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 인간복제, 국가보안법, 사형제."

"이 네 가지의 공통점은?"

"......"

"네, 바로 논술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반드시 답변을 준비해 둬야 하는 문제들이지요."

이게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제대로 된 단 한 번의 철학 토론 수업도 시사 토론 수업도 해 본 적이 없는 우리 십대들이 완벽하게 답변을 준비해야 하는 사안 가운데 하나가 '사형제'에 관한 것이라니...

나 역시 20대를 겪으면서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고 자처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회문제들에 어줍잖은 답변을 내리고 살았는지 돌아보면 얼굴이 홧홧거린다. 그러나 내가 부끄러운 거야 그걸로 그만이지만, 사형제와 같이 한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안에 대해서 그토록 쉽게 답을 내리고 살았다는게 아찔하다. 그 뿐인가? 사형제를 찬성하면 보수이고, 반대하면 진보라는 되도 않은 논리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살았으니... 참말 남들을 몰라도 스스로 지은 죄가 너무 크다.

서른 중반에 이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사형의 비인간성에 대한 인간적 성찰'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극단의 형벌].

검사 출신의 변호사인 스콧 터로는 대학시절 사형폐지론자였으나, 법조 실무를 하면서 사형존치론자로 바뀌었고 결국에는 사형제도에 결론을 내리지 못한 사형불가지론자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이 짧은 시작에서부터 이 책이 가진 장점은 가감없이 드러난다. 사형제에 대한 논의는 결코 쉽지 않으며, 알면 알수록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사안이란 것. 그래서 사형제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그 주장에는 그만큼의 진지한 무게가 실려야만 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솔직한 고백을 따라가면서 나는 사형제에 대한 나의 얄팍한 지식과 섣부른 판단에 내내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솔직함 뒤에 타인의 목숨을 논하는 사람이 기본으로 갖추어야 할 엄숙함이 고뇌의 무게만큼 무겁게 느껴지는 책이었다.

사형제에 대한 뼈아픈  성찰은 [교도관 나오키]로 이어진다. 고다 마모라의 전작인 [여검시관 히카루]를 아주 재미있게 봤던 터라 주저없이 들었던 책인데 기대 이상의 감동을 받았다. 4권까지  나온 상태인데 지금까지의 이야기만으로도 사형제에 대한 고민들을 충분히 던져 주고 있다.    

사형은 사형수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가족과  피해자의 가족들. 게다가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삶까지도 연관된 문제란 시각이 이 책의 기본을 이루고 있다. 그 어떤 이라 할지라도 사연없는 삶이 어디 있고, 의미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감상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감정을 실어낸 탁월한 작품이다.

이 가을에 읽기에는 좀 무거운 이야기들이란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세상에 무겁지 않은 책이 어디 있나. 단지 뒤따르는 고민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가, 가벼운가의 문제겠지. 사형제에 대한 고민이 무거운 분들께 가볍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들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6-10-18 0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