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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진 시노다 볼린 지음, 조주현 옮김 / 또하나의문화 / 1992년 12월
평점 :
절판
절대는 버리고 상대는 취하다.
어떤날. 하늘이 흐리고 비가 오는 날이면... 꼭 비가 오지 않아도 좋다. 나뭇잎으로 베개를 삼고, 매미 소리를 자장가로 듣으며 따사로운 햇살을 피해 머나먼 바다를 생각하며 나무 그늘에 누웠을 때도 괜찮다. 어떤 날이든 상관이 없다. 책이 나를 미치게 하지 못하는 날이면...
오늘도 그런 날 중에 하나입니다. 책은 읽고 싶지만 쉬이 나아가지가 않네요. 내가 잠을 안잘려고 두 눈을 부럽뜨도 눈꺼풀은 금방 잠기는데... 내가 책을 읽을려고 억지로 책장을 넘겨도 책이 넘어가지 않고 풀밭에 넘어지듯 넘어지니... 글 읽기를 포기하고 여기에 내 서투른 변명을 올려볼까 합니다. 하지만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고 무조건, 책 읽기를 포기하고 서투른 글쓰기를 하는 습관이 걸려들지 않을까라는. 혹시라도 내가, 내 자만심에 취해서 서투른 글쓰기로 당신을 유혹하려고 하면 나를 잡아 주세요.
오늘, 어둠 속을 뚫고 내 귀밑머리로 달려오는 것은 비소리입니다. 비가 온다고 창문을 꼭 닫 듯이, 내 서투른 글쓰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마음의 문을 닫지 마시고 끝까지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참 난 그의 책을 읽지 않으면서 당신에게 내 글을 읽어 달라고 하니, 모순입니다. 하지만 내가 내 스스로 결정 했듯이, 당신도 당신 스스로 결정을 하시면 됩니다. 물론 그 어떠한 선택이든 당신이 후회가 없으시다면 옳은 것입니다. 그럼 서투른 글쓰기를 해 보겠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혹은 서양 사람들 속에 사는!
지은이는 융의 학설을 상당히 지지한다고 말합니다. "나는 융의 심리학을 받아들이는 정신과 의사로서(9쪽)" 그를 드러낸다. 융의 알다시피 프로이드의 제자이이기도 하지만 리비도와 관련된 관점에서 의해서는 상당한 견해차를 보이면서 자기만의 학설을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융의 시각은 여성들이 강력한 내부의 힘들 혹은 원형 archetypes들에 의해 좌우된다고 보는 것인데, 이 원형들은 나는 그리스의 여신들로 의인화시켜 보았다. 반면에 여성주의 시각은 외부의 힘들, 즉 사회가 여성에게 제시하는 표준 여성상 stereotypes들에 의해 여성들이 좌우된다고 보는 것인데, 나는 이 외부의 힘들이 어떤 여신 유형은 억압하고 어떤 유형은 밀어준다고 보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여성은 이 두 힘(안으로는 여신 원형에 의해 움직이고 밖으로는 표준 여성상의 요구에 의해 움직이는) 사이에 끼여 있다고 볼 수가 있다.(20쪽)"
융에 좀 더... 알고 싶다면
지은이는 내부와 외부적인 힘들 동시에 말하면서, 서로간의 충돌 내지 조화를 통해 드러나는 모습을 그리스의 여신들로 의인화시켜 몇 가지의 표준안을 내놓습니다. 이러한 지은이의 시도가 지금까지 공고히 구축되어온 세계를 깨고 나온다는 점입니다. 즉 능력 있고 사회에서 무슨 일인가를 지향하는 여성을 프로이드는 '남성성 콤플렉스' masculinity complex를 갖고 있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고 폄합니다.(53쪽) 이는 여성들이 남성의 이데올로기나 가부장적인 틀에 의해 구조화됨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지은이는 "더 이상 프로이드가 진단한 것처럼 남성성 콤플렉스라고 생각하여 괴로워할 필요도 없고, 융이 말한 것첨 태도가 남성적이고 따라서 남성적 요소 animus를 가지고 있다고 말을 들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54쪽)" 왜냐하면 "아테나나 아르테미스에 더 가까운 여성이 자신의 목표 지향적인 태도"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표현이든 내가 하면 예술이고 네가 하면 외설이 되어버리는 이중적 구조와 편견이 가득 쌓여져 있는 검은 장막을 지은이가 거두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여성들만의 여성심리를 통해 그들을 이해하는 걸음마를 시작한 것입니다. 이는 이 책이 지니는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의 내용이 이 책에 대한 찬가라면... 다음은 악평을 조금 하겠습니다. 지은이도 분명히 알고 있듯이 그의 연구는 최종이 아닌 시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닫힌 사고로써 내 애기가 무조건 옳다는 씩의 표현을 과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을 아주 전략적으로(-의도하지 않았든)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안에 있는 여신이 주는 장점과 약점이 있다. 이 약점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우선 나 자신이 그런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후,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 내 안에 그런 경향이 있고 나를 통해서 그런 경향을 충족시키려는 여신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는 결코 그 여신이 지배하는 유형의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21쪽)"
지은이는 한 면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여성이 지는 여신들은 장점과 약점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놓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맹목적으로 "우선 나 자신이 그런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합니다. 이런 인정이 없이는 어떠한 유형의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그런 유형이 어떠한 것인지 모른체, 만가지에 하나일 뿐인 시선을 따라가야 합니다.
