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업을 하는 젊은 예술가의 손길뿐만 아니라 그의 생각까지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마사초의 성인을 베껴 그린 후, 미묘한 수정을 가미한 미켈란젤로는 베드로의 뻗은손을 다시 그렸다. 이번에는 90도를 돌려서 위에서 보면 어떤모습일지 상상하며 그린 것이다. 이것은 놀라운 개념적 도약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가 조각가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해가 된다. 3차원적 예술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 소묘 작품은 받침대 위에 전시되어 있어서 주변을 돌아 그 뒷면을 볼 수 있다. 그렇게 뒤로 돌아가 보니뒷면에 손을 하나 더 그려놓은 것이 보인다. 이 손은 살과 근육을 모두 발라낸 오싹한 느낌의 해골이다. 어쩌면 그는 성 베드로를 눈으로 해부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피렌체 산토 스피리토의 병원에서 실제 시체를 해부할 때 이 종이를 재활용해서그렸는지도 모른다. 종이를 낭비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어느 쪽이든, 나는 내 손을 한참 바라보면서 이 젊은 예술가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프로젝트의 규모에 혀를 내두른다. 그가 사물을 얼마나 정확히 얼마나 깊은 곳까지 보고 싶어 했는지 상상조차 하기힘들다. - P282

오전 10시가 되어 미술관이 문을 열자 나는 피렌체에서 로마으로 이동한다. 미켈란젤로 커리어 초기의 성공들을 뛰어넘어 시
"스티나 예배당 안에 착지한다. 실은 로마 시스티나 예배당의 분위기를 내려고 위대한 천장화를 머리 위에 재현해 놓은 전시실이다. 몇 분 후 벌떼처럼 몰려든 순례자들이 주변에 걸린 그림들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친 후 곧바로 카메라를 위쪽으로 치켜든다. 그들이 서 있는 자리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곳에 비슷한 자세로 붓을 위로 쳐든 스스로를 미켈란젤로가 끄적거리듯 그린 그림이 있다는 걸 떠올리고 나는 혼자 쿡쿡 웃는다. 이 자화상에서 그는 고개를 90도 각도로 젖히고 팔을 12시방향으로 뻗고 있다. 적어도 570일간 그런 자세로 일했을 것이다. 그 낙서 옆에 그는 그의 척추, 엉덩이, 물감 튄 얼굴, 그리고
‘두개골이라는 ‘관‘ 안에 갇힌 뇌의 상태에 대해 불평하는 소네트를 적어두었다. 소네트는 들떠서 사진을 찍어대는 전시실의 관 - P283

람객들을 놀라게 할 만한 말로 끝을 맺는다. "이곳은 만족스럽지않다. 나는 화가가 아니다."
그 말들을 생각하며 다시 쿡쿡 웃는다. 자신 없어 하는 거장의 말을 듣는 것이 즐겁다. 아마 우리들 대부분은 그런 말을 들으면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전시가 시작된 후 내내 나는 미켈란젤로의 짜증과 절망이 섞인 편지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결과도 없이 시간만 낭비하고 있어.… 신이시여, 도와주소서!"가 제일 자주 눈에 띄는 대사다. 사실 그가 작업을 시작한 후 처음 몇십 번의 조르나타는 완전 실패였다. 회반죽을 제대로 바르지 못한 아마추어적인 실수 때문이었다. 그는 교황에게 작업을 포기하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이 엄청난 커미션의 영광을 즐기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는 듯했다. - P284

미켈란젤로는 빈 종이 한 장만 있으면 모든 근심을 잊고 혼신의 힘을 바쳐 주어진 과제를 해냈고, 씁쓸한 불평 따위는 일 이후에나 하는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어려운 일을 해내는 이보다 나은 방법이 또 있을까?
4년의 작업 끝에 천장화가 완성되자 "온 세상이 그 작품을 보려고 몰려오는 소리가 들린다"라고 그의 동시대인은 전하지만 미켈란젤로는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그동안 그려오던 예배당 천장화 작업을 끝냈습니다. 교황이 매우 만족했습니다"라고 그의 아버지에게 편지로 전했을 뿐이다. 그런 다음 덧붙였다. "다른 일들은 바랐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건 제가 시대를 잘못 타고 난 때문인 듯합니다. 지금은 제가 하는 예술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시대예요."
오늘날 우리는 이 호의적이지 않은" 시대를 하이 르네상스High Renaissance 혹은 전성기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 P287

