과 형태의 패턴은 너무 크고 느리게 이루어져서 의식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소설의 "음악", 특히 장편소설의 음악은 아름답다는 사실을 독자가 알아채지 못하는경우도 많다.)
3. 심상(想)의 패턴. 말이 우리로 하여금 마음의 눈으로 보게 하거나, 상상으로 감각하게 만드는 것,
4. 아이디어의 패턴, 말과 사건 서술이 우리에게 이해시키거나, 우리의 이해를 빌리는 것.
5. 느낌의 패턴, 말과 서술이, 위에 언급한 모든 수단을 써서,
말로 직접 접근하거나 표현할 수 없는 영역에서 우리에게감정적으로나 영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 - P343

이런 온갖 종류의 패턴화-소리, 구문, 심상, 아이디어, 느낌의 패턴화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그리고 모두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한다. 작품의 시작점이라는 신비로운 단계는 아마 이 모든 패턴이 맞아 들어가는 때일 것이다. 저자의 머릿속에서 어떤 느낌이 그느낌을 표현할 심상과 연결되고, 그 심상은 아이디어로 이어져서, - P343

반쯤 형성된 아이디어가 직접 말을 찾기 시작하고, 그 말이 다른말로 이어져 새로운 심상을, 어쩌면 사람들을,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을 만들고, 그 사람들이 하는 일이 아래에 깔린 느낌과 아이디어를 표현하여 이제 서로 공명하고……구상 단계에서나 글쓰기 단계에서, 아니면 수정 단계에서이 과정 중 하나라도 많이 부족하거나 빠지면 결과는 약하거나 실패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실패는 성공이 의기양양하게 숨기는 바를 분석하게 해 줄 때가 많다. 내 글쓰기 과정의 다섯 가지 요소를분석하는 데 체호프나 울프의 단편은 추천하지 않는다. 성공한 소설은 분해할 수 없는 일체로 움직인다. 하지만 약하거나 실패한 글쓰기를 보여 주는 친숙한 작품들에서는 한가지 요소가 빠져 있다는 사실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려 줄 수 있다. - P344

예를 들어 보자.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서, 진부한 등장인물들이 연기하는 어떤 플롯으로 발전시키고, 느낌 대신 폭력에 기대면 쓰레기 수준의 미스터리나 스릴러나 SF 소설을 만들 수있다. 하지만 훌륭한 미스터리나 스릴러나 SF가 되지는 않는다.
거꾸로 강력한 느낌을 강력한 등장인물들이 일으킨다 해도, 그 느낌에 연결된 아이디어를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야기를 전달하기에는 부족하다. 정신이 감정과 같이 맞아 들어가지않는다면, 그 감정은 대부분의 대중 로맨스처럼) 소망 충족이나 (많은
"주류" 장르처럼) 분노나 (포르노에서처럼) 호르몬의 욕조에 빠져서 허우적댈 것이다. - P344

초심자들의 실패는 강력한 느낌과 아이디어는 있으나 담아 낼 심상을 찾지 못했거나, 단어를 찾아 꿰는 방법을 모르는 채로 시도한 결과물일 때가 많다. 영어로 쓰는 작가가 영어 어휘와문법을 모른다면 문제가 크다. 가장 좋은 치료법은 독서다. 두 살쯤에 말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 후 줄곧 말하기를 해 온 사람들은자기들이 언어를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아는 것은 말하는 언어이고, 그다지 읽지 않거나 싸구려 글만 읽고 그다지 써 보지도 않았다면, 두 살 때 말하던 꼴로 글을 쓰게 될 것이다. 글쓰기도 상당한 연습을 요구한다. 기본적인 지법도 배우지 않은 악기로 복잡한 음악을 연주하려 시도한다면 그게 바로 처음 쓰는 작가들에게 제일 흔한 결함이다. - P345

드물게 나오는 실패는, 단어들이 큰 소리로 울면서 뛰어다니고 돌진하며 발길질로 먼지를 잔뜩 일으키는데, 정작 그 먼지가가라앉고 나면 울타리 안에서 나오지도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종류의 실패다. 그런 작품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어디로도 가지 못한다. 느낌, 아이디어, 심상은 그저 우르르 끌려갈 뿐, 이야기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류의 실패는 가끔유망해 보일 때가 있는데, 작가가 순수하게 언어로 잔치를 벌이기때문이다. 말이 글을 장악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 길로 계속 갈수는 없어도, 시작점으로는 나쁘지 않다.
소설가이자 시인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시는 "소리와 - P345

