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 게임 - 도다 세이지 단편선 2
도다 세이지 지음 / 애니북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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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도다 세이지의 작품을 읽으면 참 심심하다. 이렇게 심심한 일상들도 이야기가 되는구나, 싶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그 심심함이 좋았다. 일상성을 잡아채서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그의 시선이 오히려 놀랍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가 SF를 그렸다고? 심심한 느낌의 SF라……. 참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잡았다. 궁금했다. 내가 아는 도다 세이지가 그려낼 수 있는 SF란 게 도대체 어떤 걸지…….




 이 책을 소개하는 광고에서 ‘체온을 가진 SF’라는 글귀를 보았다. 정말 딱 그 글귀 그대로의 작품이다.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미래의 어느 순간들이 지금 이 순간 내 일상처럼 펼쳐져 있다. 역시 도다 세이지의 세계다. 그가 그리면 SF도 이렇게 느낌이 달라질 수 있구나. 그만이 그려낼 수 있는 미래의 모습,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




 알 수 없는 미래의 어느 날, 타임머신이 발명 되어 내일 모레 서른인 당신이 고3인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 딱 한 마디를 전할 수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의 뇌가 다른 사람의 몸에 이식된다면 그는 여전히 나의 연인일까?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당신 대신 임신을 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면?




 그가 던지는 질문들은 도발적이고 낯설지만 그 답을 풀어내는 그의 시선은 조금도 낯설지 않다. 타임머신이 발명 되고, 뇌 이식을 해서 몸을 바꾸고 살아가고, 남자가 아기를 대신 낳을 수 있는 날이 와도 인간은, 우리는 여전히 지금과 같은 고민을 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산다는 게 뭘까? 나는 어떤 존재일까? 가족이란 무엇이지? 사랑이란 무엇일까? 생명은 얼마나 신비한 것인가? 그가 들려주는 삶의 모습들은 이렇게 익숙한 고민들에서 시작되고 있다.




 내가 만화와 판타지를 좋아하는 까닭이 바로 이것이다. 익숙함과 낯섦이 교차하는 세상. 너무도 낯선 세계를 관통하는 익숙한 사유. 그 양극의 인식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풀어내는 예술 세계. 철학의 무거움에 숨 막히지 않게 하는 환상의 가벼운 날개짓, 환상의 가벼움에 날아가 버리지 않게 하는 철학의 진중함. 그 어느 예술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운 경험이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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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2-27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다는 것이 그저 본능인 거 같아요.
저는 사는 "멋진" 의미를 아직 못찾았답니다.
그래도 삽니다. 하하


산딸나무 2008-02-27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산다...
멋진 답인데요^^

금강초롱 2008-03-30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뇌만 살아있는 상태,내가 살아있는 느낌이란게, 언젠부터인가 이런모습이란 생각이 듭니다.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버릴날은 언제나 오는가? 모든것으로부터 자유,장사꾼 똥은 개도 안먹는 이유를 절실하게 깨닫는 날. 그래도 산다 정말 멋진 답이네요 참! 남자가 건강한 아이를 낳아 다행입니다.

산딸나무 2008-03-30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영복 선생의 글이었죠?
나침반이 한 곳을 가리킬 때 끊임없이 떨고 있다고요.
흔들리지 않는 순간은 죽은 순간이지요.
인생이란 원래 불안한 것.
불안하지 않은 삶은 없는 것이죠.
불안을 즐길 줄 아는 지혜를, 나이들면서 조금씩 알아갑니다.
금강초롱님이 가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그대를 성실한 생활인으로 만들어주는 건 아닐까요?
 
천사들의 진화론 애장판 - 시미즈 레이코 걸작선 6
시미즈 레이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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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미즈 레이코 베스트 시리즈를 꾸준히 사 모으고 있다.

소녀들의 취향을 제대로 맞춰주면서도 독특하고 깊이있는 자기 세계를 가지고 있는 이 작가의 작품을 좋아한다. 

이번 이야기들 가운데 <월하미인>의 한 장면이 오래도록 남아있다.

아름다운 여배우의 보디가드로 일하게 된 로봇 엘레나는 시들어버리는 꽃 따위보다 조화가 좋다는 그녀 앞에서 중얼거린다.

"하지만, 아름다워. 피었다 시들어버리는 꽃이 춸씬 아름다워."

영원히 죽지 않는, 영원히 죽을 수 없는 엘레나의 그 선연한 눈빛이, 그 중얼거림이 내 가슴을 후벼판다.

그렇지, 삶이란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지.

