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동화는 아이들의 삶을 그대로 녹여냅니다. 아이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학교……. 그 모든 것들이 동화의 소재입니다. 때로는 그들이 꾸는 꿈만으로  판타지의 세계가 창조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겪는 고통과 상처들은 여간해서 동화의 소재가 되지 못합니다. 아직도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천사라는 틀 안에 가두어서 바라보길 원합니다. 하지만 그 천사들이 사는 세상은 천국이 아닌 현실입니다. 그래서, 여기 아이들의 상처를 감싸 안는 따뜻하고 용감한 동화 두 편을 소개합니다.

[슬픈 란돌린]  가트린 마이어 글 아네테 블라이 그림, 허수경 옮김 문학동네어린이


  어린이들이 가족 안에서 당하는 성폭력의 진실은 꼭꼭 닫혀진 문을 열고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그 사실을 우리가 인지할 수 있도록 자신의 삶을 걸고 증언하고 싸워온 우리의 용기있는 자매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힘을 주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지식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훌륭한 성교육 지침서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책은 어린 시절, 어떤 형태로든 성폭력에 노출되어 살아왔던 우리시대 성인여성들을 위한 치료서입니다. 란돌린과 브리트가 울음과 고통으로 고민했던 날을 보내며 친구인 이웃의 아줌마를 찾아가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 삶을 위로하고 눈물을 닦을 수 있을 것입니다.

 

  끝으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을 하나 더 꼽고 싶습니다. 바로 어린이 성폭력의 실체를 정확하게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저씨가 성기를 꺼내고 있는 장면이라든가, 브리트의 옷을 벗기고 성기를 만지는 장면 따위, 정확하게 성폭력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존에 추상적인 묘사에 그쳤던 그림책에 비하면 아주 진일보한 책입니다. 그 그림들을 통해서 작가의 사상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운하의 소녀] 티에리 르냉 지음, 조현실 옮김

 

  이 책의 지은이는 두 딸의 아버지입니다. 그래서인지 성폭력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두 명의 생존자가 등장합니다. 미술선생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폭력은 당하는 여자아이와 그 아이의 담임선생님인 여성입니다. 담임선생님 역시 사춘기 시절 삼촌에게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두 사람의 의식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성폭력이 어떤 논리와 잣대로 피해자를 억압하는 지 서서히 깨닫게 됩니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한 이야기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작품입니다.

‘넌 어떤 순간에도, 그 사람에게 몸을 준 게 아니야. 절대로. 그 사람이 네 몸을 훔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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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들에게 아이들을 어떤 존재일까요? 그 나름의 개성과 인격을 갖고 성장하고 있는 인간일까요? 아니면,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미숙한 존재일까요? 우리 사회는 여전히 후자의 편견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개성과 다양성이 온전히 인정되지 않지요. 그래서 아직도 많은 어른들은 ‘착한 아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는 아이들은 골칫덩이로 치부합니다. 게다가 그 편견의 잣대는 남자아이보다 여자아이들에게 더 강하게 작용합니다.

  

  여기, 어른들의 근엄한 편견을 여지없이 날려버리는 유쾌한 여자아이들이 있습니다. 한번 만나보세요. 


왜요?

-린제이 캠프 글,  토니 로스 그림, 베틀 북 출판사


  시종일관 배꼽을 잡는 멋진 그림책입니다. ‘릴리’라는 여자아이가 주인공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릴리의 대사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왜요?” 어떤 얘기를 하든 릴리는 늘 ‘왜요’라고 되묻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은 모두 공감할 만한 상황이겠죠? 처음에는 그 질문에 열심히 대답을 해 주던 아빠도 결국엔 폭발하고 맙니다. ‘그냥, 그건 그냥 그런거야... 제발!’

 

  그러나 이 책에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기막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느 금요일, 공원에서 모래장난을 하고 있는 아빠와 릴리 앞에 그들이 나타났습니다. 더 이상 이야기하면 안 되겠죠? 꼭 한 번 읽어보세요. 이 멋진 여자아이의 ‘왜요’ 한 마디가 어떻게 세상을 구하는지...

 

  지구를 구하는 건 더 이상 로봇을 조종하는 소년들이 아니랍니다. 


