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지셔닝 - 잭 트라우트와 알 리스의 마케팅 바이블
잭 트라우트 & 알 리스 지음, 안진환 옮김 / 을유문화사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포지셔닝이라는 말이 한동안 떠돈 적이 있다. 어쩌면 아직도 유용한 말이 아닌가 생각이 되어질 만큼 포지셔닝의 함축적 의미는 상당히 크다. 이와 비슷한 말을 축구나 야구 등에서 종종 듣곤 했는데... 영어가 짧은 나는 처음에 알지 못했다. 그건 볼링을 치면서 '에브리지'가 얼마냐고 할 때에 눈이 멀뚱멀뚱한 것과 같았다. 축구에서 야구에서 "네 포지션은 뭐냐"했을 때도 나는 눈을 말똥말똥 그렸을 뿐이다. 이렇게 내 가까이에 있지만 실상은, 마케팅을 통해서 나는 접근해갔다.

"포지셔닝은 상품에 대해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잠개 고객의 마인드에 어떤 행동을 가하는 것이다. 즉 잠재 고객의 마인드에 해당 상품의 위치를 잡아주는 것이다.(19쪽)"

포지셔닝은 잠재 고객의 마인에 자리를 잡는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우선'적으로 '단순화'하여 '오래도록' 잡혀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전략이 필요하고 다양한 기술이 응용되기도 한다. 나는 티비를 크면 나오는 광고를 그냥 흘러 보내지만, 그네들은 수많은 기획회의를 하고 포지셔닝이라는 말은 백만번은 되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도 책상에 앉아 회의를 하고 있을 것이다.

지은이는 포지셔닝을 성공하기 위해서 먼저 개념을 정의하고, 몇 가지 전략을 보여준다. 다음으로는 포지셔닝을 통해 거듭난 보기를 통해 그의 말에 확증을 가하는 포지셔닝을 취하고 있다.

전략

먼저 생소한 포지셔닝의 개념을 정리해 준 다음에, 3장부터 13장까지 포지셔닝의 전략을 가르켜 준다. 그가 중점을 두는 것은 무엇보다 '일등'이다. 세계는 2등을 기억하지 않는다, 또한 단순화를 통해 오래도록 남겨지길 바란다. 라인의 확장이나 무임 승차, 의미 없는 이름의 나열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논의에는 항상 실제 회사가 따라 나오기에, 증거물로 채택하기에 충분하다.14장부터 20장까지는 하나의 실체를 들어 어떻게 포지셔닝화하여 거듭났는지를 보여준다. 굳히기 전략이다. 그의 글쓰기는 포지셔닝을 통한 글쓰기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포지셔닝의 기본접근은,

"그것은 뭔가 다르고 원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게 아니다. 이미 마인드에 들어 있는 내용을 조작하고, 기존의 연결고리를 다시 엮어주는 것이다(24쪽)"

"되도록 오랜 기간 기억에 남을 수 있으려면 좀 더 단순화해야 한다(27쪽)"

"기대한 대로 보게 된다(51쪽)"

눈 가리고 콜라와 펩시를 비교했을 때, 펩시에 손을 들었지만 주머니는 콜라를 담았다. 즉 "맛 또한 기대한 대로 느끼는 것이다(52쪽)"라는 지은이의 명제는 정확한 표현이다. 이는 동물의 각인과 닮은
꼴이 있는데-'첫번째', 처음 인식한 것을 사실이라 규정화하고, 다음에 들어오는 어떠한 이론도 이 기준에 의해 검증되어진다. 하지만 처음 것이 진리인지는 더 규명해야 하지만 쉽게 따지지는 않는다. 이미 '처음'이라는 잇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이것이 개인적 취향인지 사회문화적 취향인지 더 고찰해보아야 할 문제이지만, 지금은 보여지는 상은 분명하다.) 즉 "1등"에 대한 선점으로 통해 "단순화"하는 포지셔닝을 연출해야 한다.

재포지셔닝

잠재 고객의 마인드. 즉 아직 인식하지 못하는 이에게, 혹은 고객의 잠재의식 속에 들어가 인식을 한 다음, 최종적으로는 구매로 이어지게 해야한다. 그렇다면 문제가 하나 남는다. 포지셔닝은 1차로 끝나는가?(술자리가 아니기에 1차로 끝내야 한다고? 서론은 길면 좋지 않다고?)

