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무엇인가로 찔러 죽여서 선이 악을 이기는 판타지들은 과학기술을 마법으로 대체하고 소망 충족을 이루는 가짜 중세에서 즉각적인 만족감을 주고 불편을 피할 뿐, 그 이상은 염두에 두질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우주에서 벌어지는 끝없는 전쟁을 다루는SF 소설들도, 과학기술이 곧 마법이고 어떤 도덕적 심리적 정당화도 없이 살인을 계속할 뿐이라는 점에서 아마 그런 판타지와 똑같이 인정받지 못한 절망에서 쓰였겠지요. 미래는 사람이 살 수 없는곳이 되어 버렸어요. 저는 그런 암담함은 오직 현재를 직시하지 못할 때만 생겨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에 살고, 지금 여기 이성스러운 세상에서 다른 이들과 어울려 사는 책임 있는 존재로 살수가 없을 때 그런 절망이 일어나는 거예요. 현재야말로 우리가 희망을 찾기 위해 가진 전부이자, 우리에게 필요한 전부니까요. - P188

번역은 전적으로 미지의 세계예요. 저는 갈수록 글쓰기 행위 자체가 번역이라고, 적어도 다른 것보다는 번역에 가깝다고 느끼게 됐어요. 그러면 원본은 원래의 텍스트는 뭐냐고요? 제게는답이 없어요. 아마 아이디어들이 헤엄치는 깊은 바다 같은 원천이원본이고, 작가는 말이라는 그물로 그 아이디어를 잡아서 반짝이는 모습 그대로 배에 던져 넣는 거겠죠………. 이 은유를 밀고 나가자면 그 아이디어들은 죽어서 통조림이 되어 샌드위치로 먹힐 테고요. 뭔가를 가지고 건너오려면, 배가 필요해요. 아니면 다리가필요해요. 어떤 다리냐고요? 은유는 다 이렇게 쓸 수가 없게 되는군요. 제게는 그저 시든 산문이든, 작문은 번역과 그렇게 다르지않다는 느낌만 끈질기게 남아 있어요. 번역을 할 때는 말로 이루어진 원본 텍스트가 있지요. 창작이나 작문에는 그런 원본이 없어요.
말이 아닌 텍스트가 있고, 말은 직접 찾아야지요. 물론 다른 일이지만, 올바른 말을 올바른 순서로 찾아내고, 올바른 마디 (measure)를 찾아야 한다는 점은 같아요. 같은 일이라는 느낌이에요. - P205

새떼나 물고기떼처럼 갑자기 모두가 똑같이 새로운 일을 하고 다른 개체들이 뭘 하려고하는지 이해할 때가 있잖아요. 모두가 똑같은 비언어 텍스트를 각자의 언어로 번역하고 있는 거예요.
또한 그래서 제가 하임스, 테드록, 그 외 다른 사람들‘이 작업하는 영역을 두고 여기에서 뭔가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진다고느끼는 이유예요. 추상적인 번역 이론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문화의 완전히 낯선 언어로 연행된 구전 텍스트를 영어 문헌으로번역한다는 가장 큰 간극 사이의 실제 번역 작업. 여기야말로 우리 문학이 살아 있고, 고정되지 않으며, 움직이고, 정의 내리기에반항하는 영역이죠. 이것은 무엇일까요? 구전일까요, 문헌일까요?
둘 다예요. 서사일까요, 의례일까요? 둘 다예요. 시일까요, 산문일까요? 둘 다예요. 저도 바로 그런 것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생각해요.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언어를 번역하는방법을 배우고 싶어요. 번역이 원본만큼 좋지 않겠지만, 어차피 그건 언제나 그렇지요. - P206