1490년대에 제작된 그의 <피에타(미켈란젤로의 걸작이며 피에타의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가된 작품 - 옮긴이)가 거장의 명성에 걸맞는 걸작이라면 이 <론다니니 피에타 Rei Rondanini(미켈란젤로의 유작이며 성 베드로 대성당의Pieti〈피에타>와는 달리 성모가 예수를 선 채로 끌어안고 있는 구도 때문에 축 늘어진 예수의 몸이 부각되어 더 처연한 느낌을 자아낸다 - 옮긴이)에서는 고통과 내밀한 슬픔이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사랑과 경건함 그리고 기진맥진한 몸과 마음을 표현한 그 소묘들을 다시 바라본다. 그리고 머리와 심장의 요구에 손으로 부응하려 애를 쓰며 하얀 종이 앞에 구부정한 몸으로 앉아 있는 노인을 상상한다. 미켈란젤로를 미켈란젤로로 만드는 건 그다음에 그가 한 일이다. 습작을 해본 다음 그는 일어나서 그 스케치를 현실화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그는 죽기 며칠 전까지도 말을잘 듣지 않는 대리석을 망치와 끌로 두드리고 있었다. - P292

전시를 둘러보다가 작품 라벨에서 "독학self-taught" 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그 표현은 ‘민중 예술folk art‘ 이라는 용어 대신 쓰이기 시작한 예술계의 전문용어인데 현실은 그 단어의 원래 의미와 전혀 관계가 없다는 걸 생각하면 이상한 용어 선택이다. 내가알기로는 이 퀼트 제작자들 중 누구도 독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루시 T. 페트웨이는 어머니와 이모할머니에게서 퀼트를배웠고 그들은 또 자기들보다 나이 든 여자들에게서 배웠을 것 - P296

이다. 퀼트는 노예해방 이전부터 있었던 오래된 전통이고, 아마도 서아프리카 지역의 관습에서 일부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또 동년배들과 경쟁도 하고 아이디어를 훔치기도 하면서 기술을 배우고 연마했을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살던 시대의 피렌체처럼 지스 벤드에도 인구 한 명당 예술가의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았다.
퀼트는 다른 예술 장르보다 공개적인 성격이 훨씬 강했다.
봄이 오면 여자들은 퀼트를 볕에 넣어야 했어요. 빨랫줄에 걸어서…. 크레올라 페트웨이가 설명한다. 루시 T는 "보통 퀼트를열다섯 점에서 스무 점씩 내다 널었어요. 그보다 더 많을 때도있었고요.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퀼트 구경을 하느라 도랑에 빠지기도 했죠!" 크레올라는 어릴 때 걸어서 퀼트 구경을 하고 다녔다. 연필과 종이를 들고 동네를 슬슬 돌아다니면서 거장들의작품을 보고 "패턴을 베껴서 내 퀼트를 만드는 데 썼죠." - P297

메트의 현대 미술 전시관에 걸린 그 작품은 야생적이고 대담하고 도전적이다. 그것이 외풍이 술술 들어오는 통나무 오두막집에서 잠든 그녀의 아이를 덮은 이불이었을 때 어땠을지는 상상으로 그려볼 수밖에 없다. 1930년대는 지스 벤드가 곤궁했던시기였다. 대공황이 터지고 목화 가격이 폭락하면서 백인 부재지주에게 소작료를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빚 수금업자들이 조직적으로 급습을 해서 농기구와 가축, 가재도구들을압수해버리자 사람들은 숲으로 들어가 식량과 땔감을 구해야만했다. 그렇게 곤궁한 시기에 케네디는 이 작품을 만들었다. 그녀도 이 용어를 썼는지 모르지만 내게는 이것이야말로 예술의 정의 그 자체로 보인다. 과분하게 아름다운 것. - P298