지은이는 포지셔닝을 만능화하여, 모든 것은 포지셔닝에 초첨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화 구축을 위한 포지셔닝은 아마도 삼성의 광고나 아파트 건설사의 광고에서 많은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은 삼성이라는 브랜드의 인간미를 강조하기 위해 나서고, 아파트 건설사들은 보이는 것 보다 보여지기를 원하는 장면을 담아 화장품에 나온 여자 얼굴처럼, 이 속에 살면 광고처럼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로써 모든 포지셔닝은 끝났는가? 단연코 그렇지 않다.

피드백을 통한 재포지셔닝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무리 삼성이 학교가 없는 곳에 학교를 짓고, 인생이 길다고 하여도 그들 최소주주가 벌인 최대의 만행을 알고 있으며, 아파트 그곳에 사는 것은 광고처럼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추상적 브랜드로 통해 아파트의 거품을 부풀린다는 것 쯤은 이제는 누구나 다 안다. 즉 지은이의 한계는 피드백에 의한 재포지셔닝과의 관계를 설정하지 않은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포지셔닝은 고객의 잠재 속에 계속 인식되어지기를 바라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이런 면에서 지은이가 말하는 관계는 '한번 그림을 그리고 다 되었다'는 식이다. 새우깡의 광고는 잊혀질 때 쯤이면 주기적으로 돌아온다. 즉 우리의 기억관계와 상관관계를 광고에 의한 포지셔닝에 쓴 적절한 관계라 생각한다. 이처럼 포지셔닝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총체적인 균형 감각 속에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다양한 관계

지은이의 "유효하다. 유효하지 않다"는 중요하지 않다. 모든 변수들을 이해하고, 적절하게 카드를 내어놓는 전략이 필요하다. 자칫 지은이의 말에 따라가다보면 벽에 부딪힐 수 있다. 즉 그의 말만 쫓다가, 그 다음은 이라는 벽에 부딪히는 것이다. 지은이가 어떻게 생각하던 그가 말한 모든 전략을 내 것으로 소화해 적절하게, 구사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지은이는 너무 잘난체를 하며, 독선으로 흐르지 않았나 생각이 된다. 또한 글의 포지셔닝에 대한 명확한 개념만큼 다양하고 적절한 전략이 녹아 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이는 『마케팅 불변의 법칙』에서 보여준 법칙화의 과정가는 많은 차이가 난다.

또하나 지은이의 '하나의 법칙'을 절대 진리인양 몰고간다. 그의 논리는 타당하며, 그의 분석이 탁월하다 할지라도, 고정적인 것이 없는 세계에서 발을 딛는 불변의 법칙은 닫히게 마련이다. 양비론적 자세를 취해 스스로 빠져나갈 구멍(교토삼굴)을 마련하지 않고, 절벽 끝에서 배수진을 치고 덤벼든다. 이렇게 싸납게 덤비는 기세에서 그에게 여유를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 그의 논의가 다 맞다할지라도 영구적 집권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이는 그의 경험적 밑천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즉 그가 생각하는 총체적 세계가 인지하지 못한 세계와도 동일하다면 진리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독단이며 독선으로 기울 가능성이 있다.


포지셔닝을 일고 이에 관심이 있다면 강준만의 『언론플레이』에서 언론과의 효과적인 싸움을 통한 우위점유,  『어? 스마일 인 더 마인드』를 통한 단순하면서도 재치를 통한 인식, 『모략』을 보고 전략에 따른 변수를 적절하게 구사하는 법을 더 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분명 한 세대 앞서 '포지셔닝'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왔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가 말했듯이 광고와 이미지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수많은 변종과 변이 속에서, 자리잡기 위해서는 사회문화의 총체적 인식이 필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태백산맥은 없다 - 이 땅의 산줄기는 백두대간이다
조석필 지음 / 산악문화 / 1997년 4월
평점 :
품절


내 학창시절

학교를 다닐 때에, 지리 공부를 워낙 못하여 산맥 하나 정도밖에 외우지 못했다. 태백산맥이라고. 외울 시기를 놓치고 나니, 영영 다시 마주서기가 힘들었다. 선생님이 칠판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말씀을 하셔도 나는 창밖을 보기 일쑤였다. 수학시간에 공식을 모르고 다음 장을 공부하는 셈이니 오죽 답답하였으랴. 지금도 산맥은 '태백산맥' 밖에 알지 못한다. 하지만 1대간 1정간 13정맥은 어렴풋이 듣으며 컸다.

