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세폴리스 2 - 다시 페르세폴리스로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최주현 옮김 / 새만화책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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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참 오래 기다렸던 작품이다. 아는 이들에게 많이 권했었는데, 사람들이 읽고 난 다음 하나같이 "2권은 언제 나와?"라고 물었다.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야 2권을 받아보다니 ...  사람들에게 문자로 "페르세폴리스 2권 나왔음! 당장 서점으로 날아갈 것!!" 하며 문자를 보냈다.

 오늘 아침, 책을 받아들자마자 단숨에 읽었다. 기다린 세월만큼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을 덮는 순간, 소통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타자와의 소통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는데 정말 그 계곡 아래 울부짖는 소용돌이를 직접 맞닥뜨린 느낌이다. 남자와 여자, 보수와 진보, 개인과 국가, 문영과 문명의 사이를 뛰어넘어 소통한다는 게 이렇게나 고통스러울 줄이야...  정말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게 나을 것 같단 유혹을 느낄 법도 하다.   

 내 또래 작가가 살아온 삶의 만만치 않은 무게를 고스란히 받아안고 보니, 숨 쉬기 힘들만큼 지친다. 좀 쉬어야겠다. 쉬면서 사유해보자. 나는 내 앞에 놓인 계곡들을 어떻게 뛰어넘어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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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상대를 봐 가며 눈치껏 대답한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을 만나면 ‘아이고, 제가 아직 좋은 사람이 없어서 결혼을 못했습니다.’라고 둘러대고, 내 나이 또래의 젊은 친구들을 만나면 ‘여자들한테는 결혼이 좀 차별적이잖아요. 가부장적 문화도 그렇고, 육아 문제도 그렇고.’라고 말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지속되는 친밀한 사이라면 ‘비혼주의자’라고 솔직하게 얘기를 한다.


 결혼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은 독신에 대해서 특별한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꼭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런 사람들을 ‘비혼주의자’라고 하진 않는다. 내가 스스로를 ‘비혼주의자’라 부르는 까닭은 결혼을 하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내 삶의 방식이 오랜 사유 끝에 행한 적극적 선택이고, 그 생각을 뒷받침하는 나만의 철학적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스물여섯 겨울 즈음, 결혼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혼이란 게 과연 어떤 장단점을 가진 제도인지, 과연 그 제도가 내 삶에 꼭 필요한 것인지, 그 제도를 선택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는지……. 성과 사랑의 본질, 가족의 역사, 결혼 제도의 성립 과정 등에 관한 책을 읽기도 하고, 주위 사람들의 체험담을 듣기도 하며 내 성향과 기질을 분석했다. 그 결과, 스물일곱 겨울에 독신을 선택하고 ‘비혼주의자’임을 선언했다.

 십 년도 더 된 일이지만, 주위 사람들이 기막혀 하던 표정이 아직도 선하다. 결혼이란 게 나이 차고 좋은 사람 생기면 하는 거지, 애인도 없으면서 그걸 미리 선택 하냐고……. 쓸 데 없는 말을 지껄인다고 언짢아하는 사람도 있었고, 아직 어려 뭘 몰라서 하는 철딱서니 없는 소리라고 깔보던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결혼은 ‘본성’이 아니라 ‘제도’이다. 다수의 인간들이 결혼을 선택한 것은 그 제도가 삶을 영위하는 데 상당 부분 유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약한 사회안전망을 대체하기도 하고, 경제적 불안을 완화해주기도 하고, 아이를 양육하는 데도 이점이 있다. 그 뿐인가? 사랑을 매개로 하면 일정 기간까지는 존재적 외로움까지도 덜어주니 이 얼마나 좋은 제도인가.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제도일지라도 그 제도가 모두에게, 모든 점에서 다 유용한 것은 아니어서 한계도 분명하다.




 결혼이 가지는 치명적 한계는 바로 사랑과 성의 자율적 선택권을 포기해야하는 것이다. 쉬운 말로 바람피우면 안 된다는 말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하지만 결혼제도 안에서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일이 되고 만다. 제도의 한계란 그런 것이다.

 

 비혼주의자로 살면 적어도 그런 한계에 절망하지 않아도 된다. 내 평생 사랑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배우자의 조건 따위 고려하지 않아도 되고, 내 자유 의지를 억압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현실의 삶은 자유 의지만으로 살 수 없단 것을, 제도 내에서 매 순간 타협할 수밖에 없단 걸 내가 왜 모르겠는가? 그러나 나는 사람에 대해서만은, 사랑에 대해서만은, 성에 대해서만은 제도적 타협을 용납하기 싫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친구들은 ‘사랑이 밥 먹여 주냐?’며 정신 차리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말 그대로 사랑은 ‘밥’과 무관하다.