말의 의미 사이 관계"에서 저절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나는 산문도 같은 식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소리"에 구문과 서사의 큰동작, 연결, 형태를 포함시킨다면 말이다. 말과 심상, 아이디어, 그리고 그런 말들이 일으키는 감정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상호 관계가 있다. 그 관계가 강할수록 작품도 강하다. 소리와 리듬, 문장 구조, 심상들의 일관되고 통합한 패턴화 없이도 의미나 느낌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뼈가 없이 걸을 수 있다고 믿는 셈이다. - P346

나의 가장 큰 조력자는 언제나 버지니아 울프였고, 지금도버지니아 울프예요. 이제 울프가 글 쓰는 여자의 멋진 심상을 전해주는 여성의 직업Professions for Women 11 초고에서 인용할게요.


나는 그녀를 어부처럼 호숫가에 앉아서 물 위에 낚시대를 드리우고 명상하는 자세로 그린다. 그래, 그런 모습으로 상상한다. 그녀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추론하고 있지도 않았다. 플롯을 구상하고 있지도 않았다. 가늘지만 꼭 필요한 이성의 실 한 가닥을 들고 앉아서 의식의 심연으로 상상력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 P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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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무엇인가로 찔러 죽여서 선이 악을 이기는 판타지들은 과학기술을 마법으로 대체하고 소망 충족을 이루는 가짜 중세에서 즉각적인 만족감을 주고 불편을 피할 뿐, 그 이상은 염두에 두질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우주에서 벌어지는 끝없는 전쟁을 다루는SF 소설들도, 과학기술이 곧 마법이고 어떤 도덕적 심리적 정당화도 없이 살인을 계속할 뿐이라는 점에서 아마 그런 판타지와 똑같이 인정받지 못한 절망에서 쓰였겠지요. 미래는 사람이 살 수 없는곳이 되어 버렸어요. 저는 그런 암담함은 오직 현재를 직시하지 못할 때만 생겨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에 살고, 지금 여기 이성스러운 세상에서 다른 이들과 어울려 사는 책임 있는 존재로 살수가 없을 때 그런 절망이 일어나는 거예요. 현재야말로 우리가 희망을 찾기 위해 가진 전부이자, 우리에게 필요한 전부니까요. - P188

번역은 전적으로 미지의 세계예요. 저는 갈수록 글쓰기 행위 자체가 번역이라고, 적어도 다른 것보다는 번역에 가깝다고 느끼게 됐어요. 그러면 원본은 원래의 텍스트는 뭐냐고요? 제게는답이 없어요. 아마 아이디어들이 헤엄치는 깊은 바다 같은 원천이원본이고, 작가는 말이라는 그물로 그 아이디어를 잡아서 반짝이는 모습 그대로 배에 던져 넣는 거겠죠………. 이 은유를 밀고 나가자면 그 아이디어들은 죽어서 통조림이 되어 샌드위치로 먹힐 테고요. 뭔가를 가지고 건너오려면, 배가 필요해요. 아니면 다리가필요해요. 어떤 다리냐고요? 은유는 다 이렇게 쓸 수가 없게 되는군요. 제게는 그저 시든 산문이든, 작문은 번역과 그렇게 다르지않다는 느낌만 끈질기게 남아 있어요. 번역을 할 때는 말로 이루어진 원본 텍스트가 있지요. 창작이나 작문에는 그런 원본이 없어요.
말이 아닌 텍스트가 있고, 말은 직접 찾아야지요. 물론 다른 일이지만, 올바른 말을 올바른 순서로 찾아내고, 올바른 마디 (measure)를 찾아야 한다는 점은 같아요. 같은 일이라는 느낌이에요. - P205

