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만큼의 돈이 있어야 삶이 행복할까?

30평대 아파트 한 채 값? 유학 갈 자금? 평생을 놀고 먹을 수 있을 만큼의 돈? 그게 아니라면 무조건 많이? 사람마다 기준이 다 다르겠지. 그런데 그 기준이 있긴 한 걸까?


모두가 가난한 동네에서 특별히 더 가난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내가 가난하단 걸 전혀 모르고 자랐다. 다 자란 다음에야 ‘비교의 대상’이 되는 세상을 보고, 나 같은 애를 보고 ‘가난한 집 애’라고 하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걸 알았을 땐 이미 열등감보단 불평등에 대한 비판을 할 수 있는 나이였기 때문에 가난이 준 상처가 없다. (우리 부모님이 동네를 잘 골라 이사를 왔지. 역시 노는 물이 중요하단 걸 새삼 느낀다.)


비싼 옷을 입은 친구가 없으니 더 예쁜 옷을 사 달라고 졸라 본 적이 없고, 모두가 종이 인형을 그려 대며 놀았으니까 ‘바비 인형’을 사 달라고 떼를 써 본 기억도 없다.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인 밀가루 떡볶이는 50원어치만 사면 실컷 먹을 수 있었기에 큰언니가 가끔 100원어치를 사주면 다음날까지 배가 불렀다. 무언가가 갖고 싶어서 돈을 열망할 필요가 없는 삶이었다. 그런 내가 환장하도록 갖고 싶어서 미치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책’이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언니 따라 간 만화방에서 아줌마가 귀엽다고 주는 단팥죽을 공짜로 얻어먹으며 뒤적거리던 5원짜리 만화책은 정말 별세계였다. 네댓 살일 때어서 글자를 몰랐는데도 내용은 다 이해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앗’, ‘얏’, ‘받아랏’ 따위의 글자들을 ‘어머니, 아버지, 우리나라’보다 먼저 읽어냈다.)

 

국민학교를 들어가서 생전 처음 내 책(교과서)을 가졌을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 뒤로도 해마다 교과서를 받으면 일단 한번을 소설책 읽듯 읽었다. 새 책을 펼칠 때 느껴지는 그 두근거림과 설레임이 너무 좋았다.

옆집에 내 또래 남매가 있었는데 그 집엔 당시로는 드물게 전래동화전집이 있어, 방학이면 아침을 먹자마자 늘 그 집으로 출근을 했다. 그때 읽었던 ‘은방울전’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이미 직장생활을 하던 큰언니가 생일이나 크리스마스(교회를 다닌 덕에 크리스마스를 챙겼다) 때면 계림문고에서 나온 명작 동화를 한 권씩 사주었다. 그 때마다 이걸 다 읽으면 다음 읽을 책을 구할 때까지 얼마나 더 참아야하나 싶어서 그걸 아껴서 읽었다. 한꺼번에 읽지 않으려고 참고 또 참으면서, 줄어드는 뒷장들을 헤아려가면서... ‘백번 헤아릴 때까지 참고 읽기’, ‘고무줄 놀이 하고 와서 읽기’, ‘뒷 이야기를 열 가지 상상해보고 나서 읽기’... 그때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책을 아껴 읽으려고 써먹었던 방법들이다. (이런 얘길 내 조카들에게 하면 ‘바보 아냐?’ 그런 눈으로 쳐다본다)


늘 읽을거리가 고팠던 난 나중에 어른이 되면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사볼 수 있는 부자가 되리라고 결심했다. 다른 목표 따윈 없었다. 오로지 만화책부터 소설책, 시집 가리지 않고, 책값 들여다보지 않고 책을 살 수 있는 부자... 그게 내 돈벌이의 기준이었다.


지금 나는 세상에서 제일 부자가 됐다.

적어도 내 손으로 돈을 벌고 나서부터 나는 사고 싶은 책을 못 사 본 적이 없다. 나는 이미 내가 바라던 만큼의 돈을 벌었다. 그래서 행복하다.


세상에서 제일 부자가 된 내 생활은 이런 것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재미있는 책을 신청해 놓고 다음날 택배 아저씨가 올 때까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계속 시계만 쳐다보고 기다린다. 어떤 날은 읽던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차마 덮질 못해 몸이 아프다며 약속을 미루는 악행도 종종 저지른다. 기다리던 만화책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한달음에 서점으로 날아간다. 어떤 때는 보고 싶은 책을 사 들고 집까지 오는 사이를 못 참아서 버스정류장 옆 찻집에 들어가서 다 읽고 집에 오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그 밖의 일에 돈을 쓰는 건 별로 즐겁지가 않다.

차를 샀을 때... 인생이 달라진다던 선배 말대로 달라지긴 달라졌다. 이젠 그놈의 주차난 때문에 예전처럼 시내에 내려서 책방을 들러 하염없이 책을 들여다보던 행복을 잃어버렸다.