 그러나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이라 했던가?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가는 데 전혀 도움 되지 않는 사랑, 바로 그 무용한 사랑이기에 내게는 가장 유용한 가치가 될 수 있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 오롯이 ‘사람’이어도 되는 삶, 사랑할 자유는 있으되, 사랑해야 하는 의무는 없는 삶, 성실한 노력만이 사랑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인 삶. 비혼주의는 그래서 매력적이다. 


 끝으로, 이 글을 읽고 비혼주의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얼마나 많은 사랑을 해 보았느냐고 묻는다면…….

 주위를 한번 둘러보시라. 배우자의 조건으로 마땅한 학벌, 재산, 직업 따위 다 걷어내고 오로지 자신의 실존만으로 빛나는 남자가 몇이나 눈에 띄는지. 그대의 눈에 보이는 현실이 바로 내 현실이란 말이 답이 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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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초롱 2008-04-22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랑이란, 모든 세상이 나를 버리고 난 후,내 인생의 사막에서 피어나는 한 포기 풀 같은 존재이고,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음을 아는 순간 인간은 강해지며,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때 인간은 용기를 얻고,늙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지 않기에 늙는 것이라고 합니다.

산딸나무님은 비혼주의자 개념보다 자기만의 삶을 살줄알고, 이 시대에 거의 멸종위기의 몇안되는 순수 로맨티시스트는 아닐런지....

산딸나무 2008-04-28 13:23   좋아요 0 | URL
금강초롱님, 저는 비혼주의자입니다.
자기만의 삶을 살 줄도 알고,
순수한 로맨시스트이기도 하지만
제가 선택한 비혼주의자라는 개념이
그 모두를 다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로그인 2008-04-26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다는 것이 '일회성'이므로,
갈림 길에서 늘 선택을 해야만 하더군요.
어떨 때는 양쪽을 다해보고 싶을 때도 있었지요.
선택을 유보하는 것도 결국 선택이었고요.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산딸나무님의 실존적 선택이겠지요.
다만,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지 않고 단정짓는 것은 다소 성급한 판단일 수도 있답니다.
삶이 유한하므로 가능하다면 많은 일을 경험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산딸나무 2008-04-28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 저는 스물일곱의 나이가 결코 어리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나이에 결혼을 선택하지요.
그들의 선택이 모두 철없는 게 아닌 것처럼 저 역시, 비혼의 삶을 진지하게 선택했답니다.
비혼은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가 아니랍니다.
비혼의 삶에도 결혼을 선택한 사람들이, 혹은 선택을 유보하고 있는 사람들이
결코 상상할 수 없는 매력적인 인생 경험들이 넘쳐난답니다.
 

 

 

 사람들은 내가 서른여덟의 비혼주의자로, 혼자서 살고 있단 얘길 들으면 처음엔 예의상 ‘능력 있는 골드미스’라고 추켜세운다. 그러나 술이든 이야기든 한 차례 돌고 나면 슬슬 질문이 이어진다. 그 질문들은 염려라는 꿀을 바른 속된 궁금증들이 대부분이다. 하긴, 심심한 인생에 타인의 삶에 끼어드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여흥거리가 어디 있을까 생각하니 이해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성과 나이를 초월해서 사람들이 독신녀에게 던지는 질문 가운데 유독 자주 등하는 단어가 있으니, 다음 지문을 읽고 한 번 맞혀보시라.


 애 둘 낳고 살고 있는 여자친구가 묻는다. 
 “밤에 아프면 약 사줄 사람도 없고, 서러워서 어떻게 하니?” 
 연애에 빠져서 정신없는 어린 여자후배가 묻는다. 
 “혼자 살면 밤에 무서워서 어떻게 해요?” 
 일 때문에 만난 같은 또래의 유부남이 묻는다. 
 “혼사 살면 밤에 외롭지 않나요?”

 초등 1학년 국어 문제 수준인데 설마 못 맞힌 분들은 없겠지? 그렇다. 그 단어는 바로 ‘밤’이다. 사람들은 혼자 사는 여자에 대해서 그녀의 ‘낮’보다는 특히 ‘밤’을 궁금해 한다. 결혼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밤은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데, 혼자 사는 여자의 밤에는 왜 그리 관심이 많을까? 나는 오히려 그게 더 궁금하다.

 하도 이런 질문들을 자주 들어서 하루는 나도 내가 밤에 도대체 뭘 하는지 곰곰이 한번 생각해봤다.