새떼나 물고기떼처럼 갑자기 모두가 똑같이 새로운 일을 하고 다른 개체들이 뭘 하려고하는지 이해할 때가 있잖아요. 모두가 똑같은 비언어 텍스트를 각자의 언어로 번역하고 있는 거예요.
또한 그래서 제가 하임스, 테드록, 그 외 다른 사람들‘이 작업하는 영역을 두고 여기에서 뭔가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진다고느끼는 이유예요. 추상적인 번역 이론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문화의 완전히 낯선 언어로 연행된 구전 텍스트를 영어 문헌으로번역한다는 가장 큰 간극 사이의 실제 번역 작업. 여기야말로 우리 문학이 살아 있고, 고정되지 않으며, 움직이고, 정의 내리기에반항하는 영역이죠. 이것은 무엇일까요? 구전일까요, 문헌일까요?
둘 다예요. 서사일까요, 의례일까요? 둘 다예요. 시일까요, 산문일까요? 둘 다예요. 저도 바로 그런 것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생각해요.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언어를 번역하는방법을 배우고 싶어요. 번역이 원본만큼 좋지 않겠지만, 어차피 그건 언제나 그렇지요. - P206

제게 공개 석상에서 여성의 언어로 크게 말할 드문 기회를주신 밀스 칼리지 1983년 졸업반에게 감사드리고 싶군요.
졸업하는 남학생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분들을 배제할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 어느 그리스 비극에서 그리스인이 외국인에게 이런 말을 하죠. "그리스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부디 고개를 끄덕여서 알려 주세요."" 어쨌든, 졸업식은 보통 졸업하는 사람 모두가 남성이거나 남성이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합의하에 이루어지잖아요. 남자들이 입으면 정말 멋있는데 여자들이 입으면 버섯 아니면 임신한 황새처럼 보이는 12세기풍의 옷을 모두가 걸치는 것도 그래서고요. 지적인 전통은 남성입니다. 공개 연설은 국가 언어든 부족 언어든, 공적인 언어로 하지요. 그리고 우리부족의 언어는 남성의 언어예요. 물론 여자들도 그 언어를 배우죠.
우린 멍청이가 아니에요.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 인디라 간 - P207

디와 소모자 장군을 말하는 내용으로 구별할 수 있다면 어디 알려 주시죠. 여기는 남자의 세상이기에, 남자의 언어로 말을 해요.
그 말은 모두 권력의 말이죠. 다들 먼 길을 왔지만, 아직 멀었어요.
스스로를 판다 해도 그곳에 도달하지는 못할 거예요. 권력은 그들의 것이지. 여러분의 것이 아니니까요.
어쩌면 우린 권력의 말을 충분히 만끽했고 투쟁하는 삶에대해 충분히 말했는지도 몰라요. 어쩌면 이제 우리에겐 약자의 말이 필요한지도 몰라요. 지금 제가 여러분이 모두 이 대학의 상아탑 바깥 현실 세계로 뛰어나가서 승승장구하는 경력을 쌓거나, 남편이 승승장구하도록 돕고 우리 나라를 강하게 유지하고 모든 면에서 성공하라고 말하는 대신, 그러니까 권력에 대해 말하는 대신·…… 제가 이 자리에서 공공연히 여자처럼 말한다면 어떨까요?
- P208

뭔가 이상하게 들릴 거예요. 끔찍하게 들릴 거예요. 만약 제가 우선 여러분이 아이를 원할 경우 낳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면요. 잔뜩 낳으라는 건 아니에요. 두엇이면 충분하죠. 전 여러분과 여러분의 아이들에게 먹을 것이 충분하고, 따뜻하고 깨끗한 집과 친구들이 있으며, 여러분이 좋아하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뭐야, 그러자고 대학에 가나? 그게 다야? 성공은 어쩌고?
성공이란 다른 누군가의 실패죠. 성공이란 3억 명의 우리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장소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끔찍하게 가난한 현실 속에서 맨정신으로 살아가기에 계속 꿈꿀 수 있는아메리칸 드림이에요. 아니, 전 여러분의 성공을 기원하지 않아요. - P208

성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아요. 전 실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여러분은 인간이기에, 실패를 겪을 거예요. 실망, 부당함,
배신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겪을 거예요. 스스로가 강하다고 생각했던 지점에서 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예요. 소유하기 위해 일하다가 어느 순간 소유당하고 있음을 알게 될 거예요.
이미 경험했다는 걸 알지만, 여러분은 앞으로도 어두운 곳에서 홀로 두려움에 질리게 있게 될 거예요.
저는 여러분이, 나의 자매이자 딸들, 형제이자 아들들 모두가 그곳, 그 어두운 곳에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합리주의 성공 문화가 부정하며 유배지라고, 살 수 없는 곳이라고, 이질적이라고 하는 그곳에서도 살 수 있기를요. - P209