1대간은 흔히 '백두대간'이라 불리는 호랑이의 등줄기 격, 백두(白頭山)에서 지리(智異山)까지이다. 몇 해 앞에는 구두닦이 하는 아버지가 짬짬이 대간을 종주하였다고 신문에 나오기도 했다.

한 10년 전 부터 태백산맥과 백두대간이 혼용되어 쓰여지고 있다.(내가 접한 기억으로...) 어깨너머로 들은 '백두대간'만 알 뿐이지 정간이나 정맥에 대해서는 나 또한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 겨울이 되면 의문점이 하나 생겼다. 우리나라에서 춥다고 소문난 곳은 철원이나  인제, 원통, 태백 등 북산간이 아닌  봉화(奉化)라는 곳였다. 위도 상으로 볼 때에는 한참 아래인데 왜 이리 추운것일까라는 의문. 두번째는 새재, 새재라 불리는 문경새재가 널리 알려지게 된 이유. 문경에서 전략적 관광지로 만들고 홍보를 한 것도 있겠지만 그에 앞서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았을까? 이런 몇 몇 의문은 대동여지도에 까지 흘러들어갔다.

여행속에 만난 의문

지난 가을에 포항, 구미, 청송, 보은 등을 걷쳐 문경 쪽으로 여행을 간적이 있다. 문경은 새재로도 유명하고 백두대간이 지나가기에 산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걷쳐가는 길목이다. 나는 주흘산과 새재를 보고 돌아나오다 박물관에 잠시 들렀다. 그때 보고 말았다. 처음으로 대동여지도를 보았던 것이다. 2/3 크기로 축소 한 것이라고 하지만 내 키를 훌쩍 넘기는 크기다. 대동여지도에는 백두대간이 보이고 수많은 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서 있었다.

비로소, 문경새재가 알려질 만한 이유, 봉화가 추운 이유를 나름대로 유추할 수 있었다. 선 몇 개 그린 산맥을 보고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것을 나름대로 찾아가곤 했다. 무진장(무주.진안.장수)이 왜 무진장인지. 육십령 고개가 나올 만한 지리적 근거가 무엇인지 나는 하나씩 더듬어 보았다.(물론 과학적 사실이 아닌 직관적 추리일 뿐이다) 이 모든 해답은 대동여지도를 보면 알 수가 있다.

 05, 10, 12일 문경 주흘산을 내려오다.

 05, 10, 12일 문경 주흘산을 내려오다."에서
주흘산을 내려오니, 어제처럼 한 무리의 아이들이 장원급제의 길을 따라 내려가고 있다. 아마도 여기가 수학여행에서 찍고 넘어가야 할 곳인가 보다. 제1관문에서 2관문으로 이어지는 길은 단순한, 길인데 문경에서 의미를 참 잘 부여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무엇을 보고 가란 말이냐라는 생각과 왜 이 길이 영남의 관문이 될까라는 반대되는 생각이 일어난 새재다. 산을 5시간 정도 타고 내려오니, 배도 고프고 그냥 차로 돌아가고 싶은데… 문경새재 박물관이 있지 않은가. 나가 버리면 다시 돈을 내어야 하고, 언제 올까라는 생각에 들어섰다. 솔직히 박물관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인데…

문경새재 박물관에 들어서니, 대동여지도가 딱 버티고 서 있다. 실물의 2/3로 축소한 것이 들어서있다. 우와, 이렇게 큰 지도였는지 몰랐다. 나는 내가 서 있는 곳과 우리 동네와 지리산, 보길도, 매물도 등을 찾아 본다. 산을 오르내리면서 조금씩 느끼는 것인데, 김정호라는 이에 대한 놀라움과 존경심이다. 산을 오르지 않았을 때에는 그냥 지도를 넘겼는데, 산을 오르고 나서는 대동여지도가 다시 보여진다. 나는 한 동안 대동여지도 앞에 서 있다.