작은 집을 마련 했을 때... 대한민국에서 자기 이름으로 된 집을 가진 걸 모두 축하해줬지만  정작 나는 당분간은 이사 땜에 책 안 싸도 되겠다는 생각뿐이었고 그다지 감격스럽지 않았다. 


그리고 보니, 정말 내가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은 어린 시절 꿈이었던 ‘원 없이 책 사보는 돈’뿐인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분명 행복의 조건이다. 하지만 모든 돈이 모두 행복을 가져다 주진 않는다. 꿈이 없는 돈은 끈 떨어진 연처럼 이리저리 방황하면서 내 삶의 하늘을 어지럽게 날아다닐 뿐이다. 우린 모두 그 진실을 알고 있다.

요즘 자고 일어나면 몇 천만원이 올랐다고 하는 아파트 값을 보면서 미친 세상을 원망하는 서민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지만 우리 너무 서러워하지도 억울해하지도 말자. 그렇다고 그들이 늘어난 집값만큼 행복해지지는 않으니까...

 

지금 이 순간도, 만화가 양영순의 ‘천일야화’를 빨리 봐야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행복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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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1-22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딸나무님, 오랜만이죠^^ 그래요 님은 참 부자에요^^ 그리고 행복하시구요.
그런 님을 보니 저도 무지 행복해지는 느낌이에요. 마음의 부자로 살래요^^

산딸나무 2006-11-23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늘 좋은 인사를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행복하세요!

2007-01-03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산딸나무 2007-01-03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이 되신다니 기쁩니다.
 

나와 다른 존재를 이해하는 것은 참 쉽지 않다.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우리는 늘 소통에 목말라 하면서 알려 하고, 사랑하려  애쓴다. 마치 그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비장애인인 내가 장애인들을 이해하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나의 이해가 이해를 받는 사람들을 대상화하는 권력으로 해석될까봐 장애인 친구들을 만나면 늘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았다.  혹여나 나의 무지가 그들에게 상처를 줄까봐 그들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온 몸이 긴장으로 움츠러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책을 만났다.

  '우리 누나' .

  장애아들의 삶을 그려낸 동화다. 근데 전에 읽었던   동화들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도대체 까닭이 뭘까?  책장을 덮고 한참 고민했었다. 별로 특별한 이야기도 아닌데...

  바로 그것이었다.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들. 그게 이 책에서 받은 감동의 정체였다. 장애아들은 그저 착하기만 한 존재도 아니고, 순진한 천사도 아닌, 그냥 아이들일 뿐이란 사실을 이 책은 이야기해 주고 있다. 그들의 고통을 '특별히' 여겨, '특별히' 불쌍하게 대하는 그  감정이 바로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차별의 시작이란 걸...

  그 동안 만났던 동화들 속에서 장애아들은 어찌나 착하고, 순수하며, 또 불행한지...  게다가 그 불행을 딛고 일어서는 장엄한 인간 승리의 드라마는 늘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고, '성한 사지'를 가지고 왜 이렇게 밖에 못 사냐며 자책하게 만들곤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선 장엄한 절망이 아니라 소소한 분노와 짜증, 불굴의 의지가 아니라  낙담하며 돌아서서 피시식 흘리는 웃음들이 쓰여 있다. 

                               그런데 몇 달 뒤, 장애아들을 다룬 만화책에서 인간 승리의 드라마가 내 눈물을 쏙 빼는 일이 벌어졌다. 

  '도토리의 집'.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이 만화는 중증 장애아들과 그들의 부모, 그리고 선생님들의 아픔과 고민, 절망과 상처를 날 것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런데 전혀 거부감없이 그들과 함꼐 웃고, 울면서 책을 읽었다. 책을 덮은 뒤에도 몇날 몇일을 가슴이 먹먹해지는 감동에 사로잡혔다. 

  이 한 편의 만화로 발자크가 말한  '리얼리즘의 승리'가 어떤 것인지 체험하게 되었다.  그 간 읽었던 어줍잖은 글들은 어찌 보면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는 머리만 앞섰지,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섬세한 눈과 그 아픔을 느끼는 온 몸의 세포들이 제 기능을 못했기에 벌어진 조잡한 드라마들이 아니었나 싶다. 

  타인과 다르다는 것이 절망의 시작이라면 그 다른 이들과 손 잡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희망의 시작이란 걸 알았다. 내가 그들에게 손을 내밀면, 그들이 내민 손을 잡으면 다르다는 것은 더 이상 경계가 아니게 된다는 진리, 이 책은 그것을 말해주었다. 