우리야 이미 국외자인걸요. 여자들은 여자이기에, 인간을남자(Man)라 칭하고, 존경받는 유일신이 남성이며, 오직 위쪽만이올바른 방향으로 주어진 이 사회의 자칭 남성 표준에서 배제되고, 소외당해요. 그러니 그곳은 그들의 나라로 두고, 우리만의 나라를탐사합시다. 성(性)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건 모든 남자와여자가 자기만의 영역에 있는 완전히 다른 우주죠. 난 사회에 대해, 제도화된 경쟁과 공격성, 폭력, 권위, 권력으로 이루어진 자칭남자의 세상에 대해 말하는 거예요. 우리가 여자로 살고 싶다면,
어느 정도 분리주의를 받아들여야 해요. 밀스 칼리지는 그런 분리주의의 현명한 구현이죠. 군사 훈련의 세계는 우리가 만든 것도 아니고 우리를 위한 것도 아니에요. - P209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여자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는 죄수로 살거나 정신병질적인 사회 체계에 합의한 포로로 살지 않고그곳의 원래 주민으로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곳에 편안히 자리 잡고 그곳에 집을 두고, 스스로 주인이 되어, 자기만의 방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이 그곳에서 예술이든 과학이든 공학이든 회사 경영이든 침대 밑 청소든 뭐든 간에 잘하는 일을 했으면좋겠고, 혹시 사람들이 여자가 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열등한 직업이라고 한다면 그들에게 꺼지라고 말하고 동일 노동에 동일 임금을 받아 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이 정복할 필요도, 정복당할 필요도 없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이 결코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바라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행사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여러분이 실패하고, 패배하고, 고통에 사로잡히고, 어둠 속에 놓일 때면 부디 어둠이야말로 여러분의 나라이며 여러분이 사는 곳이고, 어떤 전쟁도 치른 적 없고 어떤 전쟁에도 이긴 적 없으며 오직 미래만 있는 곳임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 P211

따듯하고 건조한 대초원의 저녁이고, 빛이 흐릿하고 길게 늘어진다. 어린 말을 탄 어린 기수들이 경기장을 돌면서 관심을 즐기다가 진행자가 쇼를 시작한다. 모든 로데오를 시작하는 방식이 그렇듯, 진행자는 우리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깃발인 국기에 경례하라고 주문하고, 그동안 말들은 꼼지락거리고 깃발잡이는 엄숙하게 앉아 있는데, 진행자는 계속해서 이 깃발이 "여러 캠퍼스에서 침을 맞고 짓밟히고 조롱당하고 불탔다."는 말을 늘어놓는다. 세상에, 대체 어느 시대 사람이길래? 진행자의 목소리에 깃든 독기는 고엽제" 못지않다. 또 사실은 누군가를 증오한다는 의미의 "애국주의"다. 제발 닥치고 여기 온 미국인들 모두가 보러 온쇼나 진행해요. 자, 이제 시작이다. 상금 10달러를 위해. - P218

밀밭과 옥수수밭 사이로 급경사진 테이블 같은 땅이 솟아오르기 시작하고, 갈라진 바닥이 목초지를 대신한다. 땅의 뼈가,
노란빛 감도는 하얀 바위들이 비쳐 보인다. 도로 저편에 거대한 가축 우리가 보인다. 짙은 적갈색 소들이 떼 지어 모인 모습이 쌓아놓은 장작더미 같다. 이곳 산에는 야생 유카가 자란다. 여기는 방목지다. 부드러운 빛깔의 먼 땅에서는 말들이 돌아다니며 풀을 뜯는다. 우리는 크고 길고 넓고 눈부신 네브래스카를 떠나 와이오밍경계선에 들어선다. 하루 반나절, 아니면 40분, 아니면 한 달이 걸려 가로지를 수 있는 땅. 비행기에서 보았다면 나는 네브래스카를 - P220

하나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차를 달렸기에 강가의 버드나무를,
그 달콤한 바람을 기억할 것이다. 어쩌면 말을 타거나 걸어서 이동하며 밤마다 조금씩 더 서쪽에서 야영을 하던 시절 사람들이 기억한 것도 플래트 강 옆 버드나무와 미루나무, 그리고 달콤한 바람이었을지 모른다. - P221