관람실로 올라가 이리저리 구경을 한다. 한참을 돌아보다, 신기한 것을 보았다. 그것은 조선의 옛길이다. 동래에서, 충무에서, 동해 어딘가에서 한양가는 길이 조그마한 불빛 따라 줄을 선다. 그곳에는 지리산 저편은 없었다. 즉 전라도의 소외가 드러나 있고, 왜 문경새재인가에 대한 의문점도 나름대로 하나씩 풀려간다. 조선 인재의 반이 영남에서 나왔고, 그 가운데 반은 선산에서 나왔다는 말은… 참 이중적이다. 전라도를 제외한 조선 인재의 반이라 해야함이 옳지 않을까? 영남 인재의 반이 선산에서 나왔다는 말은 정확할지 모르나,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이라는 말은 옳지가 못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북쪽에서 한양으로 이어지는 옛길도 아니 본 듯 하다.

새재를 둘러보고, 철길자전거가 있는 진남역을 둘러보았다. 가기 전에는 뭐 볼 것이 있는가라는 생각에 가 보면 우와 우와~~, 이렇듯 기대와 실망은 반비례 관계인가 보다.

 대동여지도에 관심을 가지게 되다 보니, 자연스레 [태백산맥은 없다]라는 이 책에 까지 손이 오게 되었다. 지은이는 무슨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줄까? 나는 한장 씩 책장을 넘긴다.

백두대간은 우리곁에 있다.

지은이는 백두대간을 밀어내고 '고토 분지로' 의해, 어떻게 산맥으로 자리잡았는가를 알려준다. 산맥이 들어서기 앞서까지 우리나라는 산경표라는 지도가 있었으며, 그 뒤에는 이후형이라는 사람에 의해 다시 산맥으로 찾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의 재미나는 부분은 '제2장으로 산의 원리 물의 원리'라는 부분인데, 산과 강의 원리를 자세히 설명해 준다. 그렇기 때문에 강을 보고도 산을 읽을 수가 있다. 산에서 어떻게 하면 길을 잃지 않고 내려서는지에 대해서도 가르쳐준다. 또한 '제4장 한국학의 바른 잣대 산경표'에서는 동학혁명이 왜 전라도를 넘지 못한가에 대해서도 산을 통해 들려준다. '그림30'을(155쪽) 통해 보여주는 동학명명의 2차 봉기는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고 보여진다.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이 탄금대에 배수진을 친 것을 두고 뒤에 역사학자들은 큰 실수였다고 한다. 전략적 요충지를 버리고, 배수진으로 적을 막아서기에는 그들의 무기를, 무리를 제대로 읽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전략적 요충지는 일당백의 자세를 지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곳을 알기 위해서는 산맥이 아닌 산경표 등으로 읽어야 한다. 또한 바람은 산을 너머 오면서 기후에도 영향을 미치고, 사람을 건너거나 넘지 못하게 하는 등 다양하게 우리곁에 있다. '나라의 헌법에도 문제가 있다(224쪽)'며 들려주는 이야기도 신선하다.

지은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양하고, 전혀 새로운 이야기다. 산맥으로는 접근하거나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간간히 상대방의 표절과 잘못에 대해 큰 목소리를 높이지만, 스스로의 잣대에는 너무 무르다는 것이다.

뺏기기?

장수군 번암면 지지리는 금남호남정맥이 백두대간에서 분지하는 고원지대의 하늘 아래 첫동네다. 해발 60미터. 섬진강 지류인 요천의 발원지기도 하다. 여정이는 지지리에 살았다. 직선거리로 따졌을 때 지지리는 장수읍(금강유역)에서 8km, 함양읍(낙동강유역)에서 15km, 남원(섬진강유역)에서 25km쯤에 떨어져있다.
"여정아, 장 보러갈 때 주로 어디로 가지?"
답은 "남원"이었다. 직선거리로 따지면 가장 멀지만, 넘어야할 산이 없는 남원이 실제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물길 흐르는 대로 걷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태백산맥은 없다』,163쪽)

산줄기인 대간, 정간, 정맥은 하천을 고려하여 설정했다. 여기에는 산은 음이고 물은 양이라는 동양철학의 기본인 음양 오행설이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대간, 정간, 정맥으로 둘러싸인 지방의 모든 물은 반드시 한 하천으로 모인다. 같은 물을 마시는 유역의 주민은 문화가 동일하며, 하나의 경제권을 형성한다.
위의 지도를 보자. 이 지역은 금강, 낙동강, 섬진강의 세강이 나누어지고 있다. 해발 600m의 고지대인 지지리는 직선 거리로 잡아 장수읍에서 8km, 함양읍에서 15km, 남원읍에서 25km 떨어져 있다. 문제를 하나 풀어 보자. "지지리 사람들은 어디로 나들이할까?" 답은 남원이다.(『교실밖 지리여행』 ,26쪽) * 웃기는 것은 지도까지 닮았다.