  '우리 누나'가 기존의 틀을 해체함으로써 차별 그 자체를 무시해 버리는 포스트 모던한 동화라면, 리얼리즘의 극치를 보여주는 '도토리의 집'은 참으로 잘 어울리는 책이다. 장르에서, 철학에서 전혀 다른 방식을 택한  이 두 권의 책은 내 속에서 하나의 깨달음으로 묶인다.

  장애인, 그들이 나와 같은 사람들이란 것. 또 비장애인인 내가 그들과 한 공동체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란 진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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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0-24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누나, 몇 해 전 읽었는데 참 좋은 책이다 싶었어요.
 

"안락사, 인간복제, 국가보안법, 사형제."

"이 네 가지의 공통점은?"

"......"

"네, 바로 논술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반드시 답변을 준비해 둬야 하는 문제들이지요."

이게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제대로 된 단 한 번의 철학 토론 수업도 시사 토론 수업도 해 본 적이 없는 우리 십대들이 완벽하게 답변을 준비해야 하는 사안 가운데 하나가 '사형제'에 관한 것이라니...

나 역시 20대를 겪으면서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고 자처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회문제들에 어줍잖은 답변을 내리고 살았는지 돌아보면 얼굴이 홧홧거린다. 그러나 내가 부끄러운 거야 그걸로 그만이지만, 사형제와 같이 한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안에 대해서 그토록 쉽게 답을 내리고 살았다는게 아찔하다. 그 뿐인가? 사형제를 찬성하면 보수이고, 반대하면 진보라는 되도 않은 논리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살았으니... 참말 남들을 몰라도 스스로 지은 죄가 너무 크다.

서른 중반에 이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사형의 비인간성에 대한 인간적 성찰'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극단의 형벌].

검사 출신의 변호사인 스콧 터로는 대학시절 사형폐지론자였으나, 법조 실무를 하면서 사형존치론자로 바뀌었고 결국에는 사형제도에 결론을 내리지 못한 사형불가지론자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이 짧은 시작에서부터 이 책이 가진 장점은 가감없이 드러난다. 사형제에 대한 논의는 결코 쉽지 않으며, 알면 알수록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사안이란 것. 그래서 사형제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그 주장에는 그만큼의 진지한 무게가 실려야만 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솔직한 고백을 따라가면서 나는 사형제에 대한 나의 얄팍한 지식과 섣부른 판단에 내내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솔직함 뒤에 타인의 목숨을 논하는 사람이 기본으로 갖추어야 할 엄숙함이 고뇌의 무게만큼 무겁게 느껴지는 책이었다.

사형제에 대한 뼈아픈  성찰은 [교도관 나오키]로 이어진다. 고다 마모라의 전작인 [여검시관 히카루]를 아주 재미있게 봤던 터라 주저없이 들었던 책인데 기대 이상의 감동을 받았다. 4권까지  나온 상태인데 지금까지의 이야기만으로도 사형제에 대한 고민들을 충분히 던져 주고 있다.    

사형은 사형수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가족과  피해자의 가족들. 게다가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삶까지도 연관된 문제란 시각이 이 책의 기본을 이루고 있다. 그 어떤 이라 할지라도 사연없는 삶이 어디 있고, 의미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감상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감정을 실어낸 탁월한 작품이다.

이 가을에 읽기에는 좀 무거운 이야기들이란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세상에 무겁지 않은 책이 어디 있나. 단지 뒤따르는 고민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가, 가벼운가의 문제겠지. 사형제에 대한 고민이 무거운 분들께 가볍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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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8 0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야학에서 같이 머리 맞대고 공부하던 언니가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우리 밥이나 한 끼 같이 먹어요.”

   “언니두, 선생님은 무슨......”

 

  언니는 초등학교 4학년까지 다니다 남의 집에 식모살이를 가는 바람에 학교를 더 이상 다니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야학에서 공부해서 초등검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중등과정을 다니려고 다른 야학으로 옮기면서 섭섭하다고 전화를 해 온 거였지요.

 

  언니랑 칼국수 한 그릇 먹고 술집에 갔어요. IMF 메뉴라고 맥주 세 병에다 안주를 열 가지 준다고 적혀 있더군요. ‘새우깡, 멸치, 이딴 거 열 가지겠지’하면서도 싸다며 그걸 시켰어요. 근데 기대 밖으로 상에 벼라별 게 다 올라 오는 거예요. 오징어 무침, 마른 오징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꽁치 한마리가 깻잎 위에다 고분하게 뉘어져 왔어요.

 

  우리는 푸짐한 상을 보면서 기분이 마냥 좋아져 젓가락을 쉬지 않고 놀렸어요. 언니도 생선을 좋아한다면서 꽁치살을 부지런히 뜯었어요. 그러다가 언니가 갑자기 깻잎으로 꽁치 눈을 덮는 겁니다.

  “꽁치 눈을 보면 왠지 미안해서 양심이 찔리거든... 그래도 이렇게 덮어 놓으면 기분이 덜해서.”