오리건에 있는 학교 관계자들은 점점 줄어 가는 예산으로도 학교 식당에서 건강하고 좋은 음식을 제공하려 노력한다. 어떤학생들에게는 그게 유일한 식사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날이 줄어 가는 예산으로도 수업과 학교 도서관에 아름답고 지적인책들을 제공하려 노력하는데, 많은 학생이 그 책들만 읽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최고를 제공하자. 여기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학교에추가 수업료를 내는 데 반대하는 쪽으로 투표한 사람이라 해도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책이 최고인지에 대해 서로 동의하지 않고, 동의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다양하게 풍성하게 많이 제공해야 한다.
한가지 의견이나 신조만 담긴 책들 말고, 하나의 무리나 분파가 좋다고 생각하는 책들 말고, 최대한 지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넓고다채로운 재료를 제공해야 한다. - P225

여기에서든 러시아에서든 다른 어느 곳에서든 검열은 철저히 반(反)민주주의적이고, 엘리트주의를 반영한다. 검열은 이렇게 말한다. 너는 선택할 만큼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러니우리가 대신 골라 주는 것을 읽고 다른 것은 읽지 말아라, 민주주의는 이렇게 말한다. 배움의 과정이란 선택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자유는 주어지는 게 아니라 획득하는 것이다. 읽고, 배우고, 자유를 획득해라.
나는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자", "더 엄격한 기준", "도덕적 - P226

인 지침", "더 확실한 정책" 등등으로 가장한 유라이어 힙 식의 검열이 두렵다. 학교 행정가와 교사와 사서와 학부모와 학생들이 저항했으면 좋겠다. 검열 옹호자는 다른 사람들을 자유인으로 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유를 얻을 자격조차 없다고 취급하는 사람들이다. - P227

내가 이 글을 쓰는 동안 앉아서 보는 경관은 청백색으로 펼쳐진 얼어붙은 클래머스 호수, 그리고 그 위에 여명처럼 빛나는 산맥이다. 오리건의 겨울을 담은 사진엽서 같다. 지금부터 10분 후에는 눈 덮인 산맥 사이 농장들을 지그재그로 지나가는 울타리가 보일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엽서랄까. 그리고 곧 눈 쌓인 크고 엄숙한 전나무들과 캐스케이드산맥의 봉우리와 골짜기들이 나타나리라. 나는 북쪽 포틀랜드로 달려가는 코스트 스타라이트 1430호차 9호실에 앉아 있으니 말이다. 여행 전체가 아름답다.
레이건 대통령은 암트랙 없이 해 나갈 수 있다고 결정하고예산에서 빼 버렸다. 레이건 씨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나 기차를타 봤을 테고 지금쯤은 기차로 여행하는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모르지 싶다. 오직 ‘중요한 사람들‘, 시간이 돈인 사람들만 알겠지.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만이 기차를 탄다. 시간이 돈이 아니라 살았던삶과 살아갈 삶인 사람들. - P240

어떤 사람들은 동시에 몇 가지 삶을 산다. 내 어머니는 한번에 하나씩 몇 가지 삶을 살았다. 어머니의 이름이 그 순차적인복잡성을 반영한다. 시어도라 코블 크라코프 브라운 크로버 퀸. 마지막 네 개는 남자 이름이다. 크라코프는 어머니의 아버지 이름(이자 어머니의 평생 별명이었던 ‘크라키‘의 이유), 브라운과 크로버와 퀸은세 남편의 이름이다. 코블은 어머니의 어머니 쪽 성으로, 몇 세대동안 딸들의 중간 이름으로 쓰였다. 시어도라라는 이름은 어머니의 어머니가 좋아했던 소설 「시어도라 날뛰다 Theodora Goes Wild』에서 따왔다. 시오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지만, 도라라고 하는 사람은없었다. - P244