고산자 김정호의 이야기(『태백』,243쪽)
김정호는 감옥에서 죽었는가(『교실』,75쪽)

고산자에 이야기가 상당히 비슷하다. 옥사하지 않은 점과 조선시대에 지도가 많아 산을 3번 8번 올랐는가에 대한 물음 등....

새로운 눈이 필요하다.

지은이는 산맥이라는 개념 대신에 1대간 1정간 13정맥을 들려주면서, 산과 강이 우리곁에 머무르는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려줍니다. 그리고 일제의 산재로 인하여 무참하게 밟혀진 산들과 왜곡된 역사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말합니다. 그의 글쓰기는 전혀 새롭고, 단순히 '산이 거기 있었네'라는 문구가 아닌 실제로 우리곁에 머무르는 애기는 재미납니다. 다른 책과 겹치는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설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합니다.

추신: 표절은 그의 저서 산악문화에서 나온 『산경표 이야기』에 실린 내용임을 알게되었습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5-11-22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교실밖 지리여행
박병석, 노웅희 지음 / 사계절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여행을 하는 동안, 국립공원이며 산을 많이 올랐는데... 항상 허전함은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의문이였다. 이런 의문은 산맥으로 풀리지 않고 백두대간이라는 우리나라 산경표에 기록된 지리를 보곤 답을 찾곤 했다. 하지만 백두대간을 보았다고, 산이 사람에게 미친 영향까지 읽어내기에는 내 머리가 작다. 산이 과연 인간에게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면서 책을 찾다가 지난 책을 한 권 집었다.

지은이는 "땅과 시람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산과 강이 어울려 거기 기대어 사는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강은 사람을 흐르게 하고, 산은 사람을 막는다. 강이 동질성을 품는 동안 산은이질성을 키운다(16쪽)"는 화두를 꺼낸다.

'강은 사람을 흐르게 하고, 산은 사람을 막는다' 이는 말에서 자연스레 베여있다. 내가 사는 밀양과 청도의 말이 다르고, 대구와 포항의 말이 다르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말 뿐이지 않은가? 좀 더 많은 것을 듣으려 한다.

지은이는 교과서에 알려주지 않는 지리 이야기를 들려준다.(나는 분명 산맥으로 배웠다) 그는 백두대간을 이야기하고 강을 이야기 한다. 우리나라의 70%가 산이라 했던가, 산은 늘 우리 집 뒤에 있으면서 사람들을 특징 지운다.

해발 600m 고지대인 지지리라는 마을은 장수(이십리), 함양(사십리)에 장보러 가는 것이 아닌, 남원(육십리)에 간다. 남원까지는 강을 따라 가지만 장수와 함양은 큰 산을 넘어여 하기 때문에 건너지 못하는 것이다. 거리 보다 높은 산이 마을을 갈라 놓았다.

이렇게 지형이 만들어 내는 구조는 작지만 다양한 문화적 층위를 표현하게 했다. 다른 한편 지은이는 거대 압력국가에 대해 정확한 실체를 보자며 접근한다. 그는 UR라운드 타결로 인해 쌀 수입이 개방되게 되면 농촌이 큰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 말한다. 또한 용산 미8군 기지로 인한 피해, 일제의 왜곡된 역사의 휴유증에 대해서도 바로잡히길 바란다. 즉 우리나라 왜곡된 대간의 이야기부터 시작된 글은 일본의 왜곡, 압력국가 미국에 대한 시선 등으로 넓혀지고 있다. 이렇게 시선이 넓어지다 보니, 자연히 우리나라 지리에 대한 총체적 접근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나름대로의 정리와 나눔이 설정되어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지리에서 세계적인 문제까지 이어가는 점은 자칫 깊이의 부족과 산만해 보인다. 그의 비판적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여 하지만 지은이의 서문에도 밝혀듯이 어른이 보기에는 조금 부족함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백두대간의 개념 정리하는 수준과 미국의 쌀 정책, 일본의 왜곡된 강요 등은 새겨볼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제 내려놓고자 합니다.... | 人生 2005/11/13 23:27
http://blog.naver.com/donodonsu/100019439477

 매번 느끼지만 사람의 일은 항상 어렵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주관이 있습니다.