패티 허스트 patty Hearst양 유괴 사건을 신문에 읽은 지은이는 지옥의 신이 하데즈에게 유괴당해서 강간당하고 볼모로 잡혀 있던 페르세포네의 신화를 떠올립니다. 페르세포네의 신화에 포장되어집니다. 하지만 긴가민가하는 우리에게 확실한 논거를 제시합니다. 그것은 실증적 실험과 권위에 의한 후광효과입니다. "학회에서의 반응은 신화를 통한 여성 심리와 해석이 임상학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이며, 성격 유형과 정신질환 증세들에 대한 통찰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라 합니다. "원형은 또한 씨앗에 포함돼 있는 청사진과 가타. 씨앗으로부터의 성장(청사진의 구체화)은 흙과 기후 조건, 영양 상태, 화분의 깊이 등에 다라 달라진다.(38쪽)"고 정의합니다.
한 사람이 어떻게 사회와 사람 속에서 관계를 맺으며, 정체성을 획득하는가 대한 진지한 탐구 대신에 구조적 틀에 모든 것을 끼어 넣습니다. 앞선 심리학자들이 남성적 이데올로기로 여성성을 가두었다면 지은이는 몇 개의 시선과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를 주지 않은체 원형이라는 틀에 여성성을 가두어버립니다. 즉 신은 우리가 창조하거나 그려낸 인물이 아닌 우리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고 합니다. 수천년이 지난 지금에서 그리스 로마신들은 변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아울러 그의 전제는 "원형"이라는 의미를 벗어나면 이론적 근거가 없어집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세 처녀 여신은, 사냥과 달의 수호신인 아르테미스, 지혜와 공예의 수호신인 아테나, 그리고 신전과 가정의 수호신인 헤스티아다. 이 세 여신들이 대표하는 성격은 여성 심리 중에서 자율적이고 활동적이면서 관계 지향적이지 않는 부분들이다. 이 부분들 중에, 외향적이고 업적 지향적인 원형은 아르테미스와 아테나이고 내부 지향적인 원형이 헤스티아다.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싶어하고, 이익을 추구하며, 다른 이들과 경쟁하고, 글과 예술의 형식을 이용하여 자신을 표현하며, 정돈된 삶을 살고, 자신의 삶을 관조하는 그런 삶을 원하는 원형이 바로 이 세 여신이다.(47쪽)"
내가 읽은 이 작품은 절대적 진리는 아닙니다. 이러한 틀로 사람을 가두게 되면, 그를 볼 수 있는 만가지의 눈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참고서이지 지난 시절에 우리를 가두고 있던 남성적 이데올로기나 가부장적 폭력에서 여성성의 정체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충분히 둘 수 있습니다. 아울러 더 많은 논의를 통해 더 깊은 이야기를 이끌어냄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열린 시선으로!!
덧붙임: 위의 논의는 지은이의 가치관에 대한 평입니다. 지은이는 위와같은(-제가 본) 시선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글쓰기는 상징적 내지 같다 붙이기라는 비판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임상학적 근거가 있으니 쉽게 어설픈 비판만 할 수는 없는 모순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 읽어야 될지 말아야 될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되어 책 내용을 전부 읽는다면 좀 더 보충하여, 서평을 올리겠습니다. 부족한 점 널리 양해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