볼 수 없는 것을 볼 때, 우리가 실제로 보는 건 우리 머릿속에 든 무언가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꿈이죠. 좋은 것도, 나쁜 것도요. 그리고 제가 보기에 SF가 일을 제대로 할 때 실제로 다루는 것도 그겁니다. "미래"가 아니라요. 우리의 꿈과 발상을 꿈이 아닌 세계와 혼동할 때, 미래가 우리가 소유하는 장소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곤경에 처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소망 충족 사고와 도피주의에굴복하고, 우리의 SF는 과대망상에 빠져 허구가 아니라 예언이라고생각하며, 펜타곤과 백악관은 또 그걸 믿기 시작하고, 전략 방위 구상으로 미래를 정복하는 진정한 신봉자들이 나오기에 이릅니다.
SF 작가로서 저는 케추아 사람들처럼 오랫동안 가만히 서서 제 앞에 놓인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편이 더 좋습니다. 땅을, 땅위에 사는 제 동료들을, 그리고 별들을요.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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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집안일 외에 내가 많이 안다고 할 만한 유일한 일이고 그래서 내가 가르칠 능력이 있다고 느끼는 유일한 일이기도하다. 공개적인 가르침을 요청받을 때 나는 특별한 전문성이나 지혜가 없더라도 감정을 담아 정직하게 생각하려고 하면 도움이 될 주제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아니면 침묵하다가 부당한 편에 서는셈이 될까 봐 공개적으로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문제에만 나선다. 이 책에는 그런 글도 몇 편 있는데, 나와 달리 예술과 정치,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 여성과 여성주의자 등을 딱 잘라 구별할 수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글들이 거슬릴 터이다. 나의 목표는 언제나 누구의 감정도 해치지 않으면서 최대한의 전복을 이끌어 내는것이기에, 독자들이 원하는 글을 찾고, 원치 않는 글을 피할 수 있는 체계를 고안해 봤다. 목차를 보면 각 글의 제목 옆에 작은 기호가 보일 것이다. 무엇을 기대하면 좋을지 알려 주는 작은 칼과 포크와 침대와 와인잔이 들어간 미슐랭 가이드나 AAA 안내서처럼말이다. 르 귄 안내서에는 각 글의 주된 성격이나 방향을 알려 주는 기호가 네 개 있다. - P10

오+(여성) : 페미니즘
○ (세계) : 사회적 책임
□ (책): 문학, 글쓰기
→ (방향): 여행


이 기호들이 각 글의 경향을 알려 줌으로써, 특정 경향에동조하지 않는 독자들이 피해 가는 데 쓸모가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무엇이든 주는 대로 받으려는 독자라면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이다.
필요한 경우에는 짧게 글을 쓴 때와 장소에 대한 머리말을넣었다. 보충 설명은 달기도 하고 달지 않기도 했는데, 글 뒷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 각 글 앞에 들어간 숫자는 글을 쓴 연도이다.(그 연도가 발표 연도와 다를 때도 있는데, 덧붙이는 말에서 설명할 것이다.) 수록된 글이 처음 출간된 글과 다르다면 대개 내가 편집판이 아니라 내원고를 따르기 때문이며, 가끔은 이 책을 준비하면서 실수를 바로잡거나 결함을 메웠기 때문이다. - P11

폐경기 보다 매력 떨어지는 화제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옛 터부의 조각과 잔재에 달라붙어 있는 몇 안 되는 주제라는 점에서 흥미롭기도 하다. 폐경에 대해 진지하게 말했다간 흔히 불편한 침묵을 만나게 된다. 폐경을 조롱하는 발언은 대개 한시름 놓은 웃음을 만나게 된다. 침묵과 웃음 둘 다 확실한 터부를 암시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오래된 표현인 "갱년기"를 의학 용어인 "폐경기"의 완곡한 표현이라고 생각할 테지만, 지금 그 변화를 겪고 있는 나는 반대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갱년"이야말로 너무직설적이고, 너무 사실적인 표현이다. "폐경은 어쩌면 이전에 계속되던 일이 멈출 뿐이고, 그건 사소한 일이라고 안심시키는 말일 수도 있다. - P15