 그점은 제게도 소중하지만 권작가님께도 그것은 더 소중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일면식도 없는 두사람의 생각과 주관은 가끔 서로를 이해시키지 못하고, 때로는 필요이상의 갈등과 충돌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저는 이번일을 대하는 저와 권작가님의 입장도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처음부터 제가 견지했던 입장은 "사회적 인정" 이라는 것은 항상 그것에 부합하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 이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이 문제를 처음부터 저작권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고, 다만 그것은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받는 저명작가라는 위치에서, "규범적 판단" 이전에 행해져야 할 치열하고 엄격한 "자기검열"의 문제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제게는 제 개인에대한 권작가님의 사과여부는 처음부터 문제의 본질이 아니었던 것 입니다.

 그러나 권작가님께서는 저와는 달리 글을 쓰시는 분으로서의 관점이 계셨고, 또 그런 권작가님의 관점에서 볼 때는 글의 "원저자"인 저에 대한 양해가 가장 우선적인 것이라고 여기셨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이일에 대해서 권작가님께서는 "일차적으로는 권작가님과 저의 문제"로, 저는 "권작가님과 독자"간의 문제로 보면서 처음부터 입장이 갈라졌고, 이렇게 미묘한 두 관점의 차이가 서로가 원치않는 방향으로 에스컬레이트되어 결국 많은 분들께 걱정거리를 남겨드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번 주말에 권작가님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대화에서 전업작가가 아닌 사람은 쉽게 짐작 할 수 없는 권작가님의 깊은 고뇌과 아울러 한사람의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적 고민의 일단을 경청 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제가 미봉책으로 여겼던 "4 판부터 책에 출처를 명기하겠다는 입장"을 권작가님께서는 왜 굳이 이 문제의 해법으로 여기셨는지를 충분히 이해했고, 아울러 그후에는 독자분들께도 적절한 해명을 하실 준비가 되어 있었음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권작가님도 "그것보다는 작가적 양식에 입각한 자기견책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저의 뜻에 대해서 충분한 공감과 이해를 표시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권작가님께서 지난 금요일에 밝히신 "유감표명"에 담긴 진정성을 이해하고, 이제 그것을 "소중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권작가님께서 어렵게 내미신 그 손을 늦게나마 기꺼이 마주 잡고자 합니다...

 곱고 아름다운 가을에..

 때아닌 폭풍우가 매섭게 휘몰아치고, 그로인해 많은 분들께 걱정을 끼쳐드린 것에 부끄러움이 앞서지만, 그래도 지금은 내려놓음으로서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下心" 이라는 말의 의미가 제 마음속에 새삼 깊이 와닿습니다...

 p/s : 제가 이 문제를 여기서 이렇게 "내리는 것"은, 하나의 어이없는 해프닝처럼 그저 쉽게 "물러섬"이 아니라, 제 나름대로 "사건이 아닌 사람"에 대한 깊은 고려와 인간적 고뇌가 있었음을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아울러 이 문제를 같이 고민하시는 저의 좋은 이웃과 너그러운 친구 분들께도 저와 같은 마음으로 거리에 쌓이는 낙엽처럼 이 문제를 이곳에다 그대로 소복히 내려놓아 주시기를 감히 청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이일로 인해 걱정을 끼쳐드린 많은 분들께 깊은 감사와 사과를 드립니다.......

 2005.11. 13  박경철 드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박훈규 언더그라운드 여행기 - 젊은예술가의 세계기행 2
박훈규 지음 / 안그라픽스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뒤늦게 제대를 하고, 어떻게 할지 몰라 나라밖으로 떠난 오스트레일리아. 그는 낯선 곳에서 낯선 이를 만나며서 차츰 자아를 찾아간다. 그 여행은 지루하지 않고, 삶에 깊이가 담긴 혜안으로 비춰진다.

