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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평점 :
나는 가끔 나의 탄생에 대해 엉뚱한 상상을 한다. 그 중 하나는 지구 저 편에 있는 우리시대에는 ‘작가’라고 불리 우는 대상이 나의 이야기를 쓰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고, 내가 지금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특히,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이 너무 많을 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아무것도 예견할 수 없지만, 주어진 것들과 당당히 맞서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될 때, 내 삶에 내비게이션이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돌이켜보면 그 어떤 선택도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 그런 엉뚱한 상상을 하며 지구 저 편에 있는 나를 창조시킨 대상을 생각하며 위안하고는 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덮었을 때, 정이현이라는 작가가 탄생시킨 오은수라는 인물이 이 도시 어디쯤, 아니 저 우주 어디에선가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정이현의 창조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기도 하고, 오은수라는 인물에 대해, 아니 그녀의 삶에 대해 많은 부분을 공감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고민들, 의문들, 욕구들을 솔직하면서도 담백하게, 적당히 노골적으로 적당히 포장하여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이름이 아닌, 오은수의 이름으로 이 책이 기억되길 바란다는 작가의 마음을 알 것만 같다.
32년을 살았던, 20년을 살았던, 여자로 살았던, 남자로 살았던, 살아왔던 흔적이 있기에 살아가야 할 미래가 있기에 우리 개인은 불안하기만하다. 그 불안감의 근원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모양새가 완벽히 같지는 않겠지만, 서로를 갈구하는 모습을 통해, 때로는 우정으로, 때로는 사랑으로, 때로는 모성애로, 때로는 부성애로, 때로는 형제애로, 승화된 모습을 통해, 그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즉시하게 될 때, 나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쉬게 되는 것처럼, 이 책의 등장인물을 통해 짜릿한 쾌감과 씁쓸한 위안을 맛본다. 그 애매모호하고 모순된 것들로 가득한 것들을 대변하는 것이야말로, ‘달콤한 나의 도시’가 아닐까? 그래서 은수는 원한다.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는 제도의 울타리를.
은수는 그것이 신기루처럼 살아질 때, 애초부터 불가능한 소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 사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알아도 몰라도 그것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의 모습이다. 나를 투사시킨 결과이다. 태오와 영수를 향했던 그녀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모르는 것처럼, 지난 날 누군가를 향했던 혹은 지금 누군가를 향하는, 나의 감정을 나는 모른다. “사랑해.”라는 말을 내 뱉는 순간, 그것은 ‘사랑’으로 정의되어버리지만, 애초부터 ‘사랑’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만드는 것도,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것이 내가 ‘사랑’을 추구하는 이유하는 이유가 아닐까?
나는 이 책을 통해, 내가 추구하는 많은 것들의 속성을 엿보았다. ‘엿보기’는 ‘엿보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소설을 통해 ‘엿보기’가 ‘들여다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녀의 책을 통해, 또 다른 그녀를 엿보았지만, 결국 나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사실, 눈이 밖을 향하는지라 내 안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결코 많지 않았다고 변명을 하고 싶다. 그것이 변명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기에, 이 책을 손에 쥐고 있었던 시간들이 더 값지게 느껴진다. 하지만 두렵다. 언젠가. 은수처럼 내 인생의 내비게이션이 필요한 날이 올 것 같아서, 지금의 사랑을 등지고, 또 다른 사랑을 찾아야 하는 날이 올 것 같아서, 그 모든 것이 내 의지와는 달리, 나를 탄생시킨 저 먼 곳 어딘가에 존재할 지도 모르는 작가의 의도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