나는 왜 이 기묘한 사람들을 창조했을까? 반쯤 가서 "왕이 임신했다"는 문장을 쓸 수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그 문장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말이다. 게센을 인류의 모델로 제시하려던 건 확실히 아니었다. 나는 인체의 유전 개조에 찬성하지 않는다. 현재의 이해 수준으로는 아니다. 나는 게센인의 성적 구조를추천하는 게 아니라, 이용하고 있었을 뿐이다. 스스로 발견하도록하는 학습법이며, 사고 실험이었다. 물리학자들은 사고 실험을 자주 한다. 아인슈타인은 움직이는 엘리베이터에 광선을 쏘고, 슈뢰팅거는 상자 안에 고양이를 넣는다. 실제로는 엘리베이터도, 고양이도, 상자도 없다. 머릿속에서 실험을 수행하고 질문을 던질 뿐이다. 아인슈타인의 엘리베이터, 슈뢰딩거의 고양이, 나의 게센인들은 단순히 생각의 수단이다. 이것들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다. 나는 SF의 핵심 기능 하나가 바로 이런 종류의 질문 던지기라고 생각한다. 습관적인 사고방식을 뒤집고, 우리의 언어에 아직 가리킬 말이 없는 것을 은유하고, 상상으로 실험하기. - P26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이 책에 담긴 세상이 유토피아일까? 내가 보기에는 분명히 아닌 것 같다. 근본적인 인간해부학의 변화라는 상상에 바탕하고 있기에, 현대 사회에 대한 실제 대안이 될 수가 없다. 이 책은 대안적인 관점에 마음을 열고, 상상력을 확장하려 시도할 뿐이지 새로운 관점에서 어떤 뚜렷한 제안을 내놓지는 않는다. 이 책이 말하는 바는 이렇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양성적이라면, 남자와 여자가 사회 역할에 있어서 정말로완벽하게 동등하다면, 법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동등하고 자유와 책임과 자존감 모두 동등하다면, 지금과 아주 다른 사회일 수도 있다. 그때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을지야 누가 알랴, 문제가 있기야하겠지. 하지만 그런 사회의 핵심 문제가 지금 우리와 같지는 않을것이다. 착취 문제, 즉 여성에 대한 착취, 약자에 대한 착취, 지구에대한 착취 문제는 아닐 것이다. - P38

이건 윤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도덕이죠.
우리가 우리에게 맞는 현실적이고 여성적인 도덕성을 얻을수 있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믿고, 여자들이 원치 않는 아이나 지나친 대가족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게 내버려 둘 수 있다면……. 윤리적으로 잘못도 아니고, 규범에 어긋나지도 않지만 도덕적으로잘못됐다고, 완전히 잘못됐다고, 탈리도마이드 출산처럼 잘못됐고, 목이 부러질 게 뻔한 걸음을 잘못 디딜 때처럼 잘못됐다고 생각해도 되는 날이 온다면..… 우리가 죽은 윤리의 멍에에서 여성적이고 인간적인 도덕성을 끌어낼 수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도 생존으로 가는 길 어딘가에 오를 수 있을지 모릅니다. - P44

"처음이란 필연적으로 다른 것 다음에 오지 않고 그다음에다른 뭔가가 존재하거나 일어나는 것이다. 끝이란 필연적으로 또는 대개 다른 뭔가 이후에 존재하며, 그 후에는 다른 것은 필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중간은 본질상 다른것 다음에 존재하고, 그다음에도 다른 것이 존재하는 상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서사란 사건들을 연결하며, 방향이 있는 공간 순서와 비슷하게 방향이 있는 시간 순서로 "사건을배열한다. 인과 관계가 암시되기는 하지만 정확히 명시되지는 않는다. "결과"라는 말은 원인의 결과를 의미할 수도 있고 그저 뒤따른 일을 의미할 수도 있다.) 내가 이해하기로 주된 연결은 시간순이다.(E. M. 포스터의 이야기 배열대로 "그리고... 그다음에...그다음에…) 그러므로 서사란 사건들을 시간에 따라 연결하는 데 쓰이는 언어이다.  - P73

서사는 필멸의 전략이다. 삶의 방식이며 수단이다. 서사는불멸성을 추구하지 않는다. 시간을 정복하거나, (서정시처럼 시간으로부터 도피하려 하지 않는다. 서사는 방향성이 있는 시간, 경험된 시간, 의미 있는 시간을 가정하고 긍정하며 그 속에 참여한다.
인간의 정신에 시간 스펙트럼이 있다면, 물리학자나 신비론자의 탈각(nirvana) 상태는 저 멀리 자외선 영역에 있을 테고 그 반대쪽인 적외선의 영역에 『폭풍의 언덕』이 있으리라. - P76