떠남

"시드니의 이곳저곳을 헤메 다녔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무작정 일자리를 부탁했다. 마치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 같았다. "(26쪽)

"100달러 짜리 지폐를 손에 쥐고 있으니 기쁘고 행복했다.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30쪽)

"어느날, 나는 주방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그의 초상화를 그려주었다. 물론 그는 아시에서온 친구의 그림 실력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나 완성된 그림을 건네주니 단박에 표정이 바뀌었다. 다행이었다. 나는 그 초상화 한 자응로 그날부터 청소하는 아저씨들 사이에서 '11하우스의 아티스트'로 불리는 영광마저 누렸다. 무엇보다 그때까지 나라는 존재를 의식하지 않았던 그들이 비로소 나를 의식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매우 만족스러웠다."(46쪽)

"호주에서의 생활도 점점 익숙해졌다. 일을 하면서 배운 영어덕에 자신감도 회복하고 있었다."(50쪽)

"목사님은 액자 학교에서 액자를 만드는 법을 배운 것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셨고, 매일매일 찾아오는 단골 손님들과 즐겁게 일하셨다. 한국 교민들이 이 사회에서 정착하며 실패하는 이유가 다름 아닌 끈기가 부족하고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 등 여러 가지 말씀을 해주셨다.

그래. 난 목사님 말씀처럼 그때까지 거리를 우습게 여겼다. 솔직히 천하다고 생각해왔다. 나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향해 손가락하고 비판만 하는 그런 젊은이였다. 거리에 대한 생각을 바꾼 그날 밤 내 삶의 '전환점'이었다. 이제 거리로 나설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52쪽)

어디를 가야할지 몰라 이리저리 머리를 부딪혀가며 스스로를 상처내는 이가, 오스트레일리아라는 낯선 곳에 가서 자아를 찾아가고 있다. 그는 단 돈 100달러에 부자가 되어보기도 하고, 청소부 아저씨에게 그림을 그려 주어 친구를 사귀기도 한다. 낯선 곳에서 내가 먼저 마음을 열지 않고 상대방이 다가오기를 바라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이는 철저히 자기를 숨기며는 몸짓이며, 상대방과 진실어린 이야기를 이끌 수가 없다. 언제나 상대방을 경계하기 때문에 할 말과 안할 말을 먼저 생각하고 드러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이런 거짓에서 나온다. 그는 거리의 사람들을 천하다고 생각했지만 '사고의 전환'을 통해 내 이웃, 친구로 보게 된다. 차츰 영어를 하면서 자신감도 회복하게 된다고 서술한다. 언어를 문법이나 완벽하게 구사하기를 바라는 우리나라 교육은, 내 발음이 틀리지나 않을까 혹은 문법이 어긋나지나 않을까라는 선물을 던져주어 쉽게 말문을 못 열게 한다. 말이라는 것은 하면서 늘어나는 것인데... 문법이 틀리다고 발음이 조금 샌다고 상대방이 모르는 것은 아니다. 틀린 부분을 바로 잡아 주며, 손짓발짓해 가며 말이 자연스레 늘어가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를 누군가의 교육을 통해 얻는 것이 아닌 체험적 습득을 통해 익힌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값지다라고 할 수가 있다.

거리에 나서기

"'용기를 내야해, 어서 고개를 들어'
슷로에게 주문하고, 또 주문했다. 결국 용기를 내서 고개를 들었다. 하나, 둘, 셋... 주위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런, 놀랍게도 누구 한 명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어느 누구도 날 쳐다보는 사람이 없다. 단 한명도... 그저 나 혼자 스스로 쳐놓은 덫에 걸려 있었던 것이었다."(
56쪽)

"우리는 알고 있었다.
무엇인가 시작한다는 것은 결코 나쁜게 아니라는 것을.
시작하는 것. 그것이 비록 성공의 보장이 없더라도 '시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66쪽)

"무엇보다 나는 그 카페에서 비로소 커피를 마시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놀아운 것은 그 카페에서 여유를 찾은 후부터 그림을 그리는 데 더욱 열정적으로 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효과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잘 몰랐던 때였다. 사람이 휴식을 취한다는 건 단순히 쉬는 것만은 아니다."(96쪽)

"처음 여행을 떠나며 나는 다짐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물론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세운 계획과 목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110쪽)

처음 마음 먹은 일이, 막상 현실 앞에서는 쉬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지은이는 여행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다짐한다. 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 거리에 나가 그림을 그리려 하지만 얼굴을 들지 못한다. 마음 먹은 대로 몸이 따라가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용기라는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그가 하나, 둘, 셋하고 고개를 들기 까지는 몇 번이고 이 숫자를 세어 보았을 것이다. 용기가 없었다면, 아무도 쳐다봐 주지 않는데, 혼자 고민하고 집으로 돌아왔을런지도 모른다.

