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내가 서른여덟의 비혼주의자로, 혼자서 살고 있단 얘길 들으면 처음엔 예의상 ‘능력 있는 골드미스’라고 추켜세운다. 그러나 술이든 이야기든 한 차례 돌고 나면 슬슬 질문이 이어진다. 그 질문들은 염려라는 꿀을 바른 속된 궁금증들이 대부분이다. 하긴, 심심한 인생에 타인의 삶에 끼어드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여흥거리가 어디 있을까 생각하니 이해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성과 나이를 초월해서 사람들이 독신녀에게 던지는 질문 가운데 유독 자주 등하는 단어가 있으니, 다음 지문을 읽고 한 번 맞혀보시라.
애 둘 낳고 살고 있는 여자친구가 묻는다.
“밤에 아프면 약 사줄 사람도 없고, 서러워서 어떻게 하니?”
연애에 빠져서 정신없는 어린 여자후배가 묻는다.
“혼자 살면 밤에 무서워서 어떻게 해요?”
일 때문에 만난 같은 또래의 유부남이 묻는다.
“혼사 살면 밤에 외롭지 않나요?”
초등 1학년 국어 문제 수준인데 설마 못 맞힌 분들은 없겠지? 그렇다. 그 단어는 바로 ‘밤’이다. 사람들은 혼자 사는 여자에 대해서 그녀의 ‘낮’보다는 특히 ‘밤’을 궁금해 한다. 결혼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밤은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데, 혼자 사는 여자의 밤에는 왜 그리 관심이 많을까? 나는 오히려 그게 더 궁금하다.
하도 이런 질문들을 자주 들어서 하루는 나도 내가 밤에 도대체 뭘 하는지 곰곰이 한번 생각해봤다.
일주일을 돌아보니 사흘 정도는 집안일을 한다.
일을 늦게 마친 날은 청소기를 돌릴 수가 없어서 손으로 방을 쓸고 닦기도 한고, 세탁기가 해결해 주지 못하는 옷가지를 빨기도 한다. 마흔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손목이 시큰거린다. 그리고 한 주에 한 번 정도는 24시간 영업하는 마트를 들러 장을 본다. 장바구니에 세탁 세제, 복사용지, 무, 감자 따위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날은 정말 ‘짜증 지대로’다. 그래도 내 몸뚱이를 살아가게 만드는 이런 일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틀 정도는 책을 읽는다. 너무 고상한 척한다고 생각하진 마시길. 반 이상이 만화책이니까.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서재에 틀어박혀 책을 읽으면서 보내는 시간을 더없이 사랑한다.
그리고 하루는 이런 저런 관계의 사람들을 만난다. 책 읽고 토론하는 모임 친구들, 함께 밴드를 하는 언니 동생들, 내 밑바닥까지 알고 있는 내 가족들……. 까칠한 나에게 먼저 말을 건네주는 이들에게 늘 고맙다.
그리고 나머지 하루는 나를 만난다. 가끔씩 달빛이 부서지는 봄밤, 동네를 한바퀴 걷기도 하고, 비가 촉촉이 내리는 밤은 두보의 시를 떠올리며 사유에 잠기기도 한다. 내가 가장 아끼는 시간이다. 이 시간만은 오롯이 실존의 자아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실한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만나기 어려운 인물은 대통령도, 인기스타도 아니다. 그건 바로 자신이다. 명함이 말해주는 나, 돈이 말해주는 나, 관계가 말해주는 나가 아닌 진짜 실존의 자아를 만나본 적이 언제인가? 아니,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그런 나를 만난 적이 있기는 한 걸까?
짬 없는 일상과 틈 없는 관계에 질식하기 직전인 나를 만나면 나는 늘 외롭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외로움과는 다른,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고 살아가는 본연의 외로움이다. 누군가의 부재로 인한 상대적 외로움, 존재적 외로움, 상실의 외로움이 아니라, 나를 느끼는 사람만이 가지는 절대적 외로움, 실존적 외로움, 충만한 외로움이다.
그렇기에, 혼자 사는 여자의 밤은 가끔 외롭다. 그래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