좌절이 있기에 도전이 아름다운 것이고, 실패가 있기에 용기가 아름다운 것이고, 늙어서 죽는 그날이 있기에 삶이 아름다운 것.

한 동안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들 때문에 우울했는데, 그 고민들이 바로 지금 내 삶을 빛나게 한다는것을 알겠다.

내 삶의 성숙과 깨달음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답 나오지 않는 사유들을 붙들고 아파하는 이 순간이 있기 때문이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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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2-27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한 만년 살면, 사는 게 지겹겠지요?


산딸나무 2008-02-27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고 싶어서 환장하겠지요.
 
창조적 열정을 지닌 청소년,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다 - 청소년, 우리의 삶을 변주하다
인디고아이들 지음 / 궁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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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세포는 어리다고 적은 게 아니다. 작지만 그 하나 하나가 우주적 사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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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 - 지구온난화 시대에 도시와 시민이 해야 할 일
정혜진 지음 / 녹색평론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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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기자 생활을 하고 있는 지은이가 쓴 책이다. 솔직히 크게 기대하고 본 건 아니다. 제목이 주는 느낌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착한 도시, 착한...

나는 '착하다'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 단어가 주는 도덕적 근엄성과, 몰정치적인 사유와, 사회약자들에게 강요되는 이름표로써의 기능이 영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 여성, 장애인, 어린이, 노인 ... 사회 과학적 영역의 느낌이 물씬 나는 조합이다.

그러나, 착한 이주노동자, 착한 여성, 착한 장애인, 착한 어린이, 착한 노인...

쳇, 이거 영 본질적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조합들이 되어버리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착하다'는 단어가 싫다. 

그러나 이 책은 제목과는 달리 다분히 정치적인 감성들을 자극한다. 참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환경운동은 그 무엇보다도 감성적인 운동이다. 생명에 대한 존중, 자연에 대한 감사,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배려...

그러나 환경운동은 그 무엇보다 정치적인 운동이다. 몇몇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 친환경적 정책들의 개발, 전지구적 연대...

그래서 환경운동을 하는 이들은, 혹은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느끼는 이들은  누구보다도 감성적으로 느끼고 정치적으로 행동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어찌 된 일인지 정치적으로 느끼고 감성적으로 행동하는 이들을 너무도 많이 보게 된다.

그런 가운데, 이 책은 꽤 매력적인 가르침을 준다. 

먼저 '착한 시민'의 소소한 노력들이 얼마나 소중한가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또, '착한 도시'가 만들어 내는 지역적 삶의 모델이 얼마나 중요한가 깨닫게 한다. 그리고 '착한 정부'를 만들어내는 정치적 판단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 알게 한다.

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

그리고 착한 도시는 착한 시민들이 만들어간다.

착한 시민은...

바로 아는 만큼 실천하는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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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2-25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착한 시민은 자전거를 탑니다.. 하하


산딸나무 2008-02-27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착한 시민이 되고 싶은데
제 손으로 산 자전거를 세 대나 잃어버리고 나니
다시 사기가 망설여집니다.
봄이 오는데 살까 말까 벌써부터 고민입니다.

비로그인 2008-02-27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전거 도둑이 너무 많으므로
보관할 장소가 없다면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산딸나무 2008-02-27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자전거 등록제가 꼭 필요할 것 같아요.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서 맥주 한 잔을 나누게 되었다.

 서로의 근황을 묻다가 요즘 내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고 하니, 오랜 칩거를 끝내고 돌아온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다.

 나는 안주접시에 놓인 콩알 한 개를 젓가락으로 집어서 접시 가장자리에 놓으며

 “이게 나. 이 가운데 모여 있는 콩알들이 보편의 삶이라면 나는 이렇게나 떨어져 있는 인간이더라구. 내 주변엔 늘 그렇고 그런 사람들만 있어서 나는 몰랐지, 내 사고와 삶의 방식이 보편적 삶과 얼마나 동떨어진 것이지. 음, 그런대로 괜찮은 경험이야.”

 친구는 깔깔대면서 웃더니 그걸 여지껏 몰랐냐며 까딱하다간 접시 밖으로 떨어질 수도 있으니 조심하란다.

 

 팍팍한 세상사에 대한 푸념을 안주 삼아 술을 두어 잔 비웠다. 친구가 안주접시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젓가락으로 가운데 콩알더미들을 내 콩 가까이 밀치면서 얘기를 덧붙인다. 

 “그래, 세상이 답답하지? 어떻게 저런 생각을 갖고 사나 싶지? 정말 나도 세상이 조금 더 진보해서 이렇게 보편이란 중심이 좀 더 우리 쪽으로 옮겨왔으면 싶다.”