 일주일을 돌아보니 사흘 정도는 집안일을 한다. 
 일을 늦게 마친 날은 청소기를 돌릴 수가 없어서 손으로 방을 쓸고 닦기도 한고, 세탁기가 해결해 주지 못하는 옷가지를 빨기도 한다. 마흔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손목이 시큰거린다. 그리고 한 주에 한 번 정도는 24시간 영업하는 마트를 들러 장을 본다. 장바구니에 세탁 세제, 복사용지, 무, 감자 따위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날은 정말 ‘짜증 지대로’다. 그래도 내 몸뚱이를 살아가게 만드는 이런 일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틀 정도는 책을 읽는다. 너무 고상한 척한다고 생각하진 마시길. 반 이상이 만화책이니까.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서재에 틀어박혀 책을 읽으면서 보내는 시간을 더없이 사랑한다. 

 그리고 하루는 이런 저런 관계의 사람들을 만난다. 책 읽고 토론하는 모임 친구들, 함께 밴드를 하는 언니 동생들, 내 밑바닥까지 알고 있는 내 가족들……. 까칠한 나에게 먼저 말을 건네주는 이들에게 늘 고맙다.

 그리고 나머지 하루는 나를 만난다. 가끔씩 달빛이 부서지는 봄밤, 동네를 한바퀴 걷기도 하고, 비가 촉촉이 내리는 밤은 두보의 시를 떠올리며 사유에 잠기기도 한다. 내가 가장 아끼는 시간이다. 이 시간만은 오롯이 실존의 자아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실한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만나기 어려운 인물은 대통령도, 인기스타도 아니다. 그건 바로 자신이다. 명함이 말해주는 나, 돈이 말해주는 나, 관계가 말해주는 나가 아닌 진짜 실존의 자아를 만나본 적이 언제인가? 아니,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그런 나를 만난 적이 있기는 한 걸까?

 짬 없는 일상과 틈 없는 관계에 질식하기 직전인 나를 만나면 나는 늘 외롭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외로움과는 다른,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고 살아가는 본연의 외로움이다. 누군가의 부재로 인한 상대적 외로움, 존재적 외로움, 상실의 외로움이 아니라, 나를 느끼는 사람만이 가지는 절대적 외로움, 실존적 외로움, 충만한 외로움이다.

 그렇기에, 혼자 사는 여자의 밤은 가끔 외롭다. 그래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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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4-17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로워서 행복하시다. 하하..
저는 50이 넘은 소위 완전한 아저씨인데도 종종 외롭답니다.. 하하
실존적 외로움에 한표!!!


산딸나무 2008-04-17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 누구에게나 실존적 외로움을 느낄 권리는 있답니다.
나이, 성, 삶의 방식과는 상관 없이요.
저도 님의 외로움에 한 표 드리죠.^^

2008-04-17 1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4-17 1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금강초롱 2008-04-18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정호승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 간다는 것은 외로움 견디는 일
공연히 오지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내리면 눈길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속을 걸어라
갈대숲속에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가끔씩 하느님도 눈물을 흘리신다
공연히 오지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산 그림자도 외로움에 겨워
한번씩은 마을로 향하며
새들이 나무가지에 앉아서 우는것도
그대가 물가에 앉아있는것도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 간다는 것은 외로움 견디는 일
공연히 오지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그대 울지마라
공연히 오지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아! 외로움이란 나에게 있어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너무 익숙하기에 그냥 무시하고, 아무렇지도않은듯, 별일 없는듯, 어쩌면 나에겐 너무 사치스런 감정인냥 그냥 그렇게 그럭저럭 버티며 지금까지 여기까지....

실존적인 외로움이란 결국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의 본성이고 그것을 통해 자신들을 아름답게 승화시킬 의무가 있겠죠. 님과같이, 그 외로움이 행복으로 다가온다니, 다행이네요,진심으로 행복이 가득하길!

산딸나무 2008-04-21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마녀 1 마녀 1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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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난 해 늦가을,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마녀’가 출판되었다. 두 권으로 묶여있는 이 단편집에는 작가 특유의 철학적이고도 몽환적인 작품들로 가득하다. 자연과 인간의 연결고리가 되는 마녀들의 삶은 인간의 이성과 논리에 의해 죽어간 감성과 직관의 세계를 다시금 보여준다.




 나이든 마녀는 어린 마녀에게 말한다.

 ‘숲은 그 곳에 자라나는 나무가 아니라 그 곳에 있는 모든 생명, 빛이나 시간이 형태를 이룬 것이지. 그곳에 있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누구든 그 숲의 일부가 돼.‘

 또 다른 작품에서는 그 메시지에 붉은 핏빛을 입혀낸다.