 

  헤헤 웃으며 다시 열심히 젓가락을 움직이는 언니를 보면서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꽁치 한마리 몸 뜯는데도 이렇게 양심이 솟는 사람들인데. 이천 삼천 만원짜리 과외를 하다 들켜도 ‘재수가 없어서’라고 당당하던 사람들 이야기를 신문에서 본 저녁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올려다 본 하늘에 달이 참 밝았습니다.

   ‘언니, 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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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네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어떤 광고 장면에서 ‘마이 어드레스‘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순간, 광고에서 해석 없이 나올 영어 단어 같으면 아주 쉬운 걸텐데, 무슨 뜻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빨래를 널고 있는 친구를 불러 “야, ’마이 어드레스‘가 뭐꼬?”하고 물었더니, 친구는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갑자기 널던 빨래를 제쳐두고는 내 손을 꼭 잡으면서 되물었다. “정옥아, 니 농담 했는 거제?”

  아, 그때 난 속으로 ‘어드레스’만 물어 볼 걸 싶었다. ‘마이’는 아는데......


  친한 사람들은 내 영어 실력에 대해서 의문을 품을 때가 많다. 저러고도 대학을 졸업했다니... 사람들이 왜 영어 공부를 안 했느냐고 물을 때마다, “중학교 일 학년 때 영어공부 해 본 뒤로는 영어 몰라도 삶이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아서. 그 시간에 책이나 읽지.”라고 대답하는데, 난 진심인데 잘 믿어 주지 않는다.

 

  근데, 그렇게 영어를 무시하고 살던 내가 영어 때문에 사는 게 힘들어지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마이 어드레스‘ 사건 뿐 아니라, 영어를 모르니까 의사소통이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아서 영어공부를 할까? 고민 중이었다.

 

  그런데 지난 번 지역에서 함께 활동하는 희망터의 호프 때였다. 여성장애인연대의 자리에 합석을 해서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는데, 청각 장애우 한 분이 앉아 계셨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얘기를 하는데, 다른 분들은 수화를 조금이나마 할 수 있어서 내 얘기를 전해 주기도 하시고, 나랑 얘기도 했다. 그 순간에, 수화를 배워 둘 걸 싶었다. 진보적이란 딱지를 붙이고 있으니 그 쯤은 해야지 않겠느냐는 따위가 아니었다. 내가 말 하는 한 순간 한 순간이 또다른 누군가에게 소외를 느끼게 한다면,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 누군가에게 소외당한다면, 그 상황이 너무 부끄러웠던 까닭이다.

 

  언어가 의사소통의 도구라면 사실, 영어는 몰라도 일상적이지 않으니까 상관없지만 수화는 어떤 이들에게는 일상적인 말인데...

 

  돌아와서, 내가 지금 시간을 들인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어는 모르면 부끄럽고, 수화는 할 줄 몰라도 전혀 문제없는 세상을 전혀 부끄러워 하지 않았던 내가 너무 부끄러워서 잠이 안 왔다. 나를 찔리게 하는 것들이 있다면 그 찔림을 덮어 버리지 않는 것이 인간다움의 기본일 텐데.

 

  돌아보게 된다. 내가 당연히 누리는 모든 것들이 누군가를 억압한 결과가 아닌지, 숨쉬고 걷고, 말하고, 먹고, 살아가는 모든 것이 행여나 누구를 소외시키는 행위가 아닌지...

 

  입을 열어 누군가가 자신의 권리를 말하기 전에, 앞서서 입을 열 용기를 주는 것이 진보적 삶을 선택한 사람들의 자세라면, 나는 이미 누군가가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는 권리에서 조차도 제품으로 나와 있는 것만 관심 가지는 자본주의적 인간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어서 찔리고 또 찔린다.

 

  그래서 고백한다. 나는 여성주의자가 되려고 하지만 그 이름을 얻기에는 너무도 부끄러운 사람이라고. 하지만 부끄럽지 않아도 되게 살려고 노력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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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7-05-12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화는 배우고 싶었는데, 잘 안되는 군요. 대학에서 배우고 있는 전공은 영어가 어느정도 필요한 것이라서, 영어기초 잡는데만 시간 다 가는 군요.

잘 읽고 갑니다.^^;

산딸나무 2007-05-13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께 왜 영어 공부를 해야 하는 지 물었습니다.
그때 그 분이 '영어 못하고도 대학 갈 줄 아느냐?'고 하신 말씀에
영어 공부를 손 놓았습니다.
헌데 그 분이 영어란 새로운 문화를 이해하고 즐기는 통로라고 설명해주셨으면
영어공부를 했을 지도 모르겠네요.
영어공부도 재미있게, 그리고 수화도 시간내서 배우시길 바래요^^
어차피 모든 공부는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하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