엉뚱이 소피의 못 말리는 패션

수지 모건스턴 지음, 최윤정 옮김, 비룡소


  한 겨울에 샌들을 신고 학교 가는 아이, 하고많은 예쁜 옷을 놔 두고 체육복을 입고 외출을 하겠다고 나서는 아이, 구멍이 났는데도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 양말만 신겠다고 우기는 아이... 아이들의 종잡을 수 없는 패션감각에 혀를 내두르는 부모님들께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4개월 때 마음에 안 드는 옷을 입혀놓았다고 울고, 다섯 살에 그림책보다 패션잡지 뒤적이는 걸 즐기는 소피. 이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주위의 어른들은 골치 아파집니다. 짝짝이 구두를 신고 학교에 오고 타조 깃털이 달린 모자를 쓰고 학교에 가는 이 아이는 순식간에 ‘문제아’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마지막엔 용감하고 총명하고, 독특하고, 창의력이 뛰어난 아이라는 이야기를 듣지요. 그 사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해 보세요. 그리고 마지막에 온 학교 아이들이 다 소피의 패션을 따라할 때, 소피가 입고간 옷이 어떤 것인지 확인하게 된다면 이 별난 아이의 마음이 이해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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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너무도 오랫동안 교훈을 정리해 내는 동화들에 길들여져 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자아이들을 씩씩하게 키우자’, ‘남자, 여자 차별하지 말자’ 따위 구호들이 좀 긴 글로 씌어져 있는 이야기에는 별로 흥미가 없습니다. 고작 그 몇 마디 얻자고 동화를 읽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야기는 이야기의 역할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동화들을 만나게 해주고 싶습니다. 이런 동화를 읽은 아이들이라면 양성평등 세상을 꿈꿀 것만 같은 그런 동화들.


[따로 따로 행복하게] - 배빗 콜 지음, 고정아 옮김-보림

 

  행복한 가정은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는 엄마, 아빠, 아이들이 함께 모여서 웃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헤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이 책은 그러한 경험을 아이들에게 유쾌하고 발랄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엄마가 알을 낳았대’로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국작가 배빗 콜의 그림책입니다. 부모의 이혼은 아이들에게 큰 상처를 남깁니다. 하지만 그 상처가 두려워서 곪은 종기에 그냥 거즈를 덮을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고 삶입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결혼했듯이 더 행복해지기 위해 이혼한다는 명쾌한 진리를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엄마랑 아빠는 지금 아주아주 행복하세요. 앞으로도 오래오래 행복하실거고요. 엄마 따로 아빠 따로, 따로따로요!”

 

[모모] - 미하엘 엔데 지음 - 비룡소

 

  모모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주인공입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작은 여자아이, 하지만 친구들과 이웃들과 즐거운 시간들을 가지고 있는 아이입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잘 하는 것이 없지만 누구나 모모 앞에서는 자신의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는 가장 아름다운 능력을 가진 아이입니다.

 

  예쁘고 날씬하고, 돈도 잘 버는 여성이 현모양처의 꿈을 대신한다고 해서 양성평등의 세상이 오는 건 아닐 겁니다. 여자 아이들에게 그 어떤 위인보다도 역할모델로 권하고 싶은 모모.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떠나는, 부드럽고 다정해서 더 용감한 모모는 판타지의 거장 미하엘 엔데가 그려낸 최고의 여성주인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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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본 ‘집으로’라는 영화를 기억하시는지... 거기엔 한국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전형적인 할머니가 나온다. 나도 물론 그 영화를 보고 많이도 울었지만 우리는 언제쯤 할머니란 이름에서 가슴 저미는 애틋함이 아니라 유쾌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까?

 

  사랑은 여러 모습이 있다. 그러나 할아버지에게는 인자한 권위를 인정하면서 할머니들에게는 헌신과 배려만을 떠넘기는 건 왠지 좀 억울하다. 그래서 오늘은 먼 나라의 할머니들이지만 유쾌하고 씩씩한, 그러면서도 더없이 지혜로운 할머니들을 만나보고 싶다.  



할머니

페터 헤르틀링


 <할머니>라는 제목 밑에 "부모님을 잃고 할머니와 살아가는 한 소년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슬프고 심란한 이야기라고 오해하기 딱 걸맞는 제목들이다. 그러나 이야기 속의 할머니는 너무도 활기차고 당당한 사람이다. 가난 앞에서 궁상스럽지 않고, 정부의 보조금을 시혜라고 생각하지 않고 권리라고 여기며 사회복지과 직원과 언성을 높이며 싸우기도 한다.

 

  부모님을 잃고 함께 살아가는 손자에게 사랑하지만 연민하지 않는 지혜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는 멋진 할머니... 오로지 퍼주기만 하는 사랑이 할머니의 사랑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우리에겐 생소한 할머니이지만 그 낮설음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

미하엘 엔데

 

   ‘모모’로 너무나 잘 알려진 미하엘 엔데의 짧은 이야기를 프리드리히 헤헬만의 환상적인 그림과 엮어서 만든 그림책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저학년들은 이해하기가 어려운 책이다.