 대규모 폭격과 벌목으로 죽어버린 숲, 그 숲에서 풀이 자라고, 그 풀을 소가 먹는다. 소들은 다시 죽어서 팔려나가고 아이들의 햄버거 빵 사이에 그 육신을 누인다. 아이의 입으로 들어가는 행버거에서 작은 손이 하나 뻗어 나오고 마지막 컷에는 숲의 동식물들의 모습이 확대된다. 

 ‘우리를 먹지 마!’




 중세시대 마녀들은 시대의 희생양이었다. 유럽을 휩쓴 페스트, 급격한 인구 증가, 빈부의 차에서 생겨난 갈등과 분노 따위들을 덮기 위해 권력자들은 ‘가난한 여성’들을 제물로 바쳤다.

 가슴 아픈 것은 어느 시대나 희생양이 가장 약한 존재들이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섬뜩한 진실이 있으니, 희생양을 만들어내는 것은 지배자의 교묘한 술책이지만 그것을 확대 재생산 하는 것은 피지배자의 불안이란 것이다.




 여유를 게으름이라 부르며 저주하고, 가까이 있는 작은 행복은 구질구질한 일상이라 치부하고, 미래 따위는 일찌감치 저당 잡힌 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 경쟁의 원형경기장에서 상대가 죽어나갈 때까지 칼을 휘두르지 않으면 안 되는 하루하루. 자본의 노예로 살아가는 우리의 불안감은 지금 어떤 희생양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이 시대 가장 약한 존재는 누구인가? 변론할 입도 없고, 휘저을 손도 없고, 달아날 발도 없는 존재들. 그러고 보니, 대운하 계획을 세운 것은 그들이었지만 그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은 바로 자본주의 경제동물로 살아가는 우리의 불안이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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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3-20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들 때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는 거 같아요.. 산딸나무님


산딸나무 2008-03-21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쬐끔 힘드는데
그래서 그런지 자기자신을 더 많이 돌아보게 되네요.
개인적인 일 때문에 서재에 당분간 좀 뜸할 것 같은데
한사님을 자주 못 뵙는 게 제일 서운할 것 같아요.

비로그인 2008-03-26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시기를, 산딸나무님
사람이 성의를 기울여 해결 못할 일이 없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를 제외하고요..
땅끝에서 봄기운을 올려보내며 응원합니다. 하하


산딸나무 2008-03-27 09:25   좋아요 0 | URL
며칠 그나마 기운이 났던 게
땅끝에서 보내올려준 파릇파릇한 봄기운 덕분이었군요.
고맙습니다^^

산딸나무 2008-03-27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통이 없으면 행복도 없지요.
고통이 큰 만큼 행복도 깊어지지요.
 
우석훈, 이제 무엇으로 희망을 말할 것인가 - '88만원 세대'를 넘어 한국사회의 희망 찾기
우석훈.지승호 지음 / 시대의창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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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지승호.

내 주위 젊은(어린?) 후배들이 좋아하는 두 사람이 만났다.

두 사람의 글쓰기에 후배들이 열광하는 걸 보면서 나는 내가 꼰대가 되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어, 왜 재미없지? 왜 자꾸 가볍단 느낌이 먼저 들까? 왜 자꾸 '그래서?'라고 묻게 될까?

대담집이란 형식이 가지는 특성을 인정하더라도 '이런 이야기로 책을 내다니...' 이번 책은 좀 너무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후배에게 "야, 네 또래는 이렇게 써야 읽니?" 했더니, 픽 웃는다.

"읽으면 다행이게요. 어떻게 써도 읽는 놈은 몇 없어요."

그렇지, 어떻게 써도 읽는 이가 별로 없는 책. 그 책을 그나마 이렇게 줄창 내고 있다는데 점수를 줘야 하겠지.

근데, 정말 이십 대는 이 책을 읽고 무슨 희망을 찾을까? 나는 아무리 눈 부릅 뜨고 봐도 희망 따윈 없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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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2-27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석훈, 지승호..
뭐하는 분들인가요? 진짜 old man이 묻습니다.


산딸나무 2008-02-27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우석훈씨는 <88만원 세대>를 쓴 경제학자이고,
지승호씨는 인터뷰어입니다.

금강초롱 2008-04-12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눈에 띄는 것은 경제시스템에 농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농업의 사활을 국가경제와 결부시킨 부분이 마음에 들었는데여,촌에 할매,할배들 다 돌아가시면 누가 농사짓냐? 그 농사란 것이 별거 아닌것 같아도 정말 예민하고 예술적인 일인데 첨단기술이라고나 할까?우리나라에서는 너무 천시하는 풍조가안타깝군여.농약뿌리는 일만 빼고 .....

산딸나무 2008-04-17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농사만한 예술이 없지요.
님의 안타까움에 저도 동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