제게 공개 석상에서 여성의 언어로 크게 말할 드문 기회를주신 밀스 칼리지 1983년 졸업반에게 감사드리고 싶군요.
졸업하는 남학생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분들을 배제할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 어느 그리스 비극에서 그리스인이 외국인에게 이런 말을 하죠. "그리스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부디 고개를 끄덕여서 알려 주세요."" 어쨌든, 졸업식은 보통 졸업하는 사람 모두가 남성이거나 남성이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합의하에 이루어지잖아요. 남자들이 입으면 정말 멋있는데 여자들이 입으면 버섯 아니면 임신한 황새처럼 보이는 12세기풍의 옷을 모두가 걸치는 것도 그래서고요. 지적인 전통은 남성입니다. 공개 연설은 국가 언어든 부족 언어든, 공적인 언어로 하지요. 그리고 우리부족의 언어는 남성의 언어예요. 물론 여자들도 그 언어를 배우죠.
우린 멍청이가 아니에요.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 인디라 간 - P207

디와 소모자 장군을 말하는 내용으로 구별할 수 있다면 어디 알려 주시죠. 여기는 남자의 세상이기에, 남자의 언어로 말을 해요.
그 말은 모두 권력의 말이죠. 다들 먼 길을 왔지만, 아직 멀었어요.
스스로를 판다 해도 그곳에 도달하지는 못할 거예요. 권력은 그들의 것이지. 여러분의 것이 아니니까요.
어쩌면 우린 권력의 말을 충분히 만끽했고 투쟁하는 삶에대해 충분히 말했는지도 몰라요. 어쩌면 이제 우리에겐 약자의 말이 필요한지도 몰라요. 지금 제가 여러분이 모두 이 대학의 상아탑 바깥 현실 세계로 뛰어나가서 승승장구하는 경력을 쌓거나, 남편이 승승장구하도록 돕고 우리 나라를 강하게 유지하고 모든 면에서 성공하라고 말하는 대신, 그러니까 권력에 대해 말하는 대신·…… 제가 이 자리에서 공공연히 여자처럼 말한다면 어떨까요?
- P208

뭔가 이상하게 들릴 거예요. 끔찍하게 들릴 거예요. 만약 제가 우선 여러분이 아이를 원할 경우 낳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면요. 잔뜩 낳으라는 건 아니에요. 두엇이면 충분하죠. 전 여러분과 여러분의 아이들에게 먹을 것이 충분하고, 따뜻하고 깨끗한 집과 친구들이 있으며, 여러분이 좋아하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뭐야, 그러자고 대학에 가나? 그게 다야? 성공은 어쩌고?
성공이란 다른 누군가의 실패죠. 성공이란 3억 명의 우리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장소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끔찍하게 가난한 현실 속에서 맨정신으로 살아가기에 계속 꿈꿀 수 있는아메리칸 드림이에요. 아니, 전 여러분의 성공을 기원하지 않아요. - P208

성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아요. 전 실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여러분은 인간이기에, 실패를 겪을 거예요. 실망, 부당함,
배신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겪을 거예요. 스스로가 강하다고 생각했던 지점에서 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예요. 소유하기 위해 일하다가 어느 순간 소유당하고 있음을 알게 될 거예요.
이미 경험했다는 걸 알지만, 여러분은 앞으로도 어두운 곳에서 홀로 두려움에 질리게 있게 될 거예요.
저는 여러분이, 나의 자매이자 딸들, 형제이자 아들들 모두가 그곳, 그 어두운 곳에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합리주의 성공 문화가 부정하며 유배지라고, 살 수 없는 곳이라고, 이질적이라고 하는 그곳에서도 살 수 있기를요. - P209