일요일 아침이다. 나는 지금까지 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퀼트 작품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만든 사람을 생각하고 있다. 보통죽은 지 오래된 예술가를 떠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인 이 미술관에서 그건 꽤 기분 좋은 예외였다. 로레타 페트웨이가 지금 이순간 어디에 있을지 추측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분명 지스벤드에 있을 것이고 그곳에 있는 플레전트 그로브 뱁티스트 교회에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녀는 여행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런전시가 열려서 축하받을 수 있는 자리에도 오지 않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퀼트는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흑인 투표권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로 열띤 투쟁이 벌어지던 와중에 마틴 루서 킹이 플레전트 그로브에 와서 연설을 한 바로 그해다. 이 집회에 대한 보복으로 지스 벤드를 주변 공동체와 이어주던 중요한 수단이었던 페리 서비스가 취소됐고 지금까지도 복구 되지 않았다. - P300

혼자 생각에 잠긴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처럼 세계적으로 장대한 곳에서 얻는 깨달음치고는 좀 우습긴 하지만, 바로 의미라는 것은 늘 지역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은 자신의 상황에 갇힌 사람들이 아름답고, 유용하고, 진실된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조각조각 노력을 이어 붙여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교훈까지 말이다. 미켈란젤로 시대의 피렌체, 심지어 미켈란젤로 시대의 로마마저 이런 면에서는 로레타 페트웨이가 살던 시절의 지스벤드와 다르지 않다. 이제 더 이상 전성기 르네상스와 같은 개념을 빌어 생각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새로 만든 회반죽을 바르고, 거기에 그림을 그리고, 회반죽을 조금 더 바르고, 거기에 그림을 조금 더 그리는 한 사람을 생각할 것이다. - P302

인생은 길다. 그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다. 젊어서 죽으면 인생은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요절하지 않으면 다 자란 후에도 추가로남은 몇십 년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50년, 60년 어쩌면 70년 정도 남은 시간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형이 죽고 나서 나는 어찌어찌 메트로 오는 길을 찾게 됐다.
그리고 성년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 여정이라기보다는 그동안추구하던 성장과 변화를 마무리 짓는 최종 목적지 같은 시기라생각하는 쪽이 편했다. 형보다 더 나이 든 사람이 된 지금이 이상하고 부자연스럽다. 어릴 적 올라가서 놀던 나무보다 키가 더커지면 이런 느낌일까. 그러나 이제는 내 삶이 지금 보이는 지평선 너머까지 뻗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 정도의 관록은 갖추게 되었다. 삶은 휘청거리고 삐걱거리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테고, 그 방향을 나 스스로 잡는 편이 낫다는 것도 알게 됐다. 다시말해 내 삶은 여러 개의 챕터로 되어 있고, 그 말은 현재의 챕터를 언제라도 끝낼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 P305

스러운 광경이지만 점차 신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리를 지키며 서 있는 동안에는 계속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다. 거의 완벽한 직장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이제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더 이상 완벽한 직장이 아닐지도몰랐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이 전시실에서 벌어진다고 생각하던 한때가 있었고, 명상과 같은 고요함을 감사한 마음으로음미했다. 그러나 요즘은 생각이 미술관 밖으로 휘리릭 날아가서 몸과 마음이 움찔거리고 안절부절못하기 일쑤다. 나는 이제더 이상 고요하고 정돈된 환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제 더이상 경기장 밖에 서서 게임을 잠자코 지켜보지 않아도 된다. 전시실을 찾는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을 지켜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이 큰 도시와 넓은 세상을 어떻게 만나게 해줄지를 계획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 P306

파트타임으로 하는 비정규직 일자리에 불과하다. 평생 이 일을 하면서 살아갈 것이라고 상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인생은길고, 이 일은 구석에 서서 사람들을 지켜보는 대신 그들을 이끌고 다니면서 글자 그대로 세상을 탐험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봄이 오고 일을 시작할 날짜가 다가오면서 나는 가이드를 하기위해 조사하고, 투어내용을 적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들려줄 준비를 하는 내가 얼마나 신나 하고 있는지 문득 깨닫는다. 이야기를 하는 일, 나만의 것을 만드는 일이다. - P307

