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상대를 봐 가며 눈치껏 대답한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을 만나면 ‘아이고, 제가 아직 좋은 사람이 없어서 결혼을 못했습니다.’라고 둘러대고, 내 나이 또래의 젊은 친구들을 만나면 ‘여자들한테는 결혼이 좀 차별적이잖아요. 가부장적 문화도 그렇고, 육아 문제도 그렇고.’라고 말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지속되는 친밀한 사이라면 ‘비혼주의자’라고 솔직하게 얘기를 한다.


 결혼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은 독신에 대해서 특별한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꼭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런 사람들을 ‘비혼주의자’라고 하진 않는다. 내가 스스로를 ‘비혼주의자’라 부르는 까닭은 결혼을 하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내 삶의 방식이 오랜 사유 끝에 행한 적극적 선택이고, 그 생각을 뒷받침하는 나만의 철학적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스물여섯 겨울 즈음, 결혼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혼이란 게 과연 어떤 장단점을 가진 제도인지, 과연 그 제도가 내 삶에 꼭 필요한 것인지, 그 제도를 선택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는지……. 성과 사랑의 본질, 가족의 역사, 결혼 제도의 성립 과정 등에 관한 책을 읽기도 하고, 주위 사람들의 체험담을 듣기도 하며 내 성향과 기질을 분석했다. 그 결과, 스물일곱 겨울에 독신을 선택하고 ‘비혼주의자’임을 선언했다.

 십 년도 더 된 일이지만, 주위 사람들이 기막혀 하던 표정이 아직도 선하다. 결혼이란 게 나이 차고 좋은 사람 생기면 하는 거지, 애인도 없으면서 그걸 미리 선택 하냐고……. 쓸 데 없는 말을 지껄인다고 언짢아하는 사람도 있었고, 아직 어려 뭘 몰라서 하는 철딱서니 없는 소리라고 깔보던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결혼은 ‘본성’이 아니라 ‘제도’이다. 다수의 인간들이 결혼을 선택한 것은 그 제도가 삶을 영위하는 데 상당 부분 유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약한 사회안전망을 대체하기도 하고, 경제적 불안을 완화해주기도 하고, 아이를 양육하는 데도 이점이 있다. 그 뿐인가? 사랑을 매개로 하면 일정 기간까지는 존재적 외로움까지도 덜어주니 이 얼마나 좋은 제도인가.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제도일지라도 그 제도가 모두에게, 모든 점에서 다 유용한 것은 아니어서 한계도 분명하다.




 결혼이 가지는 치명적 한계는 바로 사랑과 성의 자율적 선택권을 포기해야하는 것이다. 쉬운 말로 바람피우면 안 된다는 말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하지만 결혼제도 안에서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일이 되고 만다. 제도의 한계란 그런 것이다.

 

 비혼주의자로 살면 적어도 그런 한계에 절망하지 않아도 된다. 내 평생 사랑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배우자의 조건 따위 고려하지 않아도 되고, 내 자유 의지를 억압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현실의 삶은 자유 의지만으로 살 수 없단 것을, 제도 내에서 매 순간 타협할 수밖에 없단 걸 내가 왜 모르겠는가? 그러나 나는 사람에 대해서만은, 사랑에 대해서만은, 성에 대해서만은 제도적 타협을 용납하기 싫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친구들은 ‘사랑이 밥 먹여 주냐?’며 정신 차리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말 그대로 사랑은 ‘밥’과 무관하다.

 그러나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이라 했던가?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가는 데 전혀 도움 되지 않는 사랑, 바로 그 무용한 사랑이기에 내게는 가장 유용한 가치가 될 수 있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 오롯이 ‘사람’이어도 되는 삶, 사랑할 자유는 있으되, 사랑해야 하는 의무는 없는 삶, 성실한 노력만이 사랑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인 삶. 비혼주의는 그래서 매력적이다. 


 끝으로, 이 글을 읽고 비혼주의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얼마나 많은 사랑을 해 보았느냐고 묻는다면…….

 주위를 한번 둘러보시라. 배우자의 조건으로 마땅한 학벌, 재산, 직업 따위 다 걷어내고 오로지 자신의 실존만으로 빛나는 남자가 몇이나 눈에 띄는지. 그대의 눈에 보이는 현실이 바로 내 현실이란 말이 답이 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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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초롱 2008-04-22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랑이란, 모든 세상이 나를 버리고 난 후,내 인생의 사막에서 피어나는 한 포기 풀 같은 존재이고,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음을 아는 순간 인간은 강해지며,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때 인간은 용기를 얻고,늙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지 않기에 늙는 것이라고 합니다.

산딸나무님은 비혼주의자 개념보다 자기만의 삶을 살줄알고, 이 시대에 거의 멸종위기의 몇안되는 순수 로맨티시스트는 아닐런지....

산딸나무 2008-04-28 13:23   좋아요 0 | URL
금강초롱님, 저는 비혼주의자입니다.
자기만의 삶을 살 줄도 알고,
순수한 로맨시스트이기도 하지만
제가 선택한 비혼주의자라는 개념이
그 모두를 다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로그인 2008-04-26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다는 것이 '일회성'이므로,
갈림 길에서 늘 선택을 해야만 하더군요.
어떨 때는 양쪽을 다해보고 싶을 때도 있었지요.
선택을 유보하는 것도 결국 선택이었고요.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산딸나무님의 실존적 선택이겠지요.
다만,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지 않고 단정짓는 것은 다소 성급한 판단일 수도 있답니다.
삶이 유한하므로 가능하다면 많은 일을 경험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산딸나무 2008-04-28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 저는 스물일곱의 나이가 결코 어리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나이에 결혼을 선택하지요.
그들의 선택이 모두 철없는 게 아닌 것처럼 저 역시, 비혼의 삶을 진지하게 선택했답니다.
비혼은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가 아니랍니다.
비혼의 삶에도 결혼을 선택한 사람들이, 혹은 선택을 유보하고 있는 사람들이
결코 상상할 수 없는 매력적인 인생 경험들이 넘쳐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