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서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번 뜬 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虛寂에
오직 아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ㅎ게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沙丘에 悔恨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요즘들어 느끼는 삶의 무게가 시적 화자와 내가 동일인물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하지만 그와 내가 다른 점은 난, 잠을 깨고 나면 항상 내 방이지만 그는 사막 한가운데 있다는 점입니다. 휴가철이라 모두들, 바다로 뫼로 떠날 궁리를 합니다. 내 친구들도 나에게 전화를 해서 놀러가자고 합니다. 하지만 난 아직도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는데... 바다로 가야 하는가? 차라리 사막을 횡단하자고 하였으면 얼릉 개나리 봇짐을 싸지 않았을까?라는 합리화를 합니다. 어제 뉴스에서 속초와 밀양이 올들어 가장 더웠다고 합니다. 난 더위와 맞써 싸울려고 하지 않고, 문명의 이기 밑에서 더위를 조소합니다. 어제와 다름이 없는 오늘.. 피곤에 지쳐 깨어나는 내 삶. 밀양을 벗어나 아라비아 사막으로 갈까? 혹은 문명의 이기를 벗어나 알몸으로 더위와 맞써 싸울까? 난 아직도 어쭙잖은 회의에서 빠져나올 궁리만 찾고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의 깊이가 다름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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