그렇다, 그럴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은 위안을 준다.
힘이 나게 한다. 그리고 순수하다. 빈센트의 <붓꽃>을 보고 있자면 가난과 자신을 괴롭히는 상념들에서 벗어나 그 생기 넘치는단순함 속에서 영원히 살고 싶은 화가의 염원이 느껴진다. 그러나 몸을 돌려 우리 앞에 놓인 것을 직면해야 하는 시간은 오고야만다. 빈센트의 이야기가 슬픈 것은 그가 삶을 살아내는 능력을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보다 운이 좋다는 사실에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이 감사하다. 내 이야기는 행복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P315

가끔은 지루하고 가끔은 숨 막히게 아름다운 일상. 아무리 중차대한 순간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기저에 깔린 신비로움이 숭고하다 할지라도 복잡한 세상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간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그림 하단이 있다. 그곳에서 그림의 톤은 다시 한번 변화한다. 거기에는 슬픔에 겨워 쓰러진 어머니를 돌보는 연민 가득한 사람들이 있다. 수동적인 구경꾼들과 달리 그들의 마음은 같은 방향, 즉 선행으로 향하고 있다. 그림의 이 마지막 부분은 따르고 싶은 모범이다.  - P320

내 앞에 펼쳐진 삶에서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필요한 경우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다른 이들도 나를 위해 그렇게 해줄 것이라는 게 나의 희망이다. 이제 형은 세상에 없다. 나는 그 상실을 느낀다. 형은 그림에서 성모 마리아를 돌보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린 채 몸을 굽히고 있는, 칭찬받아 마땅한 현실적인 사람들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지금도 형의 초상화, 티치아노가 그린 듯한 밝고 솔직한 형의 얼굴이 선명하게 살아 있고, 그 모습에서 나는 위안을 찾는다. 이 그림이라면 확실히 내가 메트 바깥으로 품고 나갈 수 있을 것이다. - P320

미술관이 문을 닫을 시간이 가까워올 때까지도 나는 계단 맨 꼭대기의 내 자리에 서 있다. 저 아래 그레이트 홀은 소란스럽기그지없다. 사람들이 바다처럼 몰려가 맡겨뒀던 옷을 찾아 입고, 지도를 보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세상을 떠나일상과 삶으로 돌아가는 수순을 밟고 있다.
많은 경우 예술은 우리가 세상이 그대로 멈춰 섰으면 하는 순간에서 비롯한다. 너무도 아름답거나, 진실되거나, 장엄하거나, 슬픈 나머지 삶을 계속하면서는 그냥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순간 말이다. 예술가들은 그 덧없는 순간들을 기록해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 그들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것들은 덧없이 흘러가버리지 않고 세대를 거듭하도록 계속 아름답고, 진실되고, 장엄하고, 슬프고 기쁜 것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고 믿게 해준다. 그리고 이곳 메트에 유화물감으로 그려지고, 대리석에 새겨지고, 퀼트로 바느질된 그 증거물들이 있다. - P324

세상이 이토록 형형색색으로 화려하고 충만하며, 그런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며,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들을 정성을 다해 만들려는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이신비롭다. 예술은 평범한 것과 신비로움 양쪽 모두에 관한 것이어서 우리에게 뻔한 것들, 간과하고 지나간 것들을 돌아보도록일깨워준다. 예술이 있는 곳에서 보낼 수 있었던 모든 시간에 고 - P324

마운 마음이다. 나는 다시 이곳에 돌아올 것이다.
10년 전, 배치된 구역에 처음 섰을 때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것들이 있었다. 때때로 삶은 단순함과 정적만으로 이루어져 있을 때도 있다. 빛을 발하는 예술품들 사이에서 방심하지 않고 모든 것을 살피는 경비원의 삶처럼 말이다. 그러나 삶은 군말 없이살아가면서 고군분투하고, 성장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기도 하다.
5시 30분이 되자 나는 클럽으로 부착하는 해진 넥타이를 떼고서 중앙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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