우리야 이미 국외자인걸요. 여자들은 여자이기에, 인간을남자(Man)라 칭하고, 존경받는 유일신이 남성이며, 오직 위쪽만이올바른 방향으로 주어진 이 사회의 자칭 남성 표준에서 배제되고, 소외당해요. 그러니 그곳은 그들의 나라로 두고, 우리만의 나라를탐사합시다. 성(性)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건 모든 남자와여자가 자기만의 영역에 있는 완전히 다른 우주죠. 난 사회에 대해, 제도화된 경쟁과 공격성, 폭력, 권위, 권력으로 이루어진 자칭남자의 세상에 대해 말하는 거예요. 우리가 여자로 살고 싶다면,
어느 정도 분리주의를 받아들여야 해요. 밀스 칼리지는 그런 분리주의의 현명한 구현이죠. 군사 훈련의 세계는 우리가 만든 것도 아니고 우리를 위한 것도 아니에요. - P209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여자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는 죄수로 살거나 정신병질적인 사회 체계에 합의한 포로로 살지 않고그곳의 원래 주민으로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곳에 편안히 자리 잡고 그곳에 집을 두고, 스스로 주인이 되어, 자기만의 방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이 그곳에서 예술이든 과학이든 공학이든 회사 경영이든 침대 밑 청소든 뭐든 간에 잘하는 일을 했으면좋겠고, 혹시 사람들이 여자가 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열등한 직업이라고 한다면 그들에게 꺼지라고 말하고 동일 노동에 동일 임금을 받아 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이 정복할 필요도, 정복당할 필요도 없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이 결코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바라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행사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여러분이 실패하고, 패배하고, 고통에 사로잡히고, 어둠 속에 놓일 때면 부디 어둠이야말로 여러분의 나라이며 여러분이 사는 곳이고, 어떤 전쟁도 치른 적 없고 어떤 전쟁에도 이긴 적 없으며 오직 미래만 있는 곳임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 P211

따듯하고 건조한 대초원의 저녁이고, 빛이 흐릿하고 길게 늘어진다. 어린 말을 탄 어린 기수들이 경기장을 돌면서 관심을 즐기다가 진행자가 쇼를 시작한다. 모든 로데오를 시작하는 방식이 그렇듯, 진행자는 우리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깃발인 국기에 경례하라고 주문하고, 그동안 말들은 꼼지락거리고 깃발잡이는 엄숙하게 앉아 있는데, 진행자는 계속해서 이 깃발이 "여러 캠퍼스에서 침을 맞고 짓밟히고 조롱당하고 불탔다."는 말을 늘어놓는다. 세상에, 대체 어느 시대 사람이길래? 진행자의 목소리에 깃든 독기는 고엽제" 못지않다. 또 사실은 누군가를 증오한다는 의미의 "애국주의"다. 제발 닥치고 여기 온 미국인들 모두가 보러 온쇼나 진행해요. 자, 이제 시작이다. 상금 10달러를 위해. - P218

밀밭과 옥수수밭 사이로 급경사진 테이블 같은 땅이 솟아오르기 시작하고, 갈라진 바닥이 목초지를 대신한다. 땅의 뼈가,
노란빛 감도는 하얀 바위들이 비쳐 보인다. 도로 저편에 거대한 가축 우리가 보인다. 짙은 적갈색 소들이 떼 지어 모인 모습이 쌓아놓은 장작더미 같다. 이곳 산에는 야생 유카가 자란다. 여기는 방목지다. 부드러운 빛깔의 먼 땅에서는 말들이 돌아다니며 풀을 뜯는다. 우리는 크고 길고 넓고 눈부신 네브래스카를 떠나 와이오밍경계선에 들어선다. 하루 반나절, 아니면 40분, 아니면 한 달이 걸려 가로지를 수 있는 땅. 비행기에서 보았다면 나는 네브래스카를 - P220

하나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차를 달렸기에 강가의 버드나무를,
그 달콤한 바람을 기억할 것이다. 어쩌면 말을 타거나 걸어서 이동하며 밤마다 조금씩 더 서쪽에서 야영을 하던 시절 사람들이 기억한 것도 플래트 강 옆 버드나무와 미루나무, 그리고 달콤한 바람이었을지 모른다. - P221

오리건에 있는 학교 관계자들은 점점 줄어 가는 예산으로도 학교 식당에서 건강하고 좋은 음식을 제공하려 노력한다. 어떤학생들에게는 그게 유일한 식사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날이 줄어 가는 예산으로도 수업과 학교 도서관에 아름답고 지적인책들을 제공하려 노력하는데, 많은 학생이 그 책들만 읽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최고를 제공하자. 여기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학교에추가 수업료를 내는 데 반대하는 쪽으로 투표한 사람이라 해도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책이 최고인지에 대해 서로 동의하지 않고, 동의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다양하게 풍성하게 많이 제공해야 한다.
한가지 의견이나 신조만 담긴 책들 말고, 하나의 무리나 분파가 좋다고 생각하는 책들 말고, 최대한 지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넓고다채로운 재료를 제공해야 한다. - P225