 

   오필리아는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으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한 혼자 사는 할머니이다. 할머니에게 오갈 데 없는 그림자들이 모여든다. 할머니는 무서운 어둠, 외로움, 밤앓이, 힘없음, 덧없음 따위 이름을 가진 온갖 떠돌이 그림자들을 거두어서 그들과 함께 살아간다.

 

  할머니와 그림자들은 연극 공연을 하면서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 이 마을 저 마을을 찾아다니며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을 연다. 그러던 어느날 할머니는 죽음이라는 그림자를 만난다. 그 그림자와 할머니는 어떻게 되었을까?

 

  읽는 이들의 즐거움을 위해 여기까지만 얘기해야겠다. 개인적으로는 미하엘 엔데의 단편 가운데 최고로 꼽는 작품이다. 책을 열어 결말을 보게 된다면 모든 독자들이 공감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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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다른 존재를 이해하는 것은 참 쉽지 않다.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우리는 늘 소통에 목말라 하면서 알려 하고, 사랑하려  애쓴다. 마치 그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비장애인인 내가 장애인들을 이해하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나의 이해가 이해를 받는 사람들을 대상화하는 권력으로 해석될까봐 장애인 친구들을 만나면 늘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았다.  혹여나 나의 무지가 그들에게 상처를 줄까봐 그들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온 몸이 긴장으로 움츠러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책을 만났다.

  '우리 누나' .

  장애아들의 삶을 그려낸 동화다. 근데 전에 읽었던   동화들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도대체 까닭이 뭘까?  책장을 덮고 한참 고민했었다. 별로 특별한 이야기도 아닌데...

  바로 그것이었다.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들. 그게 이 책에서 받은 감동의 정체였다. 장애아들은 그저 착하기만 한 존재도 아니고, 순진한 천사도 아닌, 그냥 아이들일 뿐이란 사실을 이 책은 이야기해 주고 있다. 그들의 고통을 '특별히' 여겨, '특별히' 불쌍하게 대하는 그  감정이 바로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차별의 시작이란 걸...

  그 동안 만났던 동화들 속에서 장애아들은 어찌나 착하고, 순수하며, 또 불행한지...  게다가 그 불행을 딛고 일어서는 장엄한 인간 승리의 드라마는 늘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고, '성한 사지'를 가지고 왜 이렇게 밖에 못 사냐며 자책하게 만들곤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선 장엄한 절망이 아니라 소소한 분노와 짜증, 불굴의 의지가 아니라  낙담하며 돌아서서 피시식 흘리는 웃음들이 쓰여 있다. 

                               그런데 몇 달 뒤, 장애아들을 다룬 만화책에서 인간 승리의 드라마가 내 눈물을 쏙 빼는 일이 벌어졌다. 

  '도토리의 집'.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이 만화는 중증 장애아들과 그들의 부모, 그리고 선생님들의 아픔과 고민, 절망과 상처를 날 것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런데 전혀 거부감없이 그들과 함꼐 웃고, 울면서 책을 읽었다. 책을 덮은 뒤에도 몇날 몇일을 가슴이 먹먹해지는 감동에 사로잡혔다. 

  이 한 편의 만화로 발자크가 말한  '리얼리즘의 승리'가 어떤 것인지 체험하게 되었다.  그 간 읽었던 어줍잖은 글들은 어찌 보면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는 머리만 앞섰지,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섬세한 눈과 그 아픔을 느끼는 온 몸의 세포들이 제 기능을 못했기에 벌어진 조잡한 드라마들이 아니었나 싶다. 

  타인과 다르다는 것이 절망의 시작이라면 그 다른 이들과 손 잡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희망의 시작이란 걸 알았다. 내가 그들에게 손을 내밀면, 그들이 내민 손을 잡으면 다르다는 것은 더 이상 경계가 아니게 된다는 진리, 이 책은 그것을 말해주었다. 

  '우리 누나'가 기존의 틀을 해체함으로써 차별 그 자체를 무시해 버리는 포스트 모던한 동화라면, 리얼리즘의 극치를 보여주는 '도토리의 집'은 참으로 잘 어울리는 책이다. 장르에서, 철학에서 전혀 다른 방식을 택한  이 두 권의 책은 내 속에서 하나의 깨달음으로 묶인다.

  장애인, 그들이 나와 같은 사람들이란 것. 또 비장애인인 내가 그들과 한 공동체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란 진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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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0-24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누나, 몇 해 전 읽었는데 참 좋은 책이다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