 순간, 나는 친구의 말에 가슴이 턱 막히는 걸 느꼈다.

 세상이 진보한다는 건 보편의 중심점이 이렇게 옮겨오는 것? 그렇구나, 우리가 다양성을 얘기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유의 뿌리는 이토록 폭력적이구나. 

 나는 접시 위에 놓인 콩들을 이리저리 흩어 놓았다. 콩들은 넓은 접시 위에 제 멋대로 이리 저리 뒹굴었다.

 “아니, 내가 바라는 세상은 중심이 옮겨오는 게 아니라, 이 넓은 접시에 모든 콩들이 각자 제 멋대로 흩어져서 제 식대로 살아가는 것. 나와 다른 다양한 삶과 사고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게 바람직한 사회라고 생각해.”

 

 그가 하는 말에 달린 이름표가 보수이든, 진보이든, 우파이든, 좌파이든 중심을 자기 쪽으로  옮기려는 모습에서는 파시즘의 냄새가 난다. 자기로부터 멀리 떨어져 외따로 떨어져 살아가는 콩알들을 모두 접시 밖으로 떨어뜨려야 마땅하다는 생각은 참으로 섬뜩하다.

 

 인간이 복잡한 뇌를 가진 동물로 진화한 순간부터 우리는 결코 편안할 수 없다. 끝없이 생각하고, 회의하고, 또 판단하는 걸 멈출 수 없는 게 인간의 숙명이다. 그러나 뇌를 멈추고 싶은 유혹은 얼마나 많은가?




 살아가면서 ‘절대 선’의 경지에 무언가를 올려두면 한없이 편안하다. 회의도, 사유도 필요없고 오로지 삶을 그 절대 선에 끼워 맞추면 되니까. 청소년 시절엔 성적과 대학이 절대 선이었고, 성인이 된 다음엔 출세, 사랑, 돈, 가족 따위가 절대 선의 자리를 차지하겠지. 가끔은 신과 인간을 얘기하는 사람을 만난다. 또 드물게는 민족과 통일을 얘기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또 더 드물게는 노동과, 계급을 얘기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나 그들이 얘기하는 그것들이 절대적 가치가 되어버릴 때, 나는 그 절대 선 앞에서 내 삶과 그들의 삶이 삶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그 절대선의 논리 앞에 변형되어져 일그러져가고 있는 것을 본다.




 개체의 삶이 그 삶대로 존중받지 못하는 진보는 허구다. 이념 앞에 현실의 삶을 찌그러뜨려야 한다면 바로 그 이념이 폭력이다.

 

 다르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다수, 보편, 단결이란 미명하에 삶과 사유를 억압한다. 그러나 다른 삶을 인정하는 곳에서는 연대의 가능성이 열린다. 연대, 그것은 네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전제하고 시작하는 삶의 방식이 아닌가.  




 인간, 가족, 사랑, 신, 돈, 민족, 통일, 평화, 자유, 노동...

 우리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것들이 어떻게 우리 뇌를 장악하게 되었던가, 그 역사적 발걸음을 확인하지 않을 때, 그 절대자들은 우리의 두 눈과 우리의 뇌와 종국에는 우리의 심장을 파먹는 벌레가 될 것이다.




“나의 맘 속에 나를 먹는 벌레가 살아 녀석은 나의 뇌 속에 처음 둥지를 틀고 이제는 나의 세포 모두에 자리를 잡아가 그래서 말이지만 내가 벌렌지 벌레가 난지...”

 자우림의 노래 '벌레‘의 가사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다시 회의하고 사유하자. 벌레가 우리 뇌를 다 먹어치우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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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2-14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산딸나무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개개인의 생각과 행동이 자유로운 사회.
"나와 다른 다양한 삶과 사고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사회"
그럼요. 그게 바람직한 사회이지요.



산딸나무 2008-02-14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도 조심하셔야 되는 거 아닌가요?
접시 밖으로 굴러 떨어질지도...^^

아리라 2008-02-19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빙점』을 쓴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익숙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다르다는 것은 익숙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세상과의 소통을 위한 만남, 새로운 세상과 익숙해진다는 것은 또 다른 당신을 포기하는 것일 수 도 있다.

산딸나무 2008-02-20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익숙한 것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부터 철학적 사유가 시작된다고 하죠.
요즘 세상과 소통하면서 저는 제 자신이 낯설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세상과 익숙해지려고 소통하는 게 아니라
가장 익숙한 자기 자신을 낯설게 만들기 위해, 더 많이 소통해야 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