언제나 두려움과 설레임

"얼마 후, 런던 히드로행 비행기에 올랐다.
처음 호주로 향할 때와 달리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솔직히 나누고 싶지 않았다.
나는 설레고 있었다. 또한 그만큼 두려웠다.
비록 호주에서 잘 적응해 왔지만, 태어나서 처음 찾는 영국이란 나라는 내게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안겨주고 있었다."
(144쪽)

"나는 런던에 '홀로' 서 있었다. 나를 반기는 살마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었다. 정말 완벽하다. 완전히 소외된 것이다.
나는 완벽하게 나만의 시간을 갖고 있었다.
계속 웃음이 나왔다."(
148쪽)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이야기는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이보게 친구! 이곳의 수많은 화가들이 하루에 100파운드 이상을 벌어들이는 게 부러운가? 그러나 너무 부러워하지 말게. 자네처럼 누가 보지 않아도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면 비록 당장은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훗날 단 한번의 기회만으로 그들과 비교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거야."(196쪽)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거리의 화가라는 직업을 가지며 생활을 꾸준하게 해온 그도, 런던이라는 낯선 도시에서는 두려움을 느낀다. 이는 처음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까? 항상 우리의 만남은 익숙함과 낯설음이 엇갈린다. 익숙함은 편안하기에 두려움이 없지만 낯설음은 전혀 새롭기에 두려움이 따라온다. 한 번 낯선 곳에 갔다왔다 하여 그가 모든 낯선 경험을 두려움 없이 마주하리라는 것은 착각이다. 몇 번의 더 낯선 만남을 통해 얼굴에 철판을 까는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이 떠나는 것이 아닐까? 지은이는 또한 인도의 다큐멘타리 사진작가의 만남을 통해 꿈과 희망을 키운다. 비록 오늘의 삶이 경제적으로 궁핍하다 할지라도 그에게는 더 큰 꿈이 있는 것이다. 이는 현실을 사는 사람이 아닌 내일을 사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여유와 행복을 안겨준다. 이 여유와 행복이 없다면, 내 이웃의 아파트와 자동차를 비교하며 나를 더 힘들게 할 뿐이다.

처음과 끝 그리고 처음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일은 언제나 작은 흥분을 동반한다. 나처럼 비교적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사람이더라도 새로운 곳을 찾을 때면 긴장되기 마련이다."(220쪽)

"분명한 것은 여해잉 나를 바꿔놓았다는 것이다. 처음 이 땅을 떠났을 때의 나는 그야말로 상처투성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지금 나는 거의 완벽할 정도로 나를 회복하고, 찾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스스로를 대견해 했다. 그 누구도 지켜주지 않던 내 자신을 '격려'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244쪽)

삶에 대한 깊은 회안을 간직하고 나라밖으로 떠난 이가, 아픔을 묻어두고 활기찬 기운으로 돌아왔다. 비록 여행에서 만나게 되는 이변이나 우여곡절 끝의 상처를 말하지 않았지만 무수히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이는 아무렇지도 않다. 이 상처 마저도 약으로 온몸에 승화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삶에 대한 길을 찾지 못한 이가, 좋은 면만 담아내는 글쓰기를 통해, 여행이 얼마만큼 그에게 큰 의미를 던져 주었나라고 곰곰히 생각해 본다.

지은이는 '새로운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용기'를 꺽지 않는 한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다'고 자신한다. 익숙함에 길들여지면, 온실 속에 머무를뿐이다. 온실 속의 꽃은 살짝 이는 바람에도 겁을 먹고 움츠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온실에서 나와 찬서리를 맞고 하루이틀 지내다보면 시나브로 내 안에서 힘이 생기게 된다. 이 힘은 새로움을 접할수록 더 크지며 나에게 어떠한 낯선 일도 해낼 수 있는 용기를 가져다 준다. 그렇지않고 온실 속에만 머무르면 내성마저 숨어버릴지도 모른다.

젊은 날에 여행을 떠나라는 것은, 전혀 낯선 곳에서 자아를 찾아보라는 의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400여일 동안, 세 도시를 걷히면 사람을 만나고 들려주는 이야기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는 생각이 내 머리를 어지럽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