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다른 존재를 이해하는 것은 참 쉽지 않다.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우리는 늘 소통에 목말라 하면서 알려 하고, 사랑하려  애쓴다. 마치 그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비장애인인 내가 장애인들을 이해하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나의 이해가 이해를 받는 사람들을 대상화하는 권력으로 해석될까봐 장애인 친구들을 만나면 늘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았다.  혹여나 나의 무지가 그들에게 상처를 줄까봐 그들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온 몸이 긴장으로 움츠러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책을 만났다.

  '우리 누나' .

  장애아들의 삶을 그려낸 동화다. 근데 전에 읽었던   동화들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도대체 까닭이 뭘까?  책장을 덮고 한참 고민했었다. 별로 특별한 이야기도 아닌데...

  바로 그것이었다.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들. 그게 이 책에서 받은 감동의 정체였다. 장애아들은 그저 착하기만 한 존재도 아니고, 순진한 천사도 아닌, 그냥 아이들일 뿐이란 사실을 이 책은 이야기해 주고 있다. 그들의 고통을 '특별히' 여겨, '특별히' 불쌍하게 대하는 그  감정이 바로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차별의 시작이란 걸...

  그 동안 만났던 동화들 속에서 장애아들은 어찌나 착하고, 순수하며, 또 불행한지...  게다가 그 불행을 딛고 일어서는 장엄한 인간 승리의 드라마는 늘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고, '성한 사지'를 가지고 왜 이렇게 밖에 못 사냐며 자책하게 만들곤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선 장엄한 절망이 아니라 소소한 분노와 짜증, 불굴의 의지가 아니라  낙담하며 돌아서서 피시식 흘리는 웃음들이 쓰여 있다. 

                               그런데 몇 달 뒤, 장애아들을 다룬 만화책에서 인간 승리의 드라마가 내 눈물을 쏙 빼는 일이 벌어졌다. 

  '도토리의 집'.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이 만화는 중증 장애아들과 그들의 부모, 그리고 선생님들의 아픔과 고민, 절망과 상처를 날 것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런데 전혀 거부감없이 그들과 함꼐 웃고, 울면서 책을 읽었다. 책을 덮은 뒤에도 몇날 몇일을 가슴이 먹먹해지는 감동에 사로잡혔다. 

  이 한 편의 만화로 발자크가 말한  '리얼리즘의 승리'가 어떤 것인지 체험하게 되었다.  그 간 읽었던 어줍잖은 글들은 어찌 보면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는 머리만 앞섰지,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섬세한 눈과 그 아픔을 느끼는 온 몸의 세포들이 제 기능을 못했기에 벌어진 조잡한 드라마들이 아니었나 싶다. 

  타인과 다르다는 것이 절망의 시작이라면 그 다른 이들과 손 잡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희망의 시작이란 걸 알았다. 내가 그들에게 손을 내밀면, 그들이 내민 손을 잡으면 다르다는 것은 더 이상 경계가 아니게 된다는 진리, 이 책은 그것을 말해주었다. 

  '우리 누나'가 기존의 틀을 해체함으로써 차별 그 자체를 무시해 버리는 포스트 모던한 동화라면, 리얼리즘의 극치를 보여주는 '도토리의 집'은 참으로 잘 어울리는 책이다. 장르에서, 철학에서 전혀 다른 방식을 택한  이 두 권의 책은 내 속에서 하나의 깨달음으로 묶인다.

  장애인, 그들이 나와 같은 사람들이란 것. 또 비장애인인 내가 그들과 한 공동체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란 진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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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0-24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누나, 몇 해 전 읽었는데 참 좋은 책이다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