바꿔 말하면, 서사는 언어의 핵심 기능이다. 기원상 문화의산물이나 기술이 아니라, 사회에서 정상으로 기능하는 정신의 근본에 있는 공정이다. 말하기를 배운다는 것은 이야기하는 방법을배우는 것이다.
나는 언어를 구사하기 전에도 무의식 수준에서는 이야기하기가 계속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말하기 이전의 마음이나비언어적인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말하기는 어렵다. 꿈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꿈을 많이 꾸는 단계인 REM(빠른 안구 운동) 수면 중에는 안구 움직임이 단속적으로 일어난다.  - P76

최근 몇 세기 동안, 영어라는 이 멋진 언어의 사용자들은영어 동사를 전적으로 직설법에만 몰아넣었다. 하지만 이 허울 좋고 오만한 확실성 추정 표면 아래에는 여전히 가정법의 오래되고흐리고 변덕스러운 힘과 선택지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직설법은그 앙상한 손가락으로 일차적인 경험을, ‘상황‘을 가리킨다. 하지만비유, 가능성, 개연성, 우연성, 인접성, 기억, 욕망, 두려움, 희망이라는 끈으로 그 경험들을 잇는 것은 가정법이다. 바로 이것이 서사 연결이다. J. T. 프레이저 말대로, 인간의 자유라고 할 수 있는 도덕적선택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가 과거와 미래, 또는 머나먼 땅에 가능한 세상과 불가능한 세상들을 설명할 수 있게 해 주는 언어 덕분이다. - P85

이런 파편 조각들로 제 폐허를 떠받칠 수도 있었겠지만, 예전에는 방법을 몰랐어요. 그저 미래를 만들려면 과거가 있어야만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제 조상들의 유럽 기반 문화에서 가져올수 있는 것들을 가져왔지요. 저는 대부분이 그렇듯 쓸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쓰는 방법을 익히고, 중국에서 착상을 하나 슬쩍하고인도에서 신을 하나 훔쳐와서 최선을 다해 기워 붙여 세계 하나를만들었어요. 하지만 아직도 수수께끼가 있어요. 제가 태어나고 성장하고 너무나 사랑하는 여기, 나의 세계, 나의 캘리포니아는 아직도 만들어져야 해요. 새로운 세계를 만들려면 물론 오래된 세계로시작해야죠. 세계를 하나 찾으려면, 잃어버린 세계가 있어야 하는지도 몰라요. 잃어야 하는지도 몰라요. 부활의 춤, 세계를 만드는춤은 언제나 여기 세상 끝에서,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안개 낀해안에서 추게 되어 있었으니까요. - P92

제가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은 제 옛날이야기를 왜 했을까요? 이야기 속에서 저 자신을 공주라고 부른 건 반쯤은 농담이고, 실제로 제 부모님의 영혼은 왕족이나 다름없어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 자신에게, 또 여러분에게 저는 특권층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해서이기도 해요. 저는 "뉴욕 시 최고의 낙태"
를 받았습니다. 낙태가 범죄였던 암흑시대에, 저희 아버지처럼 현금을 빌릴 방법이 없는 아버지를 둔 젊은 여성은 어땠을까요? 아니, 아버지가 수치심과 분노에 미쳐 버릴 게 뻔해서 말조차 꺼낼 수없던 여성에게는 어땠을까요? 어머니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여성은요? 지저분한 방에 혼자 가서, 직업 범죄자의 손에 몸과 영혼을맡겨야 했던 이들은요? 착취자였든, 이상가였든 간에 당시에 낙태를 하는 의사는 모두 직업 범죄자였으니 말이죠! 여러분은 그 여 - P143

성이 어땠을지 알아요. 여러분도 알고 저도 알죠. 그래서 우리가 이자리에 모인 겁니다. 우리는 그 암흑시대로 돌아가지 않아요. 우리는 이 나라의 누구도, 어떤 여성에게도 그런 힘을 행사하게 두지삶을 겁니다. 정부 밖에나, 안에나 그 암흑을 법으로 다시 불러오려는 막강한 세력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막강한 세력이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는 빛입니다. 아무도 우리를 끌 수 없어요. 여러분 모두가 언제까지나 찬란하게 꺼지지 않고 빛나기를 빕니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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