여기에서든 러시아에서든 다른 어느 곳에서든 검열은 철저히 반(反)민주주의적이고, 엘리트주의를 반영한다. 검열은 이렇게 말한다. 너는 선택할 만큼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러니우리가 대신 골라 주는 것을 읽고 다른 것은 읽지 말아라, 민주주의는 이렇게 말한다. 배움의 과정이란 선택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자유는 주어지는 게 아니라 획득하는 것이다. 읽고, 배우고, 자유를 획득해라.
나는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자", "더 엄격한 기준", "도덕적 - P226

인 지침", "더 확실한 정책" 등등으로 가장한 유라이어 힙 식의 검열이 두렵다. 학교 행정가와 교사와 사서와 학부모와 학생들이 저항했으면 좋겠다. 검열 옹호자는 다른 사람들을 자유인으로 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유를 얻을 자격조차 없다고 취급하는 사람들이다. - P227

내가 이 글을 쓰는 동안 앉아서 보는 경관은 청백색으로 펼쳐진 얼어붙은 클래머스 호수, 그리고 그 위에 여명처럼 빛나는 산맥이다. 오리건의 겨울을 담은 사진엽서 같다. 지금부터 10분 후에는 눈 덮인 산맥 사이 농장들을 지그재그로 지나가는 울타리가 보일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엽서랄까. 그리고 곧 눈 쌓인 크고 엄숙한 전나무들과 캐스케이드산맥의 봉우리와 골짜기들이 나타나리라. 나는 북쪽 포틀랜드로 달려가는 코스트 스타라이트 1430호차 9호실에 앉아 있으니 말이다. 여행 전체가 아름답다.
레이건 대통령은 암트랙 없이 해 나갈 수 있다고 결정하고예산에서 빼 버렸다. 레이건 씨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나 기차를타 봤을 테고 지금쯤은 기차로 여행하는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모르지 싶다. 오직 ‘중요한 사람들‘, 시간이 돈인 사람들만 알겠지.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만이 기차를 탄다. 시간이 돈이 아니라 살았던삶과 살아갈 삶인 사람들. - P240

어떤 사람들은 동시에 몇 가지 삶을 산다. 내 어머니는 한번에 하나씩 몇 가지 삶을 살았다. 어머니의 이름이 그 순차적인복잡성을 반영한다. 시어도라 코블 크라코프 브라운 크로버 퀸. 마지막 네 개는 남자 이름이다. 크라코프는 어머니의 아버지 이름(이자 어머니의 평생 별명이었던 ‘크라키‘의 이유), 브라운과 크로버와 퀸은세 남편의 이름이다. 코블은 어머니의 어머니 쪽 성으로, 몇 세대동안 딸들의 중간 이름으로 쓰였다. 시어도라라는 이름은 어머니의 어머니가 좋아했던 소설 「시어도라 날뛰다 Theodora Goes Wild』에서 따왔다. 시오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지만, 도라라고 하는 사람은없었다. - P244

볼 수 없는 것을 볼 때, 우리가 실제로 보는 건 우리 머릿속에 든 무언가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꿈이죠. 좋은 것도, 나쁜 것도요. 그리고 제가 보기에 SF가 일을 제대로 할 때 실제로 다루는 것도 그겁니다. "미래"가 아니라요. 우리의 꿈과 발상을 꿈이 아닌 세계와 혼동할 때, 미래가 우리가 소유하는 장소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곤경에 처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소망 충족 사고와 도피주의에굴복하고, 우리의 SF는 과대망상에 빠져 허구가 아니라 예언이라고생각하며, 펜타곤과 백악관은 또 그걸 믿기 시작하고, 전략 방위 구상으로 미래를 정복하는 진정한 신봉자들이 나오기에 이릅니다.
SF 작가로서 저는 케추아 사람들처럼 오랫동안 가만히 서서 제 앞에 놓인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편이 더 좋습니다. 땅을, 땅위에 사는 제 동료들을, 그리고 별들을요.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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